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강은 남한강의 빼어난 경관인 부라우나루터에서 출발해 아홉사리과거길-도리마을을 걸은 후 홍일선 시인이 살고 있는 도리마을에서 그의 <남한강>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어 충주 고구려마애불상군을 거쳐 하늘재(계립령)를 걸은 후 장회나루에서 구담봉-옥순봉을 선상 유람한 다음 단양의 소백산 기슭에서 1박 합니다. 소백산 새벽 하이킹을 한 후 도담삼봉, 청령포, 김삿갓계곡을 답사한 후 어라연 만지나루 걷기로 마감합니다.
▲봄 햇살 받으며 걷고 싶은 부라우나루터 Ⓒ국토학교 |
박태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답사지 배경 설명>을 들어봅니다.
국토학교는 2009년 4월에 개교하여 매월 답사를 다닌 것이 24회 째에 이르렀고 개교 2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방방곡곡 국토산하를 함께 심호흡해왔던 여러분에게 동경(同慶)의 뜻을 바치면서 2주년 기념 특별여로를 마련한다.
국토학교 제1강은 <남한강 뱃길 따라, 영남대로 옛길 따라>라는 주제를 내세워 경강(京江)의 원류를 좇아 남한강 중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답사부터 했던 바 있었다. 산업화-도시화로 개변을 일으키고 있는 한강의 시간층을 되돌려 옛 선비들의 영남대로 수로와 육로의 노정이 어떠하였던지 더듬어보는 문화역사 기행이었다. 퇴계 이황의 기행문과 시편들을 살펴 그의 서울길-고향길 행로의 문화코드가 어떠하였던가 하는 것을 중심으로 추적해보고자 했다. 이번에 개교 2주년 특집으로 남한강을 새롭게 탐사해 보려고 하면서 먼저 환기하게 되는 것은 국토의 남한강, 남한강의 국토는 무궁(無窮)하고 아울러 무진(無盡)하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찾고 또 찾아서 다시 다녀보아야 하는 나의 국토, 나의 산하여.
똑같은 남한강 루트임에도 중복되는 코스의 반복이 아닌 일정표를 작성해본다. 더구나 지난 2년 사이에 남한강의 문화생태환경이 달리 변화되는 현상을 겪고 있다. 큰 사변(事變)이라 할 수 있는 국토개조사업이 남한강 일대에서도 급속히 진행되어 옛 황포돛대의 뱃길 추적답사는 커니와 전통마을의 문화역사기행 자체가 가능하지 않을 지경에 이르고 있다. 개교 때의 뱃길-옛길 탐방 방식과는 달리 이번의 2주년 기념 답사는 남한강 중상류의 생태환경이 품어왔던 국토인문주의를 새롭게 살펴보고자 하는 기획이다.
이에 무엇보다 먼저 환기해야 할 바가 있다. 서울은 한강의 혜택을 송두리째 받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더구나 그 소중함에 대해 도무지 아는 체를 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길치'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정녕코 서울시민은 한강에 대해 '강치(江癡)'의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메갈로폴리스에서 더 나아가 유비쿼터스의 가상공간이 돼버린 공룡도시 생활은 이 강의 장강대하 서경과 대지모신 서사를 아예 몰수해놓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청산과 유수의 감성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박제인간'들의 시민문화가 얼마나 곤핍할 밖에 없는 것인지 때로는 성찰할 필요가 분명히 있을 터이다. 노들섬에서 보트를 타서 강노래를 흥얼거리고, 뚝섬유원지에서 해수욕 못지않은 강수욕을 즐기고, 마포에서 돛배 띄워 행주산성 쪽으로 내려가며 천렵을 누리던 한강을 누가 앗아가 버렸나.
