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는 현대사로 들어오는 두 관문이다.
오늘은 음양 오행의 관점에서 이 두 운하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아니, 음양 오행과 운하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하고 대뜸 의아해질 수 있겠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충분히 수긍이 가실 것이다. 안심하고 따라와 보시라.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드릴 얘기가 있다. 운하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물이 통하는 시설이다. 운하를 만들기 위한 굴착 공사의 시작을 개착이라 하는데 역시 일종의 토목 공사이다. 토목 공사란 땅과 나무로 하는 공사란 뜻인데, 땅을 파고 나무(지금은 철강이지만)로 기둥을 올리는 공사이다. 이는 나무가 땅을 극하는 일(木剋土)이다. 즉, 운하 공사는 물을 통하게 하기 위해 나무를 사용하여 땅을 파는 일이 된다. 여기에 수(水), 목(木), 토(土)가 핵심 코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600년대 초부터 커지기 시작한 유럽의 힘은 1840년 중국과의 아편 전쟁을 통해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음을 전 세계에 알렸고, 그 뒤는 유럽 열강들의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땅따먹기 놀이였다. 그런 유럽 열강들 중에서도 선두 주자는 단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었다.
이에 늘 배가 아프던 당시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프랑스가 영국의 지배 구도에 일대 반격을 가하기 위해 들고 나온 회심의 카드가 바로 수에즈 운하 건설 프로젝트였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태평양에 거대한 식민지를 두고 있던 영국은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과 전 세계 해양의 전략적 요충을 모조리 손아귀에 담고 있었다. 인도양에서 태평양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싱가포르, 인도양에서 대서양을 돌아 유럽으로 가는 남아프리카의 희망봉, 그리고 지중해를 봉쇄할 수 있는 지브롤터를 요새화하여 전 세계의 물동량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존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이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될 경우, 인도양에서 희망봉을 돌아오는 코스가 아니라 바로 홍해를 거쳐 지중해를 들어오게 되고 인도에서 유럽까지의 거리도 2/3로 단축되어, 프랑스는 다시 한 번 영국의 해양 제패에 일대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전 세계 물류의 15 %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는 원래 나폴레옹 1세 당시부터 있었던 구상이었지만, 역시 좀 이상한 인물이 나와야 '꿈은 이루어지는' 법이다. 우리의 4강 신화는 히딩크라는 벽안의 승부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듯이, 수에즈 운하 역시 프랑스의 외교관 출신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라는 꽤나 특이한 인물이 있었기에 현실화될 수 있었다.
그는 외교관 직을 그만 둔 뒤, 벤처 정신을 발휘, 이집트의 신임 태수를 구워삶아서 수에즈 운하 개착권과 수에즈 지협 조차권(租借權)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이 때가 1854년, 갑인의 해였다. 갑인의 해는 천간의 갑(甲)도 나무이고 지지의 인(寅)도 나무이니 모두 목의 기운으로 되어 있어 수에즈 운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 공사에 들어간 것은 1859년 4월이었으니 기미년 무진월이 된다. 천간 지지의 네 글자가 모두 토(土)에 해당되니 땅의 기운이 가장 완강한 시점에 일을 시작했으니 잘될 리 만무. 기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운하 건설에 극력 반대하는 영국의 압박 수비와 태클로 인해 공사는 중지되었다.
그러나 하늘의 운이었는지 공사는 영국과 터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1863년, 계해년을 맞이하니 천간 지지가 모두 물이라 일약 수기가 통하니 공사는 활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울러 새로운 혁신 장비도 2월 갑인월 부터 투입되었는데, 이 또한 갑인월이 천간 지지가 모두 나무 기운이니 땅을 파는 기운이 건설의 기운이 강하게 들어온 것이다.
그렇지만 공사는 여전히 어렵게 진행되다가 무려 10년이 지난 1869년 11월에 가서 운하는 개통되었다. 이는 기사년 을해월의 일이었다. 앞서 공사가 본격화된 계해년으로부터 만 6년이 지나 충(衝)이 되는 해였고, 동시에 기사년 을해월이니 천간의 기토(己土)를 월의 을목(乙木)이 누르고 년지의 사화(巳火)를 월지의 해수(亥水)가 누르는 충의 달에 간신히 완료된 것이었다(이처럼 충의 개념은 언제나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수에즈 운하를 통해 영국의 해상 지배에 일대 반격을 가하겠다는 나폴레옹 3세의 꿈은 허무하게 무산되어야 했다. 운하 개통 다음 해(1870년)에 가서 프랑스는 비스마르크가 영도하는 프로이센과의 전쟁(보불전쟁)에서 참패를 당하고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는데, 이 기회를 영국이 놓치지 않고 공작에 성공한 것이다.
영국의 재상 디즈레일리는 1875년 수에즈운하의 주(株)를 이집트로부터 매수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사실상 운하는 영국 손으로 넘어가 버렸다. 완전 죽 쒀서 개 준 꼴이었다. 참고로 디즈레일리라는 이 약삭빠른 재상은 1877년 빅토리아 여왕에게 제관(帝冠)을 바쳐서 영국제국을 성립시킨 대단히 유명한 인물이었음도 밝혀둔다.
