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동아시아 세계의 역법(曆法)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역법이라 하면 좀 어렵고 달력이라 하면 아주 간단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딜 가나 흔해빠진 것이 달력이니 말이다. 그런데 수 천년 이어진 인류의 지적 노력 중에서 여전히 난해하고 속시원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역법이다. 그리고 역법의 발전 속에는 인류의 온갖 창의와 연구가 다 들어가 있다.
우리들은 달력이라 하면, ‘음, 그거, 천문대에서 알아서 잘 하고 있겠지, 어떤 때는 윤초인가 하는 것도 넣어가면서 대단히 정확하게 하는 모양이더군’ 하면서 신경 쓰지 않는다. 달력이란 예나 지금이나 보통 사람들에게는 주어지는 것일 뿐이다. 그저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질러 영종도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날짜가 하루 변경된다는 사실에 약간 의아해 하면서 역법의 심연을 슬쩍 엿보는 정도다.
역법은 사실 대단히 까다로운 것이다. 현재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력은 전 세계가 공용한다는 장점을 빼면 사실 좋은 점이 없으며, 로마 역법의 엉터리를 겨우 보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몇 가지 짚어보면 일년의 시작이 되는 1월1일이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해가 길어지는 동지점을 기준한 것도 아니고, 1월 1일부터 기후가 온화해지면서 새로운 기분을 내기는커녕 더 추워져서 새해 기분도 나질 않고, 윤일을 12월말에 붙여서 전 세계가 쉬는 날로 하는 것도 아니며, 한 달의 길이가 들쑥날쑥이라 기업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원가계산이나 노동일수도 제 각각이고 뭐 좋은 점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겨우 틀리지 않을 뿐이다.
역법은 이처럼 지구의 공전 주기와 달의 지구 공전 주기, 그리고 요일의 문제 등등이 얽혀서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특히 일년이 365일과 그 우수리라는 것은 인간이 지닌 미적 감성과도 맞지 않아서 고래로부터 천문 역학자들을 끊임없이 괴롭혀 왔다.
인간의 미적 감성과 충돌한다는 것은 원의 내각을 360도로 정한 데서 쉽게 알 수 있다. 고대 바빌론 학자들 역시 일년이 360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정해 버린 것은 미적 의식의 발로였다. 360은 60이라는 수가 여섯 벗 반복되는 것으로서 육십 갑자(甲子) 역시 동일한 사상이다.
우리와 중국의 경우, 태양이 움직여 가는 황도를 원래는 365와 1/4도로 써 오다가, 세종대왕 때 이슬람력을 받아들여 360도로 변경했는데,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슬람력은 저번 글에서 언급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에 근거하여 이슬람 천문학자들에 의해 만들어 진 역법이다.
이슬람력을 세종 때에 도입한 이유는 일식과 월식의 예측이 기존의 역법보다 정확하였기 때문이다. 말이 도입이지, 중국에 가서 천신만고 끝에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책만 얻어온 것을 우리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이뤄낸 성과였다.
예로부터 일식과 월식 현상은 전 세계가 마찬가지지만 동아시아의 나라들에 있어서는 대단한 사변이었다. 천체를 모르던 고대인들에게 달이 해를 먹어 들어가는 모습, 즉 일식은 엄청난 두려움을 주었을 것이다. 대낮에 태양이 달에 의해 먹혀 들어가는 광경은 지금처럼 볼 만한 천체 쇼가 아니라 공포 그 자체였다.
더욱이 그것이 천체 현상이라는 것을 안 뒤에도, 일식은 음기가 양기를 덮는 현상이니 사변이 아닐 수 없었다. 동아시아의 경우 앞서 얘기한 천인감응의 원리에 의해, 일식이 생기면 군주된 자가 부덕하여 천하에 난리가 날 조짐이니 경계하라는 하늘의 계시였던 것이다.
이처럼 동아시아 제국에서 천문이나 역법은 하늘의 뜻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이었던 만큼, 중국은 전 세계 어느 곳보다 역법 개정이 많았던 나라이다. 지금이야 결함투성이 그레고리력일지라도 천문역법학자들이 미세 조정을 통해 맞춰가고 있지만, 당시에는 아무리 좋은 역법일지라도 세월이 지나다 보면 오차가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오차가 발생하면 천체 현상에 대한 예측도 모두 틀려지게 된다. 앞서처럼 일식이나 월식이 언제 일어난다는 예측이 틀려지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중국의 경우, 왕조가 바뀔 때마다 더 나은 역법으로 개정해 왔다. 새로운 권위가 들어섰다는 것을 알리는데 있어 역법 개정만큼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특히 역법은 도량형(scale)중에서 으뜸이다. 도량형을 개정한다는 것은 실로 그에 상응하는 권위와 권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동아시아 제국에서 천문(역법 포함)학은 ‘제왕학’이라 말해졌다. 동시에 도량형(scale)을 속이는 자는 국법에 처해왔다.
