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가 나서서 재생에너지에 관심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독일이 오래전부터 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가져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재생에너지란 한번 사용하면 고갈되어 버리는 화석에너지와는 달리 수력, 풍력, 태양광 및 태양열, 지열, 바이오매스(작물, 목재 등) 등 지속해서 재생이 가능한 에너지를 말한다.
연방정부는 "에너지의 경제성 및 안전성 확보, 친환경적 이용"을 에너지 정책의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한 정책수단으로 "에너지 절약, 효율성 증대,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2000년 '재생에너지법'을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2009년에 '재생에너지 난방법' 등 다양한 관련법들을 만들어 에너지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충을 위한 정부의 중요한 과제는 이를 직접 사용하거나 관련 시설에 투자할 경우 적절한 지원을 해줌으로써 재생에너지가 경쟁력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재생에너지가 기존의 화석에너지보다 그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관련법들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여 전력 생산이나 난방에너지로 이용할 경우, 아래 표와 같이 일정 기간 적정액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 재생에너지 종류별 전력 생산 시 지원 내용(2012년 기준). ⓒ조성복 |
기민-자민당 연방정부는 2010년의 에너지 정책 관련 어젠다에서 2050년까지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1990년 대비 80% 감축할 것을 선언하였다. 전체 에너지 소비량에서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2020년까지 18%, 2030년까지 30%, 2040년까지 45%, 2050년까지 60%로 올리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또 재생에너지에 의한 전력 생산량 비중을 2020년까지 전체 전력량의 35%, 2030년까지 50%, 2040년까지 65%, 2050년까지 80%로 높이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어서 전체 에너지 소비량을 2008년 대비 2020년까지 약 20%, 2050년까지 50% 줄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는 에너지 효율성을 평균적으로 연간 2.1%씩 향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전체 전기 사용량을 2008년 대비 2020년까지 10%, 2050년까지 25% 축소하는 목표를 세웠다. 교통 분야에서도 에너지 소비량을 2005년 대비 2020년까지 10%, 2050년까지 40% 줄이기로 설계하였다.
2012년 독일의 전체 에너지 소비량 가운데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2.6%(참고로 한국은 2011년 기준 0.7%)이며, 전체 전력 생산량 중에서는 약 20%를 차지했다. 2008년 기준 원전에 의한 전력 생산량이 23%, 재생에너지에 의한 것은 15%(2012년 22.9%를 차지)에 불과하였는데, 이제 이러한 비율은 점차 역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재생에너지 관련 산업의 종사자도 약 38만 명에 달하게 되어, 이 분야가 확대되면서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 폐기를 결정한 이후 2012년 말에는 재생에너지에 의한 전력 생산량의 목표 비율을 상향 조정했다. 지난해 약 23%였던 것을 2020년까지 48%(이전의 목표는 35%)로 올린 것이다. 2011년 기준으로 독일은 중국(510억 달러), 미국(480억 달러)에 이어 약 310억 달러를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했다.
독일 환경 장관 "에너지 산업은 제4차 산업혁명"
최근 페트 알트마이어 연방환경부 장관은 베를린에서 열린 한 경제 콘퍼런스에서 에너지 산업과 관련해 '제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눈길을 끌었다.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혁명(Energiewende: 에너지전환도 가능)이란 단순히 재생에너지에 의한 전력의 생산이나 난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항구적인 기술의 변화와 새로운 도전에 맞서 혁신적이고 시스템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언급하면서 연방정부는 그러한 과정들을 지속해서 지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은 현재 태양광, 풍력발전 등을 위시하여 재생에너지의 여러 분야에서 나름대로 선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이 가능하였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뛰어난 기술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사관에서 일할 때 베를린 소재 한 지멘스 공장을 방문하여 풍력발전에 들어가는 날개를 제작하는 것을 견학한 적이 있었다.
가까이서 본 그 날개는 규모가 엄청나게 컸는데, 이렇게 큰 것을 이 도심에서 어떻게 운반할지가 걱정될 정도였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한밤중에 모두 잠들었을 때 공수작전을 하듯이 운반한다고 했다. 그와 같이 거대하고 정교한 터빈 날개를 아무나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또 연방정부는 통일 이후 동독 지역에 대한 적당한 투자거리가 필요했는데, 마침 재생에너지 관련 산업이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킨 것 같다. 예를 들어 서독 지역에 있는 기존 산업을 옮겨갈 경우 그 빠져나간 지역에 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동독 지역에 무엇인가 신규로 투자할 산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독일의 재생에너지 산업은 바이에른이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등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동독 지역에서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는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기 동안 약 22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예산을 소위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쏟아 부었다. 만약 이 엄청난 예산을 아직 발전이 부족한 적절한 지역들을 골라 그곳에 재생에너지 관련 산업의 기반을 만들고 적절히 투자했더라면, 국가적 차원에서 지역의 균형 발전과 미래 에너지 산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또한 후쿠시마 사고를 교훈 삼아 건설한 지 오래되고 불량 부품 사용 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원전들의 가동을 중단하고 차례로 폐기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랬으면 최소한 에너지 관련 분야에서는 훌륭한 업적을 남길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 무엇을 하고자 했던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독일 연방정부가 후쿠시마 사태를 계기로 과감하게 원전 폐기를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에너지 절약과 그 효율성의 제고, 그리고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와 육성을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녹색당의 성공적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또한 이를 지지하고 뒷받침하는 국민들의 의식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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