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경상수지 적자가 사상최고치인 2백36억달러를 기록했다.
당연히 정부와 재계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이러다가는 '제2의 남미'가 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그러나 김영삼대통령(YS)의 주된 관심사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이었다. 이를 위해선 무슨 수를 내서라도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1만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방법은 단하나밖에 없었다. 원화 환율을 인위적으로 고평가해 억지로 소득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YS는 이 방식을 택했고, 한국은 96년말 OECD 회원국, 즉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 컸다. 결국 그 다음해말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기 때문이다. YS의 정치적 허영이 결국 나라 전체에 화를 부른 것이다.
YS는 96년 상반기 경상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그 책임을 물어 나웅배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을 경질하고, 대신 한승수 비서실장을 부총리로 내려보냈다. 그러면서도 공동책임을 져야 할 구본영 경제수석은 영전시키는 편파인사로 관료사회 및 재계의 비난을 받았다.
손광식 본지고문은 당시 두명의 경제전문가와 만나 시국을 논했다. 한명은 6공때 경제부처 장관을 지낸 인사였고, 다른 하나는 재계의 고위인사였다.
이들은 섬뜩하게도 '제2의 남미' 발발을 예고했다. 그리고 그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편집자주
1. 이야기 하나: "이러다 진짜로 남미꼴 나지"
경제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이대로 가다간 이번엔 진짜로 남미꼴 나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우리 6공 경제팀들이 한 것은 당시의 흑자기조를 중심으로 안정화를 추구하자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YS캠프의 박재윤이나 한이헌이는 여기에 호흡을 맞추지 않았어요. 물론 정치적 이유야 있었겠지만 '신경제'를 들고 나왔어요. 그건 인기정책이지 경제정책이 아니에요.
지금 무엇 때문에 경제가 이렇게 결단이 났는가 하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임금문제가 큽니다. 그동안 노동정책이다 뭐다 해서 경제적 욕구를 정치적 해법으로 풀어오다 보니까 임금수준이 경쟁 상대국에 비해 엄청나게 높아지고, 그러니 경쟁력은 약화되고 자연 수출이 저조해지고 이에 따라 경기가 감퇴할 수밖에 없죠. 이렇게 흘러내려 가는 겁니다.
국제수지 적자만 해도 그렇지요. 소득수준 1만달러 어쩌구 한 곳이 어딥니까. 정부지요.
그런데 그게 진짜 1만달러입니까. 다 원화절상해서 나온 ‘거품 1만달러’ 아니에요?
우리(6공)는 그때 국제수지 개선에 무척 노력했습니다. 보세요, 지금 외채는 6공으로부터 인수할 때보다 2배가 넘는다는 얘기 아닙니까.
'경세제민' 이것이 통치의 으뜸이라면 YS는 정치의 본질을 모른 거예요. 모든 것을 정치적 인기와 관련짓고 있는 것 같아요. 속된 말로 정주영씨가 갈파한대로 '광치는 일'만 관심이 있는 거죠.
부총리 나웅배씨는 왜 바꾸었답니까. 도대체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요.
2. "내 꼬붕은 내가 키운다"
'경제’는 경세제민이라. ‘갱재’가 아니야.
사람 바꿔 좋아질 경제라면 열 번이라도 바꿔야 하겠지만 이 대목에서 무엇을 건지려고 사람을 바꿨는지 모르겠어. ‘고비용 저효율’이 문제의 초점이라면 이것 또한 인적 자원 낭비이자 인재관리에 빚어지는 저효율 아니겠어.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구조에 문제가 있다면 핵심을 피한 결과가 되었어. 정치 안경을 끼고 보면 ‘경제위기론’이 대두된 데 따른 권력의 부담을 개각으로 해소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
하긴 모든 신문이 개각 기사를 1면 톱으로 다뤘다는 것 자체가 이런 책임회피적 방법에 동조한 꼴이 된 셈이야. 바야흐로 시장경제-민간주도라고 하면서 정부의 권위주의를 계속 굳혀주는 폭이야.
물론 그 의미에 따라 개각이 톱기사로 취급될 수가 있어. 그러나 이번에도 결국은 권력의 의도에 놀아난 폭이 되었어. 사회 이목을 집중시킴으로서 권력 쪽에서도 무엇인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경제에 대응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선전에 언론이 이용된 것이지.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도 있겠지만 YS의 인재관이 이번에 극명하게 드러난 것 같아. 아주 초보수적이야. 주변인물, 안심할 수 있는 인물, 충성심이 강한 인물들을 기용했어.
나웅배(경제부총리)를 짤랐으면 구본영(청와대 경제수석)이도 잘랐어야 해. 그런데 구본영이는 자기가 발탁해 키운 인물이라, 여기서 YS의 ‘돌쇠’같은 면모가 두드러져. 내 꼬붕은 내가 키운다 이거야. 그래서 장관 자리 하나 내서 승진시킨 것이지.
이석채가 경제수석으로 들어오면서 장관급이 되었는데 정무수석 이원종이도 동격이 되었어. '위인설관'이란 게 이런 거라는 걸 YS가 알란가 모르겠어.
언론의 해설 사설들을 보면 ‘강력한 추진력’ '안정론자‘ ’긴축기조‘ 같은 말이 등장하여 이번 개각, 특히 경제팀의 칼라로 발라내고 있더군.
그런데 그건 겉모양만 본 거야. 내년에 있을 대선, YS의 업적 마무리, 아직도 재정쪽에 기대고 있는 경제해결 방식 등등 결코 그렇지 못할 징후가 농후하거든.
또하나 그런 박력, 추진력 같은 추상적 개념이 강조되고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해. 언제는 청와대 비서실은 ’있는 듯 마는 듯‘해야 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개성‘ ’박력‘ ’강력’ 하고 나오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민간경제가 쎄져야 하는 때라고 해 왔는데, 관변경제가 쎄지게 되는 마당이 닥쳐서도 비판이나 문제의식이 없다는 점이야.
딱 하나 짚어내라고 한다면 있지. 이건 ‘YS 살아남기’라는 것, 그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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