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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너서클' 2부 <15>-'오야붕과 꼬붕'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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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너서클' 2부 <15>-'오야붕과 꼬붕'의 세계

"내가 형님한테 얘기드렸으니 그대로 밀고 나가"

한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공기업 조직은 매출액이 지금은 30조원에 이르는 대기업이야. 거기다가 새로운 발전 설비 투자를 위해 외자차입을 하는데, 이게 또 한 30조원 되는 거라. 어마어마한 공룡기업이지.

공기업의 덩치가 크다는 것은 여기서 누출되는 자금이 많다고 보면 돼. 권력과 그 주변으로 흘러나가는 돈 말야. 그래서 경영합리화에 뛰어난 경영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입지가 강하지 않으면 안돼. 그래서 사장에 기용되는 인물은 정치성을 띠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생겼지.

예를 5.16후 사장에 기용된 김영준씨는 9사단장 시절 쿠데타군의 진압 명령을 받고 출동을 하려는 찰나에 '잠시 정지' 명령을 내려 쿠데타를 성공케 하고 그 공으로 박 대통령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게 정설로 되어있다.

한전 사장으로 자질과 덕목을 갖추었던 인물로 사람들은 성락정씨를 꼽고 있어. 이 사람은 공과대학에 강의를 나갈 정도의 실력을 가진 기술 출신의 한전 맨이지. 그는 지나칠 정도로 청렴했어. 무슨 때가 되어 부하들이 고기를 사들고 가면 아예 이웃집 담 너머로 던져 버릴 정도였어. 그래서 후진들의 많은 존경을 받았지. 그러나 이건 역시 이 거대 기업의 CEO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조건의 하나일 뿐이지. 역시 권력과의 연결 라인이라는 충분 조건이 필요해. 12.12쿠데타 이후 전두환씨가 간판을 단 국보위에서 상임위원장을 한 이호씨와 성 사장은 처남 매부간이었다는 점, 이게 그 대답이야.

성 사장은 그러나 한전 사장을 오래 못했지. 뭐 본인의 무능이나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야. 한전과 한국중공업이 한판 붙은 거야. 발전설비를 주업으로 하는 곳이 한국중공업이니 한전은 왕 발주처지. 쉽게 말하라면 한전이 한중을 쥐고 흔들 수가 있는 틀이지. 당시 한중 사장은 박정기씨야. 만만치 않은 인물이지. 사사건건 두 거대 기업이 박치기를 하는데 아무래도 박 사장의 권력 접근이 더 강했어. 전두환 대통령은 하루 아침에 덩치나 규모나 상대가 되지 않는 두 기업의 사장을 맞바꾸어 버렸어.

엄청난 덩치의 공룡기업이지만 한전에는 사장 위에 사장이 있지. CEO 회장격인 상공부 장관(현 산업자원부 장관)말야. 국가 정책과 계획이 걸려 있으니 두 사람의 CEO가 필요하다는 건 인정해. 그렇지만 그 관계가 완전히 종속적인 게 문제야. 수평적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아니라는 사실이 바로 이 거대기업의 경영구조와 내막에 수상한 그림자를 항상 깔아 놓게 하는 근본원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지.

그런 면에서 보면 박 사장은 정반대지. 파워 라인이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직통이라 '단독 드라이브'로 조직을 몰고 나갔지. 부하들이 미묘한 문제가 걸린 안건들을 들고 들어가 "상공부에 보고하러 가겠습니다" 고 하면 "그럴 필요 없어. 내가 형님한테 다 얘기 드렸으니까 그대로 밀고 나가" 하면 그만이었어. 박 사장이 유능했는지 아닌지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기업 조직의 보스로는 강한 인상을 남겼지.

여기서 하나 관심을 끄는 것은 '형님'이라는 명칭이야.

10.26사태가 난 후 뉴스의 초점이 된 인물은 단연 전두환 육군 소장이지. 강인한 얼굴에 눈치가 보통이 아닌, 이 별 둘을 단 이 군인은 대통령 시해 사건의 전말을 아주 실감나게 발표하곤 했지. 아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이런 대목을 기억할 거야. "형님 이리 오시오!" 말야. 일을 저지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한 소리를 전 소장은 아주 실감나게 전달하던 거 기억나. 정치가 마피아의 세계는 아니지만 역시 '형님과 아우의 세계'아냐. 군의 세계, 특히 권력 주변의 군 사회 역시 형님과 아우의 세계였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없을까.

육군 중령이 육군 대령에게 혹은 육군 소위가 중위에게 '형님'하는 호칭은 있지도 않고 상상할 수도 없어. 그러나 별을 단 세계에서는 특히 이너써클에서는 자연스러운 호칭이 되고 그것은 은연중 정치세력으로 규합되는 코드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안 돼?

신군부의 7년 정치는 이런 측면에서 보면 군이라는 집단 속에서 좌우가 통했다고 볼 수 있어. 진압쪽에 서 있었던 모 장군의 경우를 들어봐. 서울대에 다니던 아들이 행방불명이 되었어. 한창 대학가의 반정부 데모가 심한 때였으니 어디로 도망갔거나 경찰서에 잡혀간 줄 알고 있었지. 그런데 영 소식이 없어. 할 수 없어 부탁한 곳이 민정당의 권정달 쪽이야. 당시만 해도 '민정달이 권정달이'할 때지.

"형님 진작에 말씀 해 주시지" 하더니 지방의 어느 호숫가 인근에서 찾았다고 시체를 인계해 주었어. 세력은 적대적 위치였지만 서로 통하는 한계점이 있었던 거야. 군부는 무슨 신 군부와 구 군부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일 정치 세력이라 이 말이야. 결국 '형님 아우'의 협객정치는 다음 정치 세력까지 계속돼. 정치권력의 내부는 인물과 세력의 변화는 많이 가져 왔지만 이런 면에서는 변한 것이 없어. 오히려 박정희 시대보다 어느 면에서는 전 근대로 후퇴했다고 볼 수 있어.

이제까지의 대통령은 DJ까지도 한 블록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야붕과 꼬붕'의 세계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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