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과 차관 사이가 좋은 예는 거의 없다고 보면 돼. 이것도 권력의 갈등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 본질이야.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김학렬 차관 사이는 아주 안 좋았어. 장이 '정치적'이라면 김은 '관료적'이지.
갈등이 있으면 괴로운 건 물론 아래쪽일 수밖에. 도대체 돌아가는 판을 알 수가 없어. 거기다가 정치자금을 포함한 당과의 연계에는 개입할 틈도 없고 또 그럴 자격도 없어. 오직 믿느니 박통이라. 김은 절치부심했지만 나중 부총리가 된 건 역시 권력자 박통의 눈에 들었던 덕이야.
호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내가 시어머니가 되면...'하고 다짐하지만 한 술 더 뜨지.
예외 없이 김도 부총리가 되니 자신의 자리를 이어받은 장예준 차관을 물 먹이곤 했어. '그래, 너는 조지고 물 먹여라, 나는 내 길을 간다' 하고 버틴 게 장이지. 오죽 밟혔으면 그에게 '잡초'라는 별명이 붙었겠어. 밟아도 일어나고 또 밟아도 일어나 장은 상공부장관, 주사우디 대사 그리고 부총리까지 지냈으니 참 별호에도 맞는 끈질긴 인물이었어.
이와는 반대가 남덕우 재무부 장관과 이재설 차관의 경우야.
남씨가 서강대학 교수에서 발탁되었으니 정통 관료 출신인 이씨가 보기엔 백면서생이지. '지가 알면 얼마나 알아, 관료 조직 그것도 마피아 조직을 방불케 한다고 해서 '모피아'라는 재무부의 보스가 되기는 힘들지', 뭐 이렇게 생각 안 했겠어. 그러니 장관 눈치 같은 걸 안 보고 자신이 대장 노릇을 한 거야.
그래서 장관실에는 사람 그림자도 얼씬 안 했지만 차관 방에는 항시 두서너 명이 모여 시끌시끌했지. 그때만 해도 장·차관실이 비서실을 사이에 두고 있어 '장관 물먹이는 소리'에 비서들은 당혹하곤 했다고 해. 어떻든 장관 입장에서는 와신상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남씨는 워낙 온건했던 인물이긴 했지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있었을 거야.
상식적으로는 생각하기 힘들지만 고급 관료사회에도 '왕따'라는 게 있는데, 이 경우 장관인 남씨가 '왕따'가 된 것이지. 정책의 최고 책임자이긴 했지만 조직의 보스 노릇을 못하는 것이지. 하지만 남씨는 그 굴욕감을 잘 극복했지. 결국 이씨를 밀어내 건설부 장관이 되게 했는데, 후임 차관에는 최각규씨를 기용하면서 인사를 단행했어. 와신상담의 작품이자 명실공히 재무부라는 조직의 보스가 되는 틀을 만든 거지.
이때 인사명단을 발표하면서 최 차관의 이름을 '조각규'로 불러 가십거리가 되었어. 재무부 인맥과 장관이 얼마나 소원한 관계였는지, 이씨가 차관 자리에서 물러나니 얼마나 흥분이 되었는지 이름조차 제대로 못 부른 게 아니냐는 소리들이었어. "이름 외우기에 약한 장관의 단순한 실수였다"고 공보관은 해명을 했지만 말야.
관료사회에서는 일명 '하리모도'라 불렀지. 장덕진 전 농수산부 장관 말야. 대체적으로 관직을 붙여 말하는 게 통례이지만 관료사회에서는 무리를 거느리는 보스 급이 되면 이런 일본식 이름을 붙였던 것이 한때 시류였지. '쓰루(김학렬 부총리)', '미나미(남덕우 총리)' 이런 식이지.
농수산부의 정소영 장관과 장덕진 차관은 관계를 뭐라 할까, 아주 갈등-대립적이었지. 두 사람은 다 '모피아(재무부)' 출신이야. 정은 세정차관보에 차관을 지냈고, 장은 이재국장에 재정차관보를 지냈어. 서로 업무충돌이 있는 분야가 아니었는데 농수산부에서 조우하자 견원지간이 되었어. 내부적 갈등은 밖으로 전파되고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귀에까지 그 소문이 전달되었어.
