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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원초적 본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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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리산의 원초적 본능>을 찾아서

[알림] 10월 국토학교가 가는 <높은 산, 넓은 산, 깊은 산>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계절, 국토학교(교장 박태순, 소설가) 제27강이 10월 8(토)∼9(일)일 1박2일로 우리 영산(靈山) 지리산 일원에서 열립니다. 답사 주제는 <지리산의 원초적 본능>, 답사 키워드는 <높은 산, 넓은 산, 깊은 산>입니다. 신라 최치원이 조성했다는 아름다운 숲 함양의 상림(上林)으로 들어가, 오도재-벽송사-서암정사-한신계곡 트레킹-실상사 석장승-성삼재-석주관 칠의사 묘-칠불사-쌍계사 일대를 탐방하는 코스입니다.

▲지리산에서 바라본 섬진강Ⓒ황헌만

박태순 교장선생님의 <답사지 배경 설명>을 들어봅니다.

올라가는 지리산(등산로)만 아니라 걸어 다니는 지리산(둘레길)이 또한 장관이라고들 한다. 산악인의 종주 등반 지리산과 더불어 둘레둘레 돌아다니도록 하는 입산자의 녹색 순환 탐방로를 새롭게 조성하고 있는 중이다. 산울림이 아주 높은 산이면서 동시에 산그늘이 대단히 넓은 산을 달리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원래 산을 찾는 이들을 두 유형으로 살필 수 있다고 한다. 사람(人)이 산(山)에 오르면 선인(仙人)이 되고, 반면에 사람(人)이 골짜기(谷)에 들면 속인(俗人)이 된다 했다. 높은 산을 찾는 선인과, 넓은 산을 맴도는 속인을 지리산은 예로부터 모두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지리산에는 '청학동'이라는 이상향이 있다고 전해 오는데, 청학동 찾아내려는 도사들 사이에 떠도는 문자가 있었다.



깨달은 사람은 들어올 것이고(有知覺者入),
깨닫지 못한 사람은 들어오지 못한다(無知覺者不入).
먼저 들어온 사람은 돌아가고(先入者還),
알맞게 들어온 사람은 흥하고(中入者輿),
늦게 찾아온 사람은 미치지 못한다(末入者不及).




지리산은 높은 산, 넓은 산이로되 실은 그 고갱이의 <깊은 산>이야말로 이 산의 본령이었다. 하련만 오늘에는 '별유천지 두류산'의 본디 본색을 찾을 수 없다. 현대인은 이미 모두 말입자(末入者), 곧 '늦게 지리산을 찾아온 사람'으로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성모의 지리산, 경학(敬學)의 지리산(남명 조식)은 물론이려니와 흥부와 놀부가 누렸던 활인(活人)의 지리산, 변강쇠와 옹녀가 마지막으로 터를 닦아보려 했던 유랑민의 지리산이 모두 오리무중이다. 김동리의 <역마>라든가 황순원의 <잃어버린 사람들>, 또는 박경리의 <토지>와 같은 '지리산 스토리'의 스토리텔링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고 있다. 그러함에도 지리산(맥)은 여전히 이 산 자체의 거대 서사를 품어 안고 있다. 자연-생태-환경의 탈산업사회 녹색담론과 대지모신-수류화개-청산별곡의 산악숭배 표상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송출하고 있다.



주위 둘레 8백여 리의 지리산은 외지리(함양-남원 일대의 북지리)와 내지리(하동-산청 일대의 남지리)로 구분 짓기도 하는데, 실은 구례 삼도봉 계곡 일대를 <중지리>로 편입시키기도 해야 할 일이다. 칠선계곡, 백무동계곡, 한신계곡, 벽소령계곡, 뱀사골계곡 (외지리)/ 성삼재, 왕시리봉계곡, 피아골(중지리)/ 불무장등, 화개동천, 대성동계곡, 삼신봉계곡, 중산리계곡, 대원사계곡, 응석봉계곡 (내지리) 등은 저마다 특색 있는 계수미(溪水美)를 뽐내지만 어떠한 '지리산 도사'라 할지라도 그 모두의 점입가경을 알아내는 수는 없다.



