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송년회가 자못 비장했다는 후문이다. 군 출신인 남재준 국정원장이 '독립군가'로 알려진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를 부르며 충성맹세 의지를 드높였다는 것. 정부 안팎에서도 "송년회조차 '남재준 스타일'"이라는 평가다.
"인생에 목숨은 초로(草露)와 같고/이씨조선 오백년 양양하도다/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아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이다."
23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남재준 국정원장은 지난 21일 국정원 간부들과 송년회를 하면서 '양양가'를 다 함께 여러 차례 불렀다고 한다. '양양가'는 남 원장의 대표적인 애창곡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복수 관계자의 말을 빌려 "남 원장이 주재한 간부 송년회는 한 해의 회포를 푸는 모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결의대회 같은 비장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특히 독립군가 중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아아 이슬같이 기꺼이 죽으리이다'는 대목을 부를 때면 참석자 모두가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한 결연한 표정이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보수 진영은 비장함과 결연함으로 무장한 '남재준 스타일'에 대해 '애국주의 전사(戰士)'라며 환호하는 분위기다. 남 원장은 지난 3월 취임사에서 "나는 전사가 될 각오가 돼 있다"며 "여러분도 전사로서의 각오를 다져달라"고 주문했다. 역대 가장 짧은 취임사였지만, 특유의 군인다움이 묻어난다며 '명언' 대접을 받았다.
'남재준 스타일'이 강조되는 데에는 대북 첩보 활동을 주 업무로 하는 국정원의 내부결속 강화로 볼 수 있다. <동아>도 한 관계자의 말이라며 "김정은 체제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북한의 대남도발 위협 증대 등 남북관계의 긴장도 높아지는 만큼 송년회도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와 '남북통일에 대한 기여'를 다짐하는 자리가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남재준 스타일'에서 드러나는 피아(彼我) 구분 의식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사회질서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발생한 양,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 원장은 지난 6월 25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NLL 대화록 공개와 관련해 "야당이 자꾸 공격하고 왜곡하니까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그랬다(공개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명예가 국가 이익이나 기밀보다 중요한가"라는 민주당 추미애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정치적으로 중립의 위치에 있어야 할 국정원장이 야당을 '적'으로 규정, 공격과 왜곡에 따른 명예 회복을 목적으로 국가 1급 기밀 문서를 공개했다는 뜻이다.
당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무슨 명예를 찾나"라며 "그 사람들이 30년간 음지에서 일한 게 아니라 음지에서 민주주의를 조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중반을 넘어섰지만, 안철수 의원의 말대로 "의혹은 풀린 것 없고 국정원은 턱없이 부족한 자체개혁안을 내"놓았다. 한편 23일은 국정원 개혁특위 여야 간사의 비공개 협의가 예정된 날이다.
'중앙정보부 → 국가안전기획부 →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며 역사의 전환점마다 개혁 의지를 다짐했던 정보기관이 다른 의미의 내부결속을 다짐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독립군가'였을까. '내 편'이 아닌 상대방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남재준 스타일'이 불안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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