나옹(懶翁, 1320~1376) 선사는 여강(驪江, 여주 일대의 남한강 명칭)과 인연이 깊은 스님이었다. 그는 여수여풍(如水如風), 곧 물처럼 바람처럼 사는 자유자재의 삶을 예찬하였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蒼空兮要我以無垢)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聊無愛而無憎兮)
흐르는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하네 (如水如風而終我)
물처럼 바람처럼…, '녹색 삶'을 운위하지 않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깊숙이 새겨보아야 할 잠언이다. 비록 물 같이 바람 같이 살지는 못할망정 물은 흐르게 하고 바람은 막히지 말도록 해야 한다. 장강과 대하가 소용없게 된 국토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 서울, 경기, 충청, 강원으로부터 생명의 강, 한강의 젖줄이 시들게 되고 마는 일이 벌어진다면 이를 어찌 용납할 수 있겠는가. 일부 국토정치경제권력의 난개발, 막개발 행태를 질타하고 규탄해마지 않는 바이다.
남한강의 흐르는 물과 새재-월악산-소백산에 부는 바람을 정녕코 제대로 만나보고 싶다. 초원의 빛이 더욱 새록새록 새로워진 남한강 신록예찬 여로를 장만하여 강호의 제현과 고수들을 초청코자 하는 뜻은 이 강의 맑음과 밝음 그리고 아름다움을 한껏 누려야 할 책무를 다 해보고자 함이거늘….
▲하늘재 가는 길 Ⓒ김우선 |
<자료 : 문화생태의 강, 남한강 개념도>
삼한시대에서 초기 삼국시대에는 '아리수'라 하였는데 지금은 수도권 일대에 공급되는 상수도 사업의 명칭이 되어 있다. 백제 개국 당시에는 북한강-남한강 유역이 마한 54국의 영역이었고 475년에 고구려가 백제 위례성을 함락하면서 특히 남한강 일대는 3국 쟁패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고려 창업으로 개성이 왕경이 되면서 국토 중심부의 수운 교통 몫이 중요하게 되었고 이어서 조선 창업 이후로는 경강의 구실을 톡톡히 해내어 관선과 세곡선 및 상선이 내륙 뱃길과 외해 바닷길을 번성하게 하였다. 내륙 수로는 조운선, 경강선만 아니라 과거길, 부임길 수운의 고속도로 역할이 되기도 했는데 주요 나루들이 어찌 되었던가.
두모포와 동호
두모포(豆毛浦)는 한강 본류와 중랑천의 두 물줄기가 만나는 포구라 하여 '두뭇개(두물개)'라 부르던 데에서 나온 지명이다. 지금은 없어진 뚝섬과 저자도(닦섬)가 위쪽과 아래쪽에 놓이어 호수와도 같은 풍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강진 쪽에는 '독서당'과 별장들이 늘비하고 맞은편 쪽으로는 '압구정' 정자와 봉은사가 조영되어 녹색원림의 풍치를 연출하고 있었다. 독서당은 세종 시대에 궐내에 설치하였던 집현전을 되살린 것인데 경강의 경치 좋은 곳에 건물을 마련하여 벼슬아치들에게 휴가를 내주어 '사가독서'를 시키던 특별 수련원이었다.
경치가 좋아 '동호(東湖)'라고도 했다. 오늘에 동호대교는 있고 '독서당길'은 있지만 정작 독서당의 옛 자취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두모포는 아예 지명조차도 남아 있지 않은데 중랑천과 한강 본류가 만나는 곳에 있던 경마장을 이전시키어 '서울숲'이라는 명칭을 붙이기는 했어도 고급아파트촌이 되고만 있을 뿐이다.
동호 일원에는 백제의 왕성도 있고 고구려의 산성도 있으며 신라 진흥왕이 쌓은 성곽 유적이 남한산성에 남아 있기도 하다. 원효와 의상의 두타행이 강북의 북한산과 강남의 관악산에 어려 있고 사평강(沙平江, 오늘의 서울 강남 신사동 일대 한강의 고려시대 명칭)에서 돛배를 타고 고향인 여주로 내려가던 이규보의 풍류시 등도 전해온다. 특히 조선 성리학자들의 온갖 사연들을 담은 시서화를 통해 두모포 일대 경관을 재구성해볼 수 있다.
