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구룡령 옛길(4.4km).
구룡령은 강원도 홍천과 양양 사이에 있는 높은 고개(해발 1,013m)입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길목으로, 아홉 마리 용이 구비구비 휘저으며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굽이친다고 하여 구룡령(九龍嶺)이라 부른답니다.
지금은 포장도로여서 자동차로 단숨에 넘지만, 옛날엔 이 고개를 걸어서 넘어야만 했습니다. 바로 옆 숲속의 구룡령 옛길입니다. 산세가 험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보다 길이 완만하여 동해안 사람들이 한양을 오갈 때 주로 이용하던 길이었다고 합니다. 등짐장수들이 영동의 해산물과 영서의 농산물을 부지런히 져 나르던 길이기도 합니다.
▲ 부드러운 백두대간길 Ⓒ두발로학교 |
이 길은 오랫동안 잊혀졌으나 현지 주민들의 노력으로 다시 살아난 길입니다. <구룡령 옛길>은 문화재청이 명승 제29호로 지정한 <문화재길>이기도 합니다. 구룡령 옛길을 포함해 문경새재, 문경의 토끼비리, 죽령 옛길 등이 우리나라 4대 명승길로 등재돼 있습니다.
구룡령 옛길의 단풍길은 화려하지만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옛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오롯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가을의 단맛을 더해줍니다.
옛길은 신비한 원시림 속을 용이 굽이치듯 고불고불 흐르며, 길의 중간중간에 위치를 표시하던 횟돌반쟁이, 묘반쟁이, 솔반쟁이 등이 자리하여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줄 뿐 아니라 옛 이야기까지 전하고 있어 옛길 걷기의 향기가 가득합니다.
구룡령 옛길은 56번 국도 구룡령 고갯마루가 들머리입니다.
10월 29일 이른 아침인 6시 10분, 학교 버스는 서울을 출발합니다(6시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뉴신명관광 <두발로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8시 30분쯤 구룡령 산 아래 마을인 삼봉자연휴양림 앞에 도착, <통나무산장>에서 된장찌개백반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구룡령에 오르면 10시쯤 됩니다.
▲ 구룡령 옛길 정상 사거리 Ⓒ두발로학교 |
구룡령에서 백두대간에 올라 약 40분쯤 부드러운 능선을 타면(1.2km) <구룡령 옛길 정상 사거리>(1,089m)와 만납니다. 산길로서는 꽤 넓은 공간으로 옛날 고개를 넘던 사람들의 '쉼터'였습니다. 여기서 직진하면 백두대간길로 갈전곡봉에 이르고, 좌측으로 내려가면 홍천군 내면 명개리에 닿으며, 우리는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양양쪽으로 계속 내려갑니다. 본격적인 구룡령 옛길에 접어듭니다.
옛길은 구절양장으로 흘러가지만 쌓인 낙엽이 너무도 폭신해서 오랜만에 원시림 속을 걷는 맛을 만끽하게 합니다. 사방은 온통 가을색으로 완연한데 주변에선 새소리,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에 낙엽 밟는 소리만이 귀를 간지럽게 합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험준했을 이 길은 이렇게 옛 사람들의 무수한 사연이 담긴 발걸음으로 인해 순해졌다."
약 40분쯤 걸어 내려가면 <횟돌반쟁이>와 만납니다.
횟돌은 자연석으로 양양 지역 장례 풍속에서 하관시 횟가루로 땅을 다질 때 갈아서 썼습니다. 이는 양양 지역의 독특한 매장 문화로서, 나무뿌리가 목관을 파고드는 걸 예방하는 지혜였습니다. 행인들이 쉬어가던 이곳에서 횟돌이 나왔다 하여 <횟돌반쟁이>라 불렀다 합니다. '반쟁이'는 반정(半程)에서 유래된 말로 두 지점의 '중간'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다시 20분쯤 가면 이번엔 <솔반쟁이>입니다.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곳의 울창한 숲은 양양의 자랑거리이며 구룡령의 금강소나무는 특히 유명하여 경복궁 복원에 사용된 바 있고 송이를 비롯해 산림자원이 풍부하다 합니다.
이어서 <묘반쟁이>입니다.
조선시대 양양과 홍천의 수령이 각각 출발하여 만나는 지점을 경계로 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양양의 한 청년이 수령을 업고 빠르게 달려 홍천군 내면 명개리에서 만나자 그곳을 경계로 정했답니다. 그러나 청년은 돌아오는 길에 지쳐서 죽었으므로 그 공적을 기려 묘를 만들었다 하여 <묘반쟁이>라 전하며, 당시의 묘는 옛길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구룡령 옛길이 끝나갈 무렵, 옛길은 우리를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수백년 된 금강소나무들이 도열하여 우리를 환송하는 장면은 가히 장관(壯觀)입니다. 그저 탄성(歎聲)을 남길 뿐입니다.
