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장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나는 울음소리일까? 주방장이 오토바이에 치인 연길 여자라고 알려주었다. 오토바이 주인은 그냥 내뺐고 여자는 심하게 다쳐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고 했다.
여자는 집사 침실에 누워 울고 있었다.
나이는 41살, 연길 대우호텔 부근에 집이 있다고 했다. 중국에는 200평방메터되는 집이 있어 셋집 일곱집을 만들어 세를 받으며 잘 사는편이라고 했다.
한국에 나오는데 중국돈 9만원(한화 1천3백만원정도)이 들었다. 그중 3만원은 한국수속을 해준다고 하는 사람에게 사기당했고, 이번 행에 또 돈 6만2천원(한화 8백30만원정도)이 들었다. 버는 대로 집에 보내 이제 남은 빚이 한화 7백만원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여관에서 일하다가 월급이 적어 식당에 들어갔는데, 너무 힘들어 다시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중 오토바이에 치여 병원에 입원했다. 강원도에 가서 일하는 남동생이 병원에 와서 간호했다. 병원치료비가 1백만원 정도 들었다. 병원에서는 척주가 물러앉았기에 위험하더라도 수술하는 길밖에 없다고 했다. 엄청난 수술비도 문제고 수술 결과도 겁나서 상처 염증이 제거되자 퇴원하고 말았다.
교회에서는 중앙대병원을 설복해 여자를 입원시켜 수술할 작정이라고 했다. 이런 경우에는 참으로 교회가 고마웠다. 얼마나 다행스러우냐, 울지 말고 수술해보라고 위안했다. 여자는 교회가 고맙기는 해도 수술이 위험해서 자칫 병신이 될까봐 겁난다고 했다. 수술후 반년은 누워있어야 성공여부를 알수 있으니, 멀쩡하게 반년을 누워있어야 할 일도 아득하다며, 생각할수록 앞이 캄캄해 더욱 슬프게 울었다.
"중국서도 살 만한데 왜 나왔는지 절로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돈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빚만 갚을 수 있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습니다. 지금은 애도 아니고 그냥 남편이 보고 싶습니다."
이때 다른 한방에서 또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주방장이 달려갔다. 40대의 여자였는데 2년동안 가정부로 있으면서 너무 많이 참았더니 심장병이 도졌다는 것이었다.
오토바이에 치인 여자가 울다 말고,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나에게 한국에 무슨 일을 하러 왔냐고 물었다. 차마 책을 만들려고 취재하고 있다는 말이 나가지 않았다. 고생하는 사람들앞에 필기장을 펼쳐들기가 쑥스러울 때가 많다. 그들은 중국에 돌아가면 다 어깨를 살리고 사는 사람들이고, 또 어깨를 살리기 위해 한국에 돈벌러 오기도 했다. 생활이 어려울 때마다"이제 한국에 가서 돈벌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안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조선족들이다.
한국은 중국조선족들에게 운명을 개변하는 기회의 땅이다."개처럼 벌어 왕처럼 살자"라는 말이 있다. 불법체류자들은 힘들 때마다 중국에서 왕처럼 살 날을 기약하며 힘을 내군 한다. 돌아가서"왕"이 될 그들에게 책을 쓴답시고 필기장을 펼쳐든 사람이 나타나면 그들은 싫어하거나 피하기도 한다.
서울의 어느 갈비집에 초대되었다가 주방장을 제외한 20여명 직원이 전부 조선족인것을 알고 기뻐한 적이 있다."홀"을 뛰고있는 곱살하게 생긴 춘화라는 여자가 연변 부유병원의 의사도 있다고 해서 취재를 제의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곧 거절당했다. 어느"왕"이 자신의 초라했던 과거를 보이고 싶겠는가!
취재에 자신이 없어졌다. 한국에서 좀 더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우리의 조선족들은 언제면 존중받고 고생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언제면 이 코리안드림이 사라질까? 언제면 우리가 돈벌이가 아닌 순수한 그리움을 안고 이 땅을 찾을수 있을까?
깊은 곳에서 하나의 답이 들려왔다.
"중국이 잘살게 되는 그 날에!"
나는 마음 속으로부터 내가 살고 있는 중국이 어서 부유해지고 강대해지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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