덕소, 팔당, 양평
경강이란 명칭은 하류쪽의 서강-용산-동호에서 상류쪽의 덕소-팔당-양평에 이르기까지 한강본류를 통칭하던 것이었는데 이로부터는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갈라져 나가게 된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노론 계열 기호학파와 남인 계열 근기학파 사족(士族)들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 생가(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쪽에 '실학박물관'이 새롭게 들어서기도 한다. 다산 생가 덕분에 덕소의 강변 경관이 흐트러지지 않았으나 그 맞은편 쪽에 있었던 홍대용과 박지원의 스승 격이던 미호(渼湖) 김원행의 '석실서원'은 제대로 보존되지 못한다.
양수리(兩水里)는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수머리가 되는 큰 포구였는데 남양주시 쪽도 양평군 쪽도 옛 자취가 없고 다만 '양수리 유원지'가 두물머리 전망대로서 조성되어 있다. 운길산 중턱에 자리 잡은 수종사에서 녹차를 마시며 옛 시편과 기행문들을 통해 두물 물굽이가 어제에서 오늘로 어떻게 흘러왔는지 조망해볼 수 있다. 제1강 답사 때에는 양수리유원지 탐방부터 했으나 4대강 사업으로 경관이 흐트러져 있는 관계로 이번에는 찾지 않는다.
이포나루, 파사산성
이포나루(여주군 금사면 이포리)는 북한강과 작별한 남한강이 본격적으로 곡창 평야지대의 젖줄이 되어주고 있음을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곧 여강의 들머리를 이룬다. 전통시대에는 이호(梨湖)라고 불렀던 배꽃나루였다. 강 언덕에는 여말선초의 이색, 박은이라든가 선비 수난시대의 김안국, 이황 등의 자취가 스며있었으나 모두 스러지고 썰렁한 정자 하나가 재건축되어 있을 따름이다. 인근의 파사산성은 남한강을 차지하는 자가 한국사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삼국쟁패시대의 군사요충지였다. 제1강 때에는 파사산성을 등정하였는데, 이포보(堡)의 건설 공사로 주변이 흐트러져 있어 이번에는 찾지 아니한다.
여주 신륵사, 조포나루
<들판이 넓으니 산은 멀다> 하고 옛 시인이 읊었던 것처럼 여주 일대는 평원을 이루어 제방을 쌓아볼 수 없는 환경이어서 홍수 범람이 잦곤 했다. 여주의 '여(驪)'라는 글자는 검은 말을 가리킨다. 그 전에는 '황려'라는 지명으로 불렸는데 홍수와 태풍을 일으키게 하는 황마와 흑마에 어린 전설이 있다. 신륵사는 두 신마(神馬)에게 재갈(勒)을 물려 홍수를 막게 하였다 하여 이런 사원 명칭이 붙게 되었다. 신륵사 강월헌에서 바라보면 맞은편 조포나루에 마암(馬巖)이라는 글자를 새긴 바위가 있어 '전설 따라 삼천리'의 사연을 음미해볼 수 있다.
조포(潮浦)나루는 남한강 5대 강항의 하나로서 세곡운반과 물자수송의 물류 중심지를 이루고 있었다. 명종의 어머니 문정황후라든가 한말의 민비 등은 여주 일대에 대농장을 운영하여 서울 경제권의 배후 실력자가 될 수 있었다. 1963년 10월 23일 남한강의 대홍수 범람으로 조포나루 참사가 일어난 후에 여주대교가 건설되었다. 국토학교 제1강 때에는 여주 일대를 방문하지 못하였는데 이번에는 이곳을 첫 행선지로 삼는다.
4월의 제24강 답사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4월 9일(토)>
07:00 서울에서 출발 (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유진여행사 <국토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09:00-11:30 여강 숲길-산길 트레킹
1) 09:00-09:40 부라우나루터 산책 (여주읍 단현리)
여주에는 이호나루(지금의 이포나루), 찬우물나루, 조포나루, 부라우나루, 흔암나루 등 수많은 나루터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아예 나룻배들조차 없다. 여주 여강 일대에서는 현재 서로 상반되는 두 계통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는 중이어서 특이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수자원공사는 여주 여강에 '강천보(堡)' 공사를 급속히 서두르고 있는데 단양쑥부쟁이 자생지 훼손을 비롯하여 환경 문제를 유발시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문광부는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조성사업에 착수하여 2009년 6월에 7개소를 지정할 적에 <여강길>을 첫 번째로 선정하였다. '남한강 따라가는 역사문화 체험길'이라 하였는데 신륵사와 조포나루 양쪽의 강변과 섬강 쪽의 강마을을 포함하여 55km에 걸쳐 생태탐방로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여강길' 일대에서 산업문명의 국토개조 사업 상황과 함께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녹색탐방의 '양극화 현상'을 함께 경험해 본다.
