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룡 교장선생님은 동국대 대학원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한 후 인도 마드라스대 라다크리슈난연구소(석사), 델리대 대학원(박사)을 졸업했습니다. 'EBS 세상보기' 강좌를 통해 심원한 인도의 사상과 문화를 쉽고 생동감 있게 다룬 바 있습니다. 라다크리슈난의 명저 <인도철학사>(전4권)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저서로 <아름다운 파괴> <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와 공저로 <논쟁으로 본 불교철학> <구도자의 나라> <몸 또는 욕망의 사다리> 등이 있습니다. 현재 선문대 통합의학대학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 인도학교 |
이거룡 교장선생님은 말합니다.
마하뜨마 간디에게 삶의 지침서였던 <바가바드기따>는 흔히 '힌두교의 바이블'로 통합니다. 원래 서사시의 일부로서 사촌형제들 간의 왕위쟁탈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상은 우리 모두가 겪는 내면의 전쟁을 드라마틱하게 다루고 있으며 이점에서 <바가바드기따>는 인류정신사의 고전이라 할 만합니다.
인간 내면의 난적 집착, 증오가 어떻게 극복되는가에 초점을 두어 강의를 진행하려 합니다. 또한 <바가바드기따>에서 해탈에 이르는 길로 제시되는 지혜의 요가(inana-yoga), 믿음의 요가(bhaki-yoga), 행위의 요가(kama-yoga)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논하려 합니다.
2012년 봄학기는 3, 4월 강의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총 8강입니다.
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류정신사의 고전 <바가바드기따>... 인도사상의 원형을 찾아서
제1강[3월 6일]<바가바드기따>소개
제2강[3월13일]제1∼2장 아주르나의 고뇌
제3강[3월20일]제1∼2장 아주르나의 고뇌
제4강[3월27일]제3장 까므라 요가 행위의 길,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행위
제5강[4월 3일]제4장 갸나요가 (지혜의 길)
제6강[4월10일]제5∼6장 명상 (행위,행위의 포기, 행위의 결과에 대한 포기)
제7강[4월17일]제5∼6장 명상 (행위,행위의 포기, 행위의 결과에 대한 포기)
제8강[4월24일]제7∼8장 상끼야 철학과 요가수행, 브라흐만에 이르는 길
* 강의교재 : <바가바드기따>, 길희성 번역(현음사 2004)
* 참고문헌 : <인도철학사2>, 이거룡 번역(한길사 2000)
이거룡 교장선생님은 <인도학교를 열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비행기가 어떻게 땅에서 뜨는지, 어떻게 하늘을 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앞 날개에 제트엔진이 달려 있어서 마치 고무풍선에 가득 채워진 바람이 일시에 빠질 때 풍선이 일정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비행기도 그렇게 이륙하고 비행한다는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지요. 아마 중학교 때였던가, 비행기 동체는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하여 '듀랄루민'이라는 가볍고 단단한 합금으로 만든다고 배웠는데,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군요.
설사 그렇다 해도, 아무리 날개에 성능 좋은 제트엔진을 달고 듀랄루민으로 가벼워진 몸이라는 것을 안다 해도, 막상 활주로에 몸을 뉘인 그 큰 덩치를 보면, 탑승구 앞에서 기다리는 그 많은 사람들과 이미 실었을 그 무거운 짐들을 생각하면,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하늘을 난다는 사실은 여전히 불가사의처럼 느껴집니다. 그 큰 덩치의 이륙과 비행은 저에게 다만 기적으로 다가올 뿐이지요.
무거워진 몸을 느낄 때, 시시각각으로 내리누르는 시간의 무게를 느낄 때마다 저는 활주로 위에 맥없이 누운 비행기를 생각합니다. 도무지 뜰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큰 덩치가 땅을 박차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도무지 뜰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나의 현존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문득 이 무거운 중력을 떨치고 이륙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생각해 보면, 비행기는 그냥 뜨지 않습니다. 도무지 그 큰 덩치를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작은 바퀴 세 개로 노심초사 활주로까지 기어가서, 온 몸을 떨며 땅을 박차고 날아오릅니다.
