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국의 이너서클' 2부 <12>-'부패의 톱니바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국의 이너서클' 2부 <12>-'부패의 톱니바퀴'

"사우나에 같이 가 라카 열쇠 달라 해 저고리에 돈 넣어주면 만사끝"

5,16이 나고 서슬 퍼런 군부가 부정부패 몰아내자고 하니까 공무원 사회는 얼어붙었어. 뇌물수수는 자취를 감추는 듯했지. 목이 잘리고 감옥에 가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로 사형이라도 당하는 줄 알았으니까. 그러나 역시 부패의 요소는 시간이야.

당시 재무부 세제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데 이런 방법을 썼다는 얘기야. 그 때 아리랑 담배가 고급품이라고 나올 때인데 하루는 어떤 업자가 새 담배 한 갑을 그냥 놓고 가더라는 거야. 담당 공무원은 '사람 참 정신머리 없군' 하면서 나나 피워야겠군 하고 담뱃갑을 뜯었더니 이게 웬일인가. 수표를 돌돌 말아 낱담배의 형태로 만들어 가득 채워 놓았더란 얘기야. 그러니까 금단 지대에 시간이 흐르니 유혹이 시작된 거지.

쿠데타를 하는 쪽도 마찬가지지. 엄포, 공포를 놓지만 언제나 그건 2중 기준이야. 너희들은 깨끗해라 하지만 우리는 나라 일을 끌고 나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고로 우리가 받거나 내라고 하는 돈은 뇌물이 아니라 헌금이라는 얘기지.

그 돈 가지고 포커하고 놀던 사람들도 있었어. 당시 1차 5개년 계획을 만들고 있던 때였는데 박정희 최고회의 부의장은 가끔 연구 지원비를 주고 갔지. 작업은 주로 호텔에서 했는데 나중 장관이 된 J씨 그리고 재벌의 아들L씨, 금융계에서 차출된 P씨 등 나중 사회명사가 된 사람들은 그걸 밑천으로 포커게임들을 하곤 했다는 거야.

언제가 대학 동창 친구 하나가 마침 호텔에서 작업중인 나를 찾아 온 적이 있어. 증권업협회 발전사를 만드는 작업의 일부를 하청 받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중이었지. 나를 찾아 온 친구 K는 모 그룹사의, 이를테면 프로젝트 로비스트 격이었어. 그는 술이나 한 잔 하자면서 문 라이트라는 나이트 클럽으로 나를 끌고 갔어.

그러더니 "돈을 줄 터이니 기자단을 움직이든지 네가 장관을 만나 해결하든지 아무튼 알아서 하라"면서 이런 건을 내놓아. 당시 주식발행이 본격적으로 될 때인데 프리미엄으로 발행하면 오너는 앉아서 거금을 챙기게 되어 있었어. 주기업 K화학의 프리미엄을 1백50%만 보장해 달라는 거였어.

"야, 장관에게 콱 집어주면 끝나는 거 아냐", 그러는 거야. 그때 알았어. 기자실은 촌지 가져오라고 호통을 치긴 해도 이권 개입은 그래도 안하는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어. 일도 바쁘지만 아무래도 이 친구가 내 손목에 '백금 팔찌'를 채우려고 그러나 하고 화도 나서, 딴 데 가서 해 보라고 했지.

딴 데 가 보아도 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참 그건 순진천만이야. 단 한푼도 깎이지 않고 프리미엄을 고스란히 인정하고 주식이 발행된 거야. 당시 재무부는 'K대 마피아'라는 인맥이 있었는데 그 라인에 얽혀 있는 증권업계의 K씨가 움직여 일을 끝내주게 처리했다는 거야. 반대급부로 수천만원이 뇌물로 흘러 나간 건 물론이지.

아무튼 당시 공모주식에 붙은 프리미엄은 대체로 이런 부패의 틀을 통한 거라고 보아도 대체로 틀림이 없을 것 같아. 기업 가치가 아니란 말이지. 그런 토대 위에 시작된 자본시장 활성화이니 거품이 꺼질 때 가속도가 얼마나 붙었겠어.

