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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따로 행동 따로…'시정연설'의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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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따로 행동 따로…'시정연설'의 진정성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89> '도끼질' 정권의 '창조'독재는 안돼

"사법부 판단을 기다려 달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꺼내들며 대통령은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 시정연설은 비록 국회였을망정 그녀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처음으로 국민을 직접 바라보며 입을 연 것이었고, 취임 이후 줄곧 실타래처럼 꼬여있는 정치상황에 대한 돌파구가 마련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서 이뤄진 것인데도 그랬다.

대선 끝난 지 1년이 돼가고 있는데 지금까지 대립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그녀는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정부의 (수사) 의지'와 '사법부의 판단'을 믿고 기다려 달라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미래로 나아가자'고 했다. 말은 참으로 좋은데 실제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대통령의 상황인식과는 너무나 다르다는데 문제가 있다.

'안타깝다'는 생각은 국민이나 정부 여당이 다 똑같이 느끼고 있으나, '정부의 의지'와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견해는 집권층과 국민들 사이에 서로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정부의 의지'는 누가 봐도 믿을 수 없게 되어있다. 우선 원세훈 전 국정원장 기소를 막아보기 위해 박근혜 정권이 얼마나 결사적으로 덤볐는지를 모르는 사람 거의 없다.

대선 개입사건 자체를 덮거나 축소시키기 위해 검찰총장과 검찰 수사팀장을 사정없이 찍어내기 했던 것도 정부 여당의 '(수사) 의지 전혀 없음'을 분명히 나타낸 것이라고 다들 단정하고 있다. 개인이 접근할 수 없는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빼내 대선과정에서 활용하고, 대선개입 사태에 대한 국민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여러 가지 일 벌인 것도 국민 모두가 알아가고 있다.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대목도 '속임수'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종 확정되는 사법부의 판단'인 대법원 판결이 언제 나올지 지금 아는 사람 아무도 없다.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말하자면 제발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보는 시각들이 적지 않다.

사법부의 판단이 아직 나오지 않은 이석기 의원 사건에 대해서는 집권당이 국회의원 제명절차까지 진행하며, 공안정국 조성에 보탬이 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끄럽게 해 주기를 바라면서, 정부기관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조용히 하라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구나 대선개입 사건은 심각성에서 이석기 의원 사건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사태다.


관련 규모가 거의 범 정부부처의 선거부정일 뿐만 아니라, 이석기 의원 사건은 공판과정에서 국정원이 제출한 녹취록이 조작되었음이 밝혀지는 등 삐걱거리는 소리가 계속 나오기 있기 때문에 불거지는 견해다. 어찌됐건 '사법부의 판단' 시기는 요원한 상태라고 보면 맞다. 무작정 기다려 달라는 건 무리다.

▲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한 뒤 여당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퇴장하고 있다. ⓒ청와대

게다가 '미래로 나아가자'는 대통령의 목소리에서도 어폐가 느껴진다. 믿을 수가 없다. 자기는 취임 이후 줄곧 역사 되돌리기를 하며 60~70년대로 뒷걸음질 쳐 왔으면서, 이제 와서는 국민들에게 미래로 가자면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꼭 김기춘 씨로 대표되는 그간의 인사행태를 지적하지 않더라도 그렇다.

바로 그 '인사' 때문에 필자는 이번 감사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충격을 느꼈다. 감사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부총리 급 고위 공무원이다. 내정 때부터 대통령과의 교감이 없으면 오를 수 없는 벼슬로, 국가관이나 시국관에서 대통령과 견해가 다르면 임명될 수 없는 자리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다른 곳도 아닌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그 답변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래' 아닌 '과거'로 가고자하는 대통령의 속생각을 그대로 옮겨 답변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는 청문회 첫날 5·16 쿠데타와 10월 유신에 대한 입장을 묻자 "감사원장의 직위에서 답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그 질의응답에 앞선 서면질의에서도 다른 의원이 5·16, 유신헌법, 5·18, 4·3항쟁에 대한 견해를 묻자 역시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서면답변 했다.

이튿날 그는 5·16 쿠데타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한다"고 답변했으나, 5·16은 인정할 수 없는 군사정변이었다. 그는 답변을 어찌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한 것 같다. 그러나 고위직이라면 올바르고 분명한 국가관이나 시국관을 밝혔어야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감사원장 후보자가 답변을 회피해서는 안 되는 내용들이었다. 대답하기에 따라서는 '종북'이나 '좌빨'로 몰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역사의 수레바퀴 거꾸로 돌리고 있는 대통령의 주파수와 자신의 주파수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눈치 빠른' 처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특히 5·16과 10월 유신은 작년 대선을 앞둔 9월24일 당시 박근혜 후보가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분명히 잘못된 일로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힌 내용들이다.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라고 믿습니다. '5·16', '유신', '인혁당'은 헌법가치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피해 본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 1970년대 인권침해로 고통 받았고 현재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분들이 저와 함께 해주실 때 100% 대한민국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때 박근혜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그 생각이 바뀐 것 같다. 당시에도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동안의 인사에서도 냄새가 짙었고, 감사원장 후보자가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한 것도 바로 '대통령의 생각이 바뀐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인 듯하다. 5·18 민주화운동과 제주 4·3 항쟁에 대해서도 고위직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있다.

다 알다시피 5·18은 1997년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제정하면서 '5·18 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되어, 역사교과서에 정식 기록되었다. 그해부터 정부주관의 기념행사가 이어져 오면서, 2011년 5월에는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제주 4·3 항쟁도 노무현 씨가 대통령의 자격으로 사과한 사태로, 4·3 특별법이 마련된 이후 정부차원에서 추념일 제정을 추진 중이고, 5·18처럼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 생각의 진정성이다. 그녀에게 미래로 가고자하는 생각이 정말로 있느냐 없느냐다. 자기들은 계속 시계바늘 거꾸로 돌리며 찍어내기나 하면서 입으로는 미래로 가자는 게 어울리지 않는 소리다. 시정연설 문구대로 진정으로 '헌신하면서 국민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면 미래로 가는 게 백번 옳다. 과거는 이제 접는 게 옳다.

그 첫걸음은 국가기관 대선개입 수사에 대한 지금의 생각을 당장부터라도 바꾸는 일이다. 투명하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추상같은 관련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객관적인 개선책 마련 등에 대한 확고한 결의를 보여야 한다.

MB 정권에 '삽질정권'이란 별명이 붙었듯이 지금 시중에는 박근혜 정권은 '도끼질 정권'이란 별칭이 붙어 나돌아 다닌다. 양건 감사원장, 채동욱 검찰총장, 윤석열 대선개입사건 수사팀장 등을 잇달아 찍어내기 했다 해서 붙은 게 '도끼질 정권'이라 했다. 도끼질은 잘못하면 제 발등 찍기 십상이다. 조심해야 한다.

'창조경제'란 난해한 말에 빗대어 '창조독재'란 소리도 돈다. 과거 군사통치시절과는 또 다른 독특한 방식의 독재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라 했다. 나라가 으스스해지면 좋지 않다. 창조독재란 말 나오지 않는 게 좋다. 말뿐이 아닌, 민주주의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절실한 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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