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겠지만 박대통령은 개인적 부패 스캔들이 크게 드러난 것이 없는 편이지. 하지만 이것도 당시의 권력자 주변의 ‘통행금지령’을 감안 해 본다면 부패가 없었다기보다 웬만한 건 그냥 넘어가거나 덮여 버린 탓도 있다고 볼 수 있어.
그는 이미 사회가 많이 부패해 있고 자신의 주변도 예외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어.
경제비서관 H씨는 그런 대로 유능했던 참모였어. 하루는 이 양반이 대통령에게 꽤 두툼한 결재서류를 들고 들어 간 일이 있어. 설명을 들으며 이리 저리 서류를 훑어보던 대통령이 낯빛이 변하는 게 아니겠어. H씨는 긴장했지. 잠시 예의 날카로운 눈매로 쏘아보더니 “이건 뭐야?!”하고 봉투를 하나 던지는 게 아냐.
깜짝 놀랐지. 아차, 실수. 뇌물 봉투 하나가 서류철에 붙어 들어간 거야. 그 사건이 있었지만 박대통령은 아무런 문책도 없었다고 해. 상당한 기간 후 개각을 단행하며 비서진을 개편할 때 H비서관이 보따리를 싸고 나서야 그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수첩에 적어 놓았다가 목을 베었다는 얘기가 나돌았어.
집권 말기에는 본인도 상당히 자포자기하는 면을 보여 주었다고 해.
한 ‘심야행사’에 대통령을 모셨던 경호책임자는 대통령과 이런 대화를 가졌다고 해.
"너, 돈 많이 벌었지?"
"아닙니다. 각하 모시느라고 저는 돈 못 모았습니다."
"임마, 모르는 줄 알아도 내가 다 알아. 바깥에서들 많이 해 먹고 있다는 얘기 다 알고 있어. 너도 아직 내가 살아있을 때 앞가림이나 해."
이보다는 완곡했는지 더 직설적이었는지 그건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때로 권력자와 주종적 관계의 사회에서는 다운 그레이드 된 대화가 얼마든지 소통된다고 해. 어떻든 박대통령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어떤 예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듯 싶었으며 주변의 부패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그것을 다 잡아야 할 자신의 힘마저 이미 만들어진 틀에 의해 허물어지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 싶어.
독재권력을 호랑이 등에 탄 형국으로 묘사하지. 내려 왔다가는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상황이니 끝장날 때까지 달리는 거지. 박대통령에게도 이런 측면이 없지는 않았으리라는 짐작이야. 하지만 그래도 ‘조국 근대화’하고 ‘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던 삶이고 보면 그래도 고민이 있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돼. 이제 물러나야 국가와 민족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하는 선택의 고민 말이야.
세상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런 에피소드가 있어.
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를 지낸 모씨를 하루는 대통령이 조용히 불렀어. 1970년대 중반이라고 해.
"자네, 한 가지 일을 맡아 주어야겠네. 내일부터 내가 한 연설문 담화 지시사항 그리고 각 현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수집해 줘. 특히 고속도로 지도 위에 그린 그림 같은 것들도 말야. 조용히 드러나지 않게."
'아, 대통령이 은퇴를 준비하시려는구나.'
지시를 받아들면서 그는 어떤 예감이 떠오르더라는 거야.
그러나 그 후 이 작업은 흐지부지 되었다고 해. 대통령이 다시 마음을 바꾼 것이겠지. 아니 그의 이너써클이 "각하, 절대로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시지 마십시오", 다시 올려 태웠다고도 할 수 있지.
호랑이에게 잡혀먹을 주군을 염려하는 충성심에서일까. 진실은 자신들이 모두 잡혀먹는다는 공포 때문이겠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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