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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보면 토 나와"…죽이지 못해 죽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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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보면 토 나와"…죽이지 못해 죽는 아이들

[존속살인을 부추기는 사회]④'부모의 사랑'이라는 학대

최근 인천 모자 살인사건이 어머니와 형을 동생이 무참히 살해한 '존속살해'로 드러나 '존속살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프레시안>은 존속살해를 단순한 엽기사건으로 치부하지 않고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했다.

지난 편에서는 시대변화와 동떨어진 한국 특유의 가족문화가 존속살해의 비극을 양산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을 들었다. 그런데 부모를 자식이 죽여야만 '존속살인'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경우 자살하는 경우, 부모를 차마 못 죽이고 자신을 죽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이런 사례는 '사실상 존속살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4번째 이야기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한국 특유의 가족문화 중에서도 가장 '한국적 특징'으로 손 꼽히는 '사실상 존속살해'의 한 원인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살펴본다. 자녀의 성공에 대한 부모의 집착이 그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이란 일차적으로는 명문대 입학을 의미한다. 명문대 입학에 대한 강요, 부모들의 말처럼 정말 '자녀를 위한 사랑'일까. <편집자>


존속살해와 자살, 종이 한 장 차이

"수능을 준비하는 내내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만약 내가 아주 조금만 더 폭발했으면, 내가 아니라 엄마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김 모(여·26) 씨는 이런 말을 하며 '용기'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나는 용기가 없고 소심한 성격이라 내가 죽겠다는 생각만 했다"고 털어놨다.

지난 10년 사이 한국의 아동·청소년(10∼24세) 자살률은 57%나 증가했다. OECD 회원국 중 아동·청소년 자살 증가율 2위(2000~2010년 기준)를 차지했다. 청소년(13~19세) 자살충동의 원인 1위가 바로 '성적·진학'(2010년 기준, 한국건강증진재단조사)이다.

이 정도면 한국사회의 특징이라 할 법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모상현 연구위원은 "독일 등 서구 사회는 자녀의 적성을 고려해 다양한 삶의 통로를 모색할 수 있다"며 "그런데 한국 사회는 자녀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대학이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당사자인 김 씨는 "간단하게 말하니까 성적·진학이지, 사실은 '자식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부모가 주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단언했다. 지난 2011년, 고3 수험생 지 모 군이 전국 1등만을 강요하던 어머니를 살해해 전국을 발칵 뒤집었을 때도 김 씨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엄마를 죽이지 않았다면 지 군이 자살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존속살해와 자살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지적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 위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연합뉴스

"엄마가 없으면 행복할 것"

김 씨는 아직도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김 씨가 전교 5등의 성적표를 집에 가져가자 어머니가 대뜸 말했다. "1등부터 4등까지 이름 알아와." 온몸에 맥이 탁 풀렸다. 전교 10등 밖으로 성적이 떨어지자 적어야 할 이름이 많아서 종이가 필요하겠다며 김 씨에게 공책을 던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성적에 대한 어머니의 압박은 극에 달했다. 하교하는 데 버스로 15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매번 학교까지 승용차로 데리러 왔다. 버스 타느라 힘을 빼면 집에 와서 쉬느라 공부할 시간을 뺏긴다는 이유였다. 당연히 하굣길에 잠시 친구와 담소를 나누는 것도 금지였다.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지면 밥 먹을 자격도 없다며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했다. "밥이 넘어가느냐. 네 얼굴을 보면 나는 먹은 걸 토하고 싶다"는 폭언이 쏟아졌다. 어머니가 무서워 온종일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몰래 부엌에 가서 재빨리 빵 한 조각만 먹은 날도 있다.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어머니의 기대는 끝이 없었다. 이번에는 '전문직'이었다. 이른바 '사 자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김 씨를 압박했다. 결국 어머니의 성화에 그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국가고시란 국가고시는 다 건드려 봤다. 그러나 목표와 의욕 없이 도전한 고시에 합격할 리 없었다.

김 씨는 그렇게 평생 어머니의 실체 없는 욕망을 충족하려고 허덕여온 셈이다. 그는 "엄마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도 죄책감이 들지만, 내 인생에 엄마가 없으면 지금 훨씬 더 행복할 거라는 확신은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희생' 강조하는 부모…아이도 울고 싶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이러한 욕망은 종종 희생과 사랑으로 일컬어진다. 박 모(여·18) 양의 경우가 그렇다. 지방에 살던 박 양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작년부터 어머니와 서울에서 단둘이 살고 있다. 박 양이 서울의 특목고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상경한 후 지옥이 시작됐다. 그는 "엄마 때문에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 둘 중 한 명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고백했다.

박 양의 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불시에 박 씨의 핸드폰을 검사한다. 박 양이 독서실에 있는 동안 핸드폰을 만지지 않았는지 의심해서다. 격주 주말에 한 번씩만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규칙도 있다. 그는 "어차피 내가 알아서 통화기록을 대충 삭제하면 그만이지만 그런 시도 자체가 너무 싫다"며 "교도소에 있는 사람도 자기가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노는데 나는 죄수만도 못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무엇보다 박 양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어머니의 눈물이다. 그의 어머니는 딸의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울면서 "널 위해 내 모든 걸 바쳤다. 네가 내 전부"라고 강조한다. 박 양은 "그렇게 우는 걸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처음엔 미안해서 나도 슬펐지만 이제는 역겹다. 자기 멋대로 날 위해 모든 걸 희생했다고 강조하면서 내가 빚이라도 진 것처럼 말한다"며 괴로워했다.

"육체적 학대보다 더 불안할 수도 있다"

전문가는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국청소년 상담 복지개발원'의 서미 상담조교수는 "부모가 자녀를 때리는 건 누가 봐도 나쁜 일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자녀가 부모를 당당하게 미워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성적을 강요하는 경우, 부모가 강요하는 부분이 사회가 긍정적으로 보는 부분과 다르지 않아서 더욱 억압받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가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외치고 부모님은 널 위한 일이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부모 때문에 심각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을 가지게 된다"며 "이런 경우 오히려 (육체적 학대 보다) 더 큰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상담 오는 아이 중에 성적과 관련해서 부모와 갈등이 아예 없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의 상처는 성인이 되어서도 아물지 않는다. 지난 2000년, 이은석 씨는 서울에서 손꼽히는 명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서울대 법대에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모의 학대에 시달렸다. 결국 그는 부모를 살해했다. 당시 그의 형은 "동생을 이해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자살률은 8년째 OECD 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중 부모의 '사랑과 희생'에서 벗어나려고 스스로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몇이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가 죽어야 내가 살 것 같았다"던 지 모 군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때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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