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 교장선생님은 영화평론가입니다. 그는 <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에서 학위(라우레아)를 받았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출강하며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평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이번 가을강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페라를 이탈리아에서는 그냥 멜로드라마라고도 부릅니다.
오페라의 내용이 19세기에 발달한 멜로드라마의 스토리들을 주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장르 모두 19세기에 그 발달의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치명적인 사랑, 불같은 분노와 복수, 운명에의 굴복, 죽음으로의 종결 등 멜로드라마가 주로 발달시켰던 감정 과잉의 격렬한 스토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더욱 애절한 비가(悲歌)로 발달했습니다.
멜로드라마와 오페라에 들어 있는 사랑의 통속성은 20세기 영화사에서 고스란히 계승됩니다. 장르 영화로서의 멜로드라마라가 그 주인공입니다.
사랑 때문에 울고 우는 이야기들이 일정한 공식을 가진 드라마로 발전했고, 그 과정에서 19세기의 멜로드라마가 대거 참조됐습니다.
'통속적'이라는 말에는 폄하의 태도가 들어 있는데, 사실 뒤집어 보면, 우리가 대단히 자주 반복하기 때문에 그런 수식어가 생긴 것입니다. 따라서 반복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실에 혹은 진실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억울하게 죽는 사람을 보면 '통속적'으로 눈물을 보이지 않은가? 다시 말해, 통속적이라는 말은 우리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속성인 셈입니다.
멜로드라마는 바로 이 '통속성'에 기댄 작품들입니다. 우리의 삶과 너무 비슷하여 보고 있기 무안할 때도 있습니다. 숨기고 싶은 우리의 진실을 까발리기 때문입니다.
이번 강의는 이런 멜로드라마의 특성으로서의 '통속성'을 주로 보겠습니다.
단, 오페라를 잘 이용하고 있는 영화들로 한정했습니다. 그럼으로써 멜로드라마 장르의 특성을 확인할 것입니다.
베르디와 푸치니, 그리고 이탈리아 작곡가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멜로드라마의 특성을 살펴보겠습니다.
모두 7강으로, 유명한 오페라 작품과 관련 영화를 연계해서 강의가 진행될 것입니다.
가을학기 강의는 11, 12월 매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총 7강으로 열리며 강의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화와 오페라-멜로드라마와 이탈리아 오페라의 통속성>
제1강[11월 7일] 주세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와 멜로드라마의 구조적 특성
첫 시간은 가장 유명한 오페라인 <라 트라비아타>의 스토리 분석을 통해, 오페라 멜로드라마의 구조적 특성을 학습한다. 오페라의 드라마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 일반적인 특성을 알아보는 시간이자, 이번 강의의 기초가 되는 시간이다. 특히 오페라의 가사는 어떤 시적 특성을 갖고 있는지, 또 19세기의 표현법은 어땠는지도 알아본다.
제2강[11월 14일] 자코모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 제임스 그레이의 <투 러버스>
제임스 그레이의 멜로드라마 <투 러버스>는 허영의 불꽃을 좇는 순진한 남자의 사랑이야기다. 남자는 미국에 사는 러시아계 유대인인데, 그의 상대역으로는 너무나 도시적인 금발여인이 나온다(기네스 펠트로 분). 누가 봐도 자신의 상대로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여성인데, 남자는 무조건적인 사랑에 매달린다. 그런 무모한 사랑의 감정을 강조하기 위해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가 이용됐다. 자신의 파멸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고 마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다.
제3강[11월 21일]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세니에>, 조나단 드미의 <필라델피아>
<필라델피아>는 편견에 맞서는 어느 변호사의 이야기다. 유명 로펌의 전도유망한 변호사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속절없이 파괴될 운명이다. 그것도 미국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도시, 필라델피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인공으로 나온 톰 행크스의 테마 음악처럼 쓰인 곡이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세니에>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사랑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내용을 담은 오페라이다.
