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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하여

[김근태 2주기 세미나] 이삼성 교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

김근태재단(이사장 인재근 민주당 의원)과 우석대학교 김근태민주주의연구소(소장 최상명 우석대 교수) 등은 지난 19일 김근태 2주기를 맞아 '한반도 정세와 일본의 우경화,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를 주제로 동아시아의 평화를 모색하는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3명의 발제자와 5명의 토론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날 세미나 내용 중 이삼성 한림대 교수와 남기정 서울대 교수의 발제, 백준기 코리아컨센서스 소장과 이해영 한신대 교수의 토론문을 차례로 싣는다.

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이 시기 동아시아 평화에 대하여'라는 주제의 발제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역동적인 반면 군사안보적으로는 가장 불안정한 동아시아의 모순적 상황에 대해 다음 4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1989년 냉전이 끝난 이후 유럽에서는 평화구조가 정착된 반면 동아시아의 갈등구조는 더욱 첨예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동아시아 및 태평양지역(동아태)의 해상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일 동맹과 팽창하는 중국과의 갈등이 완화되기는커녕 증폭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셋째, 독도와 센카쿠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쿠릴열도 등에서 심화되고 있는 동아시아의 영토분쟁은 미국의 동아태 패권 유지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넷째, 이렇듯 미·일 동맹과 중국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최근 이어도 해역을 둘러싼 한중, 중·일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

첫째 질문과 관련해 이삼성 교수는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19세기 말 청일전쟁 이래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중국 경영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두고 갈등 못지않게 유서 깊은 세력연합의 양상을 보여왔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대륙의 경영을 둘러싼 이견으로(일본은 자신들에 의한 중국의 독점적 경영을, 미국은 문호개방의 원칙에 따라 중국시장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보장을 추구) 전쟁(1941년 12월 진주만 폭격에서 1945년 8월 원폭 투하에 이르기까지의 태평양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미·일 연합의 역사에 비하면 오히려 짧은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고, 미국과 일본은 연합을 통해 동아태 지역을 경영해왔다는 것이다. 전후에 미국은 동아태 해상패권 유지를 위해, 일본과 함께 중국이 중국 본토 이외의 동아태 지역 전반에 대해 중국의 힘을 투사하는 것을 제한하고 봉쇄해 왔다. 21세기에 들어서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능력이 본격적으로 팽창하면서 중국의 자기 정체성과 그에 따른 영토의식 역시 팽창하고 있고, 그로 인한 미·일 동맹과 중국대륙 사이의 긴장이 전후 형성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이다.

둘째, 한반도(남한과 북한), 중국과 대만 등 동아시아의 소분단체제들이 중국대륙과 미·일 동맹 간의 대분단체제를 온존,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미·일 동맹과 중국대륙 사이의 긴장 구조는 한반도, 대만해협, 인도차이나의 국지적 분단체제들에 지속성을 부과하는가 하면, 그 대분단 기축 관계에 해빙이 올 때는 국지적 소분단체제들에서의 긴장이 대분단 기축 관계의 긴장을 복원시키고 유지시키는 악순환 고리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셋째, 미국은 중·일, 러·일 간의 자발적 관계정상화를 방해하기 위해 센카쿠, 쿠릴열도 등 영토분쟁을 적극 활용해 왔다. 이와 관련, 이삼성 교수는 외교관 출신의 일본 외교 평론가 마고사키 우케루의 저서 <일본의 영토분쟁: 독도.센카쿠, 북방영토>를 인용해 "북방영토 문제는 포츠담선언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대부분 결정되었다. 미국은 냉전 기간에 일본이 미국을 벗어나 소련과 독자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일·소 관계의 장애물로 북방영토를 충분히 활용했다. 소련이 결코 양보할 리 없는 구나시리와 에토로프섬을 일본이 요구하도록 조장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1955~56년 시기에 일본과 소련 사이에 진행된 양국 간 국교 정상화 협상에서 일본은 북방영토 4개 섬 중 구나시리와 에토로프가 치시마열도의 일부임을(즉 소련의 영토임을) 인정하고, 하보마이와 시코탄만을 돌려받는 데 만족하고 국교 회복에 합의할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 교섭은 결국 무산되고 마는데, 그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존 덜레스 미 국무장관이 구나시리와 에토로프를 일본이 포기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덜레스는 일본이 구나시리와 에토로프섬을 소련에 귀속시킨다면 미국은 오키나와를 아예 미국 영토로 합병시키겠다고 협박했다.

넷째, 미·일 동맹과 중국이 대립하는 현재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에서 "동맹의 논리"와 "자주적 근린외교"가 근본적으로 모순을 일으키는 순간이 올 가능성이 높다. 그때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의 동맹외교는 어디까지나 한반도에서의 평화구축에 기여하는 한도에서라는 '전략적 절제'가 그 전제로서 한국과 미국 모두에 의해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이 이 원칙을 넘어서 중국에 대한 비수가 되기를 요구하는 동맹은 근본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이다.

특히 평택은 한반도 서해상의 군사기지이며, 베이징이라는 중국의 정치적 심장부를 근접하게 겨누고 있는 비수와 같은 위치에 있다. 이곳에 미국의 한반도 서해 상 군사기지가 정비되면서 미군이 구사하게 될 '전략적 유연성'은 그런 점에서도 중국의 각별한 주목을 받게 되어 있다고 본다.

또한 센카쿠/댜오위다오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 오키나와 해역에서의 미·일 동맹 해양패권과 팽창하는 중국의 필연적 긴장이라면, 지난 11월 중국이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함으로써 촉발된 논란은 이어도 해역을 포함한 동중국해의 해역 및 상공에 대한 관할권 경쟁이 오키나와 열도에서의 긴장의 필연적 북상(北上)이라는 측면을 띠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구축에 이은 제주도해군기지 건설 본격화에 대한 대처로서 촉진된 측면도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고사키 우케루의 지적대로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의 무력충돌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미국이 군사 개입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이어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아가 미국의 군사력 엄호를 믿고 이어도 상공 방공식별구역 문제의 군사화에 나서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한국의 동맹외교가 추구할 일차적인 임무의 하나는 그 동맹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평화적 통일에 대한 기여라는 "동맹의 근본적이고 제한적인 취지"를 동맹국에 인식시키고, 동맹을 그 목적에 부합하게 경영하는 노력이다. 그것이 한국인과 그 동맹국이 함께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한국의 지정학적 숙명이며, 동시에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한국의 기여의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삼성 교수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


▲ 지난 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김근태 2주기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김근태 전 의원이 생전에 자주했던 인사 포즈를 취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근태재단

1. "통합과 상호의존의 시대"에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존재 이유

- 전후 세계질서에 대한 세계 국제정치학계 담론의 지배적 개념틀인 "냉전/탈냉전" 담론으로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본질을 포착하는데 개념적 한계가 있다.

- 전후 유럽질서와 동아시아질서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 차이를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 이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필요하다.

- 1990년대 탈냉전기에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안보질서-미·일동맹 주축-의 쇠퇴가 아니라 갱신과 재활성화의 국면이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 가시화된 중국의 부상이 초래하는 동아시아질서의 지정학적 긴장은 더해가는 추세이다. 이에 대한 통시적 조망이 필요하다.

