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 마련한 새집…출근길에 만난 장관과 인사도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와 비슷하게 베를린의 한가운데에도 '티어가르텐(Tiergarten: 원래 동물원, 사냥터라는 뜻임)'이라는 여의도 면적의 4분의 1 정도 되는 커다란 숲이 있다. 우리 집은 그 숲의 남서쪽 끝자락에 붙어 있었다. 집을 나서면 바로 그 숲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출퇴근하는 대사관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그 대사관이 위치한 길을 따라 이 티어가르텐의 남쪽 도로변으로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이탈리아, 일본, 인도, 스칸디나비아 3국 등의 대사관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데나워 재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커다란 배 형상을 한 기민당(CDU) 당사가 위치하고 있는데, 그곳은 슈퍼마켓에 장 보러 갈 때마다 매번 지나던 곳이었다.
▲ 베를린 티어가르텐 근처 필자의 집. ⓒ조성복 |
그 토어와 조금 떨어진 곳에는 과거 제국의회였던 건물에 연방하원(Bundestag)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앞은 상당히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는데, 보통 평일에는 이 건물을 견학하려는 관광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주말에는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이 광장과 이어져 있는 반대편에는 우리의 청와대와 같은 연방총리실이 있는데,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연방하원과 연방총리실 주변에 특별히 경비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따금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순찰을 위해 지나다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도 순찰이라기보다는 그냥 그곳을 지나는 관광객들에게 길 안내를 해주는 정도였다.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하기에 적당할 것 같은데, 거기서 데모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 통일 후 새로 건설한 베를린 중앙역이 보인다. 이 티어가르텐의 북쪽으로는 슈프레(Spree) 강이 흐르고 있는데, 본에서 수도를 옮겨 오면서 그 강가에 연방총리실을 새로 지은 것이었다. 이 강은 한강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이 작았지만 여름에는 유람선이 다녔다. 이 강을 따라 쭉 내려오다 보면 이 숲의 서쪽 편으로 대통령 관저가 있다. 이 관저 앞 도로 건너편 숲에서는 여름철에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었다. 여기는 티어가르텐에서 그릴이 허용되는 유일한 곳이었다.
이 숲의 남서쪽 끝에는 베를린 동물원이 있는데, 그 동물원의 끝자락이 우리 집과 길 하나 건너에 있었다. 그래서 창문으로 말, 타조 등 몇 가지 동물들이 보이고 여름에는 간간이 그 녀석들의 오물 냄새를 맡아야 했다. 그 동물원 옆 한쪽 편으로 스페인 대사관이 자리하였다. 그 앞에는 제법 큰 커다란 호수가 있어서 여름에는 뱃놀이를 할 수 있었고, 또 야외 비어가르텐(Biergarten: 맥주집)이 만들어졌다. 여기와 반대편인 동물원의 입구 쪽에는 동물원이란 이름의 기차역이 있는데, 통일 이전에는 베를린에서 제일 큰 역이었다.
이곳은 베를린의 중심부이며, 주변에 연방 부처들도 많이 자리하고 있어서 교통의 요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한 번은 대사관에 걸어서 출근하다가 집에서 나오던 슈타인브뤽(Steinbrück: 18대 총선에서 사민당 총리 후보) 당시 연방재무장관을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는 원래 노드라인-베스트팔렌 주지사 출신으로 그의 가족은 여전히 그쪽에 살고 있는데, 연방장관직을 수행하기 위해 베를린에 집을 얻어 혼자 머물고 있었다.
▲ 연방총리실 전경. ⓒ조성복 |
베를린 중심부 임대주택…겉으로 표시 안 나
2008년 말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 직전 선거유세차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연설을 했던 곳이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티어가르텐의 좌중앙에 위치한 '승리의 탑(Siegessäule)'이라는 곳이었다. 당시 그 연설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으나, 미리 찾아온 수많은 인파 때문에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어서 집으로 되돌아와서 텔레비전으로 보았던 기억이 있다.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같이 브란덴부르크 토어까지 조깅이나 산책을 했던 것 같다. 베를린의 살던 집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했는데, 한마디로 월세가 비싸고 좋은 집들이 모여 있는 괜찮은 동네라는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을 위해 집을 나서다가 조그만 게시판에서 우연히 단지 내 임대 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집이 약간 좁은 듯하여 좀 더 큰 집으로 옮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마침 우리 집의 2배도 넘는 집이 아주 헐값에 나온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눈을 반짝이며 이게 웬 떡이냐는 표정으로 기뻐하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월세가 너무 싼 것 같아서 좀 더 자세히 읽어보자고 들여다보다가, 이 집에 들어가려면 WBS(사회 주택 거주권 증명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집은 바로 공공 임대 주택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좋은 환경에 그와 같은 주택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을 못 했었는데, 그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독일의 공공 임대 주택들은 겉으로 전혀 표시가 나지 않았다. 대체로 일반 주택들 사이에 똑같이 섞여 자리하고 있어서, 당사자가 굳이 말하기 전에는 알 수 없게끔 되어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확실하게 한 눈에 공공 임대 주택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짓는다. 그래서 아파트 사이에 철조망이 쳐지기도 하고, 아이들 사이에 같이 놀지 말라는 말들이 나온다. 또 큰 평수는 짓지도 않는다. 아직 33평형 공공 임대 주택이란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언제쯤 이런 점들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인지, 또 강남 한복판이나 부자 동네에도 공공 임대 주택들이 섞여 있게 될는지 궁금하다.
독일 사람들이 우리와 달리 안정적인 주거가 가능한 이유는 먼저 물가가 안정되어 있어서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없고, 또 가격 폭등의 우려가 없어서 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아 집값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임대 계약서에서 아예 임대 기간을 없애서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도록 한 점과 월세의 인상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점도 누구나 안정적인 주거가 가능하도록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밖에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정부를 비롯한 많은 사회, 종교 단체, 협동조합 등이 다양한 형태의 공공 임대 주택을 짓고 운영하고 있는 것, 그리고 수입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집세 보조금을 지원하여 집을 줄여 가거나 조건이 안 좋은 집으로 옮겨가야 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도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끝으로 건물마다 반드시 하우스마이스터(건물관리인)를 두어 모든 시설물을 제대로 관리하고 보수하는 점도 항상 쾌적한 주거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정확한 것은 자료를 찾아보아야겠지만, 얼른 느끼기에는 재산과 소득 등을 감안할 때 전반적으로 우리의 집값이 독일보다 많이 비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에 우리의 집값이 적당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크게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똑같은 돈으로 우리는 독일보다 훨씬 더 열악한 집이나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는 10억~20억을 가지고 겨우 조그만 아파트에서 사는 정도인데, 그 돈이면 베를린에서는 아주 근사한 저택을 하나 장만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만들어지는 삶의 질의 차이는 도저히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어서 이런 차이가 생겨나는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 독일의 안정적인 주거 문화 ① 무작정 오른 유학길, 독일에 가보니 '0층'이? ② 가족 수가 많아지면 임대 주택도 커지는 나라 ③ 전세제도 없는 독일에서 월세 체험해보니… ④ 부동산으로 돈 못 버는 독일, 진정한 '창조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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