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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애도만 말고 '만델라 리더십'을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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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애도만 말고 '만델라 리더십'을 배워라

[이정전 칼럼] 정적에게 먼저 손 내미는 용기, 만델라 리더십의 핵심

서울 남산 북측 순환 산책로를 걷다 보면 이상한 것이 눈에 띈다. '와룡묘(臥龍廟)'가 그것이다. 그 안에는 제갈량의 사당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옆에는 관우의 사당이 있다. 동대문 옆에도 관우의 사당이 있다. 관우는 중국 삼국시대의 장군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 이순신 장군 같이 연전연승한 명장도 아니요, 이순신 장군처럼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호국 영웅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결정적인 전투에서 패배하여 그 자신이 포로가 되어 치욕스런 죽임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전략 요충지를 적에게 뺏겼다. 이것이 결국 그의 의형인 유비가 천신만고 끝에 세운 나라를 망하게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열심히 싸우다가 패했다면 또 모르겠다. 그게 아니고 오만과 과신으로 적을 깔보다가 적의 꾐에 빠져 패했다. 장군이 가장 경계해야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그런 장군의 사당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니,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하지만 제갈량의 사당은 봐줄 만 하다. 본받을 점이 많은 인물이요, 우리 정치인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삼국지 연의'라는 소설은 그를 전쟁의 귀재로 그리고 있지만, 정식 역사서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고 한다. 소설에서 제갈량이 낸 온갖 꾀는 사실은 조조나 다른 장수들의 꾀였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서는 그를 탁월한 정치가요 행정가로 기리고 있다. 원래 유비와 제갈량의 정권은 남의 땅에 쳐들어가서 나라를 빼앗고 세운 외인부대 정권이요 이방인 정권이었다. 그래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의 반감을 무마하고 감싸 안는 것이 이 정권의 태생적 과제였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이 과제를 제갈량은 아주 훌륭히 해냈다. 그래서 그는 중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정치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 비결은 공정한 법 집행과 포용이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가 말해주듯이 그는 자신의 부하라도 잘못했으면 가차 없이 처벌함으로써 모범을 보였다. 그러나 법의 공정한 집행만으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으로 감싸는 포용력이 중요하다. 제갈량이 중국 남방을 정복할 때 적장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었다는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는 그의 포용력이 얼마나 컸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물론 이 고사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전설에 불과하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아직 전해 내려오는 이 전설에는 남방 이민족을 마음속으로 승복시키는 제갈량의 정책 그리고 이에 대한 현지 백성들의 깊은 존경이 새겨져 있다. 삼국지 연의를 열독한 많은 사람이 있지도 않은 제갈량의 전쟁터 꾀만 기억하고 정치가로서 제갈량의 탁월한 리더십은 잘 모른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리저리 갈라져서 사사건건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다. 누군가가 앞장서서 이 대립과 갈등을 풀어야 한다. 누가 앞장설 것인가? 바로 대통령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화합과 국민적 단합이다. 지금이야말로 제갈량의 리더십이 절실한 때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제갈량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비리 인물을 요직에 앉혀놓고 있고, 종북몰이 편 가르기를 가라앉히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종북몰이를 보면서 나이 지긋한 분 중에는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 비위가 거슬리는 사람들을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붙이던 차지철을 연상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 주변에 차지철 같은 인물이 잔뜩 포진해 있는 한, 화해는커녕 정권의 안정도 담보할 수 없다. 여권의 실세들은 자신이 제2의 차지철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 전세계에 건강한 모습을 보여준 마지막 시기였던 2010년 남아공월드컵 당시 만델라. ⓒAP=연합뉴스

본받기에는 제갈량이 너무 먼 옛날 위인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얼마 전에 서거한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있다. 만델라야말로 이 시대의 정치인들, 특히 여권의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할 정치가다. 굳이 여권 정치인을 거론하는 이유는, 만델라 리더십의 진가가 그가 정권을 잡았을 때 가장 잘 나타났기 때문이다. 건너기가 불가능해 보였던 흑백갈등의 강에 만델라는 화해의 다리를 놓았다.

만델라의 서거에 청와대와 여권은 애도의 말만 하고 있다. 애도만 해서 무얼 하나. 조금이라도 본받으려고 노력해야지. 그러나 만델라의 탁월한 리더십을 본받자는 굳은 결의가 청와대나 여권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언론도 애도의 뜻만 표명할 뿐 박 대통령과 여권 정치인들에게 만델라의 리더십을 본받을 것을 촉구하는 따끔한 충고는 내놓고 있지 않다.

제갈량과 만델라의 리더십은 그야말로 바다와 같은 포용력에서 나온 것이다. 만델라는 그와 갈등을 일으켰던 정적들에게 늘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박 대통령에게는 이런 용기가 없어 보인다. 만델라는 그가 평생 싸워 왔던 백인 정권의 수장과 공동 정부를 수립하였지만, 박 대통령에게는 이런 아량도 없어 보인다. 만델라는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 늘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에게는 이런 여유도, 유머도 없는 것 같다. 얼음 공주의 자세와 반대자에 대한 단호한 조치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대립과 갈등을 오히려 키울 뿐이다. 여권의 실세들은 바로 이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여권이 늘 외치는 경제 성장도 화해와 국민적 단합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과연 이 땅에는 만델라와 같은 지도자가 언제나 나타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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