- 1990년대 탈냉전과 더불어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역사논쟁은 오히려 더 활성화되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전후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냉전/탈냉전의 '보편적인' 시대구분을 넘어서는 다차원적인 갈등과 분열의 구조를 통합적으로 포착하고 담을 수 있는 개념이 필요하다.

- 통합과 상호의존의 외관 뒤에 도사린 대분단 구조의 군사적, 이데올로기적 함정에 가장 취약한 한반도의 운명에 대한 직시가 필요하다. 그만큼 동아시아 질서의 구조와 그것이 안고 있는 질곡의 본질에 대해 우리는 누구보다 더 치열한 체계적 인식이 필요하다.

2.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이론적 전제(1)

- 국제정치학에서 오늘날 핵심 주류로 통하는 구조 현실주의 시각은 국제질서의 성격을 판단할 때 주요 강대국의 수를 뜻하는 극성(polarity)을 중시한다. 물론 그것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저마다 국가와 사회는 역사적으로 확인되어온 지정학적 전통과 정체성이 있을 수 있다.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 영향을 받아 특히 지역 질서에서는 국가들 간에 갈등과 연합의 구조가 일정한 지속성을 띨 수 있다. 그 갈등과 연합의 구조가 특히 지역 질서에서 그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필자가 말하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가장 중요한 논리적 전제의 하나이다.

- 세계질서 전반에서는 초강대국의 숫자와 그들 사이의 관계양식이 결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지역 질서의 경우는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필자가 '차상위 강대국'이라고 정의하는, 이를테면 국제질서의 권력분포에서의 '이류 국가들'이 초강대국들과 함께 그 지역의 갈등과 연합의 구조에 어떻게 참여하고 작용하는가가 중요하다. 냉전 시기 동아시아 지역 질서의 경우는 중국과 일본이 차상위 강대국들에 해당한다. 탈냉전 시기를 넘어 2010년대의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미국이 초강대국이라면 일본과 러시아는 차상위 강대국들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또 하나의 중요한 이론적 전제는 그 지역의 국가 사회들의 상호관계의 역사와 그에 대한 사람들의 역사의식이 그 지역 국제질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1990년대 이래 '구성주의'라는 이름 아래 국제정치 이론에서 유력해진 논의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인식 자체는 결코 구성주의 학자들이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 지역 나라들 사이의 관계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그 지역 미래 국제관계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은, 국가들 사이의 권력분포가 국제질서를 결정하는 데에 결정적이라는 현실주의 인식만큼이나 인류의 세계인식에서 오래된 유서 깊은 관점이다. 어떻든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역사의식이 미래의 전망과 그 미래 속에서 사람들의 행위양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1)이 글에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에 관련된 논의는 다음의 논문들에서 필자가 밝혀온 내용을 요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Lee, Samsung, "The Structure of Great Divide: Conceptualizing the East Asian International Order," Paper presented at Conference "Democracy, Empires and Geopolitics," organized by Academia Sinica, Taipei, December 10-12, 2011; Lee, Samsung, "Beyond the East Asian Grand Division: Imagining an East Asian Peace Belt of Jeju-Okinawa-Taiwan Islands," Nam-Kook Kim, ed., Globalization and Regional Integration in Europe and Asia, Farnham, England: Ashgate Publishing Company, 2009, pp.161~179; 이삼성,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성격과 미국의 동아시아전략: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구조와 그 함의」, 2004년 한국정치학회 하계학술회의, 대전 호텔 스파피아, 2004년 6월 24-25일. 자료집 VIII, 196-236면; 이삼성,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성격에 관한 일고: '대분단체제'로 본 동아시아」, 『한국과 국제정치』, 제22권 제4호(2006년 겨울), 41~83쪽.

3.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구성요소와 구성요소 간 상호관계

(1) 중층성

- 전후 냉전기 세계질서의 기축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간의 관계였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 질서의 기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물론 미·소 두 초강대국들 사이의 냉전적 대결이라는 맥락 안에서였지만,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틀은 차상위 강대국인 중국을 한편으로 하고, 미국과 일본의 동맹체제를 다른 한 축으로 하는 것이었다. 전후 동아시아에서 미일동맹과 대립한 것은 일차적으로 소련을 포함하지만, '동아시아' 질서의 향방은 소련이 아니라 중국 대륙의 운명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전후 중국 대륙이 이 질서에서 어떤 갈등과 연합의 구조를 구성할 것인가, 즉 중국이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는 소련이 중요한 변수를 구성하였고 그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중국인들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바탕한 투쟁과 갈등의 결과였다. 그래서 전후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기축은 중국대륙의 선택과 미·일 동맹의 양립이라고 파악한다. 특히 필자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라고 할 때 그 기축에 중국대륙(또는 아시아대륙)과 미·일 동맹이라는 해양세력연합 사이에 형성되고 지속되어온 다차원적 긴장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중국 대륙과 미·일 동맹의 갈등을 기축으로 하는 가운데, 좀 더 작은 규모의 국지적인 분단체제들이 함께 중첩해 있는 구조를 안고 있다. 한반도와 대만해협에 민족분단의 체제들(national divisions)이 자리 잡았고, 이 사정은 인도차이나에서도 1975년까지는 마찬가지였다. '소분단체제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 국지적 분단들이 아시아대륙과 미·일 동맹이라는 동아시아 갈등 구조의 기축과 결합함으로써 구성하는 중층적 분단의 구조를 가리켜 우리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 다차원성

1) 지정학적 전통과 구조

- 19세기 말 청일전쟁 이후 아시아대륙에 대한 공동경영을 위하여 미국과 일본이 서로 경쟁하고 긴장하면서도 권력정치적 흥정을 통해 상호적응하면서 구축해온 미·일 연합의 전통이다. 진주만으로 시작해 원폭 사용으로 끝난 4년간의 치열한 패권전쟁이었던 태평양전쟁에 대한 기억이 압도하면서 20세기 초부터 미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한 내밀한 지정학적 연합의 역사는 흔히 간과된다. 그러나 미국은 애당초 중국 경영을 위해 일본을 개항시킨 장본인이며,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지정학적 전략에서 일본과의 관계는 그 기축이었다. 태평양전쟁 시기를 제외한 지난 1세기가 그 지정학적 연대의 유서 깊음을 증거한다.(2)

2) 역사심리적 간극

- 청일전쟁 이래 반세기에 걸쳐서 전개된 일본의 아시아대륙에 대한 침략과 난징학살에서 절정을 보여준 제국주의적 야만이 일본과 아시아대륙 사이에 심어놓은 역사심리적 간극(historico-psychological hiatus)이다.

- 1930~40년대에 유럽에서 인종주의적 폭력의 최대 희생자인 유태 민족은 유럽의 모든 사회들에서 주변인적 존재에 불과했다. 이와 달리 1937년 12월에서 1938년 2월 사이에 난징에서 전개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대학살 사태는 2~3천 년간 동아시아 세계 문명의 중심을 자처해온 사회의 심장부에서 저질러진 폭력이었다. 그것이 동아시아 질서에 남긴 역사적 기억의 상처는 현실정치의 차원에서 더 광범하고 뿌리 깊은 것일 수밖에 없다.

