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공 한번 불렀더니 11만 원
유학을 위해 독일에 처음 갔을 때 한국과 다르다고 느낀 점 중의 하나는 항상 열쇠꾸러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었다. 집의 현관문 열쇠를 시작으로 기숙사나 공동주택의 경우에는 보통 건물의 현관 열쇠가 따로 있고, 우편함 열쇠(우리와 달리 우편함 열쇠는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된다. 아마도 중요한 일 처리들을 대부분 문서로 주고받고, 또 개인의 사생활을 중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는 기본이고, 그밖에 지하창고, 자동차, 자전거, 사무실, 학교나 스포츠클럽의 사물함 등 최소한 9~10개의 열쇠는 기본이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보통 한 묶음씩 열쇠뭉치를 지니고 다녔다. 우리 부부는 이를 '쇳대문화'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점은 대부분의 출입문 손잡이가 안에서만 문을 열 수 있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굳이 문을 잠그지 않더라도 문이 닫히면 밖에서는 열고 들어갈 수가 없다. 이것도 역시 개인의 사생활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러한 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차'하는 사이에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집안에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열쇠를 지니지 않은 채 집 밖으로 나왔는데 문이 닫힌다면, 꼼짝없이 열쇠 따는 사람을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독일에서 살다 보면, 누구든지 한 번만 그런 일을 겪게 되면 바로 조심성이 생겨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2001년 쾰른의 기숙사에 살 때인데, 모처럼 한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와 분위기가 들떠 외출을 하면서 미처 열쇠를 챙기지 못하고 방을 나서게 되었다. 문이 닫힌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아차, 싶었으나 "나중에 방법이 있겠지"하고 나갔다가 일을 마치고 귀가했다. 직접 문을 열어보려고 애를 쓰고, 기숙사 친구들이 문을 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카드, 송곳, 젓가락 등을 가져다주는 성원에도 불구하고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열쇠공에게 연락했고, 오자마자 1분도 안 걸려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내미는 청구서 겸 영수증에는 186마르크(약 11만 원)가 적혀있었다. 당시 한 달 식비의 절반이 넘는 거금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후 집을 나설 때면 항상 신경을 썼지만, 나중에 기숙사를 나와 아파트로 옮겨가서도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다. 2007년 여름의 어느 날,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날도 역시 뭔가 부산한 일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깜박하는 사이에 문이 닫혀 버렸다. 이번에는 먼저 아파트 단지에 같이 사는 건물 관리인을 찾아가 "혹시 마스터키 같은 거 없나요?"라고 물었다. 그런 거 없고 마침 아파트 보수업체에서 다른 작업으로 나와 있으니 가서 이야기해 보란다.
옆 라인에서 작업복을 입은 아주 어려 보이는 젊은이 둘을 발견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친절하게도 바로 와서 순식간에 문을 따 주었다. 돈 달라는 소리를 안 하기에 이건 서비스인가 싶어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를 꺼내다 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이 일을 잊어버릴 만한 즈음에 94유로(약 14만 원)가 적힌 청구서가 날아왔다.
독일에서는 슈퍼마켓도 안정적인 직장
위에서 길게 이야기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독일에서는 인건비가 아주 비싸다는 것이다. 사람의 시간과 손이 가는 것은 뭐든지 비싸다고 보면 된다. 스웨덴에 본사를 둔 이케아(IKEA)라는 가구점이 독일에서 인기가 많다. 그 이유는 소비자가 구매한 후에 직접 가구를 조립하도록 하여 가구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인건비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또 식당에 가더라도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의 서빙을 받느냐, 또는 간이식당 같은 곳처럼 서빙을 받지 않느냐에 따라 팁을 포함하여 가격 차이가 심하다.
