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통의 운전기사로 윤덕병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알려지기로는 군대 있을 때부터 집안식구처럼 데리고 있던 사병출신이라는 얘기가 있어.
사람이 하도 충직해서 육영수 여사의 신뢰가 매우 컸어. 어느날 "여사님, 저도 이젠 사회(청와대 밖)에 나가고 싶습니다"하고 간청을 했어. 그래서 얻은 자리가 한국전력의 전차운전 사업소장 자리였지.
운전에 관한 업무가 관계되니, 업무의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전문성이 그래도 필요하다는 점으로 보면 특혜인사야.
윤씨의 경우는 주인 밑에서 오래 고생한 '머슴'에게 밭떼기 하나 떼어주는 정도라 볼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더 큰 자리들이 권력의 패거리라든가 그 울타리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건 심각한 문제야. 우선 전문성이 없으니 조직의 생산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고, 보다 유능한 인재들이 발탁되는 기회를 빼앗아가 버리는 결과가 되거든. 세월이 흘러 40년 넘어서도 권력의 주변에서 고공투하 하는 '낙하산 병'이 아직도 도처에 있다는 건 참 한심한 일 아냐.
어떻든 우리의 덕병씨는 한국전력 수뇌부에는 주요한 인물이 되었지. 이 정도가 되면 뒤따르는 게 있는데 어떻게 알아서 대우를 해 주느냐가 문제야. 영업소장으로는 좀 미흡하다 싶어 이번에는 부산 지점장으로 발령을 냈어. '알아서' 계급을 올려준 것이지.
사실 정치적 의혹과 비리 사건 가운데는 이렇게 권력의 마음을 '알아서' 처리한 결과가 심각한 국면으로 번지는 것도 있어. 그러나 사법적 귀책 사유가 권력에게 돌아갈 수는 없지만 따지고 보면 원인 제공을 시작한 곳이 권력이므로 원죄의 책임이 있는 거지.
윤씨가 부산 지점장으로 내려 왔을 때는 경찰서장도 중앙정보부장(현 안기부장)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지. 지방유지 서열로는 저 뒷줄이거든. 중앙집권제이긴 하지만 지방에도 분권화된 권력의 세계가 있는데 이게 협동체야. 서열이야 있지만 대체적으로 몇 사람의 유지가 지방의 정치적 대소사를 협의 결정하는 거라. 당시로는 도지사. 안기부 분실장 검찰지검장과 고검장, 지방국세청장, 경찰국장, 도 상공회의소 의장 등이 '유지클럽'이지. 그 밑에 은행 지점장 등이 줄을 잇지.
청와대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한 사람 건너고 두 사람 건너 청와대와 줄 안닿는 사람 없는 곳이 지방 유지클럽이라 윤 지점장을 그저 대수롭지 않게 보았어.
그런데 어느날 부산에 내려온 대통령이 환영나온 유지단 앞에서 "덕병이는 잘 있는가"고 새카만 한전지점장의 안부를 물은 거야. 모두들 어리둥절 하는 때 윤덕병씨가 저 쪽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난 거야.
윤씨는 부산에 있는 동안 대통령 차의 핸들을 잡았어. 대통령은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덕병이'를 찾았고 윤씨는 자연 '유지클럽'의 중요한 맴버가 되었어. 우리나라 야구루트 업계의 대 메이커 한국 야구르트의 윤쾌병 사장은 바로 덕병씨의 아우야. 이 기업의 실질적인 오너는 덕병씨가 아닌가 싶고 그 성장 배경에는 알게 모르게 박 대통령과 윤씨의 관계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
이 이야기는 관대하게 보아주면 인정미담이라 할 수 있을지 몰라. 문제는 권력자와의 관계에 따라 국사의 매우 중요한 자리나 공기업의 장 자리가 메워지고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권력자의 배후지원에 따라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평가되고 있다는 게 문제야.<계속>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