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재판 결과를 보는 중국 내 시각은 뚜렷하게 양분된다. 우선 부패한 관리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한 사법정의의 승리로 보는 쪽이다. 아울러 피의자의 반론권이 공개적으로 허용된 절차적 정의의 구현이라는 점도 강조되고 있다. 중국당국의 강한 부패척결 의지의 승리이자 사법개혁의 중대한 성과에 방점이 찍힌 관변 쪽 시각이다.
▲ 보시라이 전 충칭시 총서기 ⓒAP=연합뉴스 |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재판은 정치재판이었고 승자는 보시라이라는 정반대 관점이 있다. 재판상황을 공개해달라는 보시라이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 자체가 승리라고 주장한다. 또 중국당국의 선전처럼 엄청난 뇌물과 추문에 찌든 부패한 좌파가 아니라 정치투쟁에서 패한 좌파 기수의 모습으로 비친 것은 더 큰 승리로 여기고 있다. 보시라이를 지지하는 좌파 쪽 시각이다.
이들은 재판 후 보시라이에 대한 인상이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응답자가 그렇지 않다는 쪽보다 훨씬 많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함으로써 무기형이란 가중처벌을 받은 것은 사법적으론 패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64세인 보시라이 입장에선 15~20년이나 무기형이나 별 차이가 없다. 대신 자신을 '실패한 영웅'의 이미지로 포장해 지지자들을 결집시킨 것은 대단한 정치적 승리다. 설령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다 해도 마오쩌둥(毛澤東)의 깃발을 든 좌파의 영웅으로 역사에 남는다면 그걸로 족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중국 정치상황이 혼란에 빠진다면 세상이 보시라이를 다시 불러낼 수 있다. 그런 여지를 남겨 놓았다는 점에선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보시라이가 재판 직후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명예가 회복될 날을 감옥에서 조용히 기다릴 것"이라고 한 대목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보시라이 재판 결과는 중국 정가에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중국 내부 노선투쟁에 어떤 충격파를 가할지가 최대 관심사다. 중국 내 노선 투쟁은 당국의 엄격한 언론통제로 외부로 노출되지 않았을 뿐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최근 현역 고위장교가 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보수-개혁파 투쟁으로 제2의 문화혁명이 발발할 위기"라 경고하면서 중국은 이념과 가치관의 경직으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체 게바라'의 함정을 탈피해야 한다고 제언할 정도다. 심지어 베이징대의 한 교수는 "문화혁명 시기에 유행했던 말투와 사상의 꺼진 불이 다시 살아나고 있으며 이는 보시라이가 충칭을 다스릴 때부터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면서 "중국은 과거로 회귀 중"이라고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좌파와 우파 사이의 치열한 이념투쟁은 표면적으론 모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겨냥하고 있다. 보수성향의 좌파는 시 주석이 개혁 쪽에 편향돼있다고 공격한다. 취임 직후 선전(深圳)을 찾은 것부터 문제 삼고 있다. 개혁개방의 상징적 도시를 첫 방문지로 택한 것은 개혁파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 아니냐는 주장이다. 헌법 정신 수호와 언론자유 신장, 인권보호 등을 강화하려 하고 금융개혁 등 친 시장적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우파적 조치라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개혁성향의 우파는 중국은 지금 문화혁명 시기로 회귀 중이며 그 선봉에 시 주석이 있다고 공격한다. 중국 정계를 얼어붙게 만드는 "파리(하위직)도 잡지만 호랑이(고위직)도 때려잡는다"는 사정은 문화혁명 당시 마오쩌둥이 즐겨 사용했던 전형적인 정적 제거 수법이다. 시 주석이 공공기관의 지나친 낭비를 지적하면서 고급 술과 음식, 공금유용 및 해외출장 등을 규제하는 것도 마오가 주창했던 근검절약 운동과 매우 흡사하다.
또 정권의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4개풍조(형식·관료·향락주의·사치방탕)반대' 운동 또한 마오의 정풍(整風)운동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평가한다. 최근 중국에선 문화혁명 당시 주역으로 활동했던 인사들이 줄줄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피해자들에게 공개 사과하는 것이다. 혁명 주인공들의 개인적인 참회다. 하지만 문화혁명의 참상을 직접 일깨움으로써 문혁 시대로의 회귀 움직임을 보이는 좌파에 경고를 보내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적잖다.
옹색한 입장의 시 주석은 양쪽 파벌을 함께 아우르는 절충안으로 사태 수습을 시도하고 있다. '두 가지 모두 부정해서는 안 된다' (兩個不能否定)는 특별지침이다. 개혁개방 이전 30년 마오쩌둥 시대도, 개혁개방 이후 30년 덩샤오핑(鄧小平) 시대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오쩌둥 시대에 벌어졌던 문화혁명과 대약진운동 등은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를 부정하면 중국 스스로를 부정하는 격이다. 중국이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력신장을 이룩한 것은 바로 개혁개방의 과실이다. 양극화나 분배의 균형상실, 부패 심화 등과 같은 부작용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오늘의 중국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시 주석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진행 중인 이념 투쟁은 중국이 내부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을 고스란히 노정하고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국가는 물론 기업이나 개인 모두, 과거에 비해 훨씬 부유해지고 풍요로워졌음은 다 인정한다. 그럼에도 전 계층이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분배가 공평하지 못하고, 법 집행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결국 '공평과 정의'의 문제라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좌파는 궁핍했지만 만인이 평등했던 국가 주도의 마오쩌둥 시대를 그리워한다. 반면 우파는 체제나 제도, 시장 중심 개혁 등 근본적인 문제에서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중국의 병폐는 치유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여기에 시 주석 개인의 정체성 또한 시험대에 오른 형국이다.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덩샤오핑이 직접 낙점한 지도자들이다. 반면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선출된 유일한 주석이다. 과거로부터 자유스럽다 보니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노선 사이에서 입장 표명을 강요받고 있다는 관측이다.
중국은 내달 열리는 제18기 3중전회에서 새 지도부 노선을 정립하고 개혁의 큰 그림을 제시할 예정이다. 또 12월 26일은 마오쩌둥 탄생 120주년이다. 중국당국은 마오 주석이 생전에 자주 묵었던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을 비롯, 중국 전역에서 대대적 기념행사를 준비 중이다. 국가와 주석 모두 정체성 위기에 직면한 지금, 치열한 노선대결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세계는 촉각을 곤두세운 채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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