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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너서클' 2부 <7>-'2인자의 반란'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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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너서클' 2부 <7>-'2인자의 반란' 노태우

노태우, "각하와 나, 우리는 친구죠"

80년초 한창 안개정국일 때 언론계에서는 "과연 누가 실세냐"는 퀴즈풀이가 한창이었어. 신군부 측은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사 데스크들-주로 정치 사회부-을 불러 '애국언론 브리핑'이라는 걸 했지. 그 때 나타난 인물 중 데스크들의 표적에 든 사람이 노태우 소장이었어.

틀도 그럴듯 하고 상당히 정치적인 말도 하고 깊숙한 눈매는 무엇인가 뒤에서 도모하는 듯한 인상이었지. 전두환 소장이 주로 전면에 나서 시국 안정 협조와 돌아가는 일을 얘기했지만 '저 사람은 아니다'는 생각들을 했어. 5.16 때 '육군 중장 장도영'이 계속 표면에 나오다가 반혁명 혐의로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박정희 소장이 나타난 것을 목격한 경험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그러나 더블 캐스트로 전개되는 모양새를 보이던 신군부의 지휘탑은 그냥 전두환 체제로 굳어지고 노태우는 한 발짝 뒤에 서 있게 되었어. 권력 투쟁에서 1인자와 2인자의 대결이 피를 부른 역사가 많고 현대 정치에서도 2인자는 정치적 희생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함에도, 노태우씨가 대통령을 승계에 성공한 것은 특별한 경우라고 보아도 될 듯 싶어.

전-노의 특수한 관계도 있겠지만 '참을성' '기다림'이라는 그의 개인적 성격이 그런 과실을 얻어냈다고 할 수 있고 전두환이라는 인물이 그의 선임자였다는 행운이 결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어. TV연속극 <제국의 아침>에 나오는 고려 3대와 4대의 정종과 광종이라고나 할까. 신군부라는 동일 정치모계에서 나와 우호적 동맹으로 권력을 찬탈해 가는 시나리오를 집행한 거지.

노태우가 민정당 대표시절 함께 한성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한 적이 있는데, 이런 얘기를 들려주더군.

"제가 어릴 적이었어요. 동네 아이들과 강에 나가 누가 오래 물 속에서 견디나 내기를 했어요. 그냥 머리만 박으면 밀려서 떠오르게 되니 내기에 질 게 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무거운 큰 돌맹이 하나 움켜쥐고 물 속에 들어갔어요. 한참후 물 밖으로 고개를 들었더니 친구들이 없어요. 아주 오래 동안 내가 안 나오니까 먼저 간 줄 알고 가 버린 거예요. 어릴 때부터 참을성은 있었나 보아요."

"각하(전두환)와 나(대통령 후보인) 사이를 놓고 말씀들이 있는 모양인데, 우리는 친구죠. 각하가 부모상을 당했을 때 내가 상주 대역 안 했습니까. 각하는 그 당시 주월 사령부에 나가 있어 내가 대신 합천으로 내려가 묘지 작업도 시키고 장례 행사도 주관하다시피 했어요."

그런 얘기를 흘린 것도 용의주도한 계산이 있었을 듯 싶다. 우리는 '도원결의'는 안 했지만 정치적 갈등 정도는 극복할 수 있는 관계라는 거지.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이런 '우정의 무게'도 별 것 아님이 드러나게 되었지. 엄청난 세론의 파도가 몰려든 원인도 있지만 그는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냈어.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지.

그때 군부세력 핵심부에서는 이런 소리도 나왔지. "노태우가 먼저 하고 전두환이 나중 했으면 전두환이 노태우를 백담사로 그렇게 쉽게 쫓아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노태우가 먼저 잡았으면 전두환은 후계자도 못 되었을 것이다" 그랬지.

그래도 노태우가(家)에는 전두환 멘탈이 있어. 대통령에 막 당선이 되었을 때야. 모 대기업의 J사장이 새 당선자쪽에 줄을 연결하고 무엇으로 생색을 낼까 고민 중이었지. 사실 재벌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동력을 발휘하는 부문이 있어. '어떻게 하면 빨리 말을 갈아 탈 것이냐' 하는 문제야.

박 대통령이 제1차 5개년 계획을 입안할 때 참여했던 P씨의 증언이지. 말을 갈아타는 데는 돈만으로 안돼. 연결 인맥이 있어야 하고 또 생색이 나는 근사한 프로젝트도 제공되어야 해. 그래, J사장이 생각해 낸 것이 영부인의 이름으로 고아원을 도와주는 일이었지. TV 수상기 2,30대를 영부인 김옥숙 여사의 이름으로 기부한다는 거지.

그래도 '갸륵한 봉사'를 상대에게 알려야 하겠기에 김 여사쪽에 "이런이런 일을 할 참입니다"고 알렸어. 그랬더니 그 쪽에서 펄쩍 뛰었어. "아직 대통령 취임도 안 했다. 그 쪽(이순자 여사)에서 알면 좋을 게 없다. 가만히 안 있을 거다(아직 현직 대통령과 그의 부인이므로). 기탁하려거든 그 쪽 이름으로 하라"는 응답이었어.

J회장은 어떻게 하였을까. 자신의 기업과 이름으로 TV 수상기들을 고아원에 기증했어. 진실의 내막이야 어쨌거나 좋은 일을 했지. 이 이야기가 전파되자 권력 가족 주변에서는 "그게 돈이었다고 해도 그랬을까" 하는 야유가 나오지 않겠어?

'연희동 댁들(이순자와 김옥숙)'은 어느 쪽도 돈 안 싫어한다는 거지. 그때부터 "부동산 투기 현장에 나타났다던 장본인이 '빨간 바지'냐, '빨간 잠바'냐" 하는 소리가 배회하기 시작했어. 박봉의 육군 장교 부인으로 그래도 자식 교육시키고 가계 제대로 꾸려가려면 딱지도 사고 아파트 전매도 할 수 있다고 봐. 그땐 수 천억 원을 손쉽게 주무를 수 있는 권력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걸 예상할 수 없었을 터이니까 말야.

문제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된 이후에 돈이 삶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뒤바뀐다는 데 있어. 워낙 공짜로 그것도 수월하게 그리고 거액이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권력자들은 돈으로 카리스마를 만들어내곤 하지. 안방 마님들도 그런 권력의 병에 감염되는 수가 많아.

청와대 안주인의 부름을 받고 인테리어와 실내환경 용역을 맡았던 한 업자는 영부인이 준 팁 봉투를 열어 보고 깜짝 놀랐어. '대통령 부인이니 이 정도 주시겠지' 하는 예상액에 0이 하나씩 더 붙은 거야. 아마 이 소식이 언론에 공개된다면 보통 구설수에 오를 일이 아닐 거야.

하지만 상류사회와 고급업자들 세계에서는 팁의 규모가 위치를 선정해 주지. 하나의 과시 수단으로 통하지. "대통령 부인씩이나 돼 가지고 검약이나 할 것이지"하지만, 지배계급 사회의 안방들은 그 팁의 규모에 그야말로 야코가 죽어버려.

나중에 옷 로비사건으로 고급관료의 안방들이 사법적 차원의 호된 심판을 받았지만, 내밀한 이너서클 안방의 비밀스런 회로와 행태와 시스템은 언론에 의해 추적되지 못했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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