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민 교장선생님은 유명한 음식칼럼니스트로, <한겨레21>에 '김학민의 음식이야기'를 수년간 연재했으며, 최근에는 같은 주간지에 '김학민의 주류인생'이라는 술 칼럼을 연재한 바 있습니다. 음식 칼럼집으로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가 있고, 곧 술 칼럼집 <태초에 술이 있었다>가 나올 예정입니다.
제6강의 요점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수업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 출발지에서 교장선생님의 목멱산, 장충단, 수표교에 대한 간단한 강의
* 남산 소나무 숲 걷기와 전망대에서의 서울 풍수지리 맛보기
* 안중근기념관 관람과 안중근 의사의 비극적 가정사 뒷이야기
* 있는 대로 막 내주는 남대문시장 <막내횟집>의 쫄깃한 생선회 파티
제6강은 답사지가 서울인지라 좀 느긋하게 출발하겠습니다. 1월 15일(토요일) 오전 10시까지 지하철 3호선 동국대역 6번 출구의 지하철 구내(지하)에서 모입니다. 걷기에 좋은 등산화나 트레킹화를 준비하시고, 바람이 차가울 수 있으니 따뜻하게 입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출발에 앞서 교장선생님이 인사와 함께 남산 기행의 의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풍수지리에서 서울의 주산(主山)이 북악산이라면, 서울의 안산(案山)은 남산입니다. 남산의 원래 이름은 목멱산(木覓山)입니다. 나라의 안녕을 지켜주는 목멱대왕을 모신 국사당(國師堂)이 남산에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목멱산이 서울 남쪽에 있기 때문에 남산(南山)이 된 것 같이, 동네 남쪽에 있어 남산이 된 곳은 전국에 여럿 있습니다. 곧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된 것이지요. 서울시민 중 남산에 올라가 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도심지에 있어 남산을 다 안다고 생각하거나 중턱까지 길이 난 낮은 야산이라 시시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남산이 과연 그럴까요? 오늘 남산 기행이 그 해답을 드릴 것입니다."
[장충단(獎忠壇)과 장충단공원] 본래 장충단은 현재의 장충단공원을 포함하여 신라호텔, 국립극장, 자유센터, 타워호텔 터를 아우르는 큰 규모였다. 청계천의 수표교를 옮겨 놓았 고, 서울시유형문화재 1호인 장충단비가 있다. 장충단의 처음 위치는 유실되었으나, 지금의 장충단공원 남쪽 끝 어린이야구장 건너편 근처로 추정되고 있다. 공원 입구에 남아 있는 장충단비의 '奬忠壇'이라는 글씨는 순종이 황태자였을 때 쓴 것이며, 비 뒷면에는 민영환의 글이 새겨져 있다. 안쪽으로는 사명대사, 이준, 이한응, 유관순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서울시유형문화재1호 장충단비 |
장충단공원은 명성황후가 살해된 을미사변 때 순국한 충신, 열사들을 제사하기 위해 1900년 9월 고종이 '장충단'이라는 사당을 설치한 데서 비롯되었다. 고종은 어영청의 분 소로 서울의 남쪽을 지키는 남소영(南小營) 자리에 장충단을 짓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게 했다. 처음에는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 영관 염도희, 이경호를 주신(主神)으로 제향하고, 김홍제, 이학승, 이종구 등 장병들을 배향했으나, 다음해 궁내부대신 이경직을 비롯하여 임오군란, 갑신정변 때 죽은 문신들도 포함하였다. 그러나 을미사변을 일으킨 일본의 세력이 강성해지면서 1908년 제사는 중단되었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에게 살해되었을 때 '국민대추도회'라는 행사가 장충단에서 열렸다. 국민대추도회 추진세력들은 장충단에 이토의 사당을 짓고 추모제를 지냈다.
한일병합 후인 1919년에는 장충단 일대에 벚나무를 심어 일본식 공원이 조성되었다. 창경궁과 유사하게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가 위락시설로 바뀌었다. 일본은 공원에 상하이사변 때 사망한 일본군 육탄3용사의 동상을 세웠고,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절인 박문사도 1932년 인근에 세워졌다. 해방 후 일본 군인들의 동상과 박문사는 철거되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사당의 부속건물이 파괴되었다. 1959년 청계천이 복개되자 수표교를 철거하여 이곳으로 옮겼으며, 1969년에는 영빈관 내에 있던 장충단비를 수표교 옆으로 옮겼다.
1957년 5월 25일 자유당의 독재를 규탄하기 위해 야당의 국민주권옹호투쟁위원회 주 최로 서울 시민 20만여 명이 모인 시국강연회에서 여당과 결탁한 폭력배들에 의한 장충 단집회 방해사건이라는 정치테러사건이 일어났다. 1971년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 전 때인 4월 18일 장충단공원에서 100만여 명의 시민이 모인 가운데 김대중 후보의 유세가 있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결국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김대중은 "박정희에게 진 것이 아니라 이후락에게 졌다"고 말했다. 이후 유신체제가 시작되었다.
장충단공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곧 남산을 오르는 계단이 나오고, 계단을 오르다가 "이제 좀 쉬었으면..."할 때쯤이면 남산 순환도로와 만납니다. 거기서부터 국립극장까지는 시각장애인들의 달리기 코스로 유명합니다. 시각장애인들과 도우미들이 두 팔을 끈으로 묶고 땀 흘리며 뛰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국립극장을 지나면 곧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숲길이 나옵니다. 아스팔트 길에서 숲으로 빠지는 데크식 계단이 나 있어, 솔향기를 마시며 조금 느긋하게 정상으로 향합니다.