이걸 무슨 거래라고 붙여야 할지 몰라. 뇌물을 주고 만들어 내는 계약 말야. 관청뿐 아니라 '실력 집단'이라는 것이 있어. 다 안 통하는데 희한하게도 그 동네에 가면 풀리는 거야.

소공동에 사무실이 하나 있었는데 청와대 퇴직자들이 낸 사무실이야. 유화학 제품을 만드는 S사장은 원료난 때문에 골치 아파 죽을 지경이었지. 현찰을 들고 가도 원료를 팔지 않아. 이리저리 수소문 하니 "원료 출고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는 거야. 톤당 얼마씩만 더 내면 폴리플로핀이건 폴리에틸렌이건 상당량을 배정 받을 수 있다는 거지. 바로 소공동 사무실로 찾아가 보라는 얘기야.

시키는대로 했어. 그랬더니 어딘가 전화를 하고 쪽지를 한 장 줘. 조금 전까지도 딱 잡아떼던 D유화는 창고 문을 여는 게 아니겠어. 원료 품귀 사태가 일어났다 하면 공식적으로는 공급 대책을 세우기에 해당 부처는 바쁘지. 그러나 또 다른 쪽에는 뇌물 생기는 '건수'가 발생되었다는 신호가 돼.

본질적으로는 같은 속성의 일이 국세청에서도 일어나. 세무조사 한다, 벌금 추징이다 하고 나오면 국민들은 또 누가 탈세하고 조세기피 했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업자나 세리에게는'뇌물 거래'의 신호가 돼. 대충 "이번에 1억 맞게 되었습니다" 하고 해당 세무서에서 통고를 받으면 납세자는 곧 세액 조정을 놓고 타협에 들어가지. 업자들은 다 여기저기 구린 곳이 있고 장부도 곳곳에 수상한 흔적이 있으므로 뇌물이라도 주어서 세금을 한 푼이라도 조정하려 드는 거야.

구자경씨가 LG 총수로 있을 때 관세청의 탈세 혐의 조사차 출두해서 "당신들이 보면 탈세지만 우리가 보면 그건 절세요, 절세"라고 한 적이 있어.

이거 중요한 말이야. 세리의 입장에서 볼 때는 뇌물 받고 합리적 결과를 내세워 도망갈 구멍이 크게 열려 있다는 소리지. 탈세 눈감아준 게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 절세효과를 도와준 것이라고 말야.

정치적 혹은 사회적 감시체제가 강화될 때도 '궁하면 통한다'야. 세리들도 가시가 있을지 모르니 이럴 땐 뇌물을 안 받아. Y사장은 세무서로부터 5천만원의 세금추징이 예상된다는 정보를 얻었어. 곧 타협에 들어갔지. 그런데 때마침 '불조심 강조기간'이 아니겠어. 돈 줘도 안 받는다 이거지.

기업에는 비공식 자문역이 있는데 바로 고급 로비스트라고 보면 돼. Y사장의 자문역은 전직 세무서장 출신인 L씨야. L씨의 라인에는 역시 전직 국세청 출신인 감사원 고위관리가 있었어. 업자는 국세청에 떨지만 국세청은 감사원에 떨어. 그러니 한 마디 건너오면 끝이지. Y사장은 1천만원에 가까운 로비자금을 건네 주었는데 물어봤어. "감사원 사람한테 어떻게 전달했냐"는 거지. 그랬더니 "사우나에 가서 같이 목욕을 하러 들어가 라카 열쇠 빌려달라 해 가지고 저고리 속주머니에 넣으면 그만이다"라는 거야.

그래도 확정 세액은 2천만원이라고 해. 로비치고 비싼 로비같지만, Y사장의 계산으로는 2천만원 절세를 한 거지. 5천만원 세금 내야 할 걸 1천만원 뇌물 풀어 2천만원으로 줄였으니 그런 계산이 나온다는 거야.

권력형 부조리와 부패의 원리 속에는 이런 때리고 받는 컨넥션이 숨어 있어. 대문짝만 하게 특별 세무조사 관련 보도가 나오면 일반 독자들은 "또 어떤 놈 탈세하다 들켰구나"하지만 업자들은 "또 돈 뜯길 일 생겼구나"한다는 거야. 좀 규모가 크면 이번에는 세무서 실무진들은 "정치적 사건이 있구나" 하구 말야. <계속>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