독일에서 가장 저렴하게 물건을 파는 슈퍼마켓이 알디(ALDI)인데, 그곳에 가면 카트에 물건을 담고 거의 매번 계산대에서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 한다. 검증된 중소업체의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최소한의 인원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 싫으면 카이져(Kaiser)와 같은 조금 비싼 슈퍼에 가면 된다. 거기서는 대체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몇 가지 이유로 물건 값을 조금 더 지불해야 하는데, 인건비가 비싼 종업원을 더 많이 고용한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슈퍼마켓의 종업원들은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다. ALDI의 경우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하여 우수한 젊은이들이 많이 몰린다고 한다. 우리나라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받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사회 전반적으로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도배, 페인트칠, 가구 보수, 선반제작, 사소한 고장 수리 등과 같은 집안의 잡다한 일들은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를 위해 공구나 기구, 페인트, 자재 등을 파는 '바우하우스(Bauhaus)', '오비(OBI)' 같은 가게가 성업 중이다. 그곳에 가보면 정말 손수 집이라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집안일이나 건축 관련 온갖 것들이 잘 갖춰져 있다. 마치 우리도 옛날에 청계천 상가에 가면 온갖 것들이 있어서 탱크도 만들 수 있다고 했던 것처럼.
2000년 10월 쾰른대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했을 때, 첫 강의시간에 미하엘이란 독일 친구를 알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보통 대학에 가면 독립하여 혼자 사는 게 일반적인데, 그는 부모 집이 학교와 멀지 않아서 졸업 때까지 계속해서 함께 살았다. 서로 친하게 되면서 가끔 집으로 불러서 한국 요리를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그 부모가 거꾸로 우리 부부를 초대하여 독일 요리와 함께 평소에는 마시지 못하는 괜찮은 포도주나 샴페인 등을 내놓곤 하였다. 그러면 우리 부부는 정작 미하엘 보다도 그 부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꿍짝이 맞아) 더 즐거워했던 것 같다. 조금 우습지만 우리의 연배가 미하엘 보다는 그 부모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초대를 받아 찾아간 그 부모의 집은 쾰른 근교의 바일러스비스트라는 조그만 도시에 있는 2층의 아담한 단독주택이었다. 여러 차례 그곳을 방문했었는데, 적당한 크기의 정원을 갖추고 있어서 여름철에 그릴을 하면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져 아주 환상적이었다. 그런데 그 집을 미하엘의 아버지가 몇 년에 걸쳐 주말과 공휴일, 휴가기간 등을 이용하여 혼자서 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정말이냐고 몇 번을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인건비가 비싸서 그랬을 것이다.
그 부자(父子)는 우리 부부가 기숙사를 나와서 아파트로 이사할 때 여러 가지 장비와 기구들을 챙겨 와서 하자보수, 도배, 페인트칠, 전기공사 등을 직접 시공하여 새 아파트로 만들어 준 적이 있었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그 집을 수리하기 위해 엄청난 인건비를 들여야 했으리라. 그런 공사를 왜 세입자가 직접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독일 인건비, 세계 최고 수준
실제로 독일의 인건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1년 기준 독일의 제조업 부문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이 47.38 달러로 노르웨이, 스위스 등 일부 소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았다. 대략의 순서를 살펴보면 프랑스 42.12 달러, 이태리 36.17 달러, 일본 35.71 달러, 미국 35.53 달러, 영국 28.44 달러, 스페인 28.44 달러, 그리스 21.78 달러를 기록하였고, 한국은 18.91 달러였다.
이처럼 인건비가 비싸다면 돈이 많이 들어서 살기 힘들지 않을까 궁금할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사야 하는 입장에서는 비싼 인건비가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아주 신나는 일이다. 자신의 노동이 값어치가 있다는 증거이니까. 물론 독일사회에도 시간당 2~3유로(3000~4500원)를 받고 일하는 '불법노동자'들이 건설현장 등에 존재한다. 이들은 대개 동유럽이나 아프리카 등에서 몰래 넘어온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위의 여러 사례에서 보듯이 노동의 가치가, 노동자의 존재가 충분히 존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독일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일까?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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