[남산(南山)] 높이 262m. 목멱산, 인경산, 마뫼 등으로도 불렸으며, 기반암은 화강암 이다.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 북쪽의 북악산과 함께 서울의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 다. 조선 태조 때에 이 산들의 능선을 따라 도성을 축성했으나 현재는 성곽의 일부만 남 아 있다. 산 중턱 아래와 위는 각각 완경사와 급경사를 이루며, 소나무·아카시아 등이 이 루는 수림경관이 훌륭하다.
수도 서울의 중앙에 위치하여 산정에서는 사방으로 펼쳐진 서울의 시가지를 둘러볼 수 있다. 서울타워를 비롯한 다양한 휴식공간과 도서관 등 여러 공공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총면적 2,971㎢의 산 일대가 시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910년에 처음으로 시민공원이 되었으며, 고종의 친필 비석인 '한양공원(漢陽公園)'이란 공원표지는 남산 소파길 옆에 보존되어 있다. 산정에는 조선시대 이래 봄과 가을에 제사 지내던 국사당과 통신제도에 중요한 구실을 한 봉수대가 남아 있다.
서울을 풍수지리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네 개의 산이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청와대 뒤 북악산이고, 서쪽으로는 인왕산, 동쪽으로는 낙산, 남쪽으로는 남산입니다. 남산 정상 봉수대 옆으로 조금 내려오면 서울 장안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 왜 조선의 건국세력이 서울을 수도로 삼았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남산공원 바로보기->http://namsan.seoul.go.kr/park/guide.jsp
안중근기념관을 거쳐 오후 1시, 랄랄라, 남대문시장 안 <막내횟집>에 도착합니다. 쫀득한 완도산 생선회에, 막 나오는 진미 반찬에, 김선자 사장님의 걸쩍한 입담에 술이 술술 들어갑니다. 집으로 가는 길, 오랜만의 남대문시장 구경은 이날 답사의 덤이지요.
음식문화학교 1월 참가비는 3만원입니다(식사비와 운영비 등 포함). 참가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세요.
김학민 교장선생님은 <음식문화학교를 열며> 이렇게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
최초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 그대로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불의 발견을 계기로,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슬기를 발휘하여 서서히, 또한 독특하게 식생활 체계를 세웠으니, 이것이 음식문화입니다. 이로써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로 진화되어, 각기 살고 있는 곳의 기후와 풍토에 따라 제각각의 음식문화권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음식문화의 자연스런 분화와 발전이 있었으므로,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규범을 흐트러트리지 않는 한, 한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먹든 그것은 그의 자유입니다. 또 특정한 먹을거리를 특별하게 먹게 된 것도 그 공동체 고유의 살아온 환경과 문화, 역사의 소산이므로 자기만의 잣대를 들이밀어 왈가왈부할 일도 아닙니다.
흔히 "모두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원초적 과제들을 의·식·주로 나누어 그럴 듯하게 분화하였지만, 그건 어느 정도 문명화된 시기의 이야기이고, 사실은 식(食)의 문제, 곧 먹을거리 문제가 인간 실존의 근원입니다.
먹을거리 문제는 질서와 규범 속에서 평화롭게 조절돼 가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매일 매일의 사회면 기사의 행간을 뜯어보면 그 이면에는 모두 먹는 문제가 개재되어 있고, 국가 사이의 전쟁, 민족 사이의 분쟁도 땅과 자원의 문제가 대부분을 차지하니, 그 끝을 파보면 결국 먹는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맛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먹을거리 문제의 극단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그러나 먹을거리의 질과 독점을 둘러싸고는 계속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거대 식품산업이나 외식사업 등에서 양산되는 각종 인스턴트 식품들이 우리 식탁에 도전해 오고 있고, 세계 각국의 먹을거리들도 그 나라의 문화요소들과 함께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먹을거리의 홍수 속에서 음식문화학교는 우리 전통 먹을거리를 낳게 한 사회문화적 배경, 그리고 특정 먹을거리와 그를 갈무리하는 맛깔스런 음식점, 그리고 그 주인과 공동체에 얽힌 이야기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곧 '먹을거리 이야기'를 넘어 '이야기가 있는 먹을거리'를 찾는 여정이 음식문화학교가 가고자 하는 방향입니다. 문화유산 답사의 개척자 유홍준 교수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유 교수의 어법을 빌려 말한다면, 음식도 아는 만큼 맛있습니다.
<음식문화학교는...>
음식문화학교는 요리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음식문화학교는 문화 속의 음식, 음식 속의 문화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음식문화학교는 음식의 현장을 찾아가 문화를 즐기거나, 문화의 현장을 찾아가 음식을 즐기는 기행의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곧 '금강산과 식후경의 조화'가 저희 음식문화학교의 교훈입니다.
앞으로 김치, 젓갈, 된장, 두부, 등심, 갈비, 불고기, 육회, 토종닭, 홍어, 비빔밥, 산나물, 막걸리 등 숱한 우리 전통 먹을거리의 명품, 명소를 찾는 기행이 쭉 이어집니다. 전문가 또는 교장의 음식문화 강의 후 맛있는 음식을 즐기게 되며, 재래시장 장보기, 산나물 뜯기, 쭈꾸미 잡기, 콩 털기 등의 체험행사도 함께 하며 유명 음식축제 여행으로 변화를 꾀하기도 하겠습니다.
음식문화학교는 월 1회, 셋째 토요일에 여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정(명절, 연휴, 장날, 음식축제 등)에 따라 날짜를 옮길 수도 있으며, 당분간은 당일 코스로 하겠습니다.
전체댓글 0