3) 이데올로기적 간극

- 전후 중국에서 전개된 내부 투쟁에서 미국은 미래의 세력이 아닌 과거의 세력과 연대했다는 사실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중국에서 승리하면서 미국 및 일본과 중국대륙 사이에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장벽이 구축된다. 더 결정적인 것은 1949년 중국 공산당의 승리를 전후해 미국과 신중국이 "우방은 아니라도 평화적 공존의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들을 두 나라 모두 끝내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3) 대분단체제의 형성과 한국전쟁의 역사적 상호작용

- 위의 세 요소는 1940년대 말 동아시아에 '대분단'의 기본 틀이 형성되었음을 말해준다. 한국전쟁은 그 결과의 하나였다. 한국전쟁은 대분단의 기본구조가 낳은 역사적 비극이었다. 스탈린, 김일성, 마오쩌둥 사이의 전쟁 모의에서 마오가 적극 반대했다면 한국전쟁은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도 중국도 서로 정상적 외교관계에 바탕한 평화적 공존을 거부한 조건에서 한국전쟁의 기본환경이 마련되었다.

- 그렇게 해서 발발한 한국전쟁은 역으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를 공고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전쟁을 계기로 한반도와 대만해협, 그리고 인도차이나의 국지적 분단체제들이 공고해졌고, 미·일 군사동맹도 공식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일 동맹과 중국대륙 사이의 갈등 기축과 세 개의 분단구조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심화시키는 하나의 '체제'를 구성하게 되었다.

(4) 상승적 상호작용 패턴

1) 대분단의 기축과 소분단체제들 사이의 상호 상승효과, 상호지탱 장치

- 미일동맹과 중국대륙 사이의 긴장 구조는 한반도, 대만해협, 인도차이나의 국지적 분단체제들에 지속성을 부과하는가 하면, 그 대분단 기축 관계에 해빙이 올 때는 국지적 소분단체제들에서의 긴장이 대분단 기축 관계의 긴장을 복원시키고 유지시키는 악순환 고리의 역할을 수행한다.

2) 지정학적, 이데올로기적 요소들과 역사심리적 간극 사이의 상호지원 관계

- 미일동맹과 중국대륙 사이의 갈등이라는 이 대분단의 기축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들인 지정학적·이데올로기적 대립구조와 역사심리적 간극이 서로를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심화시키는 관계에 놓였다.

- 전후 동아시아 질서의 이 내면적 성격이야말로 전후 유럽질서와 동아시아 질서 사이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이었다. 유럽의 냉전체제에서는 독일이 분단된 가운데, 서독은 북대서양조약기구를 통해서 서방국가들과, 그리고 동독은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통해서 공산권 국가들과 지정학적·이데올로기적 동맹을 이루었다. 이로써 독일과 그 나머지 국가들 사이의 역사심리적 간극은 그 지정학적·이데올로기적 동맹의 질서들에 의해서 완화되고 해소되어갔다.

- 전후 유럽에서는 독일 나치즘에 의해 피해를 당한 당사국들인 영국, 프랑스, 소련이 미국과 함께 독일의 전후처리에 직접 간여했다. 이 때문에 독일인들 자신의 철저한 자기반성은 독일 재건과 부흥의 절대적 전제조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 반면에 전후 동아시아에서는 제국주의와 반인류적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아시아 대분단의 기본구조에 의해 분리되었다. 역사심리적 분열은 지정학적·이데올로기적 대결의 구조와 정확하게 겹치면서, 동아시아는 그 세 가지 차원이 중첩한 삼중적 분열구조를 갖게 되었다.

- 이 구조 속에서 제국주의의 최대 피해자였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들은 일본의 전후처리에 참여할 수 없었다. 일본 재건의 조건으로 역사 반성은 불필요했다. 이것이 전후 동아시아에서 피해국들의 역사심리적 간극을 부단히 환기하고 재생산하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논쟁과 망언소동의 바탕이 되어왔다.

- 결국 유럽의 냉전질서는 양차대전 시기에 형성된 역사심리적 상처의 치유 메커니즘이었다. 전후 동아시아의 대분단체제는 제국주의 시대 역사심리적 상흔을 '응결'(凝結: freeze or congelation)시키는 장치였다. 일본이 과거 제국주의 침략의 유산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는 주변국들과의 영토분쟁에 집착하는 것 역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내면적 성격과 관련이 있다.

(2)19세기 말 청일전쟁 이래 20세기 전반기에 걸쳐 미국과 일본이 저마다 중국 경영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위해 한편 갈등하면서도 다른 한편 권력정치적 흥정과 타협의 장치를 통해 사실상의 '제국주의 카르텔'의 관계를 구성했던 역사와, 그러한 관계가 성립할 수 있었던 동아시아적인 지정학적 조건에 대해 다음에서 논의하였다. 이삼성,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2: 근대 동아시아와 말기조선의 시대구분과 역사인식』, 한길사, 2009.

4. '탈냉전' 이후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불연속과 연속

- 1980년대 이래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첫째 계기로 해서, 그리고 공산권의 붕괴로 인한 냉전체제 해체를 둘째 계기로 해서 동아시아의 대분단체제도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동아시아 대분단의 주요 구성요소들인 지정학적, 이데올로기적, 그리고 역사심리적 간극은 새로운 에너지로 재충전되었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전지구적 냉전 종식'에도 불구하고 왜 지속되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네 가지 요인을 주목해야 한다.

1) 지정학적 차원의 변화와 지속.

- 1960년대 중·소 분쟁과 1970년대의 중·미 관계 정상화로 인해서 중국과 미·일 동맹 사이의 지정학적 대립은 완화되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과거 소련을 대체한 지정학적 위협으로 부각되었다. 이 현상은 2000년대 들어 더욱 분명해졌다.

2) 이데올로기적 차원의 변화와 교체에 의한 지속.

- 공산주의-자본주의의 대립이라는 냉전형 이데올로기 갈등은 크게 완화되었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정치이념적 간격이 부상했다. 냉전 해체는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민주화를 수반했다. 반면에 특히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중국과 나머지 세계 사이의 정치적 이질성은 새롭게 재확인되었다. 탈냉전 동아시아에서 주된 이데올로기 대립구조가 공산주의-자본주의로부터 권위주의-민주주의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그 차이는 정치문명적 이질성, 또 하나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으로 정의되면서 사실상 냉전 시대 이데올로기적 차별성을 재생산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3) 역사심리적 간극의 차원과 그 지속성.

- 전후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속에서 응결되었던 역사심리적 간극은 탈냉전과 함께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공론화되었다. 일본은 미국의 보호 속에서 냉전 시기 내내 역사문제를 망각하고자 했었다. 반면에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응결되었던 역사인식의 문제가 냉전 해체와 함께 오히려 해방기를 맞았다. 탈냉전에 들어 일본 정치사회의 주역이 된 전후 세대의 일본인들은 거의 반세기를 망각하며 지냈던 역사문제를 갑자기 맞닥뜨려야 했다. 그것은 그들에게 황당하고 생경한 문제였음에 틀림없었다. 이 같은 역사인식의 이질성은 과거 냉전시기 이념적 대립을 대체해 일본(미·일 동맹)과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 사이에 무시할 수 없는 마음의 장벽을 드리우게 되었다. 이 역사심리적 차원의 간극은 탈냉전 후의 세계에서 과거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대신하여 중요한 정치적 변수로 된 민족주의와 결합함으로써 그 힘을 충전받고 있는 형국이다.

4) 대분단의 기축과 국지적 분단체제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한 지속 효과.

