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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반대한다고 밝힌 북한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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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반대한다고 밝힌 북한은 왜?

[정욱식의 '모순과 악연'] 북한이 '악의 축'에 들어간 이유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9.11 테러는 21세기 세계 현대사의 중대 분수령으로 일컬어진다. 그런데 테러 발생 전까지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미사일방어체제(MD) 로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건 발생 당일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의 행보는 앞선 글에서 설명한 바 있다.

9.11 테러 전에 부시 행정부는 MD를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의 위협을 한껏 부풀리고 있었다. 몇 가지 발언만 보더라도 이는 잘 알 수 있다. 럼스펠드는 2001년 6월 말 미 하원에 출석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매우 근접해 있으며, 소수의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언의 수위는 다음 발언에서 높아졌다. 그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느냐"며, "북한이 (탄도미사일 보유를 통해) 행동의 자유를 갖게 되면, 그런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나는 부인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미국인들에게 강한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진주만 피격을 북한 위협론과 연계시켜 MD 구축을 정당화하려는 화법이었다.

▲ 부시 미 전 대통령과 네오콘 측근들. 딕 체니(왼쪽) 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부시의 좌우에 나란히 서 있다. ⓒ연합뉴스

7월 중순 라이스는 "탄도미사일 기술이 대규모로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북한이 세계 각지에 미사일 기술을 팔고 다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수출은 2000년 들어 급감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역시 과장된 것이었다. 같은 날 폴 윌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만약 올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우리가 직면할 가장 가공할 위협들 가운데 하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이 될 것"이라며 조속히 주한미군을 보호할 MD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3년부터 미국은 주한미군기지에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 배치에 돌입했다.

MD를 최우선 순위로 삼은 부시의 로비 대상에는 한국 NGO도 예외는 아니었다. 테러 발생 12시간 전, 한국시간으로 9월 11일 오전 9시에 주한 미국대사관은 부시 행정부의 MD 설명단과 한국 시민단체 대표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국무부와 국방부 고위 관료들은 아시아 각국을 돌면서 정부, 국회의원, 언론, 민간 전문가와 NGO 등을 상대로 전방위적인 로비를 벌이고 있었다. 당시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은 'MD 반대와 평화실현 공동행동'이라는 연대체를 구성해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있었고, 한국은 국제적으로도 MD 반대 여론이 가장 높은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이 자리에서 미국 정부의 한 관리는 "미국의 돈과 기술을 가지고 미국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미국의 권리"라며 MD를 반대하는 한국 NGO들에게 노골적인 불쾌감을 나타냈다.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핵무기를 비롯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공격용 무기를 갖고 있는 미국에 대응해 북한이 미사일을 만들려고 하는 것도 북한의 권리이다. 그런데 당신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북한의 이러한 주권 행사를 우려하는 것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미국 주도의 MD가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논쟁은 점차 가열됐다. 함께 자리한 한 단체의 대표가 '미국이 MD를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 위협을 부풀리고 있다'고 비판하자, 펜타곤의 고위 관리는 이렇게 반박했다.

"당신들은 북한이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북한은 수천 톤의 생화학무기를 이미 갖고 있고 핵무기 제조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량살상무기를 미국 본토까지 운반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보유하려고 한다. 이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논쟁은 북한의 미사일이 과연 미국 본토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생화학무기를 미사일에 장착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인지, 북한이 종말을 각오하고 미국 본토를 공격한다는 것이 합리적 가정인지 등을 놓고 계속되었다. 2시간가량의 간담회를 마치고 미국 대사관을 나서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부시 행정부의 MD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북한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인들과 술 한잔을 걸치고 귀가하던 밤 11시, 한 언론사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기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미국이 최악의 테러를 당했다"며 다짜고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얘기는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고, 워싱턴 인근의 펜타곤도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발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텔레비전을 틀었다. 이번에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최첨단 파괴공법을 사용한 것처럼 쌍둥이 빌딩과 펜타곤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도 인간이 아닌 외계인의 공격으로나 가능한 얘기로 비쳐왔기 때문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냈는데, 거기엔 이런 불길한 예감도 포함되어 있었다.

"부시 행정부가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비용과 기술력을 투입해 추진하고 있는 MD가 추진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MD는 기본적으로 '본토 방어' 및 '예측할 수 없는 위협에의 대응' 개념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MD 구축을 최우선적인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MD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나올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MD 무용론'도 제기될 것이다. 9.11 테러가 보여주듯 미국이 직면한 위협은 탄도미사일보다는 비행기, 선박, 트럭, 가방 등을 이용한 원시적인 테러에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MD보다는 테러 예방책에 예산을 우선적으로 투입하자는 의견이 미국 내 일부에서 제시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는 소수에 그칠 것이다.

