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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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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아줌마

코리안드림 -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 <6>

동쪽길을 바라보니 눈익은 모습이 예배를 피해 빠른 걸음으로 굽인돌이쪽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급히 쫓아갔다. 산모조리원 출신의 아줌마였다. 그늘이 진 곳에 아줌마와 서란의 그 교원 출신의 아줌마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왜 여기 와서 있지요?"

"글쎄, 밥을 먹여주고, 일자리 찾아주고, 여러가지로 잘 해주는데, 보답하는 셈치고 예배를 보기는 봐야 하는데..."

서란아주머니가 미안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들처럼 예배시간에 피해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나는 산모조리원 아주머니에게로 다가앉았다.

"어디서 오셨어요?"

"흑룡강 라북이요."

"어떻게 되어 한국에 나오시게 되셨어요?"

라북아주머니는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였다. 얼굴 전체에서 철철 흘렀는데 연신 땀을 닦았다. 역시 재빠른 어조로 말했다.

흑룡강 라북현 한족동네에 산 지 20년이 되었다. 그전에는 연변 화룡 용화공사에서 산파를 했다. 1994년 1월 11일에 향에 벼를 팔았다. 그때는 볏값이 비싸고, 쌀값이 싼 때여서 그들은 벼를 팔아 쌀을 사먹을 예산으로 다섯쌍 논의 한해농사를 전부 향에 팔았다. 값은 약 3만원(한화 4백만 정도)이었는데, 사정에 의해 당날에 돈을 받지 못하게 되자, 향에 있는 아들의 친한 친구가 이틀후에 돈을 받아주기로 했다.

13일에 집에 가져오기로 한 돈을 아들친구가 12일에 받아가지고 잠적했다. 한해동안 먹을 쌀도, 새해 농사비용도 다 그 속에 있었다. 그해 그들은 돈을 꾸어서 쌀을 사먹고 농사를 지었다. 그렇게 꾼 빚이 새끼를 쳐서 4년동안 5만원으로 불었다. 다행히 한국초청이 있어 빚을 갚을 기회가 생겼다.

이모가 초청해준 것이다. 한국으로 나올 때에 친척들에게서 또 1만 5천원을 꾸었다. 합치면 빚이 6만 5천원(한화 850만 원 정도)이 되었다.

"한국에 와서 먹지 않고, 쓰지 않고 한푼이라도 더 받아서 빨리 빚을 물어야 해요. 나는 워낙 어지간한 일도 잘 참고, 사람이 태시 없어서(허물이 없어서) 잘 견디는 성미라요. 딸 둘이 시집을 갔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빚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죽을까봐 살아 생전에 그 빚 갚을라고 나왔어요. 영감 61살인데 집에서 농사해요..."

처음에 그녀는 경기도 봉덕사에서 일했다. 월 50만원씩 받았다.

"일이 사랑이라고, 일만 잘하면 다 잘해줘요. 공양 보살님으로 왔던 스님들이 잘 대해줬어요. 나와는 우스개도 하고 일도 잘 거들어줬어요. 이 가방에 가지고 있는 옷들은 다 그들이 준 옷이에요."

아침 네시부터 일어나 스님들의 밥을 했다. 스님들이 네시에 일어난다. 여덟사람 밥이였다. 4월 초파일에는 불공드리는 사람들 2천명이 왔는데 그 밥을 짓고 호박요리를 만드는 일을 혼자서 다 했다. 중국집에서 까이도사(요리재료들을 요리사의 요구대로 쏠아주는 사람)를 한 경력이 있어 요리재료들을 잽싸게 쏠았는데, 그 솜씨가 좋다고 스님들을 그를 '딱따구리'라고 했다. 절을 확건할 때는 아저씨(남편)까지 초청해주겠으니 그냥 있으라고 했다. 그런데 월급이 적었다. 어서 빚을 갚고 돌아가기 위해서는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스님들은 보내기 아까워 월 60만원을 주겠다고 하며 만류했다. 떠나는 날에는 금가락지와 금목걸이를 선물했다. 미안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하루라도 빚을 빨리 갚기 위해 월급이 높은 곳으로 떠났다.

신설동 보문사에서 밥하는 아줌마가 소개소를 경영했다. 중국조선족인데 국적을 이미 땄으므로 한국인이다. 중국조선족들이 그녀를 곧잘 찾아갔다. 소개비는 한사람에게서 5만원씩 한번만 받는다. 소개해준 일자리가 나쁘다고 나오면 또다시 일자리를 찾아준다. 일자리가 없는 동안이면 자기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준다. 중국에 가서도 거지를 만나면 옷을 주고 밥을 주는 착한 사람, 흑룡강아줌마는 그 분이 불교를 믿어 착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역시 나이가 많아 월급이 높은 일자리는 찾기 힘들었다. 그 분에게서 소개를 받아 강원도에 있는 산모조리원으로 갔다. 월급은 60만원이였다.