- 중국과 미·일 동맹이라는 대분단의 기축과 함께 한반도와 대만해협에 잔류해 있는 국지적 분단 상황들이 서로를 지탱하는 체제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중엽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북한 핵문제가 그러했으며, 특히 1994~95년을 기점으로 명백하게 부각된 대만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또한 그러했다. 이들은 미국과 중국 간의 외교적 지정학적 긴장과 불가분하게 얽혀왔다.

-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군비경쟁의 물결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그리고 이 군비경쟁의 물결 속에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정책도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논리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역으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동아시아와 한반도를 그 논리체계 안에서 연결시키는 고리가 되고 있다.

5. 2000년대 국면에서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 2000년대 초기에는 2001년 9.11 사태 이후 유럽과 같이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들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도 자신들 내부의 테러위협 때문에 미국이 주도한 대테러전쟁의 깃발아래 합류하는 것처럼 보였다. 미 제국에 의한 단극체제(unipolar moment)도 해체 국면을 벗어나 재건되고 재구성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머지않아 미국의 대테러 전장(戰場)들은 미 제국의 수렁으로 변해갔고, 그 틈에 중국의 부상은 더욱 두드러져 보이기에 이른다. 이와 함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소강 국면을 지나 재활성화되어왔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이 2010년을 전후해 공식화한 '동아시아 재균형' 전략은 그 표현에 다름 아니다.

- 미 제국의 부활 국면은 짧았고 일본의 경제 침체는 길었으며 중국의 활력은 그러기에 더욱 뚜렷해 보였다. 그만큼 이른바 질서의 중심축 이동의 속도는 빨라보였다. 미·일 동맹이 이에 대해 긴장하면서 기존의 동아태 질서를 지탱하려는 강력하고 분명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드러내왔다. 이로써 중국대륙과 미·일 동맹 사이에 존재해온 지정학적 긴장은 마침내 영토분쟁의 본격화로 표출되고 있다.

- 1990년대 중반 새뮤얼 헌텅턴은 이미 미국, 일본과 중국대륙 사이에 건널 수 없는 문명적 차이가 있음을 거론하면서 문명충돌을 운위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적 자본주의 문명 자체의 헤게모니가 의심받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 본격화된 오늘에 이르러서는 사정이 다르다. 이제 중국과 서양의 문명적 이질성뿐만 아니라, 중국적 문명이 미래 세계에 제기할 도전의 크기에 대한 의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가 안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이질성의 긴장은 단순한 민주주의-권위주의라는 정치문화적 차별론을 넘어 문명적 위협론으로 발전할 소지를 안고 있다.

- 역사심리적 차원의 긴장도 지속되고 있다. 더 심화될 수도 있는 국면이다. 중국은 경제성장이라는 업적주의가 한계에 직면할 수 있고, 공산주의가 지녔던 이념적 자원의 역할도 종식된 지 오래되었다. 중국 권력엘리트는 대체 이데올로기 개발의 숙제를 안고 있다. 한편 일본은 오랜 경제침체와 저성장사회의 도래로 깊은 불안의식에 시달리고 있다. 전통시대 이래 일본의 정치 및 문화전통에 자리 잡은 '동아시아질서에서의 경계인적 의식'은 유서 깊다. 이러한 요인들은 대분단체제에 이미 내재한 역사심리적 간극의 정치화를 해소하기보다는 더 심화시킬 가능성까지도 안고 있다. 미국 안에서 일본의 역사의식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으나,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일본과의 연합을 통한 아시아대륙의 통제와 경영에 있다. 역사반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일본의 정치적, 군사적 역할의 강화를 지지하는 미국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어렵다.

- 대분단의 기축과 국지적 분단들 사이의 상호작용 양상도 지속되고 있다. 대만에서 마잉주(馬英九)의 국민당 정권이 2008년 5월 출범한 이후 양안 관계는 화해와 상호의존 심화의 길을 걸었으나, 대만과 미국 사이의 실질적인 무기거래는 2010년 이후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 분단체제 이완의 외관과 그 실체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는 북·미 간 긴장이 9.11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되면서 급기야 북한의 핵실험과 핵무기 보유로 귀결되었다. 이 상황은 애당초 중국대륙과 미·일 동맹 사이의 긴장이라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구조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대테러 전쟁의 기치 아래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같은 가치와 목표 아래 단결한 듯 보인 시점에 한반도에서는 북한이 미국에 의해 '악의 축'으로 규정되었고, 제네바 핵 합의는 폐기되었다. 북한의 통치세력은 이라크 후세인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각오로 핵무기개발에 매진하였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은 결코 같은 길을 가지 못했다. 이처럼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한반도의 민족분단체제와 동아시아 대분단의 기축 사이엔 상호 유지와 지탱의 관계가 작동하고 있다.

6. 동아시아질서에서 미국의 기득권의 실체 : 동맹네트워크에 기초한 해양패권(3)

-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에서 미국이 일본과의 동맹을 바탕으로 해서 확보하고 있는 기득권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동아태지역 해양패권이다.

- 미국의 동아태 지역 해양패권의 요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 본토 이외의 동아태 지역 전반에 대한 중국의 권력투사능력을 제한하고 봉쇄할 수 있는 군사정치적 능력이다.

- 그 군사정치적 능력은 두 가지로 구성된다:

1) 중국 이외의 동아시아 국가들을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체제에 포섭하여 유지하고, 중국에 인접한 이들 국가들의 영토들을 군사 기지화할 수 있는 능력(군사적, 정치외교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힘 포괄)

2) 중국의 전략적 무기체계의 효력을 제한하고 무력화할 수 있는 첨단 군사력 (전략핵, 미사일방어체제, 재래식 첨단무력에서 중국에 대한 월등한 상대적 우월성)

- 이 두 가지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확보하고 있는 동아태 해양패권의 표징 및 바로미터는 무엇인가. 중국의 권력투사능력을 봉쇄할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들에 대한 확고하고 지속적인 장악이다. 대만, 남중국해, 오키나와 열도 해역, 그리고 한반도 서해상이 그 결정적인 지정학적 요충들이다.

(3)여기서 논의하는 미국의 동아태 해양패권과 부상하는 중국의 긴장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에 바탕한 것임을 밝힙니다. 이삼성, 「21세기 동아시아의 지정학: 미국의 동아태지역 해양패권과 중미관계」, 『국가전략』, 제13권 1호 (2007년 봄), pp.5~32.

7. 미국의 동아태 해양패권과 팽창하는 중국 국력의 충돌 지점

- 중국의 국력팽창에 따라 중국의 자기정체성과 국익 개념이 팽창하고 있다.

- 기존의 미국 패권에 의해 제한되고 절제되어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확장함에 따라, 기존 미국의 해양 패권은 근원적으로 상충한다.

- 이러한 갈등적인 지정학적 현실은 "의식적이고 체계적인 외교적 노력이 없이는" 내재적인 상충의 요인들로 인해 특히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평화를 위협하는 긴장의 구조를 발전시킬 운명에 있다.

▲ 센카쿠 해역 일대에서 대치중인 일본 해안경비선(위)과 중국 해양감시선(아래) ⓒAP=연합뉴스

(1) 대만해협에서

1)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one China policy'를 인정하지만, 2000년대 미국의 대만 정책은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에서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으로 이동한 추세였다.

- 1979년 미 의회를 통과한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 "중화민국(ROC)이 충분한 자위능력을 갖도록 방어적 무기를 제공할 것"이며, "미국은 대만의 안보를 위협하는 무력이나 강제력의 사용을 저지하기 위한 능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명기했다.

