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김영삼)정권 시절, 강용식 국회의원이 쓴 <당신의 미래는 방송에 있다>는 저서의 출판기념회를 끝내고 63빌딩 3층 에메랄드 룸에서 손광식 본지 고문을 비롯한 금융계, 언론계, 법조계, 외교계의 여러 지인이 모였다.
당시는 미국이 1993년에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던 살풍경한 시절이었다. 극우 진영 일각에서는 “북한군 1개 사단이 한국에 침투해 들어와 있다” “만주 연변에 50억달러를 주어 무장게릴라들이 북한정권을 쓰러뜨리도록 해야 한다”는 상식밖 주장까지 나왔고, 일부 보수언론들은 이런 주장을 대서특필하면서 세간의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의외로 권력내부는 지극히 ‘평온’했음을 이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 한반도 긴장의 이면에 ‘정치적 노림수’가 있었고, 언론이 이를 알면서도 여론조작의 바람잡이 역할을 했음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기록은 정치조작의 기록인 동시에, 부끄러운 언론의 자화상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편집자
A : 조선일보에 난 이상우 교수(서강대 정외과) 글 보았어. 거 무슨 소리야.
B : 이북 애들 1개 사단이 들어왔다는 거야. 일본을 통해서 사단장급까지 한국에 들어왔다. 그러나 부국강병론은 대응책이 아니다. 뭐, 그런 얘기인 거 아닌가.
C : 읽어 보았는데 얘기의 앞뒤 맥이 잘 안 통해.
D : 내가 반박 좀 하려고 했지만 후배라서…….
***북한군 1개 사단이 한국에 들어와 있다?**
A : 북한 얘기는 이찬삼(당시 중앙일보 시카고 편집장)이 쓴 거가 폭 넓은 화제를 일으키고 있더군. 그런데 그게 어디까지 신빙성이 있는 거야.
B : 식량위기에 대해서 중앙일보가 또 썼던데…이제 내부붕괴 될 때 아닌가.
C : 주한 몽고 대사 만나더니 여기서 생각하는 것처럼 굶어 죽는 그런 상황까지는 아니라던데.
D : 나 총리(정원식)따라 평양 갔을 때 보니까 북쪽의 전쟁 수행 능력에 의심이 가더라. 우선, 도로가 가는 길 빼고 안 보여. 전봇대의 애자도 깨진 것 투성이고 …….
A : 그게 아니라 저쪽은 15분이면 공격무력을 발동할 수 있어서, 남쪽을 갈겼다 하면 최소한 30만명이 희생된다고 하는 점이야. 이판사판이 문제라는 거야.
***만주 연변에 50억달러 줘 무장게릴라를 조직해 북한에 침공해야?**
B : 문제는 미국 쪽이야. 레이니(주한 미국 대사) 말마따나 소리 없이 녹여버릴 시나리오라면, 워싱턴이 서울 쪽과 교신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있느냐 없느냐 그게 문제야.
C : 그 정도 텔레파시는 있지 않을까.
D : 아냐, 미국놈 하는 게 엉성하거든. 클린턴도 여기 대해서는 명확하지 못한 게 많고…….
A : 한 번 쳐 보기 전에는 통일 어렵다는 얘기도 나와요.
B : 미국이 북은 핵을 가지고 있다고 긴장론을 펴는 것은 북이 무서워서가 아니지. 동북아 쪽 걸고 넘어가는 건 일본 때문이야. 일본의 핵이 문제라.
C : 이상우씨 얘기로는 만주 연변에 한 50억 달러 주어가지고 무장 게릴라가 한만국경에서 치고 내려오면서 임시 혁명정부 세우고 남쪽에서 압력을 가하면 통일된다는 이야기야. 결국은 강병(强倂)하자는 거야.
***‘땡전 뉴스’가 먼저이고, KAL기 추락은 두 번째**
B : 83년인가 KAL기 격추 사건 때 혐의자로 ‘제3국 운운’하면서 외무. 공보 합작성명이 나왔는데 이게 말씀이 아닌기라. 나라 이름 하나 제대로 못 박은 거지. 그래서 전통(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깨울려고 했더니 취침중인기라. 할 수 없이 그 이튿날 가서야 약간 강도 높여 수정한 일도 있어.
C : 나도 기억 하는데 그날 참 ‘망가’(만화)였어. 전통이 청소하고 해장국집에 갔는데, MBC는 전통의 청소가 뉴스 톱이고 KAL기 격추는 그 다음이야. KBS는 30분 고민 끝에 KAL을 먼저 내 보냈지.
D : 옛날 얘기지만 노태우가 대통령 될 때 내가 기여했지. 그때 민자당 후보로 레이건 만날 때 5분밖에 할애해 주질 않아. 그래서 백악관 벽에 있는 그림도 설명하고 사람 소개도 하면서 한 15분을 끌었지. 밖에 나가니까 미국 기자들이 왕창 몰려와 설쳐대는 거야. 실인즉 밥 돌 의원(나중 공화당 대통령 후보) 부인이 노동장관인가 했는데 돌연 사표를 낸다고 해서 몰려 나와 있었던 거야. 우리 기자들은 이걸 보고 “노. 레이건 회담을 둘러싼 열기… 어쩌구” 하면서 보도했지. 나보고 “시간은?” 하고 묻길래 “한 30분 걸렸다”고 하니까 왕창 국내에다 기사를 쏟아 놓더군. 이걸 계기로 그때까지 3김 뒤에 처져 있던 노가 단연 앞으로 튀어 나왔지.
나중에 DJ도 레이건 만나도록 ‘평형유지’를 하긴 했지만. 미국은 원래 타국의 대통령선거 후보는 안 만나는 게 불문율이야. 페어플레이 정신 때문이라는 거지.
A : 하여튼 권력 돌아가는 건 <모택동의 사생활>(주치의가 쓴 기록)을 봐도 알겠지만 어떤 때는 어린 아이들 노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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