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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두 통의 편지, 두통거리로 돌아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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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오바마의 두 통의 편지, 두통거리로 돌아오나?

[정욱식의 '모순과 악연'] 이란 핵이 해결돼도 유럽 MD는 계속 간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 들어간 지 두 달 후인 2009년 3월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에게 비밀 서한을 보냈다. 요지는 "러시아가 이란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을 저지하는 데 돕는다면, 미국은 동유럽에 미사일방어체제(MD) 계획을 철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 말기에 유럽 MD를 둘러싸고 신(新)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악화되었던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설정(reset)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그로부터 4년여가 지난 현재, 이란 핵문제 해결에는 중대한 추동력이 만들어졌고, 러시아는 미국에게 이젠 유럽 MD를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12월 5일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나토 회원국 외무장관들과의 회담을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완전하고도 강력한 통제하에 놓이게 된다면, 유럽 MD를 만들고자 했던 이유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지난 11월 24일 (현지시각)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및 독일 등 P5+1 회담 이후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자 백악관은 곧바로 "유럽 MD와 관련된 우리의 계획과 나토 MD에 대한 미국의 기여 방안으로서의 EPAA(유럽형 MD)를 구축하겠다는 우리의 공약은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란 핵문제가 해결되어도 유럽 MD는 계속하겠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은 대단히 모순적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물론이고 오바마 행정부도 줄곧 유럽 MD는 러시아가 아니라 이란의 핵미사일로부터 유럽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해왔다. 그런데 이란 핵문제가 해결되어도 유럽형 MD를 계속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나오니 '그 MD는 도대체 뭘 막겠다는 것이냐'는 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11월에 체결된 이란과 'P5+1'(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인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과 더불어 독일까지를 의미함)의 합의는 잠정적이다. 이들 7자는 6개월간의 합의 이행을 통해 신뢰구축을 도모하고 6개월 후에 최종적인 합의를 시도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 핵문제는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로선 유럽 MD 계획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고 말한다.

이런 편지도 있다!

그런데 오바마는 MD와 관련해 메드베데프에게만 편지를 보낸 게 아니었다. 오바마는 러시아와 합의한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비준을 받아내기 위해 2010년 12월에 "핵감축 협정은 MD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고 우리 행정부는 MD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요지의 서한을 상원에 보냈다. 이 서한에 힘입어 오바마는 조약 비준에 필요한 상원의원의 2/3의 지지를 받아낼 수 있었다.

러시아 정부가 오바마로부터 받은 편지를 이용해 유럽 MD 계획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면, 미국 공화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받았던 편지를 이용해 오바마에게 흔들리지 말고 계속 MD를 밀어붙이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오바마가 러시아에 보낸 편지는 이란 핵문제와 관련 있고, 상원에 보낸 서한은 핵무기 감축협정과 관련된 내용이어서 두 편지의 성격은 다르다. 그러나 러시아엔 조건부 MD 포기를, 공화당엔 무조건적인 MD 추진을 언급한 것이어서 이란 핵문제 해결에 진전이 생기면서 두 통의 편지가 오바마의 두통거리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공화당의 제임스 인호프(James Inhofe) 상원의원은 12월 6일 자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유럽에서 효과적인 MD를 구축하기 위해 계속 정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6개월 후에 이란 핵협상이 완전히 타결되어도 이란은 미래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핵물질을 농축할 수 있는 능력은 보유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란은 유럽 MD보다 빨리 핵무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MD는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공화당은 경계심도 나타내고 있다. 마이크 로저스(Mike Rogers) 하원의원은 "나는 오바마 행정부가 푸틴과의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MD를 협상 도구로 이용할 가능성이 두렵다"라고 말했다. 인호프의 발언은 더 노골적이다. "우리는 러시아가 나토 동맹과 MD 구축을 훼손하기 위해 이란과의 협상을 지렛대로 삼으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하며, 우리는 어떠한 협박에도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와 공화당 사이에서만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이 아니다. MD 배치를 약속한 동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브루킹스 연구소의 스티븐 피퍼(Steven Pifer) 연구위원은 미국이 유럽 MD 계획을 변경할 경우 "미국의 파트너 국가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무관하게 미국이 정책을 결정하려고 한다고 우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유럽형 MD는 동유럽 국가들로까지 나토를 확대하는 전략과 맞물려 있다. 이에 따라 이란 핵문제가 해결되고 미국이 유럽 MD 계획을 철회할 경우 나토 확대 전략도 차질을 빚을 공산이 크다.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MD와 미·러 관계, 그리고 미국 국내 정치적 민감성 사이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라는 2012년 3월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 중에 있었던 오바마와 메드베데프 사이의 밀담이 바로 그것이다. 오바마는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메드베데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재선이 되면 이들 문제, 특히 MD 문제도 풀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가 저에게 좀 여유를 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번이 저의 마지막 선거입니다. 제가 재선한 후에는 좀 더 유연해질 겁니다."

그러자 메드베데프는 "알았어요. 블라디미르에게 전해드리지요"라고 답했다. 오바마가 말한 '그'는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푸틴이 MD 문제를 제기하면 자신이 곤혹스러워지니 좀 자제해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참고로 당시 푸틴은 총리였고 현재는 대통령이다.