- 2000년 2월 미 하원이 공화당의 주도하에 통과시킨 「대만안보향상법」(Taiwan Security Enhancement Act)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대만 군부 사이의 관계를 공식화, 대만이 요구하는 무기는 무엇이든 미국정부가 긍정 검토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었다.

- 「대만안보향상법」은 당시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것을 우려한 클린턴행정부가 이 법안의 상원 상정을 만류하여 보류되었다. 그럼에도 이 법안이 하원을 압도적 다수로 통과했던 사실은 2000년대 부상하는 중국을 의식한 미국의 대만 인식의 추이(전략적 명확성으로의 추이)를 상기시켜 준 것으로 기억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 2001년 미국의 4개년 방위검토(QDR 2001): 미국의 중대이익이 걸린 4개 핵심지역의 하나로 "연해국 개념"을 제시한다. 이 개념은 대만에서 벵갈만에 이르는 해역의 주요 도서국가들을 망라하여 포함하고 있다.

2) 대만에 대한 중국의 '영토적 존엄성' 관념의 강화

- 2005년 3월 중국 제10 전인대 3차 회의는 「반국가분열법」(反分裂国家法; Taiwan Anti-secession Law)을 통과시킨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타이완이 독립을 선언할 경우 무력(non-peaceful means)을 사용할 수 있다는 중국의 입장을 공식화한 의미가 있다.

(2) 남중국해에서

- 난사군도(Spratly Islands)를 담고 있는 남중국해는 미국의 항해자유 및 '연해국' 개념과 중국의 영토주권의식 사이에 긴장과 대립이 발전하고 있는 곳이다.

- 1992년 중국은 「영해와 인근지역에 관한 법」(Law on the Territorial Sea and the Contiguous Zone)을 발표한다. 이후 영토주권 문제에 관해 원칙적으로 비타협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 법은 중국의 영토를 정의했다. 본토와 그 해안 도서, 대만 및 그 부속 도서로 자신의 영토를 정의한 가운데, 다이오유 군도, 팽호열도, 동사군도, 지샤군도, 난사군도(Spratly Islands)를 포함해 열거하였다.

- 이에 대응해 미국은 1995년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국제법에 어긋나는 해양 관련 주장이나 해양활동에 대한 제한은 그 어떤 것도 심각한 우려를 갖고 바라볼 것"이라고 밝힌다.

- 1995년 8월 미 국무장관 워런 크리스토퍼는 필리핀에서 "항해의 자유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근본이익(fundamental interest of the US)"이라고 선언한다.

- 남중국해의 여러 섬들은 중국에게는 영토주권의 대상이지만, 미국에게는 이 지역에서 항해의 자유 확보에 필수적인 요충지들이다.

- 이후 미국은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안보협력 강화하였고, 이 국가들과 공동군사훈련을 시작했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호주와는 새 안보조약을 체결한다.

- 미국은 동남아 지역 해상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이 지역에서 중국이 난사군도에 영토적 기반을 확립할 능력을 제한하기 위한 협정들을 체결했다.

- 2001년 9월에 발표된 부시 행정부의 「QDR 2001」은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핵심으로서 "세계의 핵심 지역들을 적대적인 세력이 지배하는 것을 막는다"는 목표를 명확히 한다. 과거부터 이미 핵심지역으로 정의된 <유럽>, <동북아시아>, <중동 및 서남아시아>에 덧붙여 <동아시아 연해국 지역>(East Asian Littoral)을 새로이 추가한 것은 그 같은 추세의 귀결이었다.(4)

3) 오키나와 열도

- 오키나와 열도(沖縄諸島; Okinawa Islands)는 일찍이 1948년 당시 미 국무부 기획국장 조지 케난에 의해서 "서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공격적 타격력의 중심"으로 정의되었다.

- 그때 케난은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대륙의 동부 중앙이나 동북아시아의 어떤 항구로부터든 상륙해오는 군대의 집결과 출격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오키나와에 기지를 둔 공군력과 전진 배치된 해군력을 이용할 수 있다." 같은 시기 맥아더도 같은 취지의 견해를 분명히 했다.

- 냉전 초기에 케난과 맥아더가 밝힌, 미국에 있어서 오키나와 열도의 군사전략적 의의는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유사시 동아태지역에 대한 중국의 권력투사능력을 봉쇄하는데 있어서 미·일 해양패권의 핵심 라인이다.

- 센카쿠(다오위다오)에 대한 일본의 실효적 지배에 중국이 도전하는 것은 미·일 동맹에 의한 동아태 해양패권의 요충지로서 대만과 오키나와열도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5)

-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은 1992년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와 인접구역에 관한 법」을 제정하고 그 안에 다오위다오 등의 도서들을 포함시킴으로써 센카쿠 문제를 공식 분쟁화했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의 역사적 배경으로 마고사키 우케루(孫崎享) 교수는 1989년 텐안먼 사건과 함께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의 붕괴로 더 이상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국민통치가 불가능해진 조건에서 당시 실각한 자오지양(趙紫陽)을 대신해 집권한 장쩌민(江澤民) 서기가 애국주의를 내세운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분석한다.(6)

- 1990년대 초의 중국의 움직임이 중국 안의 내부 사정과 중국 밖에서의 세계질서 변동이라는 자극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했다면, 2010년 9월 중국 어선이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충돌한 사건을 계기로 한 센카쿠/다오위다오 분쟁 본격화는 중국의 실질적 국력 팽창에 따른 중국의 자기정체성 확장과 영토적 개념의 확장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미·일의 해양패권에 대해 중국이 실력으로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주목할 점은, 2010년 9월의 사태는 2000년대 들어 중국의 대만침공 가능성을 명분으로 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포함하여 오키나와와 대만 해역에서 중국을 가상적으로 한 미·일 동맹의 군사적 활동이 본격화한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구체적인 원인의 기점은 대만 이등휘 정권의 독립선언 소동으로 중국이 대만해협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미 군함이 출동한 1994~95년의 미사일 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 2000년 5월 30일부터 한 달 간 하와이 근해에서 미국은 환태평양 국가들과 영국까지 참여시킨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주도했다. 림팩(RimPac)훈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일본 자위대와 한국군, 그리고 호주, 캐나다, 칠레, 영국의 군대들이 참가했다.

- 2004년 대만은 2006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것을 가상한 컴퓨터 전쟁게임을 실시한다. 이와 때를 같이해서 미국과 일본은 중국의 대만해협 침공을 대비하는 공동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중국을 상대로 한 군사훈련들이 대만과 미·일 동맹 간에 동시에 실시된 것인데,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알려졌다. 이 무렵 대만 군 관계자는 향후 미·일 합동 군사훈련에 대만을 참가시키기 위한 포석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센카쿠/다오위다오에 대한 중국의 주권 주장 강화는 오키나와 해역 및 대만해협에서 미·일 동맹의 군사 활동이 강화되어온 것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동중국해에서 미·일 동맹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꾸준히 증가해온 2000년대에 한국의 제주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구체화되고 추진되고 있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필요성 여부에 대한 논란을 떠나서, 이러한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볼 때 제주해군기지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주요 충돌지점의 하나인 동중국해에 한국이 미일동맹의 일부로서의 기능을 가진 해양 전초기지를 추가하는 의미를 갖는다. 제주도 남방의 이어도 문제에 중국이 민감해져 온 것은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무관하지 않다.

