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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가 발생한 날, 그들은 어디에?

[정욱식의 '모순과 악연'] MD에 정신 팔려 테러위협은 뒷전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마에 미사일방어체제(MD)를 새긴 정권"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을 정도로 MD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이걸 너무나도 잘 보여준 날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펜타곤이 여객기를 이용한 테러 공격을 받은 2001년 9월 11일이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부터 테러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 보고가 잇따라 올라갔었지만, 수뇌부는 이를 무시했다. 그렇다면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9·11 테러가 발생한 날 아침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부터 펜타곤 회의실에서 공화당 하원의원들과 조찬 회동을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20여 일 후인 12월 5일에는 미국 방송 CNN의 래리 킹(Larry King)과 같은 방에서 대담을 나눴다. 럼스펠드는 "그 날 아침 바로 이 방에서 의원들과 테러리즘에 대해 말씀 나눈 건가요?"라는 래리 킹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 지난 2006년 미국에서 9.11 테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다큐멘터리 영화 <루즈체인지>의 한 장면.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비행기가 충돌하고 있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나는 (9월 11일) 오전 8시에 아침 식사를 하면서 1년 이내에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의원들에게 말했어요. (중략) 그런데 제 보좌관이 들어와서 급히 쪽지를 건넸어요. 여객기 한 대가 세계무역센터와 충돌했다는 내용이었죠. 우리는 조찬을 중단했고 저는 CIA의 브리핑을 받기 위해 일어섰죠."

그러자 래리 킹은 "당신은 그 날 아침 아주 뛰어난 예언력을 발휘했군요"라고 치켜세웠고 럼스펠드는 "그랬죠(Yeah)"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대화를 보면 마치 럼스펠드가 조만간 대형 테러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는 이 문제를 논하기 위해 공화당 의원들을 초청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2010년 비밀 해제된 당시 펜타곤의 메모에 따르면, 9월 11일 조찬 회동의 목적은 MD에 있었다. 미사일 방어망에 대한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를 재확인하고 관련 예산을 확실히 확보하고자 의원들을 부른 것이다. 이 자리에서 럼스펠드는 MD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 첫 번째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회계연도 2002년의 MD 연구개발비는 달랑 83억 달러이라며 "이는 전체 국방비의 2.5%에 불과"하고 "2001년에 사용된 대테러 관련 예산 110억 달러"보다도 훨씬 적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미국이 직면한 최대 위협은 미사일인데 테러 방지 예산보다 MD에 적은 돈을 쓰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의미였다. 그랬던 럼스펠드는 9.11 테러 발생 직후 정부가 제대로 테러 위협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대테러 예산으로 110억 달러를 사용할 정도로 우선순위에 뒀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예산은 클린턴 행정부 때 마련된 것이었다.

콘돌리자 라이스는?

럼스펠드가 공화당 의원들을 만나고 있을 때,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은 백악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 대학원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백악관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제는 "어제의 세계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세계의 위협과 문제(The threats and problems of today and the day after, not the world of yesterday)"였다. 이날 예정된 라이스의 연설은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의 요체를 담은 것으로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그리고 도날드 럼스펠드 등 핵심 수뇌부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준비된 것이었다. 그러나 라이스가 차에 오르기 직전에 대형 테러가 발생하면서 백악관 지하 벙커로 피신해야 했다.

그렇다면 라이스는 이날 연설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었을까? 그는 9.11 테러가 발생하자 이전부터 부시 행정부가 테러리즘에 대한 대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었고 자신의 연설 내용의 일부도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역시 거짓말이다. 2004년 4월 1일 <워싱턴포스트>는 2001년 9월 11일 발표할 예정이었던 라이스의 연설문을 입수해 이를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라이스는 테러 위협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은 반면, 탄도미사일 위협을 미국이 직면한 최대 위협이라고 규정하고 MD 구축이 미국 안보의 최우선 과제라고 발표할 예정이었다.


