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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떨어진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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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떨어진 '애인'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9> 오용 이야기 (1)

7월 4일이면 한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전날에 한국예술미디어출판사 사장을 만나고나서부터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김춘규 사장님은 좋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 작가 김승옥 선생님을 통해 한국체류 조선족에 관한 책을 부탁해왔었다. 그리고 나의 왕복 비행기표를 선대했다. 책을 쓴다는 생각에서 취재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정식 집필부탁을 받고 나서는 마치 달리기에 나선 사람에게 시-작, 하고 딱총이 울린 듯이 어서 뛰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의식이 생겼다.

봉천교회로 갔을 때는 저녁 여섯시가 조금 지난 뒤였다. 층계를 올라서자 나는 곧 발길을 멈추었다. 음식냄새가 풍겨왔다. 윗층은 남자들이 있는 곳이고, 아래층 지하는 녀자들이 있는 곳이였다.

내가 서성거리고 있는데 붉은색 러닝에 흰 샤츠를 입은 40대의 남자가 들어섰다. 키가 컸으나 어깨 쪽이 어색했다. 눈이 크고 코가 날카로웠으나 시원시원한 표정이여서 경계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식사중인가요?"

"예. 아마 그런가봐요."

그 남자가 나를 찬찬히 보았다.

"조선족이지요?"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나서 반가움을 참지 못하며 되물었다.

"조선족이시지요?"

남자도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누구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같은 조선족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는 금방 3년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친숙한 표정이 되였다. 나로서는 좋은 취재대상을 만났다는 예감도 함께 있었다.

"언제 왔어요?"

남자는 말투로 보아 연변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경상도말투였다.

"금방 일주일이 됐습니다."

"아직 일자리를 못 찾았겠구만."

"예."

나는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갑시다, 커피 사지요."

바깥은 그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낯선 남자를 따라 나가면서 나는 속으로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밤중에 낯 선 여자에게 커피를 사겠다는 남자나 낯선 남자를 따라 다방을 가는 여자나 다 이상했지만, 각자의 이유로 볼 때 역시 자연스러웠다. 나는 취재하는 입장이 아닌 여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횡단보도에 아직 붉은 신호등이 켜져 있었으므로 우리는 잠간 멈추어섰다.

"일할 사람 같지를 않은데?"

남자가 다시금 나를 훑어보았다. 눈 하나는 올빼미네, 라고 생각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무엇인가? 여우였다.

"어떻게 일하겠어? 일할 사람 아닌데."

남자가 신호등을 눈박아보며 걱정했다.

"어떤 일을 하면 될까요? 일 할줄을 모르는데."

"홀 뛰면 좋아. 그래, 그걸 하면 힘도 덜 들고, 돈도 되고, 그거 하면 되겠어."

"홀이라니요?"

나로서는 처음 듣는 술어였다. 나에게 적당한 일이 "홀"이라니, 신기했다.

"조선족 여자들이라야 음식점밖에는 더 있겠어? 써빙이라고도 하는데, 음식점에서 음식 주문 받고 심부름해주는 일이야. 그렇게 하면 월급에다가 팁도 있으니까, 백만원은 된다."

남자는 어느새 나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니, 아모 근심 말고, 내 애인해라 잉? 그라문, 내가 다 해준다니께. 일자리 소개도 해주고, 셋집도 잡아주고, 알았제?"

"어머, 웃기시네. 처음 만난 여자하구..."

"정말이다, 애인 해라!"

만나서 십분사이에 하늘에서 "애인"이 뚝 떨어졌다. 재미있다는 생각에 낮의 피곤도 다 잊어지고 정신이 초롱초롱해졌다. 걸어가는 사이 그는 한국에 있은 시간이 12년이 됐다는 말을 해서 나를 흥분시켰다. 좋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봉천교회에서 길을 건너 음식집이 즐비한 곳에서 다방을 찾았다. 들어가 보니 에어콘이 잘돼서 시원했다. 복판쪽에 네명이 앉아 커피를 마시는 외 사람이 없어 한적했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도 마음에 들었다. 남자가 냉커피를 시켰다. 저녁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였지만 이날 따라 커피가 마시고 싶어진다. 잠을 못 자도 좋을 것 같았다.

"정말 애인 하겠어? 농담이 아니라니께. 나, 사람 괜찮다. 한번 따라 봐, 잘해 줄테니께."

남자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정색하고 물었다. 더는 웃음으로만 넘길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솔직히 내가 낯선 남자를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이야기했다. 한편으로는 그가 나의 약은 수에 넘어간 것을 후회하며 훌쩍 가버릴까봐 근심했다.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피씩 웃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웃는 웃음이 아닐까 싶었다. 너그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은 이야기야 많지. 그렇지만 이야기는 이야기고, 애인은 애인이다, 잉?"

그렇게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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