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솔직히 늦은 감이 적지 않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정치권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껏 더 신속하게 결정을 내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사법부의 판단이 늦어지는 바람에, 교육계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엄청난 혼란과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법이 있으나 효력이 없다는 혼란을 넘어서 인권이 살아 숨 쉬는 학교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 지난 4월 4일 학생인권조례 불이행 규탄 기자회견 장면. 이날 특별히 식목일을 앞두고 학생인권조례 나무를 서울시교육청에 전달하며 학생인권조례가 제대로 뿌리내리게 해달라고 하였다. ⓒ김형태 서울시교육의원 |
문용린 교육감은 본인 자신부터 '정약용 프로젝트' 적용해야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지 2년 가까이 지났다. 엄연히 공포된 학생인권조례인데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되어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무력화됐던 것이 현실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조례가 공포되어 효력을 발생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학생 인권 침해가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교육부가 제기한 쟁송 때문에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안내와 교육도 미뤄졌다.
설상가상으로 문용린 교육감 취임 이후 '서울특별시교육감 소속 학생인권옹호관 운영 조례(이하 학생인권옹호관조례)'가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조례의 현장 안착화를 위한 조례 기구인 학생인권옹호관 설치조차 6개월 이상 방치되어왔다. 지난 2012년, 1년에 걸쳐 더디지만 학생인권조례 현장 안착화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반대 논리에 부딪쳐서 그 성과는 낮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학생인권센터에는 인권 침해에 대한 학생들의 호소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문용린 교육감이 학생들의 이런 애절한 호소를 듣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학생들을 생각한다면, 인권 친화적 학교 문화 조성을 위해 견인차 역할을 할 학생인권옹호관 설치를 6개월 이상 집행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서울시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 정착을 방해하는 것처럼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시민들과 서울시의회의 '질책'과 '경고'가 이어졌지만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었다.
이제 학생인권조례의 법적 논란이 종결되었으니, 걸핏하면 '법'을 운운하던 문용린 교육감은 핑계거리를 찾지 말고 학생인권조례 시행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문용린 교육감은 언론을 통해 학생인권조례 수정안을 낼 것을 언급하는 등, 여전히 판결에 불복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본인이 한 '약속'인 '정약용 프로젝트(정직, 약속, 용서)'를 스스로 어기는 일이 아닌가.
조례 심의와 제정은 의회의 고유 권한이다. 의회와 한마디 상의 없이 학생인권조례 수정안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시민의 대표 기관인 의회를 무시하는 행태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 마시고 있는 셈이다. 학생인권조례 수정안을 의회로 보낸다면 '법'에 의해 판결이 난 만큼 상정을 할지 여부조차 장담할 수 없으니, 괜한 헛수고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교육부에 대해서도 지적을 해야 하겠다. 이번 헌재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상위법과 충돌 소지가 있는 조항들에 대해 개별적인 소송을 다시 제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육부는 더 이상 무분별하고 소모적인 소송으로 혈세를 낭비하지 말고 학생인권조례의 발목 잡기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교육부가 전북학생인권조례안과 관련해 전북도 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제정 조례안 무효 확인 청구 소송도 속히 중단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인권조례를 훼손하려는 시도를 이제는 멈추고 학생 인권을 존중하는 인권 친화적 학교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교육부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학교도 학생을 위해 있는 것이고 교육청, 교육부도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어리고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교육청과 교육부는 존재 이유가 없다.
교육 문제, 진영 논리나 정치 논리 벗어나 교육적으로 접근해야
나아가 세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왜 국가인권위원회를 다른 부처와 달리 독립적인 전문 기관으로 따로 두겠는가? 정치논리, 진영 논리를 배제하고 오로지 인권으로 사안에 접근해 일을 하라는 것 아니겠는가.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하루속히 가치 중립적인 국가교육위원회가 신설되어야 한다.
둘째, 애초 학생인권조례는 상식선에서 접근해도 될 문제였다. 교육부는 다른 것도 아닌 '인권 문제'조차 진영 논리로 접근해, 진보적인 교육감과 진보적인 의회가 추진하는 것이라 하여 무조건 막고 보자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주호 전 장관은 걸핏하면 재의 요구와 대법원 제소를 남발하였다. 그러나 거의 모든 소송에서 패소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조정 능력과 통합 능력을 발휘해야 할 교과부가 오히려 안 해도 될 소모전과 기싸움을 야기하고 부추긴 셈이다. 따라서 이주호 장관과 교과부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 패소한 비용을 관계자들에게 청구해야 맞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부의 이중적인 태도를 지적하겠다.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는 물론이고 교권보호조례까지 대법원에 제소하였다. 그래놓고 교권보호조례 내용은 슬그머니 가져다가 쓰고 있는 참으로 얼굴 두꺼운 일들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교과부를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는 이제라도 교권보호조례 소송 역시 취하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교권을 존중하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도록, 그리하여 인권 친화적인 학교 문화가 조성되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자신의 교권을 존중받은 교사가 학생의 인권을 존중해주고, 자신의 인권을 존중받으며 자란 학생들이 상대방의 인권도 소중히 여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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