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교장선생님은 불교철학자이며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입니다. 경북 상주(尙州)에서 태어나 같은 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습니다. 경희대학교 상경계열에 다니면서 철학을 엿보다가,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불교철학을 연구하여 석·박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저서에는 <무(無)를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와 <깨달음의 신화> <한국 근대불교의 타자들>이 있고 박사학위 논문은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과 정통성 형성에 관한 연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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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으로부터 <선(禪)>에 대한 설명을 들어봅니다.
선은 불교의 역사 속에서 부각된 개념입니다. 하지만 불교에 갇히지 않습니다. 선은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세상을 가로질러 나가려는 모든 형태의 몸부림입니다.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은 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禪)이라면 불교에만 한하여 있는 줄로 아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불교에서 선을 숭상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선을 일종의 종교적 행사로만 아는 것은 오해다. 선은 신앙도 아니요, 학술적 연구도 아니며, 고원한 명상도 아니요, 침적(沈寂)한 회심(灰心)도 아니다. 다만 누구든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요, 따라서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필요한 일이다. 선은 전인격의 범주가 되는 동시에 최고의 취미요, 지상의 예술이다. 선은 마음을 닦는, 즉 정신 수양의 대명사다."
선(禪)이라는 한자어는 본래 인도어 드하야나(Dhayana)를 번역한 것입니다. 드하야나는 인도인들이 보편적으로 했던 마음수행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발음이 낯선 동아시아인들의 귀에는 '지아나'로 들렸고, 들리는 대로 한자로 옮겨 '禪那'라고 적었다가 '禪'이 되었습니다. 선은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이 불교와 밀접하게 결부된 이유는, 인도의 문화 전통 가운데 동아시아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불교였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인들이 인도에서 불경(佛經)을 들여와 읽기 시작한 시기는 2세기 중반경입니다. 이 무렵부터 시작해서 무려 4백년 넘게, 불교를 흡수하고 이해하고 다시 구축하는 일에 당시 동아시아의 최고 엘리트들이 총동원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경을 구하기 위해 사막을 걸어서 넘나들다가 가끔은 살아서 돌아왔지만 대개 길에서 숨졌습니다.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혜초(慧超, 704~787)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8세기 경, 불교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일단락되면서 이제 동아시아인들을 불교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정체가 바로 선종(禪宗)입니다.
선종은 '더 이상 부처는 없다'(殺佛)는 깃발을 내걸고 중국 당나라 시대에 등장했습니다. 그 이후로 선은 불교의 대명사처럼 되었습니다. 선종의 선은 드하야나를 모방하거나 복제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선종의 선은, 드하야나가 도외시했거나 가지 않은 길을 화두(話頭)를 통해 모색했습니다. 화두는 말(言語)입니다. 말이 선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경이로운 일입니다. 말을 통해 모색된 선은 인도인의 선이 아니라 동아시아인들의 선이었으며, 이를 통해 선은 더욱 새로워지고 넓어졌습니다.
박재현 교장선생님은 <선불교학교를 열며> 이렇게 말합니다.
선불교학교에서는 '마음'과 '세상' 그리고 이 둘을 이어주는 '말'(言語), 이 셋을 큰 주제로 삼아 학기별로 번갈아 가며 진행합니다. 먼저 <선과 마음>에서는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과 치유에 대한 인도인과 동아시아인들의 관점을 역사적 살펴보고, 마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려고 합니다. 중국 선(禪)의 가장 특이한 점은 말의 등장에 있습니다. 따라서 <선과 말(言語)>에서는 화두를 중심으로 말과 관련된 선의 통찰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마지막으로 <선과 세상>에서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상황을 선(禪) 인문학적 관점에서 파악해보고 함께 생각해 봅니다.
2012년 가을학기 강의 주제는 <선(禪)과 마음>입니다. 11, 12월 금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총 8강으로 열립니다.
<선(禪)과 마음>
제1강(11월 9일) 고통이란 무엇인가
고통의 인과관계에 대한 인도인들의 식견은 깊고도 놀랍습니다. 고통을 대하는 인도인들의 기본적인 관점과 불교에서 보는 고통의 방정식을 살펴봅니다.
제2강(11월 16일) 고통은 어떻게 치유되는가
위빠싸나(觀)와 사마디(止)는 인도의 사유전통에서 만들어진 마음수련을 통한 고통 극복 방법이고, 현대사회에서도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습니다.
제3강(11월 23일) 공(空),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또다른 관점
고통과 치유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과(因果)관계의 문제입니다. 인과관계를 왜곡하면 거짓이거나 잘못된 결과를 초래합니다. 공(空)이론을 통해 인과관계의 또 다른 면모가 어떤 것인지 살펴봅니다.
제4강(11월 30일) 심신(心身) 관계에 대한 이해
흔히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옳은 말일까요? 이 말에는 마음과 몸 사이의 인과관계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몸이 아파도 스트레스가 증가됩니다.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도 인과관계가 성립됩니다. 현대의학과 철학에서, 마음과 몸의 관계가 어디까지 규명되었는지 살펴봅니다.
제5강(12월 7일) 치유(힐링)의 신화
현대에서 선은 치유 혹은 힐링(healing)이라는 명칭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방송계와 종교계는 물론 학계에까지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수행, 치료, 치유, 카운슬링, 자기계발 등에 관해 포괄적으로 살펴봅니다.
제6강(12월 14일) 고통을 둘러싼 또다른 조건들
동아시아인들이 느끼는 고통의 문제는 인도인들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어쩌면 전혀 상반되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동아시아 사회상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제7강(12월 21일) 인간의 고통에 대한 선(禪)의 역할은 무엇일까
화두(話頭)는 선에서 인간이 고통을 대처하는 방식으로 제안된 것입니다. 선에서는 고통을 어떻게 이해했고, 화두를 통해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제8강(12월 28일) 선문답의 기능
선은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단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우치도록 유도합니다. 그 전형이 선문답(禪問答)입니다. 선문답이 사람의 마음에 작동하는 경로를 살펴봅니다.
강의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인문학습원 강남강의실에서 열리며 자세한 문의와 참가신청은 인문학습원 홈페이지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을 이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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