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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6천원어치의 노동이구나"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14> 서울보모와 아기 (중)

정자는 한국에 이미 여동생이 먼저 들어와 있었다. 남동생과는 이혼을 했지만 시누들과는 사이가 좋은 옛 올케도 있었다. 갑자기 직업을 찾으려고 하니 마땅한 자리가 없어 반달을 헤매고 다녔다. 시골에 시집간 올케가 감자 캐는 일이라도 와서 하면 어지간한 생활비는 나올 거라고 해서 시골로 갔다.

올케는 지지리도 남편 복이 없는 여자였다. 정자의 동생과 이혼한 후 재가한 남편과 또 이혼했다. 한국에 시집 온 동안에 애를 데리고 있던 남편이 갑작스레 죽었다. 올케는 아이 때문에 매일 울다시피 했다. 한국의 남편이 착해 애를 데려오는 데 동의했다. 올케는 법무부에 무릎을 꿇고 빌어 끝내 애를 한국국적으로 옮겼다. 한국에서는 이런 사례가 처음이라고 했다. 애는 지금 대전에서 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올케와 한국남편이 작은 일로 옥신각신하더니 나중에는 큰 싸움으로 번졌다. 남편은 올케가 어느 회사에서 일당 6만원을 받고 일했는데 그 돈을 받아오지 않았다고 화를 냈고, 올케는 올케대로 그 돈은 언제든 받아올 거니까, 자꾸 잔 속을 썩이지 말라고 대들었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나중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쌓였던 것들을 다 드러내며 싸웠다. 시모까지 참전해 며느리를 때리는 통에 경찰이 동원돼 왔다.

경찰을 보자 정자는 불법체류자신분이 드러날까봐 낯빛이 파랗게 질려 방으로 달려 들어가 숨어버렸다. 그 날 밤에 정자는 택시를 잡아타고 논산으로 줄행랑을 놓았는데 요금이 7천원이 나오더라고 했다. 논산에서 서울로 달리는 기차를 탔다.

친구의 소개로 서울 한강 쪽에 있는 아파트에 월 80만원짜리 가정보모로 들어갔다. 넉 달이 된 여자 아기를 보고 세끼니 밥을 하고 집 청소를 하기로 했다.

"여주인이 여권을 달라고 하길래 별 생각이 없이 줬더랬소. 어느 날 집을 거두다가 보니, 노트에 내 이름, 생일, 신분증번호, 여권번호가 상세히 적혀 있습데. 아, 나를 믿을 수 없어 그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데. 글쎄, 낯선 사람끼리 믿을 수야 없겠지. 황차 국적도 달라서 물건을 훔쳐 가지고 달아나면 잡을 수도 없는 사람이니까, 그렇기도 하겠지. 이 때까지 남에게 의심을 받으며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처음에는 그게 그처럼 모욕적으로 느껴집데. 그렇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니까 괜찮아집데."

정자의 말이었다.

난생 처음 가정부를 하면서 화나는 일이 많았다. 젊은 주인들이 출근한 방에 들어가 보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젊은 부부는 매일 아침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팬티는 다리가 뽁 빠져나온 그대로 구들에 놓여있고, 브래지어도 벗은 모양 그대로 침대에 놓여있었다. 이불도 사람이 쏙 빠져나온 모양이고, 옷 장문도 사람 손과 옷이 쏙 나온 모양으로 열렸고, 벗은 옷들은 이리저리 쓰러져있고......사람이 이용만 하고 거두지 않으니 어른의 방이 그처럼 수라장일 수 없었다. 옷들은 전부 속살만 파먹은 배추모양처럼 놓여있었는데 그것을 일일이 정리하고 방의 모양을 원상복구하는 일이 매일 반복됐다.

민정이 아빠도 잔소리를 많이 했다. 자기보다 나이가 십여 살 어린 주인들의 잔소리를 듣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었다. 김치를 만드느라고 손에 가득 고추 가루를 묻혔는데도 커피를 타달라고 했고, 애가 울어도 그녀가 달려갈 때까지 가만히 놓아두고 있었다. 아기가 앓아서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그녀가 멀미나서 막 토하는데도 아기를 안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토하면서 한 생각이 '아, 이것이 가정부구나', 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가만히 앉아서 "아줌마, 커피!", "아줌마, 쥬스!"라고 할 때면 속에서 무언가 울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기의 걸레를 씻고 삶아 소독했다. 손수건도 아기의 코를 한 번만 닦으면 꼭 새것으로 바꾸어야 했고, 그것들을 다 씻어 삶아 소독해야 했다.