4) 한반도 서해상에서

- 한반도 서해상은 역사적으로 중국에게 있어 한반도에 대한 군사정치적 패권의 관문이었다. 역으로 일본이나 미국에게는 중국과 한반도를 포함한 여타 동아시아 지역 사이의 정치적, 전략적 관계를 통제하는 데 핵심적인 요충이었다.

- 수나라와 당나라의 한반도 침략에서, 그리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등 일본의 대륙침략에서 한반도 서해상에 대한 해상패권은 결정적이었다. 반면 임진왜란에서 일본의 야망이 좌절된 것은 조선과 명의 연합세력이 한반도 서해상에 대한 해상패권을 견지했기 때문이었다.

- 전후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중국 남부에 집중되어 있던 장개석 군대를 요동반도로 옮겨 그들의 만주장악을 도운 미국의 해군작전에서도 한반도 서해상이 그 요충이었다. 뒤이어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이 한반도의 북한군을 두 동강 내어 전쟁의 분수령을 이룬 것 역시 한반도 서해상이었다.

- 오키나와해협이나 대만해협, 그리고 남중국해에서와 같이 미·일 동맹과 중국 사이에 해상패권을 둘러싼 긴장이 발전할 경우 한반도 서해상에 대한 미국의 해상패권은 중국에게 더욱 심각하고 치명적인 위협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 평택은 한반도 서해상의 군사기지이며, 베이징이라는 중국의 정치적 심장부를 근접하게 겨누고 있는 비수와 같은 위치에 있다. 이 곳에 미국의 한반도 서해상 군사기지가 정비되면서 미군이 구사하게 될 '전략적 유연성'은 그런 점에서도 중국의 각별한 주목을 받게 되어 있다.

- 2010년 3월에 벌어진 '천안함 침몰' 사건과 그 처리 과정, 그리고 이를 명분으로 한 미국 조지 워싱턴 항모의 서해상 진입 시도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와 그 안에서 미국의 해상패권의 한 요충지로서 한반도 서해상이 함축한 긴장을 표면화시킨 바 있다.

(4)<QDR 2001>은 <동아시아 연해국지역>의 범주로 "일본 남부로부터 오스트레일리아를 거쳐 벵갈 만에 이르는 지역"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마이클 멕더빗(Michael McDevitt)은 동아시아를 '동북아시아'와 '동아시아 연해국 지역'이라는 두 부분으로 분류한 것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여기서 동북아시아란 일본과 한국을 말하며, '동아시아 연해국'이란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파푸아 뉴기니아, 말레이시아, 태국,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남중국해와 그 외의 핵심적인 인도네시아의 국제 해협들"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5)센카쿠/다오위다오 분쟁의 역사적 연원, 1978년 중일 국교회복 시 이 문제의 처리, 그리고 1992년 이후 갈등의 전개 및 2010년의 절정에 대해서는 마고사키 우케루(孫崎享) 저, 양기호 옮김, 김충식 해제, 『일본의 영토분쟁: 독도·센카쿠·북방영토』, 메디치미디어, 2012, pp.68-106.

(6)마고사키 우케루, 2012, p.96.

8. 동아시아 영토분쟁과 미국의 위치

- 2000년대의 동아시아는 아시아 대륙판과 태평양판의 길항 형세를 보여준다.

-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문제는 중·일 관계, 한중관계, (냉전시대엔 '북방영토'를 둘러싼 일·소 관계)의 문제일 뿐 아니라 동아태 해상패권이라는 미국의 기득권과 깊은 관계가 있다.

-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영토분쟁에 대해여 미국은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배후에서 분쟁과 갈등의 양상에 영향을 미쳐왔다.

- 미국에게 이 영토분쟁들은 일·러 관계, 중·일 관계, 한중관계, 한일관계를 조절하는 키를 장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로써 미·일 동맹과 한미동맹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수단의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1) 냉전시대 '북방영토' 문제와 일·러 관계에 대한 미국의 통제(7)

- 마고사키 우케루 교수는 말한다: "북방영토 문제는 포츠담선언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대부분 결정되었다. 미국은 냉전 기간에 일본이 미국을 벗어나 소련과 독자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일·소 관계의 장애물로 북방영토를 충분히 활용했다. 소련이 결코 양보할 리 없는 구나시리와 에토로프섬을 일본이 요구하도록 조장했다."(8)

2) 2000년대 센카쿠/다오위다오 문제: 중일관계에 대한 미국의 통제

- 마고사키 우케루는 또 말한다: "지금도 미국은 똑같은 수법을 써서, 센카쿠열도 문제를 중국 견제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안전보장에서 최대 과제는 중국이 되었다. 미국 국내 여론은 중국을 껴안으려는 비둘기파와 대결하기를 바라는 매파로 나뉜다. 전자는 금융과 산업계이다. 후자는 군산복합체이다. 둘 다 미국 내에서 기반이 단단하다. 어느 일방이 완전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대중정책은 앞으로도 협조와 대결노선 사이를 끊임없이 오갈 것이다."(9)

(7)1945년 7월 26일 연합국은 일본 정부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을 발표했고, 일본은 결국 8월 14일 포츠담선언 수락을 미·영·중·소 재외공관에 통보했다. 일본이 수락한 포츠담선언은 "일본국 주권은 혼휴, 홋카이도, 규슈와 시코쿠 및 여기서 결정한 도서지역으로 국한된다"고 명시했다. 9월 2일 미주리함에서 일본이 서명한 항복문서에는 "포츠담선언을 성실히 이행한다"고 하였다. 1946년 1월 연합국 최고사령부 훈령은 "일본의 주권은 4개 주요 섬과 쓰시마, 북위 30도선 이북 류큐열도를 포함한 약 1천 개 섬으로 하되, 독도, 치시마열도, 하보마이열도, 에토로프군도, 시코탄섬을 제외한다"고 하였다. 한편 소련 스탈린과 미국 루스벭트 사이엔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의 대일전 참전을 위한 막후협상 과정에서 스탈린이 치시마열도 전체와 홋카이도의 절반을 요구하였고, 루스벨트는 홋카이도 부분은 거절하되 치시마열도에 대한 소련의 요구를 수용했다. 1951년 9월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제2조 C항은 "일본국은 치시마열도에 대한 모든 권리와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명시했다. 이후 일본과 소련 사이의 북방영토 분쟁은 쿠나시리섬과 에토로프섬이 일본이 포기한 치시마열도의 일부인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당시엔 일본도 그 두 섬이 명백히 치시마열도의 일부임을 인정했었다. 1955-56년 시기에 일본과 소련 사이에 국교회복을 위한 중대한 교섭이 진행된다. 일본은 구나시리와 에토로프가 치시마열도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하보마이와 시코탄만을 돌려받는데 만족하고 합의할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 교섭은 결국 무산되고 마는데, 그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존 덜레스 미 국무장관이 구나시리와 에토로프를 일본이 포기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마고사키 우케루의 지적이다. 일본이 구나시리와 에토로프섬을 소련에 귀속시킨다면 미국은 오키나와를 아예 미국영토로 합병시키겠다고 덜레스가 일본정부를 압박하면서 1955년 일본 외무성은 구나시리와 에토로프를 '남부 치시마'로 규정하는 공식 입장을 내세우기 시작했고, 이후 소련 역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여 일소 타협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마고사키 우케루, 2012, pp.109-111, p.114. p.116, pp.122-132.