생태탐방로 여강길의 특징에 대해서는 "남한강을 따라 만들어진 나루터와 황포돛배도 체험하고 자연 그대로의 강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곳"이라는 해설도 붙여놓고 있는데 대표적인 루트는 <여강길 제1코스>로서 신륵사 강 건너편의 영월루에서 은모래금모래길(강변유원지), 부라우나루터, 아홉사리과거길을 거쳐 도리마을회관에 이르는 산책로이다. 현재 '강천보' 설치공사로 주변이 어지러워 찾지 아니한다. 그 아래쪽 부라우나루터에서 우만리나루터로 이어지는 강변길 또한 호젓하지는 못한데 '자연 그대로의 강길'이 아니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이 나루터 주위의 천연 강경(江景)은 참으로 수려한 경물(景物)들을 갈무리해놓고 있다.
부라우나루는 고려시대부터 이미 조성되었던 유서 깊은 도선장인데 나루 주변의 바위들이 붉은색을 띄고 있어서 이런 명칭을 얻었다 한다. 1975년 무렵에 아예 나룻배마저 사라져버리게 되었는데 부라우 마을에서 관리하던 배는 약 15m의 길이에 40여명이 승선할 수 있는 제법 큰 규모였다고 한다. '문화생태'의 복원이 이루어져 여강 뱃사공의 뱃노래를 들으며 나룻배 선유의 풍류가 가능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 10:00-11:40 아홉사리과거길-> 도리마을 트레킹
여주 점동면 우만리의 청소년수련관 주차장에서 트레킹을 시작하여 산길 따라 강나루길 따라 <아홉사리과거길>을 트레킹한다. 깎아지른 바위벼랑 리버사이드 풍광이 경승지를 이루는데 아홉 굽이의 모롱이길이라 하여 '아홉사리'라 한다. 문경새재나 죽령을 넘어 충주 거쳐 서울로 가는 육로 보행의 선비들이 지름길 삼아 넘어 다니던 고갯길이었다. 광해군 시절에 서양갑 박응서 등이 서얼 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문경새재에서 모반을 꾀하기도 하였지만 그들은 바로 아홉사리 인근 산록에 무륜당(無倫堂)이란 본거지를 마련하여 양곡 장만과 군사 훈련을 병행했다는 사연도 전해온다. 통행이 불편한 쪽이었기에 살아남게 된 자연 그대로의 옛길을 어떠한 녹색도로로 보존 존치시킬 수 있을까.
11:40-12:40 홍일선 시인의 <남한강 이야기>와 점심식사 (여주 점동면 도리마을)
농민시인 홍일선은 1981년부터 <시와 경제>라는 동인지의 멤버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채광석 황지우 김정환 김사인 박노해 김용택 나종영 정규화 등이 동인이었다. 농민문학의 본분을 지켜오던 그는 마침내 2006년에 서울 떠돌이살림을 접고 여주 도리(道里)마을로 귀농하여 정착하면서 새로운 농업인으로 거듭 태어났다. 자연 부화의 닭을 풀어 놓아 키우는 그의 '생명농업' 농장은 '바보숲 명상농원'이라 이름 짓고 그리고 자택의 택호는 '시화총림(詩話叢林)'이라 명명하였는데 홍 시인으로부터 <남한강> 특강을 듣는다.
아울러 시인의 부인이 마련한 특식 오찬 향응의 기회를 갖는다. 인문학습원의 <음식문화학교>에서 이미 다녀갔을 정도로 이 집의 '토종닭 상차림'은 전통음식문화의 진수와 진가를 그윽하게 음미해보게 한다. 제초제나 농약을 치지 않은 논농사와 우리 콩과 옥수수와 야채 농업, 그리고 집에서 담근 전통된장으로 조리된 식단은 아무에게나 제공되는 것이 아닌데 이번에 국토학교가 맛자랑 멋자랑의 향연(토종닭죽과 능사막걸리)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에 미리 사의를 표해 마지않는다.
