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사주 팔자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지 또 장차 어떤 병을 앓을 수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수천 수만 가지 병세를 다 맞힐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 사람이 체질적으로 어디가 약한지 그리고 만나는 운에 따라 어떤 부위에 병이 발생할 수 있는지는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스스로도 그것이 너무 신기해서 더욱 더 호기심이 발동되었고, 한의학의 여러 서적들을 섭렵하게 되었다. 한문과 중국어를 좀 익혀둔 덕분에 책을 볼 수 있었고 책을 보다 보니 어문 실력이 더욱 늘었다. 내경(內經)과 상한론(傷寒論), 천금방(千金方), 동의보감 등등 적지 않은 서적들을 읽게 된 것이다.
한편 등에 담이 심해서 침구 치료를 중국 하얼빈의 교포 선생님으로부터 몇 개월 받으면서 침구를 어설프게 배운 것이 계기가 되어 더욱 한의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여기서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 까닭은 인간의 운명을 말해주는 명리학과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한의학이 정확하게 같은 이론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인데, 그것이 바로 음양오행(陰陽五行)이다.
의역동원(醫易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의술과 역술은 같은 근원에서 나왔다는 얘기인데,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의 사주를 봐 주고, 또 한의학 책을 읽어 오면서 깊게 체험한 것도 이 점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오늘날 한의학은 중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학문이지만, 불과 50년전만 해도 한의학은 미신적인 치료법으로 매도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주로 중국의 근대 계몽사조를 대표하는 양계초와 같은 사람들의 소행인데, 원래 계몽사조란 것은 위험에 처한 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 과거를 깡그리 부정하는 우를 범하기 마련이다. 연초에 프레시안에서 '토지'의 작가 박경리님과의 대담 기사를 게재한 것을 봤는데, 박경리님은 계몽 사조에 대해 대단히 분개하시고 계셨다. 빙긋이 웃으면서 동감했다. 하지만, 일이란 것은 언제나 지나치기 마련이고 지나쳐야 되돌아 오는 법이다.
또 한가지 필자가 재미나게 느끼는 사실은 한의학은 그렇건만 명리학은 여전히 미신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점이다. 명리학이 미신으로 취급받기 시작한 것 역시 아직 100년이 되지 않는다. 명리학은 일제에 강점당한 1910년까지 엄연히 과거시험의 한 분과로 들어가 있었다. 음양과속에 천문, 지리와 함께 명과(命科)라고 해서 명리학에 밝은 사람을 정부에서 채용했다. 속설이지만 배우기 쉬운 당사주라는 것은 민간에 널리 전파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초 교양이 부족하면 익히기 어려운 명리학은 명과에 급제한 관원들이나 학문이 깊은 선비들이나 연구할 수 있는 분야였다.
그러면 한의학과 명리학이 어떤 점에서 같은지 좀 더 들어가 보기로 하자.
먼저 '내경(內經)'이란 책을 간단히 소개한다. 내경은 소문(素問)과 영추(靈樞)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자는 이론이고 후자는 침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 소문은 중국 전국시대에 지배 사조로 자리잡은 음양오행 이론에 바탕하여 그후 수 백년 간에 걸쳐 보완 발전된 의학 이론서로서, 한의학의 핵심적인 이론 체계를 담고 있다.
필자는 예전에 명리서를 읽고 연구할 때, 중국 건륭제 시대에 편찬된 사고전서(四庫全書) 속에 들어있는 명리서 들까지 죄다 보았지만 크게 얻는 바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내경'을 읽고 나서 비로소 눈을 열게 되었다. 내경은 한의학의 보전(寶典)이지만, 그 이론을 인생의 일을 살펴보는 명리학에 적용하면 실로 신통한 바가 있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고, 나아가서 내경의 이론들이 가진 함의(含意)를 제대로 응용하면 세상의 일들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경의 주요 이론을 크게 나누면 인체의 오장 육부가 각각 음양 오행에 배속된다는 장상론(臟象論), 인체의 기운이 오르내리고 외부 세계와 상호 연관된다는 승강출입설(昇降出入說), 특히 그중에서도 수화상교(水火相交)에 관한 이론, 인체를 소우주로 파악하고 각 장부의 기운이 서로 연동되어 상호 견제하거나 도와주는 작용을 한다는 정체항동관(整體恒動觀) 등을 들 수 있다. 내경의 중요한 이론은 이외에도 많지만 여기서는 이만 다루기로 한다.
그러면 명리학의 기본 이론은 무엇인가 간략히 살펴보자.
기본 이론은 기운이 강하면 그 강한 기세를 이끌어 주어서 공(功)을 이루게 하든가 아니면 적당히 견제해서 균형을 맞춰 주어야 한다는 중화관(中和觀)이다. 이 또한 내경의 중화관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또 하나 명리학의 주요 이론은 오행의 기운은 끊임없이 유통하여야 좋다는 유창관(流暢觀)인데 이는 낳고 또 낳는 것(生生)을 역(易)이라 하고 도(道)라고 하는 주역 사상이자 내경의 근본 사상이기도 하다.
이와 연관되어 파생되는 이론으로서 통관(通關)이라는 이론이 있는데 사람의 사주 팔자 속에서 목(木)이 화(火)를 낳고 화가 토(土)를 낳는데 이 경우, 화(火)가 결여되어 있으면 연결 고리가 없는 탓에 생생의 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운에서 화를 만날 때 그 사람의 일이 번창한다는 이론이다.
아울러 주요한 이론으로 조후(調喉)라는 것이 있다. 이는 온난한습(溫暖寒濕), 즉 따뜻하고 추운 것, 건조하고 습한 것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것으로, 일종의 기후와 풍토에 관한 것으로서 내경에서 말하는 수화상교의 이론과 기운의 승강출입 이론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예를 하나 들면, 오행 중에서 수(水)는 인체의 생식기와 관련되는데, 여성의 경우 남성과 달리 생식기관들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교묘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여성의 경우 더운 여름에 태어난 분들은 사주팔자 중에서 물의 기운이 약하거나 부족할 경우 예외 없이 신장 기능은 물론 생리 불순, 냉대하, 자궁이나 난소 등의 기관에 이상을 가지고 있다. 수기가 부족한 형태도 다양한 까닭에 병의 원인이나 종류도 지극히 다양하게 나타난다. 필자는 이 부분에 관한 자료들을 오래 전부터 수집하고 연구하여 왔는데 언젠가는 책으로 남길 생각이다.
필자가 느끼기에 명리학을 깊이 공부하려면 한의학 서적들, 특히 '내경'이야말로 보전중에 보전으로서 실로 아무리 연구해도 지나침이 없는 텍스트로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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