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정부가 제안한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거부 이유로 남한이 기존의 대결적인 자세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을 꼽았지만, 실제로는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전망이 보이지 않아 이산가족 상봉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북측이 제기한 문제와 이산가족 상봉은 별개"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9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이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명의로 통지문을 보내왔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북측은 남측이 대결적 자세에 변화가 없다고 하면서 인도주의 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자면 장애물이 제거되고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북측은 남측에서 전쟁연습이 계속되고, 곧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이 벌어지는데 이산가족 상봉을 맘 편히 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북측이 언급한 군사훈련은 연례적인 것이라며 "북측은 말로만 남북관계 개선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면서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위한 우리 측의 제의에 성의 있게 나오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조평통이 통지문을 보내 "새해 벽두부터 언론가와 전문가들, 당국자들까지 나서서 무엄한 언동을 하였을뿐아니라 총포탄을 쏘아대며 전쟁연습을 벌린데 대하여 지적하였다"고 밝혔다. 또 통신은 통지문에는 "(남측은) 신년기자회견을 통하여 우리를 걸고들고 우리 내부문제까지 왈가왈부했다"면서 "종래의 대결적자세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는 데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고 전했다.
이는 장성택 처형과 관련해 북한 내부의 급변 사태가 있을 수 있다는 정부 내 시각과 일부 언론 및 전문가들의 발언을 문제 삼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 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한미 간 고위급 채널을 구축하겠다고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북한의 급변 사태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한편 이산가족 상봉을 다시 제의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향후의 구체적 대응은 유관기관 간의 협의를 통해서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된 상황에서 2월까지는 다시 상봉을 제안할만한 뚜렷한 명분이 없어, 당분간 정부가 선제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 이산가족 실무접촉 거부한 진짜 이유는?
북한은 지난해 9월 21일 이산가족 상봉 나흘을 앞두고 돌연 연기 선언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남한이 자신들에 대한 대결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는 이산가족 실무 접촉 거부를 위한 명분일 뿐, 실제 이유는 금강산 관광 재개에 남한이 응한다는 전망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이날 남한의 이산가족 실무접촉 제의에 대해 응답한 통지문의 명의는 조평통 서기국이었다. 통상적으로 이산가족 상봉 협의는 적십자 채널을 통해 이뤄지고, 남한 역시 실무접촉 제의를 적십자 총재 명의로 보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조평통 명의의 이번 답장은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외에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같은 다른 남북관계 사안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북한은 통지문에서 "남측에서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이 없고 우리의 제안도 다같이 협의할 의사가 있다면 좋은 계절에 마주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북한이 이야기한 '우리의 제안' 역시 지난해부터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해서 제안해 온 금강산 관광 재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언급한 '우리의 제안'에 대해 "금강산 관광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전통문을 조평통 명의로 보낸 것 역시 "북한이 (이산가족) 실무접촉 거부를 넘어서 범위가 더 넓은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산가족 상봉 외에 금강산 관광 문제와 같은 남북 간 현안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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