13:40-14:10 충주 고구려마애불상군 (가금면 봉황리 햇골산)
경강, 여강 일대가 수도권에 포섭되는 유역이었다면 '국원(國原)' 또는 '중원(中原)'이라 하던 충주 일대는 남한강 수운과 조운(漕運)의 실제적인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경상도와 강원도와 충청도의 물산을 함께 모으는 여러 강항(江港)들을 거느리고 있는데다가 당색에 상관없이 명문세족들의 산림경제도 활발하였다. 하지만 남한강 수로와 새재 및 죽령의 육로가 모두 유명무실하게 된 탓에 영남대로 중요길목의 몫은 사라지고 중원 문화역사지리의 특성도 더 이상 발휘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고구려 국원성, 신라 중원경의 문화유적은 허전하게 방치되고 있으며 중원 고구려비-중앙탑공원-누암리 고분군-탄금대공원, 장미산성-충주산성-대림산성의 국토역사는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형편이다. 옛 국원성 일원의 문화생태탐방로 조성이 끽긴하다는 점을 일깨워둔다.
1978년 12월 1일에 발견된 햇골산의 고구려마애불상군(보물 1401호) 중에서 특히 고구려 반가사유상이 주목된다. 충주호-달래강-탄금호 일대는 삼한시대-삼국시대로부터 국토의 소울과 스피릿을 지녀오면서 동아시아 유불선 문명의 내륙 교역로이자 전파로를 이루어 왔다는 사실을 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충주강 일대의 고급문화역사 자원 발양이 요청된다.
14:40-15:30 하늘재(계립령) 트레킹 (충주시 미륵리∼문경시 관음리, 편도)
AD 156년에 신라가 백두대간을 관통시켜 개설한 계립령은 삼국 쟁패의 각축장을 이루었고 내륙국토의 파미르고원이기도 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고개 남쪽에 관음사가 있고 북쪽에 미륵사가 있어 대원령(大院嶺)이라 하였는데 조선 태종 때에 신작로라 할 새재가 개설되면서 역사의 뒤안길에 놓이게 되어 '하늘재'라 부르는 상것들의 통로가 된다. 월악산국립공원에서 옛 계립령에 '역사문화생태로'로서 숲길을 조성하였는데 이 고개를 넘어 포암산 들머리의 달마산성에 이르기까지 옛길 탐방의 기회를 갖는다. 문경시 관음리 쪽에서 다시 버스에 승차하여 901번 지방도로를 따라 문경읍-여우목-단양 동로-장회나루로 이동한다. 이 지방도로는 서라벌에서 계립령으로 닿던 신라시대의 군사도로 코스였을 것이라 추정한다.
16:40-17:20 장회나루에서 구담봉-옥순봉 선상 유람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장회나루는 낙동강 하회마을이라든가 영산강 회진나루처럼 강물이 크게 휘어져 도는데 구담봉과 옥순봉이 솟구쳐 있다. 빼어난 자연경관이 역사문화의 사연들을 굽이굽이 서려놓게 하는 명승지이다. 국립공원 측에서 산행로를 개방하여 제1강 때에는 옥순봉 트레킹을 하였으나 이번에는 선상 유람의 기회를 마련한다. 나제동맹으로 고구려군을 한강에서 몰아내려 할 적에 신라군이 단양의 적성산성을 장악하면서 충주 탄금대 쪽으로 진출할 수 있게 하였던 군사요충지이기도 했다. 백제 초기의 낭자곡성(娘子谷城)이라든가 신라 진흥왕의 행궁이던 하림궁(河臨宮)에 서려 있는 역사스페셜 스토리텔링에도 관심을 가져보기를....