제4강[11월 28일] 주세페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
비스콘티의 <센소>는 영화의 오페라 이용과 관련해서 고전으로 평가 받는 작품이다.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한 비스콘티 감독이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를 이용하여, 오페라의 텍스트를 영화의 텍스트로 중첩시키는 고전적인 사례를 선보이고 있다. '영화와 오페라'의 테마에서 보자면 필견(必見)의 영화이다.
제5강[12월 5일] 알프레도 카탈라니의 <라 발리>, 톰 포드의 <싱글맨>
톰 포드의 <싱글맨>은 사랑하는 연인을 잃어버린 남자(콜린 퍼스 분)가 표현하는 애도의 드라마다.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남자는 자살을 고민한다. 말하자면 죽음과 사랑을 맞바꾸려는 병적인 심리다. 죽음을 각오하는 마음, 이를 표현할 때 영화는 카탈라니의 오페라 <라 발리>를 이용한다. 역시 사랑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는 오페라이다.
제6강[12월 12일] 자코모 푸치니의 <라보엠>, 조 라이트의 <어톤먼트>
영화 <어톤먼트>는 영국의 신성 조 라이트 감독의 멜로드라마다. 운명의 장난처럼 뒤틀린 사랑의 비극이다. 비극적 종결과 비교되는 도입부의 사랑의 눈부신 황홀은 푸치니의 <라보엠>으로 표현돼 있다. 푸치니 오페라의 격렬한 선율이 효과적으로 드러난 영화다.
제7강[12월 26일] 주세페 베르디의 <오텔로>, 우디 앨런의 <매치 포인트>
우디 앨런은 주로 코미디를 만드는 감독이다. 그런데 간혹 <매치 포인트> 같은 멜로드라마도 내놓는다. 영국의 런던을 배경으로 한 치정극이다. 과욕과 질투가 사람들을 갉아 먹는 내용이다. 그런 질투에 방점을 찍기 위해, 질투의 테마로 유명한 <오텔로>를 이용하고 있다. 오페라의 주인공인 오텔로와 이아고는 모두 질투 때문에 파괴되는 삶을 산다.
<참고도서>
한창호 지음 <영화와 오페라> 돌베개 펴냄, 2008
* 강의 일정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한창호 교장선생님은 <영화학교를 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이야기합니다.어떤 영화는 1천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합니다.이쯤 되면 우리는 영화를 좋아하는 문화를 가진 것처럼 해석해도 될 듯합니다.그런데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영화가 급격하게 산업화되다 보니, 취향도 닮아간다는 점입니다. 생산자는 잘 팔릴만한 비슷한 것들을 찍어내고, 소비자는 또 그런 익숙한 영화들을 선호합니다. '영화 문화'에도 표준화의 규칙이 지나치게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이러다보니 우리는 만날 할리우드 영화 아니면, 할리우드 흉내 낸 충무로 영화에 길들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영화들이 개봉되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곳으로 쏠려가는 것이지요.문화는 본능적으로 동일한 것을 거부합니다.그렇다면 우리의 영화 문화는 과연 문화의 테두리 속에 넣을 수 있을까요?<영화학교>에서의 만남을 통해 영화를 즐기는 다양한 감각을 (되)찾아내고 발전시켜 봅시다.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즐기려면 일정한 문학 공부가 필요하듯,자신의 영화 감각을 발전시키는 데도 어느 정도의 영화 공부가 필요합니다.영화 보기의 스펙트럼도 넓혀야겠지요.우리 관객들의 다양한 취향을, 다양한 그대로 되돌려 놓는 데 <영화학교>는 소금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화문화가 '문화'라고 이름 붙여도 부끄럽지 않을 개성 있는 색깔을 가졌으면 합니다.<영화학교>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봅시다.
이번 강의는 모두 7강으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인문학습원 강남강의실에서 열립니다. 자세한 문의와 참가 신청은 www.huschool.com 또는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으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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