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이는 다섯 달이 돼서부터 '짐보리'에 다니고 있다. 유아교육전문시설인데, 아이들의 지력발달을 위한 놀이를 위주로 했다. 정자는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아이를 안고 춤을 췄다. 선생님이 "올리고, 내리고..."라고 구령을 부르면 따라서 아이를 안고 그 동작을 했다.
한 달에 네 번씩 한번에 한시간씩 하는데 반마다 아이들의 나이는 다 달랐다. 한돌 전, 두 돐, 세 돐, 네 돐...... 석 달에 요금이 22만 원이나 들었다. 춤을 추고 나면 엄마들이 아이의 특징을 말하는 시간이 된다. 아이들의 이빨을 닦아주는가, 어떻게 닦아주는가를 묻기도 했다. 어떤 부모들은 가제로 잇몸을 닦아준다고 했다. 정자는 목욕 전에 고무 칫솔로 닦아준다고 대답했다.
"나는 연변 말이 부끄러워 묻는 말에 단 마디로 대답하고는 평소에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소."
정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선생님과 이런 물음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아기 누구 닮았어요?"
"아빠 닮았어요."
"어떤 점이 닮았어요?"
"성격이 급한 점이 닮았어요."
부모들끼리 보육상식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있었다. 우유 병을 어떻게 소독하면 좋고, 음식을 어떻게 먹이면 좋고 어떤 책을 보이면 좋은가 등이었다.
아이들의 특징을 말하는 시간에 선생님은 정자에게 아기 지력발육 특징을 말하라고 했다.
"우리 민정이 책에 흥미 있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얇은 책장 잘 번져요."
우리 연변 말은 '번진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넘긴다'고 하더라고 했다.
'짐보리'에서는 수업이 끝나면 꼭 이런 절차가 있다. 선생님이 "짐보리!"라고 소리치면 아기 엄마(혹 가정부)들이 "야-!"라고 소리를 쳤다.
"지금은 내가 '짐보리!'라고 소리치면 우리 민정이가 '야-!'라고 소리를 치오......"
정자는 민정이가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한참이나 웃었다.
민정에게 동생이 생겼다. 민정이는 여자 애인데 동생은 남자여서 주인집에서 좋아했다. 정자도 좋아했다. 주인과 정자 사이에는 월급에 대한 의논이 있었다. 주인은 백만 원을 주겠다고 했고, 정자는 너무 적다고 했다. 민정이도 아직은 아기이기에, 두 아기를 보고 가무를 하는 노동량에 해당되는 월급이라면 백30만원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똑부러지게 말했다. 정자는 일한 것만큼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자는 빨리 돈을 벌어 빨리 중국에 돌아가 가족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여주인은 금방 해산한 몸이었지만 그 날은 하루종일 침대에 눕지 않고 본가 편에 전화를 했다. 한국에서는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고는 보모를 청할 수 없다. 정자가 일하는 집은 본가편의 경제수준이 괜찮은 모양 보모비용 등 경제지원이 그 쪽으로 오는 눈치였다. 민정이 아빠가 의사자격증을 따면 수입이 좋을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여주인은 근심스런 표정이었다. 그만한 비용이면 한국의 보통가정에서는 엄청난 지출이 아닐 수 없었다.
단 조선족여자들이 가정부를 하기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편이였다. 한국여자들이 직장을 가지지 않는 원인의 하나가 아이 보모비용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는 아이 교육비도 엄청 들었다. 민정이의 '짐보리'교육비만도 한 학기(3개월 동안 한 주일 한 번 한시간)비용이 22만원이라고 했고, 가정교사 1개월(한 주일에 20분씩 놀이 감을 가지고 놀아주며 조기교양을 하는 것)비용이 3만 원이라고 했다. 이제 3살부터는 피아노선생을 청해야 한다고 했다.
여주인은 정자의 의견대로 월급을 130만원에 정했다.
정자에게는 승벽심이 강한 친구가 있었다. 처음에 정자가 이 집에 들어왔을 때 그 친구는 정자더러 월급이 적다고 다른 집으로 바꾸라고 했다. 보통 백만 원, 적어도 90만원이라고 하며 자기는 백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랬지만 정자는 바꾸지 않았다. 내가 이 집에 꼭 필요되도록 열심히 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월급을 올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자가 주인과의 가격이 확정돼 130만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나자 이번에는 그 친구가 또 다른 자리로 옮겼다. 정자는 일단 자리를 잡은 집에 정을 쏟고 정을 키우면서 월급이 오르도록 해야지, 높은 월급을 찾아 전전하면 오히려 서로 갈등만 일으키고 자신도 마음이 붙지 않고 스트레스도 더 받으며 수입도 손해라고 말했다. 정자는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인정해준다는 도리를 믿고 있다. 그녀 주인도 그녀의 노동대가와 그녀에 대한 신임도에 의해 월급을 정했을 것은 분명했다.
