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미국 증시 이렇게 가고 있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최근 증시가 급락하면서 갑자기 전화문의가 많다. 그래서 오늘은 증시에 관해 이야기를 좀 더 할까한다.
지금 우리 증시의 급락 배경인 달러의 급격한 하락부터 잠깐 얘기하자. 최근 미국 정부의 말을 읽어보면 그들은 달러의 완만한 하락(soft landing)을 의도하고 있는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은 강한 달러 정책에 변동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오닐 재무장관은 "환율은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전 연준 이사였던 로렌스 마이어의 "방향이 아니라 속도가 중요하다"는 말 등을 종합해볼 때 그런 느낌이 든다.
미국 월가 사람들은 그런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뻔뻔스러운 행동이다. 엔론과 월드콤의 회계부정은 바로 그들의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주식 공개(public offer)는 부와 성공으로 가는 황금 열쇠였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담합과 협잡이 있었을는지는 가히 상상이 간다. 영국 BBC 방송의 말로는 무려 1천개 회사가 장부 조작을 했으리라고 하니 그로서 짐작할 뿐이다.
더욱이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의 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비율)이 과거 평균치의 2배에 달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직도 미국 증시는 지금 지수의 절반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런 배경을 놓고 볼 때, 미국 당국자들과 브레인들은 증시의 조정은 불가피하고 이제는 실물 경제와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 대외 수지 문제에 치중해야 할 때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고, 따라서 우선 달러의 완만한 하락을 유도하고 있다는 인상이 드는 것이다. 그럴진대,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는 유럽과 일본은 약한 달러를 반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은 국내 경기 부양이 어렵자, 최근 수 차례에 걸쳐 외환시장에 개입했지만 달러의 급락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다. 지난 26일의 국내증시 대폭락은 바로 이 점에 대한 시장의 과민 반응이었다. 일본의 달러 하락 저지 실패, 즉 미국 정부의 달러 하락 용인으로 연결되어지면서 나타난 일종의 히스테리였던 것이다.
결국 이는 미국을 대신하여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주도 세력이 없다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쉽게 말해, 공급 과잉의 잉여 산품들을 받아줄 시장이 현 시점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되고 이는 바로 디플레를 암시하고 있다. 일본과 유로 지역은 이미 디플레에 익숙해 있고, 미국마저 디플레로 간다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우려인 것이다.
두 번째는 만일 미국 행정부의 의도가 달러의 소프트 랜딩이라면,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느냐 하는 얘기인데, 최근의 엔론이나 월드콤의 사태는 통제범위 밖의 변수들이 잠복하고 있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장의 신뢰상실은 미국으로부터 급속도의 외자 이탈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에서 빠져 나온 돈이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현실이 이탈을 막는 보다 큰 이유라고 여겨지는데 이 또한 전 세계 경제의 디플레를 암시하고 있다.
필자는 작년 말 음양 오행의 원리를 적용해 미국 경제의 거품 소멸과 증시의 하락조정 일정을 상정해 보았는데 다음과 같다.
2000년 3월 조정시작-2001년 9월 - 2003년 3월 - 2004년 9월- 2006년 9월 조정끝
이 스케줄은 18개월 단위로 끊은 것이고 전체 기간은 6년이다. 이 기간중 하락 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는 6년의 절반인 2003년 3월부터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001년 9월 11일에 비행기 테러가 발생했었다. 필자는 정말 식은 땀을 흘려야만 했다. 전반부 3년의 절반 지점에 가서 이런 사태가 생긴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 이것은 계시구나!'하고 여겼다.