천문학이 제왕학이었던 것은 농업을 근본으로 삼던 나라에 있어 백성에게 시간과 계절을 알려줌으로써 농사에 편리를 제공하는 ‘치력명시(治曆明時)’의 기능도 중요했지만, 그에 앞서 임금은 하늘과 감응하여 하늘의 명[天命]을 행하는 자였기에, 임금된 자가 하늘의 섭리를 살피고 역(曆)을 만들어 시간을 알리는 것-이를 관상수시(觀象授時)라 한다-은 임금의 사명임과 동시에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천문학은 다른 여타의 학문보다 위에 서니 제왕학이라 불리웠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고려조부터 태복감과 태사국을 두었었는데, 태복감의 가운데 글자 복은 卜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점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능은 천문측후였다. 이는 점치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이 하늘의 상을 보아 장차의 변동을 예측하는 천문점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태사국은 역법을 관장했다. 이러한 제도는 나중에 서운관(書雲觀)으로 합쳐 졌다. 도서관과 천문 역법을 담당하는 부서란 뜻이다. 왕실의 모든 중요한 자료나 정보가 모여 있으니 일종의 두뇌 집단(think tank)이었던 것이다.
서운관, 나중에 관상감으로 명칭이 개정되는 이 정부 부서는 제왕학을 하는 두뇌집단이었던 만큼 그 위상도 대단히 높았다. 그래서 영의정이 그 책임자였다. 조선조의 경우 영의정이 정3품 아문의 최고 책임자를 맡은 부서는 전체 32 개중에서 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세자시강원을 포함해서 6개에 지나지 않는다.
동아시아 왕조사를 살필 때, 재미난 점은 임금이 하늘의 명을 행하는 자인 만큼 그 권위도 엄청났지만 동시에 자율 규제도 엄청나게 많았다는 점이다. 임금된 자가 사사로이 망녕된 짓을 하면 하늘이 응징을 내리고 그 피해를 전 백성이 받기에 대단히 엄한 자율 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서구의 경우 왕의 행동에 제동을 걸 수 있었던 것은 로마 교황청밖에 없었다는 점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이조 실록이란 바로 그런 임금의 행동 전체를 모조리 스토킹했던 사관들에 의해 만들어진 기록이다. 이에 간섭이 너무 심하다고 불만을 품은 임금이 관상감을 거의 없애다시피 한 적도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연산군이다. 대소 신료들이 경연 등의 자리에서 천변현상이 임금의 부덕에 의한 것이라는 상소 및 진언을 지속적으로 올렸기 때문이었다. 이는 영국의 바람둥이 왕이었던 헨리 8세가 혼인 문제를 놓고 로마 교황청과 결별한 일이나 사실은 같은 맥락이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만든 영국의 예를 들면, 왕의 독재를 견제할 수단이 사실상 전무했고, 결국 그것이 귀족들의 반발에 의해 마그나 카르타라는 훗날 민주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입헌 군주제를 통해 내각책임제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핵심이 견제와 균형이라고 본다면, 동아시아 제국이 훨씬 앞서서 그같은 제도와 장치를 두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음양 오행 자체가 생성과 견제를 기본 원리로 하는 조화의 틀이기에, 임금이나 황제는 천문과 역사를 담당하는 사관의 진언이나 기록을 막을 수 없었고, 모든 신료들도 충언을 신료된 도리로 여기는 사상에 따라 서구보다 훨씬 세련된 정치를 펼 수 밖에 없었다. 데모크라시의 본질로 따진다면 우리가 저들보다 역사가 훨씬 연원이 깊다! 조선시대 임금은 사실 잠도 마음껏 잘 수 없었다. 하늘의 뜻을 수행하는 자리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동아시아 제국의 경우 역법보다 천문이 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천문이란 천인감응의 원리에 따라, 하늘의 상을 살펴서 세상의 변란을 음양 오행의 틀에 따라 예측 대비함과 동시에 임금의 정사에 대한 심판을 내리는 기능이었기에, 백성에게 시와 때를 알리는 시보(時報)적 기능보다 더 중시되었던 것이다.
이는 조선 숙종 때, 관상감 천문학 교수였던 최천벽이 지은 천동상위고(天東象緯考)라는 책 속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고려조 475년간에 일어났던 천변지이(天變地異)와 그 점성술적인 해석을 기록한 책이다. 하늘이 각종 현상을 통해 길흉을 어떤 식으로 보여주었는지, 그리고 지금(조선)의 군왕이 이러한 현상이 있을 때에, 어떻게 스스로를 다스릴 것인지를 임금에게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제 동아시아 세계의 천문과 역법을 정리요약하자. 천문은 하늘의 상을 살펴서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각종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역법, 즉 달력은 그냥 때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음양 오행의 생극제화에 따라 각종 행사의 택일과 금기 사항, 어떤 재이(災異)가 일어날 것인지를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일종의 종합위험관리 시스템(total risk management system)으로 쓰였던 것이다. 중국 과학 문명을 다룬 죠셉 니담은 자신의 글 속에서 천문학자들의 권력 위상이 높다는 사실에 매우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데, 이는 니담이 본질을 본다는 측면에서는 완전히 빗나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