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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너서클' 2부 <19> 反부패를 위한 보고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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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너서클' 2부 <19> 反부패를 위한 보고서 2

권부 어느 곳이나 '끗발 인맥'이 지배

강직한 나의 친구는 이런 체험담을 들려줬어.

"여의도에는 우리 회사의 금싸라기 같은 땅 4천여평이 있었어. 이걸 SK그룹이 눈독을 들였지. 이걸 먹어야 하겠는데 별로 방법이 없어. 그래, 그 쪽에서 생각해 낸 것이 토지교환 방식이야. 자기네 건물 지으려던 땅과 맞바꾸자는 거지. 토지 평가사를 통해 공정하게 가격 평가를 해서 차액만 주고 받으면 문제가 없는 거래라고 볼 수 있지.

하지만 이런 거래에는 으레 음모가 개입돼. 평가조작을 하는 방법이야. SK쪽에서 볼 때는 상대는 더더구나 예의 공짜, 아니 '공적 기금'으로 출연한 공공출자 회사이니 주인 없겠다, 엄청난 특혜와 폭리를 볼 수 있는 조건이 안성맞춤이지. 그래서 나는 '안돼' 했지.

재무부에서 출자관리 과장을 해서 알지만 이건 불법이라고 했어. 이 정도의 사안이면 사장이 직접 토지교환을 거부해야 마땅한 일 아니겠어. 하지만 그걸 못 해. 이미 재무부 쪽을 통해 정치적 거래가 있었기 때문이지. 덩어리가 큰 거래에는 청와대라든가 여당 쪽에서 개입이 되어 있지. 권력과 돈이 얽힌 연계철선이 바로 부패의 톱니바퀴를 이루는 틀이야.

어느 과정에서 이건 '노'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전체의 틀이 흔들릴 수 있을 터인데 눈치가 코치라 슬슬 잘도 넘어가. 이런 건에 '노'라 말했다간 언제고 '유탄'에 맞게 되는 게 관료의 운명이라 체념하는 면도 있어. 어쨌든 나는 동키호테가 되어 재무부로 가서 '토지교환은 불가'라는 실무입장을 강력하게 전달했지.

결국 이 건은 SK쪽이 실패를 했어. 장,차관도 국장도 국영기업 사장도 다 불법인 걸 알고 있으면서 어디선가 강하게 '노'라는 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대했다고 긍정적으로 나는 이해했어. 핑계가 생긴 셈이지.

권력이 개입된 모든 부패와 수상한 거래는 수요와 공급이 있기 때문이지만 자리에서 쫓겨난다든가 물을 먹고 좌천이 된다든가 더 나아가서는 검찰에 의해 먼지가 털리는 '정치적 응징'에 걸려들까 봐 모든 관련자들이 이 좋지 않은 일에 공동부역을 하기 때문이야."

인맥 구조가 만들어 내는 부패와 부조리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어. 한때 우리 사회에는 TK라는 인맥이 있었지. 대구-경북 출신들인 이 TK들은 스스로 사회주류라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어. 목소리가 큰 만큼 파워가 커 요소요소를 지배하는 권력 집단이었어. 청와대, 장차관실, 검찰, 법원, 기업 할 것 없이 '끗발 인맥'이었지.

언젠가 나는 회사의 주요 포스트에 부하직원 중 한 사람을 기용하려고 추천했더니 "그 사람 저쪽(호남) 사람 아냐" 하는 반문을 사장으로부터 받은 적이 있어. 또 한번은 모 부처의 인사정보를 탐색하던 중 "그 사람은 호남이라 후임 국장이 되기 어려워요" 하는 소리를 들었어.

이렇게 짜여진 '지연(地緣) 스크램'은 좋은 일도 하고 에너지의 집중력도 보였겠지만, 수상하고 냄새나는 일들을 손쉽게 '작당하는' 풍조를 만들어 냈다고 봐.

지연뿐인가, 학연(學緣)까지 얽혀 돌아가지.

이런 일이 있었어. 모 금융기관장 방에 금융지원 의뢰가 들어왔어. 이사장 방으로 의뢰서가 왔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빽으로 밀어달라는 거지. 심사담당자는 대번에 신용지원 부적격 업체라는 걸 알고 비토를 놓았지. 그랬더니 이사장이 불러.

"왜 안 되느냐."
"이러저러 해서 부적격 업체입니다."
"그래 알겠다."

그리고 나니 이번에는 업체쪽에서 직접 심사 담당자에게 로비를 시작하는 거야. 그래도 '이건 배임이다, 안된다' 하고 담당자가 버텼어.

이사장이 다시 불러.

"사실은 이거 , 재무부 차관보가 부탁한 거야. 되는 쪽으로 좀 연구해 봐."
"해 주었다가는 나중에 이사장님 곤란한 일 생깁니다."

이건 나중에 형사사건에 말려들지도 모른다는 실무자들의 '간곡한 협박'이라 할 수 있지.

"정 그렇다면 재무부 차관보 찾아가서 사정 설명을 해 줬으면 좋겠어."

나의 친구인 심사담당은 차관보에게 찾아가 왜 부당한 건인지 핏대를 올려가며 설명했어. 어딜 금융기관 실무자가 재무부 차관보한테 큰 소리를 쳤을까 하겠지만, 그 차관보는 옛날 관료조직에 같이 있었을 때 하급직에 있었거든. 이래서 또 한 건의 불법 부정 금융지원과 수뢰사건이 방지되었는데, 그 친구는 이런 설득의 무기를 쓴다고 해.

"이건 일을 처리하고 안 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전문가인 내가 보기에 후일 꼭 동티가 나서 줄줄이 백금 팔찌(수갑)를 찰지도 모른다", 이런 식의 충고지.

왜 그런 무리한 일이 진행되었을까. 그 금융지원 건은 바로 세칭 'K1(경기고) 라인'이 얽혀 만들어 낸 것이라는 거야. 업자, 이사장, 차관보가 모두 K고교 동창들이지.

K1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아들 현철씨의 모교인 경복고의 끗발이 올라가자 경기고를 분리해서 하는 말인데 경복은 K2, 시대와 집권 세력이 바뀌니까 광주고가 전면에 나와 지금은 K3까지 가있다지 아마.

추측컨대 "야, 너 차관 자리에 있을 때 한 번 봐다오"한 것이 시작일 듯 싶어.

무리와 불법과 부조리가 진행되는 동기 자체에는 무리가 없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에 얽힌 복잡한 틀이 금기의 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 버리는 게 바로 문제야.<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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