▲ 금강소나무의 위용 Ⓒ두발로학교 |
구룡령 옛길을 빠져나와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 닿으면 대략 12시 30분.
우리는 <갈천약수가든>에서 오리요리에 막걸리를 곁들여 점심식사 겸 뒤풀이를 한 후 버스로 약 10분 이동하여 미천골에 닿습니다.
미천골 입구에서 미천골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선림원지(禪林院址)까지 왕복 4km를 산보 삼아 걷습니다. 미천골 계곡은 약 7km에 달하며 곳곳에 크고 작은 폭포가 만들어내는 수려한 계곡미는 전국적으로 유명합니다.
선림원지는 신라시대의 아름다운 옛 절터로, 양양 진전사지와 더불어 한국 선종(禪宗)의 개화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폐사지로 꼽힙니다. 선림원은 804년(애장왕5년) 무렵 순응(順應)법사가 세운 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순응법사는 802년 해인사를 세웠는데, 이로써 선림원이 신라 불교 최대 종파였던 화엄종에서 세운 사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선림원은 이후 9세기 중엽 홍각선사에 의해 대대적으로 중수되었는데, 홍각선사는 선종임으로 선림원이 이때 선종 사찰로 전향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85년 동국대 발굴조사단은 900년 전후에 대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절터가 완전히 매몰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부도비와 석등, 삼층석탑 등은 1965년에 복원한 것입니다.
문화재로는 선림원지 삼층석탑(보물444호), 선림원지 석등(보물445호),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보물446호), 선림원지 부도(보물447호)가 있으며, 이밖에 800년경의 것으로 보이는 금은동불입상과 금동풍탁, 납석제소탑, 귀면와, 암막새 기와, 수막새 기와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이 절에 있었던 신라 범종은 양식이 독특하여 한국 범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였으나 6·25전쟁 때 불에 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선림원지는 1982년 강원도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미천골의 미천(米川)이란 이름도 선림원의 공양미를 씻은 물이 온 계곡을 뿌옇게 물들였을 정도라 하여 붙여졌다 합니다. <자료 출처 : 양양군, 홍천군, 문화재청, 네이버백과사전, 강원도 걷기여행, 대한민국 걷기여행111 등>
▲ 가을맛을 더해주는 구룡령 옛길 Ⓒ두발로학교 |
구룡령에서 백두대간-구룡령 옛길-미천골-선림원지까지 약 8.4km의 그림 같은 단풍길을 걷고 나면 오후 3시 30분쯤. 두발로학교는 서울로 향합니다.
이날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등산복/배낭/등산화), 스틱, 무릎보호대, 식수, 윈드자켓,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 자외선 차단제, 헤드랜턴, 개인용 깔개,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두발로학교 제9강 참가비는 8만원입니다(왕복 교통비, 2회 식사와 뒤풀이, 여행보험료,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십시오.
전형일 교장선생님은 언론인 출신으로 오랜 동안 일간지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 외국기업체에 재직 중이며, 원광대학교 동양철학박사 과정중입니다. 그는 틈틈이 여기저기 <걷기의 즐거움>에 몰입하며 <걷기의 철학>에도 빠집니다.
교장선생님은 <두발로학교를 열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걷기>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걷기 코스의 명소들이 생겨나고 <걷기 동호회>도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각 지자체들이 고유의 <길>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이 한동안 잊었던 <걷기의 가치>를 되살리고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의 즐거움과 건강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직립보행(直立步行) 이후 걷기를 멈춘 적은 없습니다. 최소한 집안이나 사무실에서도 걸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걷기가 새삼스럽게 각광을 받는 이유가 뭘까요.
성경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길을 본받는데, 길은 스스로 그러함(자연)을 본받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길>에서 이처럼 종교적 진리나 철학적 깨달음 같은 거창하지는 않지만, 길을 걸으면서 내면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고 합니다. 경치를 구경하며 생각할 수 있고, 미지(未知)의 것을 기지(旣知)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레베카 솔닛의 저서 <걷기의 역사>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의사가 둘 있다.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말이다. 몸과 마음이 고장날 때 나는 이 의사들을 찾아가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 다시 건강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장 경제적이고 신체에 부담이 적은 운동을 택한 것이 <걷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속도와 능률이 지배하는 세상에, 목적에 대한 부담을 덜고 걷기를 통해 느림의 미학으로서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사람마다 걷기를 통해 찾고자 하는 의미와 기쁨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 함께 찾으려는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 <새로운 경관> <자연을 즐기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의 세 가지가 아닐까요.
<두발로학교>는 <아름다운 길 걷기> 전문학교입니다. <두발로학교>에서 세 마리 '토끼몰이'를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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