▲옥순봉의 빼어난 자연경관. 하림궁은 어디쯤일까. Ⓒ단양군 |
<주변의 가볼만한 곳 : 단양읍 수변공원∼나루공원>
1985년 충주댐 완공으로 원단양(옛 적성산성)은 수몰되어 구단양이라 부르게 되고 상진나루 건너편 쪽에 신단양(지금의 단양읍)을 인공도시로 건설하였다. 그때의 도시디자인에 아쉬운 점이 없지 아니한데 도심 공간이 이미 협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강변 쪽으로는 수변공원과 나루공원을 조성하여 꽃 피는 봄철에 상춘 인파가 몰리는데 수변 오솔길 산책로가 알뜰한 쪽이다.
18:00-18:40 저녁식사 (단양읍 별곡리 <장다리식당> 마늘솥밥정식)
19:00 숙박 (단양읍 천동리 다리안국민관광지 소백산유스호스텔의 폭포펜션)
소백산 산행 코스는 단양 쪽의 다리안계곡과 새밭계곡, 영주 쪽의 희방사 계곡과 죽계 계곡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다리안 일대는 국민관광지로 조성되어 있는데 계곡의 들머리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소백산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해서 '다리안'이란 지명을 얻었다.
<4월 10일(일)>
06:30-08:00 소백산 다리안계곡 새벽 하이킹 (무지개다리->다리안폭포->대궐터 왕복)
'천상의 화원'이라 한다. 소백산 초여름의 백화난만 산야초 풍광은 거대한 녹색의 장원을 이룬다. 비로봉(1,439m)에서 제2연화봉(1,357m)-도솔봉(1,314m)으로 이어지는 코스, 또는 비로봉-국망봉(1,421m)-신선봉(1,389m) 코스가 모두 산악인에게 선호되는데 다리안 등산로가 첩경 코스라 할 수 있다. 새벽 입산으로 무지개다리-다리안폭포 일대, 또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대궐터 야영지(4.5km) 부근에 이르는 하이킹의 기회를 갖는다. 정상 오르기의 산악등반과는 격식이 다르다 할지라도 소백산 계수미(溪水美)에 한껏 가슴을 열어 푹 빠져보고자 한다.
08:00-08:40 아침식사 (소백산 유스호스텔에서 해장국백반)
09:00-09:30 도담삼봉 경유 (단양 매포읍 하괴리)
단양8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역사적 명승지인데 조선 창업의 설계사 정도전(鄭道傳)의 본명과 '삼봉'이라는 호는 이 도담삼봉에서 연유된다. 역대 시인묵객들의 영탄시가 끊이지 않는데 퇴계 이황 또한 이 강변에서 유숙하며 시 한 수를 남겼다.
산의 단풍잎 붉고 물은 맑아 모래까지 비치는데 (山明楓葉水明沙)
해 저물녘 도담삼봉에 저녁놀 드리웠네 (三島斜陽帶晩霞)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매어놓고 잠을 자려 하니 (爲泊仙橫翠壁)
별빛 달빛이 부글부글 금빛 파도에 너울거리더라 (待看星月湧金波)
도담삼봉 일대는 당연히 유원지로 조영되어 있으나 퇴계가 한껏 누렸던 옛 풍치를 살려내려는 쪽은 못된다. 충주댐-충주호로 인해 강의 환경이 달라진데다가 주변 풍경이 조잡해지고 엉뚱한 시설들로 너저분하게 되기도 하였는데 과연 누구에게 어찌 탓을 할 수 있으려는지 …, 강의 복판에 솟구친 세 바위 봉우리들만이 의연할 따름이다.
10:30-11:30 청령포 일주 (영월 남면 광천리)
영월 서강이 동강과 합류되기 직전에 크게 똬리를 틀면서 3면은 물길로 갇히도록 하고 1면은 단애절벽으로 가로막히도록 하여 천형(天刑)의 감옥소 형세를 만들어놓은 곳이 청령포이다. 왕위 찬탈로 내쫓은 어린 단종을 어떻게 이런 곳에 유폐시킬 궁리를 내었던 것인지 천험(天險)의 청령포 역사지리 사연에도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녹색경관이 잘 갈무리 되어 있는 테마파크의 유람에 그칠 따름이 되고 만다면 청령포 기행은 겉핥기에 머무는 것이 되리라.