그러나 이게 6천원(한화 80만원이면 중국 돈 6천원)어치의 노동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신기하게 화가 갈앉곤 했다. 6천원은 그녀 8개월 월급에 해당됐고, 그녀보다 낮은 사람들의 1년 월급에 해당됐다.

"처음에는 아기도 보고 청소도 하라니까 도대체 어느 것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습데. 아기엄마도 시름을 못 놓고, 나도 조급하기만 하고. 하루는 청소를 하다 보니까, 아기가 침대에서 떨어져 바사지게 울지 않겠소! 아기엄마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소. 나는 놀라서 막 숨이 막히는 것 같았소. 청소기를 던져버리고 막 달려갔지. 그 날 밤을 나는 자지 못했소. 애가 가슴 아프고 병신이라도 될까봐 얼마나 겁이 나던지."

한국은 이상하게 아이를 엎드려 재우더라고 했다. 연변에서는 반듯하게 눕혀 재워 뒤통수를 납작하게 만드는데, 여기서는 서구얼굴모양대로 아기 얼굴모양을 설계했다. 아이를 엎드려 재워 얼굴은 작게, 뒤통수는 툭 튀여 나오게 했다. 민정이도 그렇게 엎드려 자게 했는데, 밤새 질식해 죽어 버릴까봐 잠이 오지 않았다.

정자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아기를 안고 아기 외할머니 집으로 가야 했다. 그 집의 일을 해주며 아기를 보았다. 아기가 조금이라도 울기만 하면 외할머니가 달려오고, 외할아버지가 달려오고, 외삼촌이 달려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집을 가면 신경이 고도로 긴장되곤 했다.

그녀는 여자지만 워낙 아기를 그다지 예뻐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아들애가 태어나서부터 패혈증에 걸려 많이 앓았고 천성적으로 비장이 커서 상해병원에서는 7살 전에 비장수술을 하라는 통지까지 왔었다. 커서까지도 그 미열 때문에 다른 애들처럼 건강하지 못했고 늘 집에서 할 일없이 외로이 놀곤 했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 때문에 너무 진력이 났던 모양 남의 아기들을 보면 마음의 상처가 아파나곤 했다. 민정이도 진정 예뻤을 리 없다. 처음에는 아기가 월 6천원이라는 계산을 했었다. 6천원만큼의 정성을 아기에게 쏟아야 양심에 걸리는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만을 했다. 그런데 사람이란 이상했다. 어느새 정이 들어 지금은 휴식 일이 돼서 밖으로 나오면 애가 보고싶어졌다.

"넉 달부터 내 손에서 자랐는데, 지금은 벌써 한 살이 됐소. 밤에 곁에 없으면 이상하게 가슴이 허전하오. 민정이도 내가 옷을 갈아입기만 하며 막 달려와 매달리며 가지 못하게 하오. 엄마가 아무리 구슬려도 그냥 울 때면, 조것도 정을 아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찡하며 고맙다오. 금방 한 살인데 어찌나 총명한지 내가 좋아하고 안하고를 금방 알아보오.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살짝 내 무릎에 올라와 나를 빤히 쳐다보곤 하오. 지금은 너무 예뻐서 내 아이 같은 기분이 드오."

민정이 엄마와도 정이 들었다. 정자가 집 걱정 때문에 밥을 잘 먹지 않는다고 자꾸 먹으라고 했고, 맛있는걸 사놓고는 먹지 않는다고 자꾸 말하곤 했다. 정자가 다리뼈가 아프다고 하자 칼슘이 모자라서 그렇다며 멸치를 많이 사오고, 우유도 매일 그녀 앞으로 청해주었다. 한 달에 두 번씩 중국 가족에게 전화를 치게 했다.

한 번은 양재기에 우유 병을 여섯 개 넣고 소독하느라 끓이고 있었는데 민정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방에 달려들어가서 아기를 달래다가 그만 우유 병을 깜빡 잊어버렸다. 탄 냄새가 지독하게 나서야 아차, 하고 달려갔더니 물이 다 줄어 우유 병이 네 개나 잘못되어 있었다. 정자는 너무 미안해 "민정이 엄마, 큰 일 났어요. 우유 병이 다 타버렸어요."라고 했더니 "괜찮아요. 또 사면 되죠."라고 위안해 줘 정말 고마웠다. 달마다 민정이 엄마가 그녀 월급을 달러로 바꾸어 집에 송금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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