비행기라고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땅을 버리지 않는 한 하늘을 얻을 수 없습니다. 누구든 무엇이든, 일정한 방향과 목표를 지니는 한 온 몸을 떨며 휘청거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노력하는 한 방황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지요. 그러나 괘도를 상실하지 않은 휘청거림, 그 서투른 몸부림의 궤적은 차라리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여 년의 인도 공부를 통하여 저는 체념과 초월의 경계를 넘나드는 숱한 구도자들의 아름다운 몸부림을 보았습니다. '길 위의 삶'을 보았습니다. 살아있는 자만이 그을 수 있는 신선한 궤적도 보았습니다. '살아있다'는 말은 '괘지 않고 흐른다'는 말이며, 흐름은 한쪽으로 기우뚱할 때 일어나는 것이지요.
기우뚱한 균형은 위험하지만, 살아있는 흐름을 원한다면 기우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삶이 기우뚱하지 않다면, 그래서 위험하지 않다면, 죽음이 오기 전에 이미 죽어있는지도 모릅니다.
고인 물이 그렇듯이, 흐르지 않는 삶은 결국 썩게 됩니다. 의식이란 미래로 이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흐르지 않으면서 흐름을 생각하기 때문에 썩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의식은 지금 이 순간에 있지 않을 때 썩기 시작합니다. 시루에 담긴 콩나물은 썩지 않고 잘 자라지요. 물이 지나가는 순간 온몸의 촉수를 뻗어 영양분을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언제 다시 물이 지나갈지 모르고, 다음 순간이 보장되어 있지 않을 때, 콩나물은 오히려 건강하게 자라납니다. 순간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예 콩나물을 물에 담가두면 금방 썩어버리지요. 내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일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순간이 느슨해진 것입니다. 누구든 무엇이든 현재의 순간이 느슨해지면 썩기 마련입니다.
고대 인도의 수행자들이 끊임없이 유행(遊行)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심지어 자이나교에서는 한 곳에서 이틀 이상 머리를 눕히는 것을 금했습니다. 어디엔가 머문다는 것은 다만 다시 떠나기 위한 멈춤일 뿐이니까요. 걸식이 식사의 기본원칙이었던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에서 내일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삶일지라도, 스스로가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며 사는 것이 수행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누구든 무엇이든 괜찮은 놈이 잘 썩기도 합니다. 음식은 잘 썩어야 괜찮은 음식이지요. 만일 빵을 샀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면, 그 빵은 먹을 수 없는 빵입니다. 식물도 괜찮은 놈들이 잘 썩습니다. 난이 그렇고 콩나물이 그렇지요.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괜찮은 사람이 잘 썩습니다. 세간에 닳고 닳은 사람은 잘 썩지도 않더군요. 저는 마음바탕이 괜찮고 민감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잘 썩는다고 생각합니다.
잘 썩는 사람들 중에는 이른바 성직자나 수행자들도 포함됩니다. 쓸 만한 바탕을 타고 났기 때문에 성직자가 되고 구도의 길을 떠나지만, 그 누구보다도 썩기 쉬운 이들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독 성직자나 수행자들에게 엄격한 계율이 강조되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편안한 일상에 만족하는, 안전한 사람들은 잘 썩지 않기 때문에 굳이 이런저런 계율이 필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폐인이 될 가능성이 적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또한 안전한 사람들은 초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적습니다.잘 썩는다는 것은 쉽게 전환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위험합니다. 위험하다는 것은 '초인'이냐 '폐인'이냐의 기로에 서있다는 말입니다.목을 꺾고 죽을 수도 있는가 하면 또한 찰나 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도 있는 순간이 바로 위험한 순간입니다. 위험하다는 것은 '피하라'는 말이 아니라, 다만 '조심하라'는 말일 뿐이지요. 위험하다고 피하기만 한다면 삶은 무의미할 뿐이겠지요. 삶이 위험하지 않다면, 가슴 떨리는 삶도 있을 수 없습니다.
초월과 명상, 신비주의와 요가로 대변되는 인도의 사상과 문화는 참된 자아를 발견하고 차원 높은 영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위대한 발자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2008년 가을에 문을 연 인도학교는 인도사상의 입장에서 오늘날 우리의 사유방식과 문화를 짚어봄으로써, 물질만능의 왜곡된 가치관이 지배하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데 그 뜻이 있습니다.
이번 강의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인문학습원 강남강의실에서 열리며 자세한 문의와 참가신청은 인문학습원 홈페이지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을 이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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