(8)마고사키 우케루, 2012, p.142.

(9)마고사카 우케루, 2012, p.143.

- 여기서 마고사키 우케루가 말하는 미국의 '중국 견제 카드'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의 '중일관계 통제 카드'라고 해야 할 것이다.

9. 동아시아 영토분쟁이 폭발할 경우 미국의 외교적, 군사적 책임: 센카쿠와 미일안보조약

- 1960년 미일안보조약 제5조에 따르면, 미일안보조약은 "일본이 관할하는 영토"(territories under Japanese administration)에 대해 적용된다.(10)

- 2004년 3월 미 국무부가 밝힌 미국의 공식 입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1) 1972년 오키나와 반환 이래 센카쿠열도는 일본관할이다; 2) 센카쿠에 대한 주권은 분쟁 중이다. (분쟁 중인 영토에 대한) 최종적인 주권 문제에 미국은 개입하지 않는다.(11)

- 2005년 10월 미국의 라이스 국무장관, 럼스펠드 국방장관, 그리고 일본의 마치무라 외무대신 오노 방위대신 등 4자가 서명한 <미일동맹-미래를 위한 변혁과 재편>이라는 문건이 있다. 이 문건은 일본의 도서 지역이 침략을 당했을 때 일미 양국 각자의 역할과 의무를 규정했다. 도서 지역이 침공을 받았을 때는 일본이 독자적으로 대응한다고 했다. 따라서 만일 중국이 센카쿠/다오위다오를 무력으로 확보하여 자신의 실효지배를 구축하면 이 섬은 중국의 관할지(territory under Chinese administration)가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미일안보조약상 미국의 개입의무가 소멸된다. 미일안보조약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결국 중국이 센카쿠/다오위다오를 공격하면 방위를 책임지는 것은 미군이 아니고 일본 자위대의 전적인 책임이 된다는 것이다.(12)

- 마고사키 우케루는 일본 국민들 사이에 "일본은 북방영토, 독도, 센카쿠열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강고한 미·일 동맹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는 이러한 인식과 크게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10)1960년 개정된 미일안보조약(The Treaty of Mutual Cooperation and Security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Japan: 日本国とアメリカ合衆国との間の相互協力及び安全保障条約)은 "일본의 관할 하에 있는 영토"(territories under Japanese administration)가 무장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이 "미국의 헌법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일본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11)마고사키 우케루, 2012, p.167.

(12)마고사키 우케루, 2012, pp.170-171.

10. '이어도'를 포함한 동중국해 해역을 둘러싼 긴장의 의미와 배경

▲ 발언하고 있는 한림대학교 이삼성 교수 ⓒ김근태재단
- 일본인들이 북방영토와 센카쿠열도에 대하여 미·일 동맹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듯이, 한국인들도 독도와 이어도 문제에 대해 한미동맹이 긴요하다는 생각을 일반적으로 갖고 있다.

- 미국은 동아태 해상패권에 대한 중국의 도전을 제한하기 위한 장치로서 중국과 일본, 한국의 해양영토 분쟁을 일면 필요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영토적" 환상으로 인한 분쟁이 실제 폭력화할 경우 미국이 군사 개입할 것이라는 한국인의 기대는 북방영토, 센카쿠/다오위다오에 대한 마고사키 우케루의 분석에서 시사되듯이 환상에 불과할 것이다.

- 이어도 해역은 중국 동해함대가 '대양해군'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충지이다.

- 김찬규 한국 국제해양법학회 명예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수중 돌기물'인 이어도 해역은 국제법상 '해양경계획정'이 되어 있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이 저마다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이다. (13) 실제 한중 양국이 EEZ를 선포한 상태이다.

- 중국은 2013년 11월 23일 동중국해의 대부분 상공을 포함하는 '동해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일본은 이미 1969년 그 일부인 이어도 해역을 포함하는 상공을 일본의 ADIZ에 포함시킨 상태였다. 2013년 12월 8일 한국정부 역시 이어도 해역을 KADIZ에 포함시킴에 따라, 이어도 해역은 한중일 삼국의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곳으로 되었다.

- 공해와 달리 타국의 EEZ로 된 수역의 상공에는 ADIZ를 설정하는 것은 위법이다. 그러나 일본이 이 지역을 1969년 자국의 ADIZ에 포함시켰는데, 당시는 이어도 해역이 공해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이어도 해역이 한중 양국의 EEZ로 선포된 이후는 일본이 이 지역 상공을 계속 자국의 ADIZ에 포함시키는 것은 위법이라고 간주한다. (14) 그러나 일본은 자신의 ADIZ에 중국이 협의 없이 중복적으로 ADIZ를 설치한 것을 위법이라 주장한다.

- 중국이 이어도 해역을 포함한 동중국해 전체에 대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것은,

1) 이 해역이 현재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에 포함되어 있어 적어도 상징적 수준에서 미·일 동맹의 해양패권 영역으로 간주되는 현상을 해체하고자 하는 첫 시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2) 센카쿠/다오위다오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 오키나와 해역에서의 미·일 동맹 해양패권과 팽창하는 중국의 필연적 긴장이라면, 이어도 해역을 포함한 동중국해의 해역 및 상공에 대한 관할권 경쟁은 오키나와 열도에서의 긴장의 필연적 북상(北上)이라는 측면을 띠고 있다.

- 미국이 2010년을 전후하여 공개적으로 본격화한 '동아시아 재균형 전략'(Rebalancing East Asia, 또는 Pivot to Asia)에 따라, 특히 2013년 하반기에 들어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collective self-defense)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또 센카쿠/다오위다오를 미일안보조약의 대상으로 확인하는 등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15)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동해방공식별구역' 전격 선포가 이루어진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3) 한국의 해양과학기지의 구축에 이은 제주도해군기지 건설 본격화에 대한 대처로서 촉진된 측면도 부정하기 어렵다.

(13) 김찬규, 「KADIZ 확대 꼭 필요했다」, 『국민일보』, 2013.12.17.

(14) 김찬규, 「KADIZ 확대 꼭 필요했다」, 『국민일보』, 2013.12.17. 한국은 1995년에 착공해 2003년 6월 완공한 종합해양과학기지의 운영을 통해 그곳에 대한 "실효적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해진다. 김찬규에 따르면, "수중 돌기물"인 이어도는 마라도에서 81해리(149㎞), 제일 가까운 중국 섬 동다오(童島)에서 133해리(247㎞) 되는 곳에 있어 중간선 원칙에 따른 경계획정을 하게 되면 한국 쪽에 속한다. 그러나 중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당사국들의 권리주장이 겹치는 곳"으로 간주된다. 유엔 해양법협약의 해석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선 관련 당사국들은 해당 해역의 현상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이 이어도에 설치한 종합해양과학기지가 "해당 해역의 현상을 손상"시키는 것인가가 분쟁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중국은 언제라도 그런 주장을 제기하여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김찬규, 2013.12.17).

(15) 2013년 10월 4일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센카쿠열도에 대한 일본의 영토적 권리를 미국이 공동으로 방어하는 것은 미일동맹의 집단방위 대상이라고 밝혔다. 2013년 12월 초 조셉 바이든(Joseph Biden) 미 부통령의 아시아방문에 앞서 CNN은 또한 이렇게 확인했다: "Washington does not take a stance on the sovereignty of the (Senkaku) islands, but considers them territory administered by Japan and under the protection of the U.S.-Japan defense treaty," CNN, "China's air defense zone: What you need to know," December 3, 2013.

