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 교장선생님은 영화평론가입니다. 그는 <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에서 학위(라우레아)를 받았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출강하며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평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이번 가을강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영화와 미술의 관계를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영화 속으로 들어온 미술의 역할을 보겠습니다.
그림이 스크린 속으로 들어올 때는 작품 자신의 정체성을 다 갖고 오겠지요.
테마를 강조하기 위해,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서 등, 이유는 많을 것입니다.
그런 사례들을 보며 시각예술의 대표적인 두 장르인
영화와 미술의 관계를 살펴봅니다.
근대예술이 시작된 르네상스부터 19세기 낭만주의까지,
시대 순서에 따라 미술 사조의 변화를 주목하며,
미술과 영화 미학과의 근친성을 보겠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림이 살아나고, 그래서 영화도 더욱 생기를 얻는,
예술의 역동성을 주목합니다.
가을학기 강의는 9, 10월 매주 수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총 8강으로 열립니다.
강의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화는 미술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 르네상스부터 낭만주의까지>
제1강[9월7일] 르네상스의 초상화와 영화
교회의 권위에 도전했던 르네상스. 이를 완곡하게 표현하면 휴머니즘입니다.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인본주의가 주목받습니다. 종교화 속 성인들의 모습도 점점 사람을 닮아 갑니다. 중세 종교화의 천상의 인물 같은 이미지 대신, 이웃집 사람 같은 인물들이 성인으로 등장합니다. 예수마저 이웃 청년처럼 등장합니다. 그런 변화의 의미와, 변한 이미지의 영화 속 이용을 보는 시간입니다.
제2강[9월 14일] 바로크와 심리드라마
17세기 바로크의 빛과 그림자의 대조를 봅니다. 명암의 극명한 대조법이지요. 카라바지오, 렘브란트 같은 화가들의 시대입니다. 한 줄기 빛이 어둠을 가르는 긴장된 분위기가 캔버스에 넘칩니다. 영화로 치면 1940년대 특히 유행했던 '필름 누아르'의 미학과 닮았습니다. 범죄를 숨기기 위한 어두운 공간, 그러나 죄의식을 침투하는 얇은, 하지만 치명적인 빛의 미학이 있습니다. 이런 대조법은 더 나아가 어둠의 심리를 강조하는 드라마에서도 절묘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갑니다.
제3강[9월 21일]바로크와 리얼리즘
바로크 시절 바야흐로 세상은 종교와 멀어집니다. 물론 북부 유럽의 이야기입니다. 그림에서 종교가 사라지고 세속의 일상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네덜란드의 베르메르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떠올리면 됩니다. 부엌에서 매일 벌어지는 대단히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행위들이 그림의 테마가 됐지요. 얼마 전만 해도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살벌한 그림들이 대세였는데 말입니다. 청소, 빨래 같은 별로 중요할 것 같지 않은 행위들이 그림의 테마가 됐습니다. 영화에서도 이런 행위들이 중요하게 다뤄질 때가 있지요. 프랑스 누벨바그 시절 '일상의 리얼리즘'으로 해석됐던 에릭 로메르의 작품들이 있고, 또 영국의 '키친-싱크 리얼리즘'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무엇이 닮았고, 무엇이 다른지 보겠습니다.
제4강[9월28일] 미술관에 갔었다
영화에는 미술관 장면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은 미술관에서 사랑이 싹트는 것이지요. 꼭 그렇게 낭만적인 장면만 있는 건 아닙니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같은 스릴러 감독은 미술관에서 살인을 상상하기도 합니다(<드레스드 투 킬>). 러시아의 알렉산더 소쿠로프 같은 감독은 미술관 안에서만 영화 한 편을 다 만들기도 합니다(<러시아 방주>). 미술관이 영화 속에서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 보겠습니다.
제5강[10월 5일]로코코의 풍경과 영화
18세기 로코코 미술은 보고만 있어도 입가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시각적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지요. 모차르트가 화려한 옷을 입고, 은빛 가발을 쓰고, 빛이 충만한 정원에서, 분수를 배경으로, 멋진 춤곡을 연주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그런 시절이 로코코의 배경입니다. 18세기 배경의 시대극들은 대체로 로코코의 이런 화려함을 십분 이용합니다. <아마데우스> 같은 영화들 말입니다. 시각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추구하는 영화들을 보겠습니다.
제6강[10월 12일] 신고전주의의 정치성
1789년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납니다. 공화국이 건설됩니다. 현대 사회의 출발은 그곳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지요. 신분제가 무너지고, 시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은 그때 출발했지요(그 정신이 실현되는지는 차치하고). 예술이, 특히 미술이 정치의 최전선에 설 때입니다. 다비드의 그림이 미술계의 중심에 등장할 때입니다. 다비드, 앵그르 같은 화가들의 활약과 그런 그림에 관련된 영화들을 봅니다.
제7강[10월 19일] 독일낭만주의와 무의식
예술의 주인공으로 '밤'이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때입니다. 암흑에 세상은 알 수 없는 매혹을 느낍니다. 그 밤을 배경으로 광기는 춤을 추고, 악마가 등장하고, 유령이 매혹적으로 보일 때입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세상 속에 빠져드는 것이지요. 미몽의 세상을 아름답게 그린 화가들, 그런 영화들을 봅니다.
제8강[10월 26일]고야의 어둠
낭만주의의 밤의 매혹은 고야의 그림에서 절정에 도달합니다. 광기와 악몽으로 세상은 검게 변했지요. 계몽주의가 이성의 깃발을 들자마자, 세상의 한 곳은 비이성의 광기 속으로 추락합니다. 고야는 그런 암흑의 고발자이자 목격자입니다. 어둠속에서 더욱 잘 드러나는 통제되지 않는 욕망들이 들끓습니다. 오로지 고야의 세상을 경험하는 시간이 될 겁니다.
한창호 교장선생님은 <영화학교를 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이야기합니다.
어떤 영화는 1천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영화를 좋아하는 문화를 가진 것처럼 해석해도 될 듯합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영화가 급격하게 산업화되다 보니, 취향도 닮아간다는 점입니다. 생산자는 잘 팔릴만한 비슷한 것들을 찍어내고, 소비자는 또 그런 익숙한 영화들을 선호합니다. '영화 문화'에도 표준화의 규칙이 지나치게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다보니 우리는 만날 할리우드 영화 아니면, 할리우드 흉내 낸 충무로 영화에 길들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영화들이 개봉되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곳으로 쏠려가는 것이지요.
문화는 본능적으로 동일한 것을 거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화 문화는 과연 문화의 테두리 속에 넣을 수 있을까요?
<영화학교>에서의 만남을 통해 영화를 즐기는 다양한 감각을 (되)찾아내고 발전시켜 봅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즐기려면 일정한 문학 공부가 필요하듯,
자신의 영화 감각을 발전시키는 데도 어느 정도의 영화 공부가 필요합니다.
영화 보기의 스펙트럼도 넓혀야겠지요.
우리 관객들의 다양한 취향을, 다양한 그대로 되돌려 놓는 데 <영화학교>는 소금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화문화가 '문화'라고 이름 붙여도 부끄럽지 않을 개성 있는 색깔을 가졌으면 합니다.
<영화학교>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봅시다.
이번 강의는 모두 8강으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인문학습원 강남강의실에서 열립니다. 자세한 문의와 참가 신청은 www.huschool.com 또는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으로 해주세요.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