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오늘은 원래 다른 글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궁합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게 되었다. 하는 일이 명리학 연구이고 사주 상담이니 궁합 보러 오시는 분들이 적잖이 있지만 난 언제나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궁합이란 거 볼 필요가 없는데 오셨네요.”
정말이다, 궁합이란 것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볼 필요가 없다. 왜 그런가를 이제부터 이야기하기로 한다.
궁합(宮合)이란 부부궁이 서로 합하느냐, 즉 서로 맞느냐를 따져보는 것이다. 예전에는 궁합이란 것이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예전이란 봉건시대를 말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남녀의 자유 교제가 허용되지 않던 시절, ‘남녀 칠세 부동석’이란 말이 문자 그대로 지켜지던 시절이다. 당시 남녀가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성춘향처럼 바람끼 다분한 처녀 정도가 되어야 단오날 그네 타는 핑계로 이 도령을 유혹할 수 있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히 궁합이 중요했다.
오 초시가 자신의 둘째 아들을 친구로 지내는 박 첨지네 맏딸과 결혼시키려고 마음먹었을 때, 신부측의 의향을 존중하는 의미로 사주 단자를 담은 함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이고, 이미 두 집안의 어른이 마음 먹기 전에 아내를 시켜 두 남녀의 사주를 보고 궁합을 보는 게 상례였다.
당시에는 아이의 사주, 즉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양반 계층이 아니면 어려웠다. 산모의 곁에서 출산을 돕는 산파의 중요한 임무 중에 하나가 아이가 태어날 때 그 시각을 기록하는 것이었고 흔히 산파는 재산깨나 있는 집안이 아니면 부르기 어려웠으니 상민들은 아이가 출생해도 새벽 닭이 울 때라든지 새참 먹고 난 뒤라든지, 겨울 저녁 밥 먹기 전에 태어났다는 식으로 기억하기 마련이었다. 지금도 40대 이상의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출생 시각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궁합을 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간에 이끌림이 있느냐를 보는 것인데,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태어난 날의 오행으로 합을 이루느냐를 보는 방식이다. 가령 어떤 총각의 태어난 날이 무자(戊子)이고 처녀는 계축(癸丑)이라면 아주 좋은 궁합이 된다. 천간의 무(戊)와 계(癸)가 합(合)을 이루고 지지의 자(子)와 축(丑)이 합을 이루니 찰떡궁합이 된다. 이 때 천간의 글자간에만 합을 이뤄도 괜찮은 궁합이고 지지의 글자까지 합을 이루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궁합이 된다. 사실 이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궁합 보는 방법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궁합을 보지 않아도 오늘날 사귀고 있는 남녀들의 사주를 보면 저절로 그렇게 궁합이 맞는 사람들끼리 사귀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남녀가 사귈 수 있는 시대에는 따라서 궁합을 볼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그래서 성립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유난히 끌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이럴 경우 두 사람의 사주를 보면 궁합이 맞는다고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궁합이 맞긴 하지만 어느 정도로 잘 맞느냐가 중요해진다. 흔히들 인연이란 말을 쓰는데 과연 그 인연이 어디까지냐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이를 두 사람의 사주로 판단하려면 앞서 말한 일간과 일지의 합을 보는 것은 물론 두 사람의 성격과 기호, 앞으로의 운명을 놓고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두 사람이 상당 기간 이미 잘 사귀고 있고 그 결과 결혼을 하기로 마음 먹게 된다면 고명한 사주 선생을 찾아가 물어볼 필요가 아예 없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이미 저들끼리 시간을 두고 사귀면서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면 이미 궁합은 다 맞아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양가 부모님한테 말씀드렸더니, 그때서야 그 부모가 궁합을 보러 간다면 이는 사물이 전도된 것이다.
즉 일의 앞뒤가 거꾸로 되었다는 얘기다. 사주 선생한테 가서 좋은 덕담이나 듣고 오면 모를까, 궁합을 본 결과 안 좋다고 해서 두 사람의 관계를 끊으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아직도 있는데, 정말 웃기는 얘기다. 실로 블랙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젊은 사람들은 그 부모들이 가진 인생에 대한 시야나 경험이 없으니 걱정이 되겠지만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사위 감이, 그리고 며느리 감이 마음에 안 들면 자신의 자녀와 상의해서 해결해야지, 왜 엉뚱한 사주 선생을 개입시키는지?
심지어는 아주 좋은 며느리 감으로 여기고 있다가 정작 궁합을 보고 와선 얼굴을 싹 바꾸는 어머니들도 있으니 실로 한심한 노릇이다. 만약 이 경우 사주 선생이 ‘예스'하는 상대를 찾아서 결혼시킨다면 그 사주 선생이 그 결혼의 앞날을 보장한다는 책임 보험까지 들어준다면 몰라도 말이다.
할 얘기가 좀 더 남았으니 다음에 이어서 궁합에 대해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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