<지리산의 원초적 본능>…, 1박2일의 압축 여로로서는 '말초적 본능'의 끄트머리 자락들에서 헤맬 밖에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지리산의 원초성, 그 '산악문화'가 어찌 되는지 먼발치에서나마 체현해보려고 해야 할 터이다. 유산가(遊山歌)의 옛 곡조는 유장하였지만 네오 노마드(신유목) 시대의 유산가는 '오래 된 미래'의 꿈을 아로새기는 희망가의 가락이 되지 않을 수 없을 듯도 하다. 녹색 굶주림으로 고달파하는 전국전토 회색 군집지역 주민들이 마음 비워 발품 팔아볼 수 있는 명산대천을 어디에서 따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지리산의 품 안에 드는 이들마다 감탄사를 붙인 <아! 지리산> 탐험으로 탄성을 지르게 되는 까닭이다. 만산홍엽의 가을 지리산은 자신의 생명공동체 해방구를 사람들에게마저 개방해놓는 중이려니….

제27강의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0월 8일(토)>

07:00 출발 (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 지하철역 6번 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유진관광 <국토학교> 버스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10:20-11:00 함양 상림 '시산제' (함양읍 대덕리)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부임했을 적에 고을을 휘감아 도는 위천(渭川; 남강 상류)이 범람하곤 하는지라 호안림(護安林)으로 하천의 위쪽과 아래쪽에 상림(上林)과 하림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하림은 남아 있지 않으나 상림에는 지금껏 온대 낙엽활엽수림이 울창한데 그 면적은 7만여 평 가까이 된다. 녹색산하 지리산(맥)의 들머리가 되면서 만산홍엽 단풍시즌 개막을 알리는 명소로 각광 받는 이 수림부터 찾아서 조촐하게 '시산제(始山祭)'를 드린다.

11:20-12:00 오도재 드라이브 (함양읍 구룡리 ~ 마천면 구양리)

경남 함양과 전북 남원을 잇는 옛길인 팔량치(八良峙)는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이루던 고갯마루였는데(진평왕 시대), 신라 산성 터가 남아 있기도 하다. 여덟 굽이를 맴돌아 나간다 하여 '여드랑 고개'라 불렸는데, 서동(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 개선 행진곡이 울려 퍼지던 고개이기도 했다.

함양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여드랑 고개 쪽으로 가다가 1033번 지방도로로 빠지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백선'의 하나로 뽑힌 <지안재>가 나온다. 이어서 깨달음의 잿길인 <오도(悟道)재>로 들어서게 된다. 이 옛길이 2004년에 새롭게 포장도로로 개통되었는데 정상에는 <지리산 조망공원>을 조성하여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산악군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게 한다. <지리산 제1관문>이라는 현판의 문루를 우뚝 세워놓았는데 김종직이라든가 김일손의 두류산 기행문에도 나오는 길목이었다. 오도재(773m)를 넘어서면 등구(登龜) 마천(馬川)을 지나 지리산 들머리로 들어선다. '등구재'는 거북이 잔등에 오르는 형상의 잿길이고 '마천'은 신라 군마 방목장이 있었던 곳이라 해서 생겨난 지명이다.

최근에는 마천면 소재 금대산(847m)의 금대암에 이르는 산길을 아스콘 도로로 포장했는데 소형차밖에는 다닐 수 없어 이번에는 올라가지 못한다. 금대암 전나무 벼랑바위에서는 정령치-만복대의 서북능선과 반야봉-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뻗는 주능선이 맞물려 우진각 지붕 형태를 이루고 있음을 전망해볼 수 있다. 지리산 들머리는 호남선 열차를 타고 남원역에서 내려 운봉-인월-실상사 쪽으로 다가가는 코스라든가 구례구역-화엄사-노고단 산행 및 산청 중산리계곡-천왕봉(1915) 등반이 대종을 이루고 있었지만, 대전-진주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그 산악문화 환경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이번에 누려본다.