11. 이어도와 한중관계, 어떻게 할 것인가

- 이어도는 영토가 아니라 수중 암초이다. 한국이 이어도 해역을 배타적 경제수역에 포함시킨 상태지만, 중국도 그러하며, 중국이 이를 철회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는 한에서 한중 두 나라 모두 이어도 해역을 저마다 자국의 ADIZ에 포함시킨 상황을 되돌리기는 어렵다.

- 이어도 해역이 한중 양국 모두의 EEZ에 포함된 상태에서 이 해역에서의 한국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 해역의 한중 이해관계 충돌의 군사화를 막는 일이다.

- 이 해역에서의 한중일 삼국 간에, 그리고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제도적 장치로 한 미국과 중국 사이의 분쟁의 군사화를 막을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 이어도 해역에서 한중간 분쟁에 대한 한국의 군사적 대응은 이를 빌미로 한 중국의 이어도 무력 장악 사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 미국이 한미동맹에 근거해 군사 개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 물론 미국은 이어도에 대한 중국의 무력 장악 가능성을 견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미·일 동맹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행동을 취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미국 및 일본의 조치들이야말로 중국에게는 "어느 시점엔가는 반드시" 이어도에 대한 과격한 군사행동을 결행해야 할 이유가 될 수도 있다.

- 이 같은 불행한 사태의 경우에 우리에게 남겨진 결과는 무엇일까. 이어도가 중국 관할권(under Chinese administration)에 들어간 다음의 중국 대 미·일 동맹 사이의 군사적 대치의 고도화이다. 한국은 이어도와 함께 이른바 '제주도 남방 해역'의 평화 두 가지를 모두 잃는 일이 될 것이다.

- 뿐만 아니라, 이어도 해역을 포함한 동중국해에서뿐만 아니라 한반도 서해상 전체에서 EEZ에 대한 상호존중과 한중어업 분쟁의 평화적 문제해결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 한반도의 평화와 평화적 통일에 결정적 키의 하나를 쥐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는 그렇게 관리되고 운영되어서는 물론 안 될 일이다.

- "이어도는 필요하다면 군사적으로 지켜야 하고, 또 미·일 동맹의 지원을 받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군사적 사유와 군사적 접근이야말로, 이어도 문제의 군사화를 촉진하고, 끝내 이어도를 무력으로 잃게 되는 가장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이어도에서 한국의 위상과 이익을 지키는 문제는 한미동맹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의 함수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에 입각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우리의 근본적인 숙제의 하나로 되었다.

12. 동아시아 질서의 미래와 한국의 선택

-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미래는 몇 가지의 모델을 가상해 볼 수 있다.

1) 평화적 양극질서 peaceful bipolarity (between China & the US-Japan alliance)

2) 대립적 양극질서 confrontational bipolarity (between China & the US-Japan alliance)

3) 중국 패권체제 (Pax Sinica): 설사 이 가능성이 현실화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상당한 기간에 걸쳐 평화적이든, 대립적이든 미·일 동맹과 중국을 두 축으로 하는 양극체제(bipolarity)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될 것이다.

- 중국에 의한 일원적 패권체제(Chinese unipolar moment)는 결코 가까이 있는 현실이 아니다. '중국 천하체계'의 복원을 운운하는 것은 지극히 성급한 논의이다.

- 그런가 하면, 동아시아에서 미국 패권체제를 제한하는 중국의 힘은 1950년 11월에,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1994년 6월에 입증되었듯이, (16) 한반도에 언제나 실재해왔다는 것 또한 인식해야 한다.

4) 혼돈의 다극질서 relatively chaotic multipolarity

5) 다자적 제도들이 기능하는 평화적 다극 체제 relatively peaceful multipolarity (peaceful coexistence of great powers and smaller states under a set of multilateral institutions):

- 이 평화적 다극 체제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아세안, 인도, 유럽,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국가가 다자적 제도들의 틀 안에서 다면적으로 소통하며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질서를 가리킨다.

- 이러한 평화적 다극질서의 핵심은 크고 작은 나라들이 상호적대적인 동맹체제들에 편입되지 않고, 동맹의 정치로부터 자유롭다는 데에 있다.

- 필자의 판단으로는 위의 다섯 가지 미래상들 중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형은 이처럼 다자적 제도들이 기능하는 평화적 다극질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 강대국들과 우리들 자신이 체계적이고 치열한 노력을 전개하지 않고는 기존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논리가 관철되는 '대립적 양극질서'가 현실화되는 현재의 추세를 되돌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16) 1994년 6월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해결 시도를 잠재우는데 중국이 수행한 역할에 대해서는 이삼성, 『한반도 핵문제와 미국외교: 북미 핵협상과 한국 통일정책의 비판적 인식』, 한길사, 1994.10.

13. 한반도의 역할과 선택

- 최근 이어도 해역을 포함한 동중국해 상공을 둘러싼 긴장을 두고 미국의 군산학복합체 일각에서는 한국이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에서 이탈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동맹에서 소외되고, 그 결과 중국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극복에 한반도가 기여할 바의 일차적인 근본 전제는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평화적 통일의 가능성을 창조하고 경영하는 일이다. 그러한 가능성은 한국이 대립적 양극질서(confrontational bipolarity)의 발전을 방조하고 그 안에서 일방적인 '가치동맹'을 추구하는 것으로는 기대 난망이다.

- "미국과의 가치동맹"에 대한 대안이 "중국과의 가치동맹"은 아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기존의 동맹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중국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원교근친"(遠交近親), 즉 "가치의 균형"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 동아시아에서 한반도는 역사의식을 포함한 가치의 영역과 지정학적 견지에서 모두 "중간자"적 위치에 있음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한반도가 항상 동아시아의 긴장과 위기의 중심에 있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선택과 역할이 동아시아의 미래에 갖는 중요성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 "동맹의 논리"와 "자주적 근린외교"가 근본적으로 모순을 일으키는 순간이 오면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동맹외교는 어디까지나 한반도에서의 평화구축에 기여하는 한도에서라는 '전략적 절제'가 그 전제로서 한국과 미국 모두에 의해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한국이 이 원칙을 넘어서 중국에 대한 비수가 되기를 요구하는 동맹은 근본적으로 위험하다.

- 한국의 외교전략에서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만이 위험하다면, 대분단체제의 구조 안에서 어느 일방의 하수인이 되어 다른 일방의 코앞에서 그 눈동자를 찌를 수 있는 흉기로 보이는 것은 더욱 위험한 선택이다.

- 미국의 군산학복합체는 동맹에 대한 한국의 로얄티(Loyalty)를 압박한다. (17) 그러나 한국의 동맹외교가 추구할 일차적인 임무의 하나는 그 동맹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평화적 통일에 대한 기여라는 "동맹의 근본적이고 제한적인 취지"를 동맹국에게 인식시키고, 동맹을 그 목적에 부합하게 경영하는 노력이다. 그것이 한국인과 그 동맹국이 함께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한국의 지정학적 숙명이며, 동시에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한국의 기여의 가장 근원적인 출발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17)Victor Cha, "Korea's Mistake on China's ADIZ Controversy," CSIS, Korea Chair Platform, December 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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