정자남편은 정자가 두 아기를 보느라고 고혈압이 도질까봐 근심했다. 정자도 근심이다. 갓난 아기 때문에 밤중에도 다섯 번, 여섯 번을 일어나야 하는데, 한 번 일어날 때면 머리꼭대기까지 줄이 뻗으며 앞이 캄캄해질 때가 많다고 했다. 아기는 울기는 해도 가만히 누워있지만, 민정이는 비틀비틀 걸어다니며 곧잘 일을 저지르거나,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다. 자기 마음대로 안될 때면 떼질이란 무기를 들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정자를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녔으므로 화장실에 가도 민정이를 안고 있어야 했다. 매일 방 청소를 해야 하고 때까지 끓여야 한다. 그러나 정자는 처음보다는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 아기들과 이 집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민정이 아빠도 가끔은 직장으로부터 정자에게 힘들겠다는 위안의 전화가 오곤 한다고 했다.
그럭저럭 서울생활에 적응되었지만 집에 대한 근심은 지워버릴 수가 없다. 앓고있는 남편과 아들 때문이다. 정자는 야무진 계획이 있었다. 빚을 갚는 것이 첫째였고, 작은 집을 큰 것으로 바꾸는 것이 두 번째, 그 작은 집은 앓는 남편과 아들의 치료비가 나올 수 있는 '돈 나무'로 만드는 것이다. 즉 세를 주는 것이다. 좀 더 벌면 식료품가게를 차린다......이런 계획 때문에 여주인이 집에 부친 돈을 남편이 잘 관리하는지가 근심이었다.
한 번은 남편에게 부친 돈을 다 저금했는지 알아보았다. 남편이 웬일인지 얼버무려 넘기려 했다. 더럭 의심이 들어 따지고 따졌더니 고지식한 남편이 그만 비밀에 부치려고 했던 일을 실토했다. 자식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지나치게 고독한 나머지 정신분열증으로 앓고있었다. 나에게 전화를 해왔을 때 정자는 목이 메어 말도 못하고 울고 있었다. 아들 근심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가 스트레스를 받아 혈압이 올라 갈까봐 한참이나 좋은 말로 위안했다.
지금 정자는 매일 웅담분과 고혈압 약을 먹으면서 아기 둘을 보고 있다. 한 달에 두 번 휴가를 가진다. 갈 곳이 없어 번마다 동대문 쪽에 있는 친구에게로 간다. 친구는 120만원을 받고 한 할아버지를 돌보며 살아가기에 그 집으로 가면 마음놓고 휴식할 수 있었다. 친구도 매일 대화가 불가능한 할아버지를 돌보며 외로운 생활을 하다 보면 친구의 방문이 반가워지곤 했다. 대화에 굶주렸던 그들은 밤새는 줄을 모르고 이야기를 했다. 두 주일 동안의 대화를 하루동안에 다 하고 나면 정자는 또다시 생기를 회복하곤 했다.
"우리 아줌마 연애를 하고 돌아왔네. 더 예뻐지셨네."
젊은 주인내외가 그녀에게 농담을 했다.
내가 서울을 떠날 때 정자의 유달리 높게 깎은 머리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왜 그렇게 빡빡 깎았느냐, 라고 물었더니 자주 깎기 싫어서 그랬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머리를 깎는 데 드는 6천원이 아까워 그런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정자가 중국으로 돌아가면 어떤 모습일까? 자기의 손톱끝으로 일떠세운 가게에 앉아 힘들었으나 미운정 고운정 묻혀가며 자기 손으로 키워낸 6천원짜리 서울 아기들의 성장한 모습을 그려보며 서울의 힘들었던 나날을 머나먼 과거처럼 중얼거리고 있을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신뢰와 정을 키우고 열심히 돈을 벌고 모아 남편에게 좋은 아내로, 아들에게 당당한 엄마로 된 긍지를 안고 살아갈 그녀가 내 눈에는 진정 아름다운 여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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