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글에서는 우리 국운의 지난 날을 알아 보았다. 이번에는 우리 국운의 장래에 관한 얘기가 되니 혹자는 천기 예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로서는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저 1964년부터 시작된 60년 사이클의 후반부인 1994년에 시작된 시련의 시기에 대해 좀 더 말하겠다. 마라톤 코스도 반환점이 있듯이 30년의 반환점은 15년간이다. 즉 2009년까지가 된다. 이 시기의 전반에는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 소위 3김 정치의 시대가 포함되고 나머지는 금년 말에 당선될 정권의 시기에 해당된다.
사실 장거리 경주인 마라톤에서 반환점까지는 승부가 보이질 않는다. 앞이 잘 보이질 않는 시점이니 금년 말에 등장할 정권의 막판까지도 속시원한 정치는 나오질 않을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이 잘못 한다기보다 잘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있다고 봐야 더 옳은 시각일 것이다.
김영삼 정권 이래 어느 하나 잘 되는 것 없어 보이지만 가만히 그리고 너그럽게 우리나라가 변해가는 모습을 반추해보라. 사실은 상당한 변화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김영삼 정권의 치적부터 보자.
첫째, 하나회 정리를 비롯해서 육사 XX기가 힘쓰는 세상이 이제는 어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고 에피소드가 돼버렸다. 둘째, 무리해서라도 OECD 에 들어가면서 메이저리그 대열에 합류했고(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지만), 셋째, 금융 실명제라는 옆 나라 일본도 하지 못하는 엄청난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이로써 자금의 흐름이 투명해졌고 검은 돈 거래도 지대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넷째, 노동법 개정이다. 실로 엄청난 산고를 치렀지만 그 자체는 군부독재 이후 문민 정권이 수행한 최대의 국민적 협상이었고, 그 의미도 크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현 정권의 모습을 보자. 무엇보다 현 김대중 정권의 가장 큰 기여는 사회적 소수(minority)에 의한 정권이 탄생함으로써 한국적 한풀이(?)와 더불어 그만큼 우리의 국민 의식이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물론 거기에는 DJP 연합이라는 정치적 기술이 들어갔지만, 어쨌든 현 정권의 탄생은 역사의 진보가 아닐 수 없다. 따져보면 예전의 미국 카터 정권과도 유사한 점이 있는 현 소수파 정권은 그러나 나름으로 엄청난 과제들에 대해 개혁의 손길을 내뻗었다.
그중 가장 큰 개혁 시도는 소위 ‘벌(閥)’ 체제의 해체라는 엄청난 작업에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군벌은 김영삼 정권 시절에 해체되었지만, 현 정권은 그 자체가 정벌과 특정 지역에 기반했다는 출생적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 언벌, 학벌, 지역벌(이런 용어가 있었나?) 등등에 대한 해체 작업에 손을 댄 것이다.
사실 벌 체제는 어떤 사회의 초기 팽창 과정에서 안정된 권위 체계가 존재하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역동적인 사회적 힘이고 그 나름의 창조적 기능을 수행한다. 아마 우리 사회는 장차 두고 두고 벌의 공과에 대해 논쟁을 벌릴 것이다. 단지 분명한 것은 이제 우리 사회는 벌 체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에는 포퓰리즘(대중 인기주의)라고 비난받던 현 정권이 이제 게이트 시리즈로 인해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지만, 그 근본 원인은 대통령의 힘에 의한 개혁 푸시(push)가 그 방법론적인 미숙함-그 미숙의 정도가 바로 우리의 현 주소이기도 하지만-과 더불어 재벌과 언벌, 학벌들로부터 치열한 반격을 야기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현 정권은 기존의 권위 세력들과 연대해 있지 않은 처지에서 대중적 인기주의로 흐를 수 밖에 없었던 배경도 있다고 여겨진다. 이 점을 깊히 성찰해 보면 차기 정권이 추진해야 할 개혁의 전략과 방법에 대한 힌트는 다 들어있다. 여기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얘기가 아니다.
햇볕 정책만 해도 그 대의(大義)를 누가 감히 부인하겠는가? 정치란 일관된 전략도 중요하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민심의 향배를 달래고 이끌어가는 고도의 전술도 필요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고, 그런 면에서 현 정권은 전술을 구사할 토대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과욕을 부렸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통일의 초석을 놓은 사람으로 기억되고자 하는 공명심만 좀 자제했더라면 얼마든지 야당의 협조를 얻어 국가적 차원에서 일을 진행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 또한 우리 정치와 사회의 현 주소임을 어쩌랴! 정말 어떤 면에서 현 대통령에 대한 일말의 연민과 안타까움마저 느껴지는 걸 또 어찌하랴!
그러면 이쯤에서 김대중 정권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고 차기 정권의 노력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차기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는지는 사실 관심거리도 아니다. 이미 결론이 나 있기에. 다만 그 정권이 수행해야 할 역사적 과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법을 바로 세우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이 바로 강력한 법이다. 원칙보다는 현장 대응주의적으로 강요되고 훈련받아온 우리 국민들은 법이 바로 서면 힘없는 자신만 피해를 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하는 심리가 만연해 있다. 법이 바로 선다는 것은 따라서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소위 빽이나 편의주의가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가 법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인식의 보편화다.
아마도 차기 정권이 법을 바로 세우면 초기에 엄청난 국민적 반발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법대로’한다는 것이 무서운 우리 국민들이기에 먼저 법을 바로 세울 분야를 특정시키는 집중적 노력이 필요한 것은 전략의 기본이다. 가장 파급 효과가 큰 도로교통법부터 바로 잡으면 어떨까?
딱지를 무진장 발부하게 되겠지만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철저하고도 집중적으로 시행하면 국민들의 인식부터 변화할 것이다. 먼저 법이 요지부동임을 알면 국민들은 법 제정부터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 지금의 법은 워낙 고무줄이니 어떤 법이 제정되는지 이해 당사자 외에 아무도 관심없고 그 때문에 쓱싹하기도 더 좋은 세상이지만, 악법도 법일진대 법이 바로 서면 자연스럽게 국민들의 법적인 마인드는 순식간에 고조될 것이다.
법이 바로 서면 모든 세력간의 이해 절충과 협상은 법의 테두리내로 들어올 것이고, 그 때부터 국민적 컨센서스를 이루는 과정도 정상화될 것이다. 손가락 자르고 죽음으로 반대한다는 살벌하고도 유치한 연극판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정권 역시 개혁 대상이 있다고 여겨지면 대통령의 통치권을 발동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왜 국민적 의제로 다루는가부터 정상적인 과정을 밟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차기 정권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다루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정착시키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될 것이다.
법정에서 다루지 못하는 문제는 정치가 해결할 수 밖에 없고 그 정치 역시 결국 사회적 이해가 대립되는 세력간의 합리적인 논쟁 무대와 합당한 절차가 바로 설 때야만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분만 가지고 정권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유치한 발상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고 그만큼의 진보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여타 분야에서도 차기 정권은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겠지만 핵심은 이것이고, 바로 차기 정권의 역사적 과업이다.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다음 정권 역시 인기는 없겠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이해 세력간의 어거지나 어리광은 없어지고 오로지 합법적인 절차와 논리에 의해 자신을 주장하는 좀 더 성숙된 한국이 될 것이다. 따라서 차기 정권은 통큰 사나이가 아니라 통 작고 외골수의 사람이 맡게 된다. 법을 바로 세우려면 쫀쫀해야 하니까.
할 말도 많지만 이만 줄이고 다음 번에는 2009년부터 시작될 시련의 정점에서 희망으로 향하는 발전 과정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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