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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충고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80>

"한국에 유학 오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선배로서 어떤 말을 하고싶지요?"
"첫째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목표가 없이 방황할 때면 누구도 도울 수가 없어요. 둘째는 중국에서 우리가 공부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중국교육이 너무 고정된 틀 속에 갇혀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학생들에 비해 공부의 자유를 누릴 줄 모르고, 그 자유를 선택하지 못하고있어요. 이것이 중국유학생들이 힘들어하는 이유이고, 공부에서는 큰 약점으로 노출되곤 하죠. 셋째는 유학을 위한 유학을 목표로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인생에 도움이 되고 배운 지식은 반드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공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넷째는 학교의 이름만 보지 말고 전공학과의 상황을 잘 알고 와야 하며, 유학공부에 필요한 지식을 미리 익혀두는 준비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한국 문화에 대한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6시 반에 일산에서 출판사와의 만남이 있기로 약속이 되었으므로 나는 그녀와의 숨 가쁜 1시간 반의 취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뻐스에서 손을 젓는 그녀가 멀어지면서 길옆의 아름다운 벚꽃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만원을 이룬 뻐스는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들로 시끌벅적하다. 그 속에서도 그녀의 말이 귀에 따갑게 울려왔다. "전 껍데기만 조선족이고..."

그후 모 대학에서 문학박사를 전공하고있는 김영씨를 만났는데 그도 강희연씨와 비슷한 갈등을 겪었다고 했다. 그녀는 길림사범대학 정치교육과 출신으로서 1995년에 처음으로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러 나왔고, 97년도 9월부터 다시 한국에 나와 석사과정 및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중국 한족지구인 장춘 지구에서 태어났고, 중국어로 수업을 받았고, 거의 한족 말만 했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있는 연변지역의 학생들은 조선족의 유래에 대한 교육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같은 경우는 어릴 때도 할아버지가 어떠한 배경을 거쳐 중국으로 왔고, 어떤 과정을 통하여 중국조선족이 되었는지에 대한 지식을 전혀 배우지 못했습니다. 거의 중국문화와 중국어에 익숙했습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중국 대도시에서 온 저희 나이 또래 모두가 그렇습니다. 조선족이란 중국 55개 소수민족처럼, 그냥 그렇게 워낙 중국에서 살았어나보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대학교 직원아저씨와 우리 중국 조선족 유학생들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국적도 중국이고 워낙 중국에 살았던 민족이라고 흥분했고요...조선족이 이주민이라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었고, 이주 당시의 상황을 전혀 몰랐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도대체 무엇인지, 라는 민족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많습니다. 역사적인 문제에 대한 교육과 해명이 필요합니다."

김영씨는 북경 모 대학 한국어학부에서 교편을 잡기로 확정되고 현재 논문집필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해외 동포들 중 중국조선족은 자신의 민족정체성을 가장 잘 확보한 군체이다. 그런 중에도 그녀들처럼 조선족 집거구를 떠나 중국 대도시에 모래알처럼 흩어진 조선족은 자신의 민족언어 상실과 함께 자연스레 문화동화의 변두리에까지 이른다.

조선족은 중국국민이고 뿌리문화는 한반도에 있다. 뿌리문화와의 만남은 심한 갈등을 만들기 마련이다. 강희연 씨와 만나서부터 헤어지기까지 그녀의 표정은 어두운 구석이 많았다. 성격과 개성의 차이도 있겠지만, 단순한 열정으로 차 넘쳐야 할 20대의 그녀가 말끝마다 '고민이예요', '이것도 저의 편견인지', '방황했어요' 등의 표현을 많이 썼던 것을 보면 그녀도 새로운 문화충격 앞에 서있고 그 충격이 무척 큰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강희연씨와는 대조적으로 김영씨는 무척 밝은 표정이었다. 한국에 있은 수년간의 생활을 통해 한국문화에 많이 적응하게 된 때문일 것이다.

"일단 저 개인적으로는 먼저 한국사회와 한국의 문화를 먼저 배우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먼저 거의 1년 동안 도서관에서 많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주로 한국의 역사와 정치에 관한 거죠. <격동 30년>등과 같은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근대 정치사를 공부했고요. 또한 중국에서 접할 수 없는 한국의 선거문화, 젊은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러한 행사에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지방에 있었지만 혼자서 가끔씩 주말을 이용하여 배낭을 매고 문화의 중심지인 서울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일단은 한국인들과 같이 공감할 수 있는 화제, 그리고 그들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상식과 지식들을 배우며 문화를 이해하고 문화에 적응하였습니다. TV를 보면서 한국어공부와 문화공부를 병행할 때도 있었죠. 이제는 한국을 많이 이해할 수 있고 많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일산으로 향한 한시간 반 동안의 지루한 시간에도 강희연씨의 모습이 내내 밟혀왔다. 마음이 무척 착잡했다.

미주동포 역사에 대한 저서에서 "이민은 곧 동화이다."라는 구절을 보고 많이 섬뜩했다. 2세부터 미주동포들은 자기 언어를 잃어가고 있다. 그들은 이와 같은 역사를 토대로 이런 개념을 정립했을 것이다. 조선족은 현재 5세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동화를 체념한 적은 없다.

우리 후세에 가서 조선족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계획경제시기에는 인구유동이 적어서 조선족의 공동체확보가 보다 좋은 조건에서 이루어졌었다. 현재 개혁개방이 시작되어서부터 조선족은 인구유동이 심해지면서 조선족 집거구가 형성되지 않은 대도시에 흩어지는 조선족인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13억 타민족 인구 속에서 하나의 쪽배에 불과한 2백만 조선족은 바다같이 거대한 문화에 흡수될 위협을 느끼고 있다. 현재 동화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이 조선족 지성인 사회의 중요한 초점이 되고 있고 실제상 한국어학교를 꾸리는 등 상당한 작업이 진행중이다. 지속적인 민족역사교육은 동화를 방지하는 중요한 작업임이 틀림없다. 한편 조선족은 고국과의 교류와 남북통일을 동화를 막을 수 있는 중요한 환경 요인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남북통일은 빠른 시일 내에 기대할 수 없다. 한국과의 만남은 조선족 후세들에게 민족정체성을 다시 확인시키는 기회로 되고 있다. 조선족 3,4세, 또는 5세에게 있어 한국문화와의 만남은 뿌리문화와의 접목의 대단히 중요한 사변이다.

해외 동포들에게 있어 한국의 우수한 전통문화의 자양분을 잘 흡수하여 자기 문화를 충실히 하는 것은 코레안드림의 또 다른 중요한 내용이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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