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주어진 임무를 충직하게 완수해낼 만한 적임자를 고심하던 끝에 숲의 파수꾼인 개를 불렀다.
대뜸, 여우는 숲을 병들게 하는 원인이 무엇이냐고 개한테 물었다.
개가 얼른 대답을 못하고 눈만 끄먹거렸다.
"저게 원인입니다. 숲이 건강해지려면 말끔하게 대청소를 해야겠지요?"
여우의 손가락이 나뭇잎에 고물대는 벌레를 가리켰다. 여우가 동의를 구하며 눈웃음을 치자 개도 덩달아 웃었다.
개는 숲을 위한 중대한 일을 맡은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어느 한 곳도 빠짐없이 살충제를 뿌렸다. 수많은 벌레와 곤충들이 땅으로 떨어졌다. 새들도 죽은 벌레나 약 묻은 열매를 쪼아 먹고 푸드덕거리다 숨졌다. 일부 새들은 저 멀리 다른 숲으로 날아가 버렸다.
개는 새들의 죽음을 미처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무더기로 쌓인 날짐승들의 사체를 구덩이에 파묻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나 건강한 숲을 만들려던 과정에 뜻하지 않게 생긴 불가피한 일이라 여겼다. 다만 이른 아침마다 잠을 깨우던 새들의 노랫소리가 없는 게 유감이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대청소 후, 여우는 벌레와 새가 깡그리 사라진 숲을 돌아보고 개를 치하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도록 나무들은 꽃을 피우지 않았고 열매를 맺지 않았다. 숲도, 숲에 사는 동물들도 바깥소식이 단절된 채 감감하고 울울하게 죽어갔다. 봄을 잃은 앙상한 가시 숲에 굶어죽은 동물들의 뼈가 수북이 쌓였다.
수년 후, 다른 숲으로 도망쳐 살아남은 새와 동물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죽음의 숲으로 만든 주범으로 개를 지목하고 뒤쫓았다.
개가 골짜기로 숨어 다니다 붙잡혀 광장에 세워졌을 때, 여우는 멀찍이 뒷짐을 지고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숲을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이에요. 저는 벌레만 청소했지 새는 한 마리도 죽이지 않았어요. 내가 무얼 잘못한 겁니까?"
개가 울먹이는 소리로 물었다.
ⓒ한정선 |
아이히만은 살아 있다!
아돌프 아이히만. 국정원과 경찰청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 기관의 조직적인 불법 대선 개입 수사와 재판을 보면서 죽은 지 50년도 넘은 그를 떠올렸습니다. 독일 나치스 친위대 장교인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의 체포와 강제 이주를 계획하고 실행했던 실무 책임자였습니다. 홀로코스트(Holocaust, 대학살)에 관여한 죄로 1960년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고 1962년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그는 '나는 유대인을 죽이지 않았으며 단지 국가적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조직적 부정선거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자들도 대선 댓글을 북한 혹은 종북좌파들을 상대로 한 '사이버 심리전'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국가적 행위라는 말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개인적 행동'이었다고 국가적 범죄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사자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개인적 행동'이었다고 하는 증언도 상부 조직의 명령에 따른 증언이라는 점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이히만과 부정선거 관련자들에게 '양심'은 '국가'가 해결해 주는 지극히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할 뿐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국가적 명령체계의 충실한 톱니바퀴로 기능하며 자신이 하는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고뇌한 적이 없는 아이히만을 보고, 그리고 그 어떤 저항도 없이 순순히 홀로코스트의 희생양이 된 유대인들을 보고 '악의 평범성'을 통찰합니다. 무사고(無思考, thoughtlessness)가 부당한 명령에 대해 고뇌할 수 있는 양심과 저항을 거세해 버렸고 그 결과 엄청난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생각이 정지된 자리에, 생각이 웅덩이처럼 고여 버린 그 자리에 악의 꽃은 피어납니다. 권은희 과장과 윤석렬 검사의 양심선언은 '생각'이 가져온 '저항'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아이히만은 너무나 많습니다. 4대강, 민간인 사찰, 국가 기관 대선 개입, 국사 교과서 왜곡 등에서 우리는 수많은 아이히만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아이히만. 그는 살아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