"조리원으로는 중국서 간 사람 2명, 한국사람 1명이였지요. 산모들은 8~9명이 되는 때도 있고 더 많은 때도 있지요.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산모음식을 만들어 여덟시반부터 식사를 시키지요. 김치, 감자탕, 호박탕을 해요. 중국서는 산모들의 이빨이 시여진다고 김치를 못 먹게 하는데, 여기 산모들은 못 먹는 것 없더라구요, 김치도 막 먹어요. 여기서는 감자, 호박이 좋다고 산모들에게 그걸 많이 먹여요. 찌개, 중국요리도 해주지요. 중국요리를 잘 먹어요. 요리는 끼마다 네가지씩 올리는데, 번마다 다른 요리를 올려요. 내가 중국요리를 하고, 한국여자가 한국요리를 하는데 가끔 나도 한국요리를 배워서 했어요. 김치는 내가 했는데 어떤 날에는 배추김치 40통에 통 오이김치까지 하고 나면 정말 힘들어요..."

아침 9시면 식사가 끝난다. 식사후에는 간식을 준비한다. 빵, 우유, 호박탕이다. 호박탕은 언제든지 있다. 아침식사뒤에 호박탕에 보리물을 올렸으면 점심후에는 수박에 호박탕, 저녁에는 삶은 감자, 우유, 그리고 좁쌀과 입쌀을 참기름에 볶아 쑨 죽 등이다.

산모들이 간식을 먹는 동안에는 빨래를 걷어 씻는다. 산모가 찜질방에 자주 들어가므로 세번이든 네번이든 그 옷들을 다 씻는다. 아기 손수건만 해도 큰 광주리 하나, 셀 수도 없다. 손바닥만큼 작은 손수건을 다 널자 해도 시간이 걸리고, 거두어서 일일이 개키자고 해도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린다.

이런 일들을 전부 세사람이 했다. 손발을 쉴새없이 움직여야 했고, 허리를 펼 사이도 없이 뱅뱅돌아쳤다. 아침 여섯시부터 밤 열시까지 일하고 나면 발바닥이 뜨거워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아이 62명을 내웠다. 워낙 산파를 한 경험이 있어 아기가 울거나 앓을 때면 자주 방법을 대주군 했다.

조리원에는 남자직원 2명이 있었다. 상냥하고 잘 대해줬다. 가끔은 바지와 적삼도 사주고 빵도 사주었다. 사람들은 좋지만 아침 여섯시부터 밤 열시까지 일한 데 비해 월급이 적었다. 한달에 두번 쉬었는데 휴식일이 되자 나왔다. 원장이 섭섭해하며 가지 말라고 말렸다. 교회에 있는 것을 알고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오겠다고 여러번 전화 왔었다.

"나는 워낙 천대를 받으려니 하고 일해요. 그런 생각 하면 돈을 못벌어요. 그런데 정작 그런 마음을 먹고 일을 잘했더니 한번 간 집들은 다 나를 더 붙잡고 싶어해요. 어디 가서도 일 못한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어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얼굴에는 여전히 드디어, 라는 단어가 희열과 함께 머물러 있었다. 드디여 백만원짜리에 취직했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 연세의 노인이고 보면 참으로 찾기 어려운 자리였다. 40대의 여자들까지는 보통 90만원, 백만원짜리에 취직하군 한다. 거의 전부가 음식점이다. 그중 상당한 수준의 여자들은 120만원짜리에 취직하는데, 어지간한 솜씨로는 안된다.

백만원짜리에 취직한 그녀 얼굴을 보며 나도 한결 기뻤다. 이제 몇달만 일하면 빚을 전부 벗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더 벌어서 돈을 쥐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자식에게 빚을 지우지 않은 엄마의 당당한 모습을 가지고 돌아갈 것이다.

그뒤 사흘 지나 또 한번 교회에 갔을 때, 뜻밖에 또 딱따구리아줌마와 만났다.

"왜 그 백만원짜리 집에서 나왔습니까?"

"부부가 너무 악착스레 싸워서 무서워 못 있겠더라구. 온밤 자지두 못했어, 얼마나 원쑤같이 싸우는지. 난 그렇게 무서운 사람들 하구는 못 살아. 사흘 공 일해주고, 그 집 애가 자꾸 돈을 꾸라고 해서 만원 꿔줬는데, 그것도 못 받았어."

구직란을 보는 그녀 표정이 심각했다.

이제 또 얼마를 기다려야 월급이 높은 일자리가 차려지겠는지. 아줌마는 자기의 보따리를 베고 누웠다. 아들에게 빚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엄마의 집착이 그 보따리 속에 꽁꽁 싸있었다. 그 마음 하나면 한국에서 무슨 일인들 이겨내지 못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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