유럽에는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다고 한다. 프랑스가 비젼을 내면 이탈리아가 공사하고, 독일이 마무리를 지으면 영국이 팔아먹는다는 얘기다. 국민성을 나타낸 얘기인데, 수에즈 운하가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자, 그러면 파나마 운하로 가보자.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영국 못지 않게 눈여겨 본 나라는 미국이었다. 당시 미국은 서부 지역의 미개척지도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고 조만간 태평양으로 진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에 파나마 운하 개착은 중요한 국가 대사였다. 당연히 레셉스 경에게 일이 주어졌다.
레셉스 경은 이제 노하우도 쌓였으니 7년만에 공사를 끝내줄 수 있다고 장담했고, 1881년에 공사에 착수했지만, 1890년에 가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지형이 복잡해서 수에즈 운하와 같은 수평식 굴착 공사가 아니라 갑문식 운하로 변경하는 바람에 시행 착오가 있었고, 여기에 각종 풍토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연이어 죽어 나가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랬는가를 음양 오행으로 살펴보면, 1881년은 신사년이었고 1890년은 경인년이니 천간이 모두 금의 기운이라 공사를 뜻하는 목의 기운을 금극목(金剋木)하여 그만 주저앉고 말았던 것이다. 레셉스 경 역시 그 후유증으로 다시는 일어설 수 없었으니 하늘은 사람을 쓴 뒤에 용도가 없어지면 저렇게 버리는가 보다!
운하 공사는 그러나 미국이 1903년, 계묘년에 프랑스로부터 운하 굴착권을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인 4천만 달러에 사들이는 데 성공했고 1904년, 갑진년에는 운하공사를 정식으로 인계받았다. 계묘는 수생목하는 기운이고 갑진년은 목이 땅을 파 들어가는 해였으니 운하 공사가 재개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콜럼비아가 마음에 들지 않자 파나마의 불만 세력을 사주 지원하여 콜럼비아로부터 독립시키고 운하 지대의 치외법권을 사들였다. 따라서 파나마라는 나라는 운하 때문에 생겨난 나라이다. 운하가 아니었으면 파나마 지역은 오늘날도 콜럼비아의 일개 지방에 불과했을 것이니 국제 정치의 본질을 보여주는 재미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마침내 운하는 1914년, 갑인년, 이 또한 목의 기운이 가득한 해에 개통되어 태평양의 물과 대서양의 물이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1854년 레셉스 경이 운하 허가를 따낸 해 역시 갑인년이니 정확하게 60년, 한 갑자만에 두 운하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축하차 8만여톤의 퀸 엘리자베스가 최초로 운하를 통과하였다. 그 이후 85년 동안 미국이 관리해 온 파나마 운항권은 1999년 12월 31일을 기해 파나마로 이양되었지만, 그것은 국제 여론 때문에 눈가리고 아옹하는 것이고 파나마 운하의 실질적 주인은 여전히 미국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미국의 파나마 침공 작전이다. 1984년에 마누엘 노리에가라는 군인이 파나마를 장악했는데, 이 친구가 마약 밀매를 통해 비자금을 엄청 만들었던 것이다. 커피와 마약으로 유명한 콜럼비아 곁에 있다 보니 그럴 밖에. 여기까지는 후진국이 다 그런 셈치고 미국은 봐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파나마 운하의 권리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하자, 미국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다. 잠자는 범의 코털을 뽑은 셈.
그래서 시작된 작전이 이름도 멋있는 Just Cause 작전이었다. 미국이 파나마를 응징하는 '정당한 명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언제나 무고한 희생자를 낳기 마련이라, 무려 2천 명 이상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자, 국제 여론은 악화되었고 이에 미국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1999년 12월 31일부로 파나마 운하를 넘겨주는 척하는 쇼를 연출하기에 이른 다.
사실 파나마 운하는 수에즈 운하와는 달리 그 목적이 군사용이다. 물론 많은 상선들이 지나가고 있지만, 거기서 나오는 수입은 파나마라는 국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일 뿐이고, 본질은 미국 해군의 함대 이동이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오려면 수에즈 운하를 거치지, 파나마를 거치지 않는다. 또 아시아에서 미국으로의 물류는 미국 서해안의 항구인 포틀랜드나 샌디에이고에서 화물 트럭으로 운송되니 파나마 운하는 사실 일반 물류용이 아니다.
파나마 운하의 가치는 미국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아우르는 데 있어 엄청나게 중요한 전략적 급소라는 점에 있다. 지금 파나마 운하는 확장 공사중인데, 2010년경에 완성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해는 경인년이라 금이 목을 누르니 결코 완성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고, 임진년인 2012년이 되어야 물이 통하는 해라 완공될 것이다.
이처럼 두 운하는 근세 이래 세계를 지배했거나 지배하는 국가, 영국과 미국의 힘이 어디에 원천을 두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힘은 해양세력으로서 바다에 대한 지배권이다. 왜 오늘날 다른 나라의 사소한 일이 툭하면 미국의 국익에 저촉된다고 하는가 역시 그 이유가 간단하다. 오대양(五大洋)이 바로 미국의 국익이기 때문이며, 바다는 신판 로마제국 미국의 고속도로인 것이다. 한 마디 덧붙이면 미국의 입장에서 다른 나라의 해군은 모두 해적에 지나지 않는다.
(저번 글에서 녹의홍상을 녹색 저고리 붉은 치마라 하지 않고, 반대로 붉은 저고리 녹색 치마라고 얘기했는데, 어느 독자분이 고맙게도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정정합니다.)
'김태규 명리학'은 다음 주부터 매주 2차례(화ㆍ금) 연재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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