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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뿐인 법, 생명의 위협 받으며 밤마다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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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뿐인 법, 생명의 위협 받으며 밤마다 악몽"

[발표회] 내부제보자 76%, 신분상 불이익…67%는 생계 곤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상사가 빠른 속도로 내 차를 따라오기만 해도 날 죽이려고 하는 것 같아서 겁났다. 그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컸다."

박 모(여·34) 씨의 이야기다. 그녀는 지난 2004년에서 2006년까지 건설 분야 B국책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그녀는 연구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출장비와 연구비를 횡령해온 사실을 알게 됐다. 신임 연구원이었던 그녀가 서류를 위조해야 했기 때문이다.

부정행위를 할 수 없다고 항의하자 상사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말했다. 세금이 사적으로 유용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결국 연구원 감사실에 제보했다. 그러나 감사원들이 부정행위를 저지른 연구원들에게 감사 내용과 시기를 미리 알려줬기 때문에 감사는 흐지부지 끝났다. 그녀는 조직의 배신자가 됐다.

안 그래도 여성 인력이 적은 건설업계에서, 젊은 미혼 여성인 박 씨는 철저히 왕따가 됐다. 성적 발언을 포함한,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언어폭력이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책상도 없어졌다. 다른 부서로 발령받아 청소와 복사 일을 했다. 선배들은 그녀가 지나가면 손가락질하며 "너 여기 나가서 어디로 가나 보자"고 말했다. 험한 욕설이 섞인 문자도 쏟아졌다. 정신이 온전할 수 없었다. 매일 악몽에 시달리며 정신병원 문턱까지 밟았다.

결국 박 씨가 옳았다. 부패방지위원회의 조사 결과, 2004년 10월부터 21개월 동안 B국책연구소 직원 318명이 1235건의 국내 출장을 허위 신고해, 출장비 4억4000여만 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옳고 그름은 이미 '조직'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2006년 8월, 2년 계약 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해직됐다.

내부 공익 신고자 76% 신분상 불이익

내부 공익 신고자의 인권 침해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고자 대부분이 파면, 해임 등 신분상 불이익을 당했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내부 공익 신고자 지원 단체인 호루라기재단은 28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회를 열어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5월 15일부터 지난 11일까지 총 6개월에 걸쳐 내부 공익 신고자 42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애초에 신고자 66명과 접촉했으나 이 중 24명은 정신적 스트레스, 연락처 확인 불가 등의 이유로 인터뷰가 불발됐다.

응답자의 60%(25명)가 파면, 해임 등 신분상 불이익을 받았다. 내부 공익 신고자를 보호하는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부패방지법)이 시행된 후 파면, 해임된 사람이 20명이었다. 부패방지법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형, 좌천성 전보, 긴급 체포, 강의 미배정까지 포함하면 76%(32명)가 신분상 불이익을 받았다.

신분상 불이익은 경제적 어려움을 불렀다. 신고 이후 소득이 하락해 생계유지가 힘들어졌다는 응답자가 67%(28명)에 달했다. 이 때문에 이혼, 잦은 부부싸움, 애인과의 결별, 자녀들과 멀어짐 등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은 사람도 74%(31명)였다.

이는 극심한 신체적·정신적 이상 징후로 이어졌다. 응답자 중 86%(36명)가 신체적·정신적 이상 증세를 겪었다고 답했다. 이렇듯 내부 공익 신고자는 신분상 불이익→경제적 어려움→인간관계 단절의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 인터뷰어로 직접 참가한 김미덕 정치학 박사는 "신고자가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언어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우려했다. 지난 2003년, 적십자의 부실한 혈액 관리 실태를 세상에 알렸던 김용환 씨는 "내 제보에 대한 기사가 나가는 날에는 신경안정제나 수면제가 없으면 잠들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신고자 인권 보호 위해 갈 길 멀어

호루라기재단은 내부 공익 신고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상담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다수 신고자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파면, 해고 등을 당하거나 해당 조직에서 계속 재직하더라도 왕따를 당하는 등 정신적 고통이 완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신고자들이 정신병원에 가기 어려워하는 것을 고려할 때, 국민권익위원회가 주도하는 상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현재 공익제보자를 위한 법은 '부패방지법'과 '공익 신고자 보호법' 2개가 있지만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이들 법에 따르면 신고자가 속한 해당 기관이나 그 기관을 지도·감독하는 공공 기관에 부패 사실을 고발해야 한다. 언론이나 시민단체, 노조에 고발할 경우 법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그러나 앞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부패·비리 사건이 발생한 해당 기관의 내부 감사는 '제 식구 감싸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신분 보장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신분 보장은 신고자에 대한 혜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신고자에 대해 보복행위를 한 자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이들은 "국민권익위원회가 보복행위를 한 해당 기관을 처벌한 사례는 지난 10년간 한 건도 없었다"며 "국민권익위원회가 검찰 고발을 통해 보복행위를 한 기관과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하는 등 실효성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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