테러리즘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방 폭탄, 차량 폭탄, 지하철에 살포될 수 있는 사린가스 등을 우려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라이스는 이러한 테러에는 다양한 대응책이 있다고 덧붙이면서 정작 미국이 직면한 최대 위협, 즉 미사일 위협에는 노출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결론은 당연히 MD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워싱턴포스트>의 이러한 보도는 9.11 테러에 대해 미국 정부가 얼마나 사전 대비를 하고 있었느냐에 대한 의회 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에 나왔다. 그만큼 파문도 컸다. 그러자 백악관은 "MD와 대테러 대응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다.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취한 안보 조치는 알 카에다를 제거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었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사실관계와 부합하지 않는다.

먼저 부시 행정부 초기 때 백악관 대테러 담당 선임보좌관이었던 리처드 클라크(Richard Clarke)의 증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부시 취임 직후인 2001년 1월 말에 이미 자신과 클린턴 행정부의 테러 담당 관리들이 백악관 상황실에 모여 알 카에다의 테러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이들 세력을 격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논의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수뇌부는 이를 묵살했다는 것이 클라크의 증언이다.

2004년 4월 조사위원회에 출석한 연방수사국(FBI) 번역가 출신인 시벨 에드먼즈(Sibel Edmonds)의 진술은 더욱 구체적이다. 9.11 테러 조사에 참여했던 에드먼즈는 "2001년 6월과 7월에 이미 충분한 테러 정보가 있었다"며 그러나 정작 부시 대통령은 이를 제대로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인 증거로 2001년 5월에 테러범들 일부가 미국으로 입국해 있었고 여름부터는 비행 훈련까지 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정도의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테러 경보를 격상하고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부시 행정부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라이스가 테러 유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라이스의 주장을 문서로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고 증언했다.

이처럼 대형 테러 가능성은 9.11 테러 이전부터 행정부 내에서 제기되었지만, 정작 부시 행정부의 수뇌부는 MD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2월 27일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직면한 위협은 "폭탄을 갖고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부터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려는 폭군과 깡패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며, "우리는 효과적인 MD를 개발·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시는 대외정책에 대한 첫 공개 연설에서도 "냉전 시대와 달리, 오늘날 가장 긴박한 위협은 소련으로부터 날아오는 수천 발의 미사일이 아니라 테러와 협박을 일삼는 깡패 국가들로부터 오는 소규모의 미사일"이라며 조속한 MD 구축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한 달 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를 마치고는 5가지 안보 우선순위를 제시했는데 첫째가 MD였고 테러 대비는 아예 빠져 있었다.

부시의 멘토이자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부통령으로 불렸던 딕 체니는 9.11 테러 발생 40일 전에 공화당 의원들을 대거 동반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체니는 "우리가 MD와 공격용 전략 무기의 변화에서 목도하고 있듯이, 부시 행정부는 세계와의 전략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전략적 변환의 핵심은 바로 MD였다. 테러 발생 이틀 전에 미 방송 NBC에 출연한 라이스는 "탄도미사일이 곳곳에 편재해 있다"며, "우리 행정부는 이처럼 긴박한 위협을 다를 수 있는 사업에 진지한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사업 역시 MD였다.

라이스는 9.11 테러 발생 7개월 후에 미뤄두었던 존스홉킨스대 대학원 연설에 나섰다. "9.11의 지진파가 국제정치의 지질구조판(tectonic plate)을 이동시키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연설 주제는 단연 테러 문제였다. 당초 최우선 순위로 다룰 예정이었던 MD는 지나가는 말로 한 차례 정도 언급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렇다고 MD가 부시 행정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도 아니었다. 먼저 9.11 테러 발생 3개월 후에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초상집에서 빚 독촉하지 말라'는 격언을 상기시키듯,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를 러시아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계기로 보고 MD 족쇄를 풀어버린 것이다. 또한 MD 관련 예산도 클린턴 행정부 때의 2배가량으로 늘렸다. 미국 국내의 비판 여론은 '국가안보 지상주의'가 판을 치면서 숨 쉴 공간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듬해 1월에는 9.11 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9.11 테러를 이용해 제도적 제약, 필요한 예산, 위협이라는 명분을 일시에 해결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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