▲ 상림 사계(四季)Ⓒ함양군

12:20-13:00 점심식사 (마천면 추성리 <칠선산장>)

13:20-14:00 벽송사-서암정사 탐방

칠선계곡은 선녀탕 칠선폭포 등 7개의 폭포와 비선담 등 33개 용소(龍沼)들을 건사하는 18km의 심산궁곡인데 비선담∼천왕봉 구간은 산행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선녀탕에는 천상하강의 일곱 선녀와 미련한 곰, 그리고 애틋한 사향노루에 얽힌 전설이 전하는데 금강산의 '선녀와 나무꾼' 전설과 대조하여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칠선계곡 들머리가 되는 추성리 일대는 천하잡놈 변강쇠와 잡녀 옹녀가 전국 장승들의 노여움을 받아 징치 당하는 '가루지기타령'의 본 무대로 알려져 오는데 벽송사 입구 쪽의 한 쌍 목장승을 그 증거로 내세우기도 한다. 파르티잔(빨치산) 시절에는 저들의 야전병원이 설치된 적도 있었다는 산악요충지의 환경이기도 하다.

황폐했던 벽송사는 새롭게 디자인되고 부속 암자로서 조영된 서암정사는 흡사 중국의 불교석굴을 연상시키게 한다. 주지 스님이 꼼꼼히 15년 동안 금니 사경(金泥 寫經)한 화엄경 80경 본권이 전시되고도 있는데 그 길이가 1.3km에 달하는 두루마리 형태의 서책이다.

14:30-17:30 한신계곡 트레킹(계곡 입구에서 가내소폭포까지)

외지리의 대표적인 등산로로서 백무동계곡 코스는 장터목으로 닿게 하고 그 서쪽 골짜기의 한신계곡 코스는 세석고원에 오르게 한다. 10km의 한신계곡은 도처에 폭포와 소(沼)들을 갈무리하여 숨겨놓은 자연경관, 곧 비경(秘景)의 파노라마를 펼쳐놓는다. 본류 외에도 덕평봉의 바른재골, 칠선봉의 곧은재골, 장터목의 한신지계곡에서 내려오는 네 갈래의 물줄기가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의 가내소폭포 쪽에서 합수된다.

곡류의 개울은 단애절벽을 감돌아 흐르는데 울창한 숲길을 2㎞ 정도 오르면 20여 개의 물줄기를 이루어 쏟아져 내리는 첫나들이폭포(바람폭포)가 나온다. 다시 1㎞를 더 가면 폭포수와 넓은 반석, 밀림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가내소폭포에 닿게 된다. 이어서 오층폭포(또는 오련폭포), 한신폭포 등의 절경지에 잇닿게 되는데 청산 유람객들은 가내소폭포에서 발길을 멈추어 충분하다. "골짜기 좋다고 깊게 들어가다가는 호랑이 만난다" 하는 속담이 있듯이 승경(勝景)에 도취되는 데에도 절제가 요청되는 법. 시인 정규화(1949∼2007)의 <지리산가1>이라는 시를 읽어본다.

산이 되어보지 않은 사람이/ 산보다 앞서서/ 산의 뜻을 짐작할 수 있으랴//
사람 사는 얘기로/ 가슴 맺히면/ 골짜기로 기어들어가도/ 하늘을 제압하고픈 날이면/ 등성이를 추스렸다//
한번 웃으면 청학이 와서 놀았고/ 한번 성을 내면/ 산비탈마다 즐비하게 해골이 뒹굴었다// (…중략…)
마음을 씻자면 저 산을/ 내려와야 하는가 올라가야 하는가/ 이제 지리산이 대답할 차례다


▲ 한신계곡의 가을Ⓒ함양군

18:00 저녁식사 겸 뒤풀이(마천면 강청리 <느티나무산장>)

20:00 취침(느티나무산장)

강청 마을은 백무동 골짜기의 청암산 끝자락에 놓인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골이 깊어 늦게 해가 뜨고 일찍 해가 진다. 두메산골의 물소리, 바람소리와 밤별 하늘의 맑은 고요함을 누려보려 한다.

<10월 9일(일)>

07:00-07:40 아침식사(느티나무산장)

08:00-08:20 실상사 입구 석장승 탐구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실상사는 신라 후기의 '9산 선문(禪門)' 중에서도 최초로 개창된 유서 깊은 가람임을 내세우고 최근에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의 중심도량임을 자임하고 있다. 지리산 지킴이 역할을 도맡아온 이 사원 입구의 해탈교에는 3기의 석장승이 세워져 있다. 다리 건너기 전의 1기의 석장승은 여장승이 분명한데 홍수로 인해 남장승은 떠내려갔다 하기도 한다. 남성권력의 지리산 탐방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지리산 에코페미니즘(생태여성주의) 문화기행'이 요청되기도 한다. 이 산에는 성모의 석상이라든가 선녀의 전설바위, 포한의 할머니 장승, 그런가하면 산짓당(山祭堂)과 굿당을 비롯한 기층문화 유산들이 산재하는데 과연 어떠한 모계사회의 소망을 표상시켜오는지 탐지해보고 싶기 때문.

