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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챔피언', 독일이 위기에 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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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챔피언', 독일이 위기에 강한 이유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안정적인 일자리, 어떻게 만들어졌나 ⑤

독일은 자동차, 기계, 화학 산업 등 제조업의 비중이 2011년 기준 전체 GDP의 약 26%에 달하여 미국이나 영국의 2배에 이른다. 따라서 여전히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최근에는 급속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중국과 세계 최대의 수출국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흔히 독일 제조업의 경쟁력은 체계적인 직업교육에 따른 우수한 기술력의 확보와 연구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에 있다고 한다.

장인정신에 입각한 직업교육은 철저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독일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연방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는데, 그 내용 가운데 '연구개발비의 증액'이란 항목이 있었다.

서둘러 경기회복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그 대책으로 나온 것이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확대'였다. 당시 대사관에서 이를 지켜보면서 조금 뜻밖이라 생각되어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모습들이 장기적 안목에서 일을 추진하는 독일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새롭게 든다.

독일 중소기업 임금, 대기업 임금의 90%…한국은?

독일을 생각하면 벤츠, 비엠더블유, 폭스바겐, 지멘스,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바이엘 등의 대기업들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비록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각각의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들도 많은 나라이다.

이들을 보통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1990년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H. Simon)의 명명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세계 틈새시장에서 1~3위 또는 각 대륙에서 1위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는, 연간 매출액이 30억 유로(약 4조3000억 원) 미만이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들을 지칭한다. 2007년 기준으로 약 20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히든챔피언 뒤에는 약 360만 개에 달하는 다양한 중소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2009년 기준 전체기업의 99.7%, 사회보험료를 부담하는 일자리의 약 66%를 차지하고 있고, 전체 직업훈련생의 약 83%가 이들 중소기업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독일에서는 종업원 500인 이하, 연간 매출액 5000만 유로(약 750억 원) 미만인 회사를 '중소기업'으로 정의한다. 이 가운데 소기업은 보통 10인 미만의 종업원과 연 매출 100만 유로(약 15억 원) 미만의 기업을 일컫는데, 전체의 약 6.7% 정도이다. 반면에 한국은 10인 미만의 기업이 약 43%를 자치할 정도로 많은 편이다.

독일의 중소기업들은 약 95%가 가족소유이며, 주식회사가 아닌 유한회사의 형태가 많다. 그래서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중장기적인 투자와 경영을 할 수 있어 기술력 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이에 따라 대기업과의 거래에서도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같은 일은 잘 일어나지 않으며, 상호보완적 관계를 형성한다. 한번 거래관계를 맺으면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관행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구조의 배경이 되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가능한 한 가격경쟁은 서로 피하고, 시장의 분할을 통해 상호 이익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제살 깎아먹기'식의 무한경쟁은 발생하지 않는다.

베를린 대사관에 근무할 때, 한국 중소기업연구원의 김승일 박사가 자료조사를 위해 방문하여 이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다. 이후 발간된 그의 저서(<독일 중소기업의 경쟁력 실태분석 및 정책적 시사점 연구>)에 따르면, 독일은 중소기업의 2001~2007년 평균 영업이익률(약 7.6~7.7%)이 대기업(약 5.8%)보다 높은 나라이다.

미국, 프랑스 등 여러 선진국들 가운데 독일만 이렇다. 이는 우수한 기술력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들의 차별화 경쟁전략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경우 같은 기간 평균 영업이익률이 대기업은 7.3%, 중소기업은 4.5~4.7%로 2.6~2.8%의 격차를 보였다.

또한 독일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격차가 상대적으로 그렇게 크지 않으며, 주요 선진국들과의 비교에서도 그 격차가 가장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임금을 100으로 보았을 때, 중소기업은 대략 90 정도에 달했다. 따라서 독일에서는 중소기업들이 고급 기술인력을 확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크지 않은 편이다. 반면에 미국, 영국, 프랑스는 70~80수준, 한국은 50~60 정도에 불과했다. 특히 한국은 1996년 77.5, 2000년 70.8, 2010년 64.6 등으로 계속해서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유럽 경제위기 한파에도 강한 독일, 이유는?

한편,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은 크게 연방정부와 주 정부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연방차원에서는 전체적으로 통일적인 적용이 가능한 직업교육이나 금융관련 정책들이 주를 이룬다. 또 중소기업의 상속이나 증여 시, 기존 종업원들의 일자리를 일정기간(10~20년)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상속세 및 증여세를 면제하는 세제지원을 하고 있다.

주(州) 차원에서는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역정책을 추진하고, 지역의 경제단체들과의 논의를 통해 필요한 입법사항들을 연방정부에 제안한다. 이처럼 주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오래된 지방분권적 전통에서 연유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주 정부가 직접 재원을 확보하여 중소기업 지원에 사용한다는 점이다. 즉 국세를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공동으로 징수하는 것이다.

기본법(독일의 헌법) 106조 3항에 따라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을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절반씩 공동으로 징수하게 되어있다. 이를 '공동세'라고 하는데, 전체 조세수입의 약 70%를 차지한다. 순수한 연방세는 약 15%, 지방세는 약 4% 정도이다. 보다 자세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독일의 연방제' 주제에서 다시 논의하겠다.

반면 우리의 경우에는 대부분 국세로 징수되고 있어서 지방정부의 역할은 아주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경기도 파주 LCD단지의 경우, 기업유치에 있어서 중앙정부보다 경기도의 역할이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의 조세수입 1227억 원 가운데 1040억 원(약 85%)이 국세로 귀속되었고, 지방세는 187억 원(약 15%)에 불과하였다. 지방정부의 조세징수권을 강화해야 지방자치가 활성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독일에서도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으로 갈수록 각 산업들이 안정되고, 개발도상국들과는 달리 경제성장률이 둔화되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튼튼한 복지제도, 체계적 직업교육, 해고보호법, 산업별 동일임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해소 등을 통해 지속해서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일의 통일을 달성하는 등 1982년부터 1997년까지 16년 동안이나 정권을 잡았던 기민당(CDU)의 헬무트 콜 수상도 결국은 증가하는 실업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사민당(SPD)의 슈뢰더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슈뢰더 총리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녹색당과의 연립정부를 구성하였고 재임에도 성공하였으나, 끝내 500만이 넘는 실업자 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에게 정권을 이양하였다. 이처럼 독일에서 정권이 바뀌는 데에는 물론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하겠지만 결국 실업과 일자리 문제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난 9월에 치러진 독일총선에서 메르켈 총리가 다시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은 이미 예견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U 대부분의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비해 독일경제는 그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최근 유로존의 실업률이 12%를 넘어서고 있는 반면, 독일은 6.6%, 실업자 수는 약 285만 명(2013년 9월 말 기준)으로 지난 20년 이래 최저수준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과거를 지향하는 듯한 왜곡된 이념적 논쟁들에서 벗어나 '사회적 정의'나 일자리 문제가 정권을 다투는 척도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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