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확산되자, 13일 열린 한일 국방차관 회담에서 백승주 차관은 니시 마사노리(西正典) 방위성 사무차관에게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로 동아시아 지역에 불안을 초래해서는 안 되며, 한반도 안보와 한국의 이익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또한 니시 차관이 "북한의 핵·미사일 등에 대응하려면 두 나라가 지난해 6월 체결이 무산된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요청했으나, 백 차관은 "한국 국민의 공감대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미·일 동맹의 논리는?
한국은 일본 군국주의의 대표적인 피해자이고,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이 군사대국으로 가는데 중요한 디딤돌이라는 점에서 이 사안은 결코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핵심적인 이유는 동맹국인 미국과 국내 여론을 동시에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우선 미·일 동맹의 논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논리적 근거는 미국이 공격 받았는데, 동맹국인 일본이 군사 행동에 나서는 것을 미국의 또 다른 동맹국인 한국이 반대한다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는 것이다.
▲ 지난 10월 3일 일본에서 열린 미일 외교국방 2+2 회담. 왼쪽부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AP=연합뉴스 |
한반도 차원에서도 미국과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비롯한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가 한국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한국이 아니라 북한을 염두에 둔 것이고 커져가는 북한 위협 대처는 한국에도 절실한 과제라는 논리를 편다. 더구나 한반도 유사시 미군 기지가 있는 일본이 후방기지 역할을 하게 되는데, 한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반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한반도 유사시 약 2만 명에 달하는 한국 체류 일본인을 대피시키기 위해 자위대를 파견하는 것 역시 일본 정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입장도 개진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대외정책의 자충수를 목도하게 된다. 미·일 동맹이 집단적 자위권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점은 1993~4년 한반도 전쟁 위기와 이듬해 대만 해협 미사일 위기 때였다.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나 양안 분쟁에 개입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일본 역할론이 재조명되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집단적 자위권 추진 움직임이 있었지만, 남북관계와 6자회담이 진전되면서 수그러드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흡수통일론'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과도 손을 잡으려고 했다. 당연히 미·일 양국의 전략가들은 MB의 흡수통일론을 이용해 한-미-일 3각 동맹으로 가려고 했다. 금기시되었던 한일 군사협력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MB 정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양해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로 인해 일본 정부 내에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견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작년 여름에는 한일 군사정보호호협정까지 추진되기도 했다.
물론 집단적 자위권이 겨냥하고 있는 본질적인 대상은 중국이다.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다오위다오·釣魚島) 분쟁이 격화되면서 미·일 양국 내에서 더욱 힘을 얻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 악화가 이를 위한 더없이 좋은 구실로 이용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북한 위협 초래형 대북정책의 위험성
이렇듯 한반도 정세 악화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맞물린 상황에서 한국의 딜레마를 악화시킬 변수가 있다. 남북관계 악화와 6자회담 무산이 계속 악순환을 그린다면, 북한이 또 다시 장거리 로켓 발사나 핵실험과 같은 강수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또 다시 한국에 쓰나미가 몰려 올 수 있다. 미·일 동맹이 한국에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인정, 한일 군사협정 체결, 한-미-일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등을 들고 나오면서 한-미-일 3각 동맹으로 가자는 요구를 더욱 거세게 해올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국제적 차원에서 한국의 딜레마도 커지고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미국은 물론이고 영국과 호주도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모두 미국의 핵심적인 동맹국들이다. 반면 중국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미·일 동맹과 각을 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이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가면 안 그래도 전략적 갈등을 겪고 있는 한중관계는 더더욱 안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 러시아 역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경계하고 있다. 러일전쟁부터 냉전 시대까지 이어진 악연도 있지만, 러시아 역시 일본과 북방 4개 섬을 놓고 영토 분쟁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군사력이 또 다시 한반도에 진출하는 악몽과도 같은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한반도 문제의 악화와 한국 정부의 대북강경책이 집단적 자위권을 비롯한 일본의 우경화에 더 없이 좋은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깨다는 것이야말로 이 사안에 대한 현명한 대처의 기본에 해당된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대응 전략은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데에 있다.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정전체제를 존재 이유로 삼아온 유엔사령부도 해체되고, 이에 따라 일본이 한반도 유사시 후방기지를 맡게 되는 상황도 오지 않게 된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짐에 따라, 자국민 구출을 명분으로 일본 자위대가 출동하려는 일도 없게 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진전되면 6자회담의 장기적 비전인 동북아 평화체제로 가는 문도 열릴 수 있다. 한반도 분단-정전체제가 동아시아 대분단-신냉전 체제의 중요한 역사구조적 원인이라면, 한반도의 전환은 동아시아의 다른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필요조건에 해당된다. 한국이 이러한 속성을 직시하고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의 선순환적인 해결을 도모하면, 중국과 미·일 동맹 사이의 아시아 패권 경쟁과 이 사이에 낀 한국의 딜레마를 완화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다. 그 출발점은 5년째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는 6자회담을 소생시키는 데에 있다. 6자회담 재개는 박근혜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 이 글은 지난 11일 <내일신문>에 기고한 칼럼 '집단적 자위권 어떻게 대처하나'를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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