08:50-09:10 성삼재 전망대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해발 1,102m)

마한 시대에 성씨가 다른 3인의 장군이 지키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性三峙)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마한 효왕의 궁궐이 있었다는 달궁[月宮], 그런가하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마한의 정장군이 지키고 있었다는 정령치(鄭嶺峙) 등의 험산준령이 1988년의 포장도로 개통으로 모두 '도로변 지대'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삼남 지역의 교통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하고 지리산 8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는 <노고단 운해(雲海)>를 턱밑에서 전망해볼 수 있게 한다.

09:50-10:20 석주관 칠의사 묘역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혈류성천(血流成川) 위벽위적(爲碧爲赤)…", 피가 흘러 강을 이루니 푸른 물이 붉게 물들었다는 문구가 전망의병(戰亡義兵) 추념비에 새겨져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의 수천수만 평민 의병들에 관한 추모는 더 이상 없고 다만 이들을 이끈 일곱 명 의병장을 기리는 칠의각과 영모정 그리고 칠의사 묘역만 왕조시대에 성역화 되었다. "일장공성만골고(一將功成萬骨枯)…", 한 장군의 승전 공로는 일만 병사들의 해골로 이루어진다는 옛 문자를 떠올리게 한다.

석주관과 피아골(또는 피내골) 일대는 정유재란만 아니라 고광순 의병장이 이끄는 한말의병전쟁의 전적지였으며, 그리고 6.25 전쟁 전후에는 지리산 파르티잔 유격전이 전개되기도 했던 곳이었다. 따라서 방문자들이 유념해 보아야 할 것은 지리산과 섬진강이 절묘하게 조응하여 요충지를 이루게 되는 이 일대의 정치군사지리학 관측이며 더 나아가서는 석주관의 지리산 산악문화와 섬진강 대하서사가 국토의 삼남지역을 어떻게 갈무리해 놓고 있는지 탐구해보아야 하는 테마이다.

11:10-11:50 점심식사 (하동군 화개면 탑리 <화개장터>에서 자유식)

김주영의 역사소설 <객주>는 전통시대에 전국 5대 장시(場市) 중의 하나였던 화개장터를 주요 무대로 삼고 있고 영화감독 고(故) 하길종의 <한네의 승천>은 이 산골의 당제와 동제에서 제재를 채택했던 명화였다. 정약용은 섬진강이 두치강으로 불렸으며 화개장터는 두치진 장시라 하였다고 밝히는데 여러 여행시편을 남겼다.

석주관 일대가 지리산의 '울음주머니'라면 화개동천 일대는 문자 그대로 화개수류, 수류화개의 '지리산 꽃대궐'을 이룬다. 하건만 근대 산업문명은 화개면 일대의 '문화역사지리학'을 변질시키고 왜곡시킨 측면이 없지 않다. 남해 바다로 통하던 수운 교통이 막히고, 산악-평야-바다의 생산물들을 함께 모으던 물산집산지역의 '장시문화'가 해체되었으며 경승지의 풍광이 흐트러지고 '벚꽃축제' 등의 관광 상업-산업지역으로 세속화되었다. 오늘에는 매순 1일과 6일에 열리던 5일장 풍광은 사라지고 '먹거리 시장'이 되어 있는데 대형 식당보다는 뒷골목 주전부리의 자유식을 선택해본다.