영월 동강과 서강이 합류되면서 비로소 남한강 본류가 시작되고 '한강'이라는 이름도 처음획득하게 되는데 폐왕 단종의 청령포 유배 코스는 한강을 거슬러 오른 것이 아니었다. 영월 주천강-> 평창강 합수머리-> 영월 서강의 강줄기를 따라 내려온 것이었다. 주천강 일대에는 폐왕 유배 길에 어린 사연들이 전해져 오기도 하는데, 이 코스를 추적하고 아울러 장릉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사연도 포함하여 종합편성 '청룡포 단종애사 투어'를 기획해보고도 싶다. 안목을 약간 달리하여 새롭게 트이는 시야로서 청령포 남한강에 심취하기 위하여….
11:30-12:10 점심식사 (영월읍 영흥리 <장릉보리밥집>에서 보리밥정식)
12:30-13:10 김삿갓계곡 (영월읍 김삿갓면 와석리)
영월의 향토사학자(박영국)가 숨은 일꾼의 끈질긴 발굴 노력을 발휘하여 김삿갓(김병연, 1807~1863)의 묘소를 찾아내게 된 것이 1982년의 일이었다. 전남 화순 동복에서 작고한 부친을 둘째 아들이 후일 이장시킨 것이었는데, 영월 와석리 일대는 김삿갓이 어린 시절에 숨어 살았던 곳이기도 하였다.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차츰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이에 김삿갓 유적지 복원사업과 기념사업이 일어나게 되면서 강원-경북-충북의 끄트머리에 꽁꽁 숨듯이 틀어박혀 있던 골짜기의 산간벽지에 이변이 일어나는 형국이 되었다.
김삿갓이라는 코드는 신유목문화를 누리는 오늘의 한국에서 '방랑자, 방랑문화'를 표상하는 상징어사전이 되고 있는데 우선 '김삿갓계곡'이라는 새로운 지명이 생겨나게 되고 뿐만이 아니라 영월군은 하동면이라 하였던 행정명칭을 '김삿갓면'으로 개명까지 해놓고 있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에서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를 거쳐 강원 영월 와석리를 관통하는 자동차길이 개통되고 있는데 국토의 '최후의 오지마을'이 마침내 들통이 나게 된 데에는 '김삿갓계곡'의 문화콘텐츠 개발도 관련이 된다. 그런데 경제개발만 아니라 '문화개발'에서도 난개발은 피해야 할 성부르기는 하다. 수도권에서 비껴난 영월군은 <박물관 고장>을 추구하고 있어 문화고을로 거듭 태어나는 중이거니와 <김삿갓문화>를 보다 세련시키려는 노력도 있어야 할 듯….
13:30-15:30 어라연 만지나루 트레킹 (거운분교->탐방안내소->전산옥주막터->만지나루 왕복)
전장 65km의 영월 동강은 기다랗지는 않지만 파란만장의 곡류들과 첩첩산맥을 마냥 옥죄어 산천초목 모두 비명을 지르게 하니 국토 옥타브의 고음역 절창 공간을 이룬다. 정선아라리에서 영월 뗏목노래에 이르기까지 토박이들과 뗏목꾼 뜨내기들의 온갖 사연들도 켜켜이 쌓여 있는 기층문화도 주목을 끈다.
동강은 정선군 신동읍 귤암리-가수리-운치리-고성리 일대의 상류지역과 평창군 미탄면 일대의 중류지역, 그리고 영월읍 문산리-거운리-삼옥리 일대의 하류지역으로 분간해 볼 수 있는데 상류지역 쪽은 에코 트레킹 코스를 이루고 하류지역에서는 래프팅의 늦바람이 불고 있다.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거리는 여울목인 어라연(魚羅淵, 명승14호) 일대는 육로 통행은 도무지 불가능하고 험한 수로의 뱃길 왕래만 가능했었는데 황새여울-어라연-된꼬까리-만지나루의 급류에 어린 뗏목아리랑의 사연들이 절창이다.
우리 서방님은 떼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지나 가셨나
황새여울 된꼬까리 다 지났으니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상차려 놓게
* 전산옥(全山玉 1909∼1987)은 실존인물이지만 전산옥주막은 1970년데 초반에 사라졌고 집터 자리에 안내판만 세워져 있다.
