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은 조합 설립신고증을 찢으며 이렇게 말했다. 신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민주노총은 정부가 부여한 합법적 지위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며 "저들이 가둬놓은 선을 노동자들의 투쟁의 의지로 깨뜨려 나가자"고 말해 향후 개별 사안을 넘어 반(反)정부 투쟁을 이어갈 것임을 예고했다.
10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민주주의 파괴 중단, 노동 탄압 분쇄,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을 기치로 한 2013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이날 대회에는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해 각계 시민단체와 정당 등에서 5만여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1만7000명)이 참석했다.
▲ 10일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 민주노총 조합원 및 각계 시민사회, 정당 관계자 등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다. ⓒ프레시안(최형락) |
신 위원장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이날 노동자 대회의 대표 슬로건은 '선을 넘자'였다. 이날 행사에서 민주노총은 무대에 폴리스라인 및 '법·질서,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고 쓰인 현수막들을 설치하고 이를 찢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정부가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을 무시하고 하위법인 노동조합법 시행령에 따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법외노조로 규정한 것과 관련, 정부가 법을 적용한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민주노총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정부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의 설립신고를 취소하고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하는 등 노조 탄압을 이어 가고 있는 것과 관련, 이를 규탄하고 향후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암시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조종현 전교조 충북지부 청주농고 분회장은 "박근혜 정부의 탄압 덕분에 1989년 이후 가장 많은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지난 10월 24일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를 노조로 보지 않는다고 통보했지만 전교조는 움츠러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조합을 떠났던 조합원들이 가입원서를 쓰기 시작했고 신규 조합원들이 줄줄이 가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교조는 정부가 문제 삼는 아홉 분의 해고 조합원들이 맞을 매를 6만 명이 같이 맞기로 결의했다"면서 "고용노동부의 품 안에 안주하는 종이호랑이 전교조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교육을 위해 투쟁하는 민주노조 전교조로 다시 서겠다"고 밝혔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전공노는 "정부가 국정원 대선 개입에 물타기를 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공노 서울지역 권재동 본부장은 "방금 제가 커피 한 잔을 먹고 왔다. 커피가 너무 진해서 물을 조금 탔다. 이게 물타기다. 아무리 물을 타도 커피는 커피"라며 "국정원은 선거에 개입했다. 아무리 물타기 해도 선거 개입은 사실"이라고 주장해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았다.
권 본부장은 "검찰에서 공무원 노조 홈페이지 서버를 22시간에 걸쳐 압수수색했다. 3만여 건에 달하는 파일을 뒤졌다. 작년 선거 개입이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2005년의 자료도 달라고 한다. 2005년이랑 18대 대통령 선거랑 무슨 상관이 있나?"라고 반문한 뒤 "서버에 단 한 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사무실에서 전공노 사이트 접속도 못한다"며 선거 개입 의혹을 강하게 부정했다.
한편 이날 본 대회에 앞서 밀양 주민 구미현 씨가 무대에 올라 한전이 추진하고 있는 송전탑 건설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구 씨는 "평생 노동으로 등허리가 굽은 밀양 어르신들에게 이 정권은 765킬로볼트의 초고압 송전탑을 등 위에 얹어 놓았다"며 "11월 30일 밀양 희망버스에 함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밀양에서 송전탑 백지화가 되는 그날 여러분들을 초대해서 어르신들이 지으신 따뜻한 국밥을 같이 먹으면서 자축해보자. 우리의 손을 잡아달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망을 열자"
앞서 9일 민주노총은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서 '2013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조합원을 비롯해 시민단체 등 4000여 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특수고용노동자 노조 인정 △파견법 폐지 △시간제 일자리 중단 △최저임금 현실화 △산재 사망 처벌 및 원청 책임 강화 등을 요구했다.
▲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고 최종범 씨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노동자들. ⓒ프레시안(최형락) |
신승철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900만 비정규 노동자들은 최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면서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에게 살길을 열어주었듯,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이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망을 여는 데 선봉이 되자"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10월 말에 개최했던 비정규직노동자대회와 11월에 개최했던 노동자대회를 올해 1박 2일의 일정으로 통합해서 진행했다. 비정규직 100만 명 조직을 본격화하겠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본 대회에 앞서 오후 3시부터는 '노동박람회'가 개최됐다. 박람회에는 노동자 열사 분향소가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분향소는 노동운동을 하다 죽음을 맞이한 노동자 200여 명의 영정 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다. 특히 분향소 옆에 10월 말 목숨을 끊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고 최종범 씨의 영정 사진도 함께 놓여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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