장·차관의 갈등은 비단 정소영과 장덕진의 문제가 아니야. 어느 조직이라도 첫째 둘째는 그런 관계일 수밖에 없어. 도가 지나치느냐 아니냐가 문제지... 박통은 정 장관을 불러 장 차관에 대해 물었어. "차관을 바꿔 달라"고 했어. 같은 포지션에서 이번에는 장덕진을 불렀어. 그는 갈등을 숨기고 장관 칭찬만 했다는 거야. 그릇의 크기라 할까 아니면 한 수 윗길에서 대응했다고 볼 수도 있지.
정소영이 장관 자리를 내놓고 떠나는 날은 눈이 왔다고 해. 후임 장관이 된 장덕진은 아주 정중하게 정소영을 모셨지.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목격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두 사람의 눈가에 눈물이 돌더라는 거야. 그 눈물의 의미는 각기 달랐을 거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하리모도(장덕진)'는 상당히 야심만만한 관료였어. 예의 '모피아' 시절에는 '하리모도 산맥'이라는 것이 있어. 그의 인맥은 은행계와 재무부에 상당히 넓은 반경을 차지하고 있었어. 의회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시절 아냐? 그러니 행정상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쪽이 더 쎘지. '하리모도'는 그 중에서도 대통령과의 인척 관계라든지 고려대학 학맥이라든가 돈줄을 잡고 있는 은행을 컨트롤 하는 재무부라는 관료조직이 그의 배후에 깔려 있어 영향력이 대단했어.
따지고 보면 프로 축구의 발동을 건 것도 이 사람이야. 돈이 있는 금융단을 그라운드로 끌어들인 장본인이지. 물론 자신이 축구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어. 이 정도 수준이면 백면서생 남덕우 장관이라는 존재를 어느 정도로 생각했을까 짐작이 가지. 그러나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장관을 '모셨다'는 거야.
언젠가 술자리에서 아무리 그래도 장관과의 사이는 껄끄러웠던 것으로 보이더라고 했더니, "아, 그건 모르시는 말씀이예요. 제가 영등포에서 출마하려고 차관보 사표를 냈을 때 제 손을 꼭 잡고 손바닥에 종이 메모 같은 것을 주시더군요. 정치 자금에 보태 쓰라고 수표를 한 장 이리저리 접은 게 아니겠어요", 하더군.
그만큼 간격이 없었다는 말씀이었겠지만 그렇게 기자에게 말하는 대목이나 장관이 성의 표시를 한 대목에는 다 '정치성'이라는 요소가 깃들어 있었다는 생각이야. 인간관계의 본질이야 위나 아래나 별 차이가 없겠지만, 권력 사회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지. 어떤 행동이나 말에도 정치적 의미나 목적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지. 그게 크냐 작으냐에 따라 갈등이 되고 동티가 일어나고 하는 거야.
'하리모도'는 한 때 포스트 박(박통 후임자)과 관련되어 상당히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야. 군에서 보안사령관 윤필용이 박통의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다고 전파되고 있을 즈음 '하리모도'도 아주 은밀하게 권력동네에서 이름이 오르내렸어. 정통적 행정관료의 코스를 벗어나 축구 대장도 하고 선거에도 뛰어들고 하는 게 그 코스라는 설이 퍼졌지.
한 번은 본인에게 박통과의 공적·사적 관계를 떠 본 적이 있어. 그랬더니 "대통령은 육 여사가 돌아간 이후 아주 쓸쓸한 것 같더라. 요전번에도 청와대에 들어가 뵈었더니 그런 느낌이었다. 2층 집무실에서 돌아가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그랬어. 글쎄 대통령이야 어느 각료든 대하는 모습이 별다르겠는가, 다른 분에게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임자. 임자'이런 표현을 많이 쓰시는 것 같더라", 이렇게 말해.
일설에는 박통 이후 포지션 문제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다가 검찰 라인에서 제동을 쎄게 받았다는 설도 있었어. <권력내부 파워게임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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