▲어라연 탐방로. 국토학교는 거운분교에서 강을 따라 만지나루까지 왕복한다. Ⓒ영월군 |
'된꼬까리'에 건설하려던 영월댐 공사계획이 포기된 이후로 환경파괴 근심은 덜었으나 그 대신 환경오염 문제가 제기되는 중이다. 어라연 잣봉전망대(537m) 등산로가 새롭게 정비되었고 만지산, 완택산 및 그 맞은편 쪽의 백운산도 산악인의 애호를 받는데 다만 감탄사들이 너무 어지러울 지경이기는 하다.
동강 65km의 도돌이표 비경을 어찌 보존하고 아울러 지속가능하게 개발할 것인지, 그리고 보다 세련된 문화생태탐방의 차림표를 어떻게 장만해 보아야 할 것인지 거운분교의 섭세강에서 전산옥 주막터를 거쳐 만지나루, 또는 희망자에 따라서는 된꼬까리까지 느릿느릿 걷는 강변 산책으로 명상해보고 숙고해본다. 국토 속 오장육부로 들어와 내 인생의 오장육부는 과연 어떠할 것인지 헤아려보기도 하면서….
15:30 서울 향발
국토학교 4월 참가비는 19만원입니다(교통비와 숙박비, 4회 식사, 입장료, 여행보험료,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세요.
<국토학교 24강 답사지도>
국토학교의 지난 2년간 답사길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9년>
제1강 (4월): 남한강 뱃길 따라 영남대로 옛길 따라
제2강 (5월): 영남 전통마을 순례 (답사 키워드 - 산은 책이다)
제3강 (6월): 호남의 누정문화 원림문화 (풍경의 발견과 재발견)
제4강 (7월): 북강원의 요산요수 (동해안 풍류길 되살린다)
제5강 (8월): 내포지방에 부는 바람 (백제의 미소와 제2의 지중해)
제6강 (9월): 금강문화권의 초대장 (옛이야기 재잘대는 실개천 휘돌아)
제7강(10월): 낙동강 따라 가야 달빛기행 (우리 땅의 고고학 상상력)
제8강(11월): 만추의 호남 단풍길, 침엽수길 (대자연 소자연 합자연)
제9강(12월): 동해에서 묵은해 보내기 (동해용왕과 수로부인과 해신당)
<2010년>
제10강 (1월): 임진강의 봄, 한탄강의 봄 (분단유목문화 가로지르기)
제11강 (2월): 얼쑤! 대보름 달마중 가세 (봄맞이 카니발 : 아산 공주 청양 부여)
제12강 (3월): 순천만에서 섬진강으로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제13강 (4월): 남한강 상류 녹색체험 (주천강, 영월 동강, 정선 아우라지)
제14강 (5월): 북한강의 흐르는 강물처럼 (홍천강-소양강-파로호-내린천)
제15강 (6월): 호남평야 황톳길 순례 (동학의 지평선과 하늘)
제16강 (7월): 신(新)택리지-안성(安城) 탐구 (고은 시인, 이반-김억 화백 현지 특강)
제17강 (8월): 강화만-경기만 서머플레이스 탐방 (스토리 간직한 황해문화를 위하여)
제18강(10월): 호남 가을 풍광...빛의 축제, 흙의 축제 (광주비엔날레, 강진도자기아트프로젝트)
제19강(11월): 만추(晩秋)에 찾는 경주지역 세계문화유산 (서라벌 아고라의 사랑이야기)
제20강(12월): 남해 바닷가의 겨울나그네 (진주-남해-고성-통영 블루투어리즘)
<2011년>
제21강 (1월): 소백산에서…봄을 부르는 노래 (금선정-선몽대-병산서원-죽계구곡)
제22강 (2월): 서해안 남도길 해토머리 풍광 (고창-영광-함평-목포-신안 한바퀴)
제23강 (3월): 해남반도와 보길도의 별천지 꽃길 (하염없는 동백나무 숲속의 산책)
제24강 (4월): 개교 2주년 기념 남한강 스페셜 투어 (영혼의 강(소울), 생명의 강(스피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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