그리고 이번 조정과 관련해서 필자가 디플레를 예상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원래 금리(金利)란 것 속에는 인플레 프리미엄과 떼일 확률에 대한 보상, 즉 리스크 프리미엄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의 금융 자산과 투자는 돈을 떼인 적이 없다. 단적인 예로, 한국 외환위기 때 IMF의 개입으로 한국에 투자했다가 떼인 돈은 한 푼도 없다. 이런 식으로 금융자산이 안전하게 관리되면서 착실히 금리수익만 올리다 보니 지금 이 세상에는 지나치게 많은 금융자산이 누적되어 있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많은 부와 금융 자산들이 투자처를 찾아 헤매고 있다. 달러가 완만한 하락을 보일 경우, 일부가 한국으로 들어와 금융시장을 또 한번 천정부지로 들어올릴 확률도 없진 않지만, 세계 실물경제의 성장세가 주춤한다면 그 돈은 갈 곳이 없어지면서 어딘가에 들어가 숨어 지내게 된다. 이른바 '유동성 함정'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금융자산은 주기적으로 즐어들고 다시 늘어나야 하는데 그런 조절 기능이 결여된 오늘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우리 증시의 과거 추이를 보면서 증시가 지닌 60진법의 프랙탈을 확인해보자.
사각형안에 있는 수치는 연월과 종합지수이다. 먼저 보아야 할 것은 봉우리와 바닥점 사이의 간격이다. 가령 1989년 4월의 1015 포인트와 1992년 8월의 456 포인트 사이의 차가 540 인데 이는 60의 9배수이다. 이런 식으로 보면 봉우리와 바닥 사이의 간격이 모두 60의 배수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더 주목할 것은 이 간격들을 주의깊게 분석해보면 모두 피보나치 숫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지난 IMF 때 바닥인 278에서 봉우리 1066까지의 간격은 780으로 60의 13 배수이고, 작년 9.11 테러로부터 이번 봉우리까지의 간격은 480으로 60의 8배수이다. 증시에 대해 좀 안목이 있는 분이라면 금방 알아차렸겠지만, 13 : 8 은 바로 유명한 피보나치 비율이자 황금분할 비율이 된다.
필자는 앞 봉우리와 이번 봉우리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형태, 즉 프랙탈 형으로 보고 있다. 사실 이것만 그런 것이 아니라 증시의 추이를 주의깊게 분석하면 무수한 프랙탈 현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랙탈이란 만델브로트란 수학자가 이름 붙인 것인데, 언제나 부분이 전체를 닮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을 말한다. 흔히 눈꽃송이를 확대해보면 같은 모양의 미세한 눈꽃송이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독자분들도 많이 보셨을 것이다. 증시의 오르내림을 법칙화한 유명한 엘리오트 이론도 그 본질은 60진법에 바탕한 프랙탈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60진법이라는 사실이다. 60이란 숫자는 음양 오행의 한 갑자(甲子)로서 기본 순환 주기이며 바빌로니아 문명의 숫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10진법에 익숙해져서 12라는 자연의 순환 숫자를 잊고 지내는 것이다. 60은 10과 12의 최소공배수이다.
이번 하락은 종합지수 700 포인트 지점에 와서 멈췄는데, 이는 지난 9월 바닥으로부터 상승분 480 포인트의 절반이다. 즉 50% 조정을 보인 셈이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단기적으로 일단 바닥이니 반등할 시점이라는 점이고 동시에 증시 전문가들이 말하고 있는 얘기, 즉 대세 상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오른 폭의 50 % 조정이 오면 그것은 장기 추세가 하향으로 돌아섰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주식은 또 다시 오르겠지만 최소한 1000 포인트를 가니 종합지수 4자리 숫자 시대에 돌입한다는 식의 호도는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 증시의 외국인 투자 비율은 세계 으뜸이다. 얼마 전 그들은 한국 증시에 대해 계속 낙관적이라는 얘기를 하면서 뒤로는 끊임없이 주식을 팔아버렸다. 금년 들어 무려 4조원 이상 매도한 것이다. 그들은 종합 지수 700까지는 사고 그 이상에서는 팔고 있다. 반대로 우리 기관들은 700부터 사기 시작해서 900까지 마구 사들였다.
그런 그들이 최근에는 손절매(loss cut)를 하느라 난리다. 뿐만 아니라, 최근 달러가 10 % 이상 하락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입은 국가적 손실 또한 어마어마하다. 외화 보유가 1100 억 달러에 속하고 그 대부분이 달러이니 여기서만도 이미 우리는 적어도 수십억 달러의 국부가 날아갔다.
금융시장을 개방해 놓고 철저하게 당하기만 하는 우리를 보면서 정말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가 없다. 또 한사람의 히딩크를 기다리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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