12:20-12:50 칠불사 탐방 (화개면 범왕리, 해발 830m)

가야의 김수로왕과 허황옥 사이에 10남2녀의 자식이 있었는데 장남은 왕위를 계승하고 2남과 3남은 어머니의 성씨를 계승하여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고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외숙부 따라 지리산으로 들어와 칠불암(사)에서 성불하였다 한다. 이와 함께 거문고의 명인 옥보고가 세웠다는 구름 위의 다락, 운상원(雲上院)에 어린 신선도 전설이 있고, 한국 다도(茶道)와 관련된 다인 열전이 전해오고, 그런가하면 한번 불을 데우면 한달 이상 따뜻하였다는 구들방 아자방(亞字房) 축조 설화가 있다. 여러 차례 소실되고 훼손되었다가 복원되는데 속세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탈속 명상공간의 '동국제일선원(禪院)'임을 자부한다. 그러함에도 이 사원의 고색창연한 '정신문화사' 계승이 어찌 이루어지고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배후의 산록 쪽으로는 불무장등, 피아골, 반야봉, 토끼봉 등의 능선과 닿아 있고, 앞쪽으로는 쌍계사-의신-빗점골-대성동계곡-세석고원의 산행로를 저장시키고 있다. 지리산의 깊음 속에서도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세월 잊고 서울 일 모두 잊고 푹 빠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어찌 표현해볼 수 있을까. 서산대사가 이곳의 운상선원에 주석하였던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의 다시(茶詩)를 읽는다.

밤에는 잠 한 숨 (夜來一場睡)
낮에는 차 한 잔 (晝來一椀茶)
청산과 백운 더불어 (靑山與白雲)
무생(無生) 화두를 내어 놓네 (共說無生話)


13:20-14:50 쌍계사 일대 탐방

최치원의 친필 시집이라는 <화개동 시편>에 관한 야사가 전해 온다. 1591년(선조 24년)에 어떤 노승이 지리산 골짜기를 헤매다가 바위틈에서 책을 발견했는데 구례군수 민대륜(閔大倫)이 이를 입수, 지봉(芝峰) 이수광에게 감정 의뢰를 하였다는 것이다. 최치원이 지은 시이며 또 그의 친필이라고 추정했다는 것. 16수 중 8수가 전해오는데 첫 수(首)만 옮겨놓는다.

동쪽 나라 화개동은 항아리 속의 별천지라 (東國花開洞 壼中別有天)
신선의 옥 베개를 밀어내니 벌써 천년이 지났네 (仙人堆玉枕 身世炯欻千年)


▲ 쌍계사 풍광Ⓒ하동군

쌍계사 입구 석문광장에는 최치원 친필이라 전하는 바위 글씨가 새겨져 있기도 한데 '쌍계(雙溪)'라는 각자(刻字)와 '석문(石門)'이라는 각자다. 화개천의 물줄기와 불일폭포 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 하여 '쌍계'이지만 더 깊은 뜻도 있을 것이다. 쌍계사 일주문에는 '삼신산 쌍계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어찌하여 '지리산 쌍계사', '방장산 쌍계사'에서 더 내딛어 '삼신산'을 내세우는 것일까. '석문'은 무릉도원 전설과 관련이 있다. 복사꽃을 따라가다가 폭포 안 쪽으로 나 있는 '석문'을 지나가야만 비로소 도원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니, 쌍계사의 화개동천은 곧 도연명이 갈망하던 곳과 같은 이상향이라는 것.

청학동이 과연 지리산 어느 골짜기에 있는가 하는 수수께끼 문답은 최치원이 이를 퍼뜨린 이래로 고려시대의 한유한, 이인로라든가 조선시대의 김종직, 김일손을 거쳐 최근의 이른바 도사들에 이르기까지 의도적인 미스터리 담론으로 계속돼 오고 있다. 대체로 쌍계사 뒤쪽의 불일폭포 일대에서 하동 악양면의 악양루 일대에 이르는 심심산천의 어느 산록일 것이라고 추정해 두고자 한다.

그러함에도 '청학동'은 신비의 베일에 휘감겨 있어야만 하는데, 실은 지리산록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모르는 것이 약이고, 아는 것이 병"이라는 속담은 지리산을 다녀올 적마다 느끼게 되는 감회인데, 오늘의 산업문명은 지리산을 너무 까발려 놓고 있다는 탓을 아니 할 수 없는 터이다. 지리산 관광 아니라 지리산 유산(遊山)을 기약해보는 까닭이다.

쌍계사 일대 탐방은 목압마을로 들어가 고요한 산중 암자 국사암을 거쳐 쌍계사에 이르는, 가을에 한번쯤 걸어보고 싶은 오솔길을 밟는다.

14:50 서울 향발

국토학교 10월 참가비는 20만원입니다(교통비와 숙박비, 4회 식사, 입장료, 여행보험료, 강의비,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홈피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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