오바마의 발언이 켜진 마이크를 타고 워싱턴까지 전해지자 공화당이 발끈하고 나섰다. 특히 2012년은 대선과 중간 선거가 있는 해였다. 안보 호재를 만났다고 판단한 공화당의 전국위원회는 "당신이 듣지 않고 있다고 오바마가 생각할 때, 그는 세계 지도자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요?"라는 부제를 달아 문제의 동영상을 유포했다.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미트 롬니는 "오바마가 러시아에 굴복하려는 뜻을 보였다"며 "오바마의 유연성이 어떤 것인지 미국 국민들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도 "오바마가 한국에서 돌아오면 '유연성'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야 할"이라고 정치 공세에 가세했다. 네오콘의 대변인격인 존 볼튼 전 유엔 대사도 오바마가 재선되면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며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거들었다. 이처럼 논란이 커지자 오바마는 자신의 발언이 'MD 포기'가 아니라며 진땀 해명에 나서야 했다.

그렇다면 왜 MD는 미-러 관계뿐만 아니라 미국 국내 정치에서도 '뜨거운 감자'일까? MD를 둘러싼 미-러 간의 갈등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은 북한과 이란의 위협을 MD 구축의 최대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러시아는 미국이 이들 국가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군사력을 앞세운 미국식 단극체제를 유지·강화하려고 한다고 의심한다. 미국은 수천 개의 핵미사일을 보유한 러시아가 "제한적인 MD"에 위협을 느낀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주장하지만, 러시아는 자국의 핵미사일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 반면에 미국 주도의 MD는 계속 강화될 것이기 때문에 전략적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미국과 나토에 조건부 MD로 두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하나는 "MD 시스템을 공동으로 운용하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미국 주도의 MD가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 형태로 보장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요구를 거절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은 MD 시스템을 루마니아의 영토에 배치하기로 했는데, 공교롭게도 루마니아의 MD 기지는 과거 소련이 공군기지로 사용했던 곳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 MD라는 '트로이의 목마'를 앞세워 자신의 세력권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는 의구심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러시아가 MD를 반대하는 데에는 푸틴의 야심도 숨어 있다. '21세기의 차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푸틴은 미국의 약화를 러시아의 부활과 다극 체제로의 전환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인물이고, 'MD 반대'는 그 유력한 카드이다. 특히 러시아는 최근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이란 핵 합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유럽형 MD를 계속 밀어붙이면 러시아가 전략무기감축협정에서 탈퇴, 유럽을 겨냥한 중단거리 핵미사일의 재배치, 이란 핵문제 해결 노력 약화 등의 방식으로 미국에 보복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닮아도 너~무 닮은 두 개의 삼각관계

MD는 이란 핵문제의 향방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복병이다. 오바마의 입장에서는 이란이 우라늄 농축 권리와 건설 중인 원자로까지 포기하고 이를 근거로 자신은 유럽형 MD를 철회하는 것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나 이란이 이런 선택을 할 리가 만무하다. 현실적인 타협책은 이란은 IAEA의 철저한 감시하에 제한적인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갖고 미국 등 국제사회는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을 맞바꾸는 것이다. 러시아가 마련한 중재안의 핵심도 이렇다.

그런데 이런 타협안에 도달할 것 같으면 공화당은 '언제든 이란이 다시 핵무기 개발을 시도할 수 있다'는 이유로 유럽형 MD를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 오바마가 공화당의 정치 공세에 밀리면, 러시아는 이란 핵문제를 해결해야 할 동기가 약해졌다고 판단할 것이다. 자칫 오바마로서는 이란 핵문제도 해결 못하고 MD 문제를 놓고 러시아와 공화당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는 '설상가상'의 상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MD라는 프리즘을 놓고 볼 때, 미국-러시아-이란의 삼각관계는 북한-미국-중국과의 삼각관계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미국이 유럽과 중동 MD 구축의 최대 명분으로 이란 위협을 내세우는 것처럼, 아시아 MD의 최대 구실은 단연 북한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유럽 MD가 결국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처럼, 중국도 그렇게 여긴다. 그래서 러시아는 이란 핵문제 해결에, 중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대단히 중시한다. 때때로 미국은 러시아에 이란 핵을, 중국엔 북핵 해결을 요구한다. 핵문제가 해결되면 MD를 그만둘 수 있다는 당근을 내밀면서 말이다. 한반도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올해 4월, 존 케리 국무장관은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이 북핵을 해결해주면 아시아 MD를 증강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부시 행정부 말기에 북·미 관계는 2000년에 이어 제2의 황금기를 구가했었다. 그런데 유럽에선 '신냉전', '미사일 위기'가 언급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 미국이 이란 핵 위협을 이유로 MD 배치를 강행하려고 하자, 러시아가 중단거리 핵미사일을 재배치하겠다고 맞서면서 벌어진 일이다. 5년이 지난 오늘날 상황은 바뀌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조건 없는 6자회담 제의를 거듭 뿌리치면서 북한 위협을 이유로 한-미-일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려고 한다. 반면 이란과는 1년 동안의 비밀 협상을 통해 잠정적인 핵 합의에 도달했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MD라는 저울이 북한과 이란을 양쪽에 올려놓고 유럽과 아시아를 저울질하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란 핵 합의에 대해 미국의 MD 파들은 분명 긴장하고 있고 MD를 계속하라고 오바마를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북핵에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혹시 오바마가 MD에 숨통을 열어주기 위해 북한과의 협상의 문은 계속 닫아걸려고 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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