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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취재파일 - 한국의 이너서클 <9>

"PCS는 미국과의 전쟁이었다"

김영삼정부 시절 이석채 정보통신장관은 말 많았던 PCS 사업자 선정작업을 주도했고, 그 결과 정권교체후 수뢰혐의로 구속되는 등 적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 전장관은 그러나 PCS 사업자 선정직후 손광식 본지고문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공명정대함'을 역설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PCS 사업자 선정의 이면에 작동된 알려지지 않은 '미국과의 전쟁'을 이야기했다. 이뿐 아니라 미국의 환율 절상압력 비사 등도 털어놓았다. 아울러 우리의 잦은 인사이동이 국제협상에서 얼마나 불리한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는가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편집자

이번 PCS(개인휴대통신)업자 선정은 정말 공명정대하게 했다고 자부합니다. 모 유력인사가 전화를 해서 "된 것 같다"고 대답했지만 실제로는 떨어졌어요. 그럴 정도로 장관은 간여 안했습니다.
물론 장관의 지침이나 철학은 있었습니다. ‘문어발’이것만은 안 된다는 생각은 국장 차관보 시절에도 소신이었지만, 이번 사안 처리에서도 같았습니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업체도 피하려고 했습니다.

한솔은 기술 7명과 경영 7명으로 구성된 14명의 심사위원 전원이 만장일치였기 때문에, LG-삼성 연합이 있었건 없었던 간에 꼭 들어가게 되었을 겁니다. 한솔의 심사서류를 검토한 결과 가장 준비가 많이 되어 있었고 완벽했습니다.

***"PCS 사업자 선정은 사실상 '미국과의 전쟁'이었다"**

중소기업 컨소시엄에서 업자 선정을 놓고 성명서를 내는 등 항의가 많았으나 따지고 보면 커미션 먹자는 게 골자였습니다.
대외 공표는 안하기로 했지만 실은 그 쪽이 사업 주체가 아닙니다. 미국 쪽이 진짜예요. 주식 배당과 이익금 일부 등 4백억원인가 5백억원인가를 보장받기로 하고 대리 입찰을 한 것으로 보는 게 옳을 겁니다. 결국은 국내 업자들의 싸움이 아니라 미국과의 전쟁이었습니다.

PCS에는 3조원이 투입 되어야 하는데 연간 매상액은 1조원에 불과 합니다. 지금 당장은 결코 수지맞는 사업이 아닙니다. 그러니 특혜라고 볼 수 없어요. 다만 멀티미디어 쪽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장차 승수효과를 기대하는 데서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된 것이지요.

국가적으로 볼 때 이 업종 싸움은 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포항제철의 신세계통신의 경우 최초의 장비는 정부 쪽에서 알아서 결정하는 관례에 따라 LG나 현대 혹은 삼성에 줄 수도 있는데, 이것도 "이젠 정부가 간여하지 말라"는 게 미국쪽 압력입니다. 미국쪽 요구는 몽땅 모터롤라에게 주라는 것이었죠.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지요. 정부가 민간기업에 ‘노터치다’하는 흐름 속에는 이런 전략도 숨어 있었던 겁니다.

***잦은 인사이동이 국가간 협상의 최대약점**

국가간 무역 협상이나 경제 협상에도 이제는 포말한(공식적인) 것보다 인포말한(비공식적인) 거래가 요구되는 때입니다. 장관이 되고 보니 이게 매우 막막합디다. 언젠가 중국과 협상을 하는데 그 쪽 여자 대표는 우리 쪽 대표를 5명이나 상대하니 얼마나 능숙한지 모르겠더군요. 우리 쪽은 빈번한 인사이동으로 5번이나 카운터 파트너가 바뀐 것이지요.
미국쪽에서도 그래요. ‘너희들은 어째 대표가 올 때 마다 똑같은 질문을 하느냐’며 망신을 주는 거예요. 사람도 자주 바뀌는 터에 전임자의 파일이 없으니 그런 망신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장관이 되어서 뭘 어떻게 대응하고 행동하고 요리하고 기본으로 삼았는지 판단할 자료와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사실 인포멀한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장관이 되어 보면 실감하게 됩니다. 87년인가 우리가 흑자로 돌아서기 시작하니까 당시 베이커 미국 재무장관이 원화를 평가절상하라고 압력을 가해 왔지요. 그래서 미국에 가서 김경원 주미대사하고 베이커를 만났습니다.

우선 우리를 물 먹이려는 의도인지 베이커는 우리를 앞에 두고 이방 저방 들락거리면서 바쁜 듯 하더니 나중에 한다는 소리가 "원화를 8% 절상하라"는 소리예요. 우리쪽 사정을 암만 얘기해도 들은 척도 안합디다. 그런데 그날 저녁 모임이 있어서 버그스텐(당시 미국의 통화정책 싱크탱크)을 만났어요.

***장관에게까지 비자를 바로 안내줘 줄서기를 시키기도**

버그스텐과는 인포멀하게 통하는 사이라 ‘6개월 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버그스텐이 이 모임에 참석한 베이커에게 가서 뭐라고 한참 얘기를 하더니 나한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냅디다. OK를 박았다는 신호지요. 그래서 원화 절상 압력을 회피 할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3개월도 못 되어 흑자가 팍팍 늘어 결국 88년 1월엔가 15%의 원화 절상을 하고 말았지요.

그게 다 약소국이 당하는 슬픔 아닌가 봅니다. 할 얘기는 아니지만 모 장관한테는 미국 비자도 바로 안내줘 돈 30만원 주고 대리인을 세워 밤에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게 하는 수모를 당하게 했답니다. 이건 실화예요.

그러자 우리쪽에서는 캐나다쪽 비자를 얻어 미국으로 들어가는 제3의 방법을 쓰고 있는데, 미국쪽에서는 한국의 경우 8%가 관광비자로 들어와 튀거나 취업을 하는 등 ‘규정위반’이라는 이유로 이번에는 캐나다 쪽에 압력을 넣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캐나다 비자도 까다로워질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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