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100배 인상의 실질적 의미는…
월급이 100배 인상됐다면 '웬 떼돈이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북한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런 것은 아니다.
북한의 일반 노동자 월급은 북한 돈으로 3000원~4000원 수준이다. 배급제가 원활히 작동돼 먹고 사는 문제를 국가가 해결해줄 때는 이 정도 월급으로도 살 수 있지만, 지금처럼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 배급제가 붕괴된 상황에서는 월 3000원~4000원 수준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 북한에서 쌀 1kg이 6000원 정도 한다 하니 월급으로는 쌀 1kg도 살 수 없는 셈이다.
따라서, 북한의 일반 가정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장사와 같은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직장만 믿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북한에서 한 달 생활하려면 북한 돈 20만 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 하니, 일반 가정에서는 필사적으로 다른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당연히 직장에는 결근자가 많아지고 기업소들의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월급 100배 인상'은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번 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월급을 현실화시켜준 측면이 있다. 월급이 100배 올라 30만 원 정도가 되면,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월급만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노동자들로서는 직장에 열심히 다닐 유인이 생기는 것이고, 노동자들이 직장에 열심히 나오면 기업소의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다.
다만, 지금 들려오는 얘기를 보면,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외화를 벌 수 있는 기업소들을 중심으로 임금 인상이 진행된 것 같다.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기업소들이 스스로 번 돈을 가지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주게 한 것이다. 국가가 임금을 인상시켜줄 능력이 안되니, 능력있는 기업들부터 알아서 움직이게 한 셈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업소들이 임금을 자체적으로 올릴 수 있도록 '자본주의적 요소'를 일부 도입했다는 점이다.
북한식 경제개혁, 어디까지 가나
지난달 16일과 17일 평양의 양각도 호텔에서는 '특수경제지대 개발에 관한 평양국제토론회'가 열렸다. 특수경제지대, 말하자면 북한 내에 경제특구를 개발하는 방안에 대한 토론이 진행된 것이다. 북한은 지난 5월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한 이후 각 지역별로 특성을 갖춘 경제특구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 평양의 양각도 호텔에서 10월 16일과 17일 '특수경제지대 개발에 관한 평양국제토론회'가 열렸다. ⓒ조선중앙TV캡처 |
핵개발의 와중에서도 조금씩조금씩 시도되는 북한의 변화들. 일각에서는 '속도는 느리지만 중국식 개혁개방의 길을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하고 있다. 사실상의 시장경제적 요소가 곳곳에 침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변화의 폭과 방향성을 재단하기는 다소 이른 것 같다. 지금 보여지는 일련의 변화가 하나의 확고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고 보기는 아직 성급해 보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외자 유치가 필수적인데 핵개발과 외자 유치가 동시에 진행될 수 없고, 왕조적 전체주의 체제인 김정은 정권이 대외 개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한계도 있다. 일련의 변화를 시도하다 체제의 부작용이 커진다고 생각하면 다시 후퇴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변화는 어디까지 진행될 것인가? 변화가 계속된다면 정권의 안정성은 유지될 것인가? 향후 몇 년이 이러한 질문에 답을 주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 북한학 박사인 안정식 기자는 SBS에서 한반도 문제를 취재, 보도하고 있으며 북한포커스(www.e-nkfocus.co.kr)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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