문제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팽팽히 맞서 있는 북한이 미국에 의해 '테러지원 국가'와 '대량살상무기 주범'으로 찍혀 있다는 점이다. (중략) 부시 행정부는 테러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북한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군사력 행사를 통해 막겠다는 대확산(counter-proliferation)을 신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포함한 일부 반미성향 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 시설을 선제공격을 통해 제압하겠다고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요지는 부시 행정부가 MD 명분을 잃지 않기 위해 대북 적대정책을 강화할 것이고, 선제공격 대상에도 포함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우려는 북한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테러 발생 다음날 "매우 유감스럽고 비극적인 사건은 테러리즘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고 있다"며 "유엔 회원국으로서 모든 형태의 테러, 그리고 테러에 대한 어떤 지원도 반대하며 이 같은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단히 신속하고도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반응은 싸늘했다. 오히려 북한을 이라크와 함께 최대 위협 국가로 지목하면서 대북 강경 태세를 더욱 구체화했다. 11월 중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북한이 알 카에다에 화학, 생물 무기를 제공했다는 증거에 대해 확실히 얘기할 수 없으나, "북한이 과거에 테러행위를 했고 테러지원국 리스트에 올라 있으며 그런 기술을 확산시키는 데 적극 기여했다"고 말했다. 한 달 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생물무기금지협약(BWC) 제5차 평가회의에 미국 대표로 나선 존 볼튼 국무부 차관은 "이라크가 가장 큰 우려이고, 북한은 극도로 불안한 국가"라고 주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정부의 발언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부시 대통령은 11월 26일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라크와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 사찰을 받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테러리스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는 자도 테러리스트이고, 돈을 대주는 자도 테러리스트이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미국 언론들은 '테러와의 전쟁'이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다른 테러지원국가, 특히 북한과 이라크로까지 확전될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라는 분석을 쏟아냈다.

부시의 기자회견 직후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부시 대통령이 대선 유세 때부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해왔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이것이 바로 대통령이 MD를 추진하려고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급기야 부시 대통령은 미국시간으로 2002년 1월 29일 밤 9시 자신의 첫 국정연설에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파괴적인 무기들로 미국을 위협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 이라크, 이란을 별도로 지목해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규정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민을 굶주리게 하는 나라"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이들 세 나라의 공통점은 9.11 테러 주범으로 지목된 알 카에다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라크의 경우에는 네오콘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고 친미정권을 세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부시 독트린의 1차 타깃이 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이란과 북한 역시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었지만, 이란은 민주적 요소를 갖고 있었고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비교적 성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들 나라까지 "악의 축"으로 지목된 것일까? <뉴욕타임스>의 백악관 담당 선임기자인 피터 베이커에 따르면, 부시의 연설문 초안에는 이라크 한 나라만 명시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콘돌리자 라이스와 스티븐 해들리(국가안보 부보좌관)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질 것을 우려"해, 북한과 이란을 추가했다고 한다.

북한에 초점을 맞춰본다면, 부시 행정부가 MD 구축의 명분을 갖기 위해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켰을 공산이 대단히 크다. '미국과의 계약'과 제네바 합의의 조우에서 시작된 북한위협론과 MD와의 악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네오콘의 의식 속에 더욱 강해졌다. 지리 군사적으로 보더라도 부시 행정부가 MD의 우선순위를 미국 서부에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의 누군가를 주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국제정치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보는데 익숙했던 부시는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면서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도덕적 거부감이 대단히 강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시점에 북한은 핵과 미사일 관련 합의를 비교적 잘 지키고 있었다. 핵무기 개발을 중단키로 한 제네바 합의를 이행해 부시 행정부로부터도 중유를 받고 있었다. 나중에 논란이 된 비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보유 여부는 여전히 논란거리이지만, 확실한 것은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언급하기 전후에 이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는 점이다. 미국 정보기관 역시 북한의 비밀 핵 프로그램 포착 시기를 악의 축 발언 7개월 후인 2002년 8월이라고 밝힌 바 있다. 탄도미사일 관련해서도 북미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발사를 유예하겠다고 약속한 1999년 베를린 합의 및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를 준수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부시 행정부의 말은 씨가 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를 장착한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이 미국까지 다다를 것'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과장된 주장이 빠른 속도로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MD를 하게 되었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 대가는 아주 낯선 미래가 될 것이다. 미수교국이자 "기술적으로 전쟁 상태"에 있는 국가의 전략 무기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이건 미국 역사상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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